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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최순실 특검 발악이 던지는 메시지 본문
최순실이 드디어 반격에 나섰다. 그는 지난 1월 25일 특검에 출두하면서 작심한 듯 “억울하다”며 고함을 질렀다. 지난해 첫 검찰 출석 당시 고개를 숙이고 ‘죽을 죄를 지었다’며 울먹이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수의 차림으로 차에서 내릴 때 고개를 들고 주변상황을 살피는 것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그는 빌딩 로비로 들어서면서 사전에 철저히 준비한 듯 사자후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최 씨는 취재진의 질문이 시작되기도 전에 “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 “어린 손자까지 멸망시키려고 그런다” “박 대통령과의 경제공동체 자백을 강요하고 있다” “너무 억울하다”는 등의 말을 발악하듯 내뱉었다. 최순실의 돌발행동에 취재진도 당황한 듯 질문을 하지도 않았다. 엘비베이터까지 끌려가던 최순실은 타지 않고 끝까지 버티며 “억울하다”고 소리쳤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교도관들이 ‘조용히 해’라며 제지하기도 했다. 이날 그의 특검 출두 소식은 전국에 생중계되고 있었다. 국민들도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충격을 받은 듯했고, 네이버 실시감 검색 1위는 계속 ‘최순실’이 올라 있다.
이 같은 최 씨의 모습은 지난해 검찰 출석 당시와는 완전히 상반돼 그 배경을 두고 많은 말들이 오가고 있다. 최 씨는 지난해 10월 31일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할 때 모자와 목도리 등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울먹이면서 “죽을 죄를 지었다”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모기목소리로 “잘못했습니다”라고 할 때는 측은한 감정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돌변했고, 피해자 코스프레로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최순실은 왜 갑자기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을까.
먼저 최순실이 이번에 공개적으로 특검 수사에 대해 ‘항명’을 한 것은 상당히 계획적이고 의도적이란 게 중론이다. 그가 계속 강조한 것은 ‘자유민주주의’였다. 보수층이 가장 숭고하게 생각하는 정치 이념이다. 최순실의 특검 발악은 보수층, 특히 촛불민심에 불만은 있지만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는 ‘샤이 보수층’에 대해 일종의 세 결집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현재 대구경북 등 보수색채가 강한 지역에서는 “대통령 개인 생활까지 너무 발가벗기는 것 아니냐” “대통령도 인격이 있는데 검찰 수사가 너무 지엽적이고 망신주기식으로 흘러가고 있다”라는 비판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고 한다
촛불민심이 조금씩 식고 있고, 최순실에 대한 특검 수사도 더 이상 메가톤급 비리나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고 소소한 가십거리가 주를 이루면서 최순실 비리 정국도 점점 감정형에서 이성형으로 옮아가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각에서는 ‘보수층의 반격이 조금씩 시작될 것이다. 절대 호락호락하게 정권을 내주지 않을 것이다’라는 주장도 나온다. 그동안 최순실의 비리와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국민적인 분노가 촛불민심으로 충분히 타올랐다.
이제는 지루한 법리공방이 기다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최순실’이라는 한몸 등식이 깨질 조짐도 보이고 있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제대로 처리하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나 사법처리는 보다 신중해야 되지 않느냐는 기류가 생길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최순실의 극단적인 메시지 전달은 향후 보수층과 진보층의 심각한 갈등을 낳을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
특검 수사도 더 부담을 받게 됐다. 특검은 2월 말로 예정된 수사종결 때까지 확실한 물증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사법처리까지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특검의 수사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제한된 인원과 무엇보다 검찰 네트워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 증거수집 등의 면에서 기존 검찰 수사력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역대 특검이 초반의 의욕적인 출발에서 막판 용두사미격의 수사결과 발표로 이어진 것도 이런 문제 때문이었다. 최순실이 특검 출두에서 던진 메시지도 특검의 이런 아킬레스건을 잘 알고 그 단점을 물고 늘어지려는 속셈도 있다.
이번에 보인 돌발행동으로 특검은 ‘비민주적인 특검’이라는 말까지 듣게 됐다. 특검 본인들로서는 억울하겠지만, 사태에 대해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국민들은 ‘혹시 특검 수사에 정치적인 의도나 무리한 강압이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특검 수사는 앞으로 더욱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됐고 그 결과 최순실은 자신을 무리하게 엮으려는 특검의 의지를 사전에 봉쇄했다고 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최순실의 메시지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경고로도 읽힌다. 최순실은 “박 대통령과 경제공동체의 책임을 강요하고 있다”라고 울부짖었다. 거의 날마다 휴대폰 등으로 대화하던 두 사람은 몇 달 째 서로 볼 수 없는 처지에 빠져 있다. 간접적으로 박 대통령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처지를 대통령에게 대외적으로 직접 전달하고 대통령을 압박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려 했을 수 있다. 최순실이 현재 가장 중점적으로 방어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딸과 손자도 있지만 그가 수십년 동안 일궈온 재산일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된 상황에서 그를 가장 잘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지금까지 그를 전혀 보호해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특검까지 수용했고 결국 그 특검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됐다. 최순실의 특검 발악은 ‘최소한 내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박 대통령이 뇌물죄를 수용해야 한다. 나는 민간인 신분이기 때문에 박 대통령이 그 부분에 대해 책임을 져라’는 메시지로 읽힌다. 최순실은 박 대통령이 특검의 대면조사를 앞두고 있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박 대통령에게 혐의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최소한의 재산만이라도 지키자는 메시지는 아닐까.
몇 달 동안의 검찰 특검 수사를 통해 최순실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칼날이 단순한 징역형이 아닌 전 재산 몰수와 철저한 파멸일 것이라는 점을 직감했을 것이다. 그 방어 차원에서 박 대통령에게 최소한의 책임을 인정하고 최악의 상황만은 막아보자고 몸부림쳤을 것이다. 또한 최순실의 특검 발악에는 ‘앞으로 나를 계속 옥죄고 괴롭히면 박근혜 대통령과 관련한 비밀도 폭로할 것’이라는 협박성 메시지로도 작용할 수 있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최순실의 이러한 극단적인 행동에 대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냥 민심이나 듣는 정도의 일을 해준 최순실이 아니라 대통령의 머리 위에 앉은 1인자라는 뉘앙스를 최순실이 향후 조사과정에서 내비칠 경우 박 대통령으로서는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는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게 된다.
특검 출두에 앞서 최순실이 보여준 극악한 행동으로 국민들도 충격에 빠졌다. 국민들의 법 감정과 최순실의 양심 사이에는 많은 괴리가 있다. 최순실의 특검 발악은 아직도 그가 구름 위에 살고 있는, 대통령을 쥐락펴락했던 실세라는 의식이 머릿속에 박혀 있는 것 같다. 그가 검찰에 출두할 때 말했던 ‘죽을 죄’는 그 사이 어디로 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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