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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 칼럼] 바그다드의 불꽃놀이와 미나브의 아이들

성기노피처링대표 2026. 3. 6.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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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스라엘의 융단폭격에 불바다가 된 이란 테헤란의 모습. (사진=MBC 캡처)

 

 

경칩이 지났지만 여전히 봄은 멀리 있는 것 같다. 구름이 낮게 내려앉아 금세 눈싸라기라도 내릴 거 같은 우중충한 날이다. 멀리 중동에서 날아오는 미국 이란의 전쟁 뉴스는 날씨만큼이나 우울하게 들린다.

91년 1월이었나, 군 생활도 절반이 꺾여서 따분한 날을 보내고 있을 때 전군에 비상이 걸린 적이 있었다. 미국 중심의 다국적군이 1월 17일 이라크 공습으로 걸프전을 개시한 것이다. 실제로 어디로 출동한 것은 아니지만 군인이 전쟁 뉴스를 접하니 ‘아 남의 일이 아니구나’ 하는 현실감이 처음으로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럼에도 새벽에 내무반 TV로 숨죽이며 지켜본 전쟁은 공포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밤하늘을 수놓는 수많은 미사일의 궤적을 아름답게 느낀 그 몇 초간의 분별없는 감정이 참전한 모든 군인들과 가족들에게 죄책감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 그 후의 전쟁은 비디오게임의 한 장면처럼 무덤덤하게 다가왔다.

세월이 흘러 요즘 미국 이란 전쟁 소식을 접하면서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잠자고 있던 91년의 걸프전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란 함정이 미국 잠수함에 격침당한 뉴스는 밤하늘을 수놓은 무수한 미사일의 궤적만큼이나 긴 여운을 남겼다. 

이란 해군 최신형 호위함 IRIS 데나(Dena)호는 다시 고국 땅을 밟지 못했다. 인도 비샤카파트남에서 열린 국제 함대 행사를 마치고 귀항하던 이 배는 스리랑카 남부 갈레항에서 약 75km 떨어진 인도양 공해상에서 어두운 심해의 포식자를 만났다.

펜타곤이 공개한 영상 속에서 데나호는 함미 쪽이 무참히 짓이겨진 채 선미부터 비스듬히 가라앉고 있었다. 미국 국방장관 피트 헤그세스는 이를 두고 ‘조용한 죽음’(Quiet Death)이라 명명하며 2차 세계대전 이후 80여년만에 미군 잠수함이 실전 어뢰로 적함을 격침시킨 극히 드문 사례임을 공식 확인했다.

승조원 180여 명 중 구조된 이는 고작 32명. 수습된 시신 87구와 여전히 심해 어딘가에 갇혀 있을 60명의 실종자. 이들 사망자와 실종자 숫자가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바다에서 사람이 죽고 땅 위에서는 더 참혹한 죽음이 이어졌다. 이란 남부 호르모즈간 주 미나브의 한 여자 초등학교가 전쟁의 첫날, 토요일인 2월 28일 오전 10시 전후 공습의 화염에 휩싸였다는 소식이 타전됐다.

부모들이 아이를 학교에 내려주고 출근길에 오른 지 몇 시간 되지 않아 여학교 건물 위로 미사일 몇 발이 떨어졌고 교실에 앉아 있던 7살에서 12살 사이의 아이들과 교사, 학교 안팎에 있던 부모와 직원 160여명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먼지투성이가 된 채 주인 잃은 신발과 피 묻은 연습장들이 폐허가 된 운동장을 뒹구는 모습이 SNS를 통해 퍼져 나갔다. 하지만 서방 매체들은 이를 ‘개전 초기 정밀 타격 과정에서 발생한 불가피한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는 짧은 문장으로 갈음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 일대를 혁명수비대(IRGC) 기지와 해군 시설을 겨냥한 정밀 타격이라 주장하지만 이 공습은 이번 전쟁의 가장 상징적인 ‘민간인 학살’ 사건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우리는 매일 누군가의 죽음을 목도한다. 그 죽음의 소비 방식은 슬픔과 안타까움, 나를 비켜갔다는 안도감과 운명론의 어디쯤에 있을 것이다. 김훈은 노동자의 산재 추락사를 두고 “인간의 살아 있는 몸이 한 덩이의 물체로 변해서 돌멩이처럼 떨어진다. 땅에 부딪쳐서 퍽퍽퍽 깨진다. 오늘도 퍽퍽퍽, 내일도 퍽퍽퍽”이라고 썼다.

전쟁의 공포보다 인간의 생명이 숫자로 소비되거나 소리로 증명되는 것이 두려운 세상이다. 이란 전쟁으로 91년 겨울 내무반 TV 앞에서 숨죽이며 바라보던 그 공습의 밤이 자꾸 떠오른다. 바그다드의 밤하늘을 가르며 치솟아 올라가던 수많은 미사일들이 마치 폭죽처럼 잠시 아름답게 보였던 그 밤이.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그때 불꽃 하나하나도 누군가의 삶을 부수는 소리였을 것이다.

퍽.

 

*이 글은 2026년 3월 6일자 투데이신문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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