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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 칼럼] 필리버스터는 죽었다

성기노피처링대표 2026. 7. 31.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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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1일 형사소송법 개정안 필리버스터가 끝난 뒤 안건이 본회의에 상정되고 있다. (사진=KBS 캡처)

 

지난 30일 오후 국민의힘 의원들은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를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막겠다며 본회의장 발언대에 섰다. 이름은 필리버스터(filibuster), 무제한 토론이지만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다.

24시간이 지나면 종결동의안이 표결에 부쳐지고 재적 5분의 3이 찬성하면 토론은 강제로 끝난다. 사람이 끊거나, 시간이 끊거나 결국 말이 멈추는 일만 남아 있다. 말은 있지만 대화는 없다.

사실 필리버스터는 처음부터 누가 만들어준 권리가 아니었다. 제헌의회 국회법은 “의원의 발언에 대하여는 국회의 결의가 있는 때 외에는 시간을 제한할 수 없다”고만 돼 있었다. 필리버스터라는 조항이 있었던 게 아니라 발언 시간을 막을 규정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1964년 4월 20일 당시 재선이었던 김대중 의원이 동료 김준연 의원의 구속동의안 처리를 막으려 원고도 없이 5시간 19분을 버틴 것은 그 빈틈을 파고든 결과였다. 한국 필리버스터 1호로 기록된 그 연설도 끝까지 가지는 못했다. 이효상 국회의장이 말을 끊으려 했고 김 의원이 발언을 이어가자 결국 마이크를 꺼버렸다. 62년 전에도 다수는 소수의 입을 그렇게 막았다.

다만 그때는 마이크가 꺼져도 효과가 남았다. 회기가 끝나면서 구속동의안 처리 자체가 무산됐다. 지금은 정반대다. 마이크는 24시간까지 보장되는데 정작 그 발언은 아무 결과도 바꾸지 못한다. 말은 길어졌는데 힘은 사라졌다.

미국 상원도 마찬가지다. 1806년 토론을 끝낼 수 있는 ‘선결문제’ 규칙을 정리하다 별생각 없이 빼버리면서 생긴 공백이었고 그 틈을 이용한 첫 필리버스터는 1837년에야 등장했다. 한미 양국 모두 필리버스터는 입법자가 준 권리가 아니라 규정이 비어 있어서 가능했던 일종의 관행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두 나라 모두 그 공백을 메우는 순간 종결의 문도 함께 열었다. 미국은 1917년 클로처(cloture:토론종결 절차)를 도입해 출석 의원 3분의 2 찬성으로 토론을 끝낼 길을 텄고 1975년 그 문턱을 지금의 60표로 낮췄다. 한국은 1973년 유신 체제에서 발언시간 45분 상한을 국회법에 못 박아 무제한 토론을 아예 없애버렸다. 공백에 기대던 전통은 박정희 정권의 법 조문 한 줄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후 2012년 국회선진화법은 그 관행을 처음으로 ‘제도’로 승격시켰다. 다수당의 일방적 처리를 막되 충분히 말하게 한 뒤엔 표결로 매듭짓자는 것이었다. 권리로 인정받는 대신 종결 장치도 함께 딸려 왔다. 그 합의 정신은 한동안 작동했다.

19대 국회에서 필리버스터는 단 한 번, 20대에서도 두 번뿐이었고 두 국회 모두 강제종결은 한 건도 없었다. 소수가 말을 시작하면 다수는 기다렸다. 이 관행은 21대 국회에서 처음 깨졌다. 21대에서는 필리버스터가 5건 실시됐고 이 중 2건이 민주당 주도로 강제종결됐다(나머지 3건은 회기 종료에 따른 자동 종결).

그리고 22대 국회 들어 이 흐름은 완전히 역전됐다. 개원 후 약 1년 반 만에 필리버스터는 32건으로 급증했고 이 중 28건이 강제종결로 끝났다. 12년간(19~21대) 누적 8건에 그쳤던 필리버스터가 22대 들어 그 4배를 훌쩍 넘어선 것이다. 정작 소수가 말한 횟수는 늘었지만 다수는 더 이상 기다려주지 않고 대화의 끈을 잘라버리고 있다.

필리버스터가 소수의 의견과 다양성을 존중해주는 최소한의 장치가 아니라 다수결 강행 전 거쳐 가는 통과의례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이제 무제한 토론은 설득의 과정이 아니라 따분하게 기다려야 하는 애물단지가 됐다. 신청, 종결동의, 24시간, 종결표결, 법안 처리. 결말을 아는 연극처럼 무대의 배우들은 각자의 대본만 읽은 뒤 사라지고 관객들은 아무런 불평도 하지 못한 채 텅 빈 무대를 바라만 볼 뿐이다.

그 무의미한 낭독의 시간마저 때로는 또 다른 배우의 쇼맨십 무대로 활용된다. 지난해 12월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 반대를 명분으로 24시간이라는 헌정 최장 기록을 세웠다. 그 연설은 법안 내용을 국민에게 설득하는 자리이기 이전에 흔들리는 당권을 지키기 위한 성벽 쌓기로 소비됐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지금 국회는 세 겹의 침묵에 잠겨 있다. 다수당은 24시간을 그저 흘려보낼 준비가 돼 있고 소수당은 결과가 바뀌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카메라 앞에 선다. 국민은 그 발언을 듣지 않는다. 그렇게 형사소송법 개정 법안은 누구의 책임선에도 걸쳐지지 않은 채 뻔한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19, 20대 국회에서 소수의 의견을 끝까지 들어준 다수의 자세는 존중할 만하다. 그마저도 이제는 볼 수 없다. 경청과 인내의 미덕을 묵살과 배제로 바꿔버린 22대 국회는 절망적이다.

 

*이 글은 2026년 7월 31일자 투데이신문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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