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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 칼럼] 장애인을 대하는 사회의 품격

성기노피처링대표 2026. 2. 2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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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I 생성형 이미지]

 

최근 투데이신문은 ㈔한국자폐인사랑협회(회장 김용직)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은 한국자폐인사랑협회는 국내 유일의 오티즘 중심 비영리 공익법인으로 오티즘 당사자와 가족의 권익을 대변해왔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민간단체가 20년 동안 ‘대신’해온 것에 대해 존경심과 함께 미안한 감정도 들었다. 장애인을 어떻게 대우하느냐의 문제는 한 사회의 문명 지표와도 같다. 장애인 편의시설이나 제도는 특정 집단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안전과 품격을 가늠하는 기준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은 여전히 장애감수성이 낮은 나라에 속하고 결국 한 사회의 인권과 복지 수준은 장애인의 삶의 조건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한국장애인개발원 ‘2023 장애통계연보’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한국의 장애인 복지지출은 GDP의 0.71%로 OECD 평균인 1.98%의 약 3분의 1 수준에 그친다.

이처럼 절대적으로 부족한 재원마저 장애인 당사자의 실질적인 삶을 지원하기보다 시설 운영 등 공급자 중심으로 배분되다 보니 그들의 일상은 늘 권리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특히 수요자 중심으로 설계되지 못한 예산 구조가 장애인의 이동권 투쟁을 반복시키는 점은 장애인 정책의 근본적 결함을 드러낸다.

전장연 등의 시위로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가끔 큰 불편을 겪고 있지만 그 사태의 본질에는 갈등을 해결하기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마주 세워 책임을 희석시키는 정부의 편의적인 접근 방식이 자리 잡고 있다. 정부의 근본적인 해법이 아닌 비장애인들이 시위를 하는 장애인들을 꾸짖고 제지하는 방식으로, 그래서 갈등을 조정해야 할 정부가 그것을 방치하고 시민과 장애인 서로에게 화살을 돌리는 방식은 책임의 외주화일 뿐이다.

또한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 미비나 저상버스 도입 지연은 장애인뿐 아니라 노인, 유모차 이용자, 일시적 부상자 등 모든 교통약자의 이동을 제한한다. 여전히 장애인을 배제하는 인프라는 결국 노년기에 접어든 모든 비장애인의 미래까지 제약한다. 이렇듯 장애 문제는 특정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 전체의 복지 수준과 직결된 구조적인 사안인 것이다.

과거에 발달장애 작가 전시회를 진행하면서 느꼈던 가장 안타까운 점은 작가들의 고군분투 예술 여정도 있지만 그들을 돌보는 가족들의 헌신과 노력이다. 전시회 도중 수시로 바깥으로 뛰쳐나가는 발달장애 작가들도 있어 부모들이 한시라도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이 일상이다.

발달장애를 가진 자식보다 하루라도 더 오래 사는 게 소원이라는 부모들. 부모가 세상을 떠나도 장애를 가진 이를 돌보기 위해 형제를 더 낳는 부모들. 이런 개인과 가족의 눈물겨운 사랑은 우리 공동체에게 아린 책임 의식을 묻는 것 같다.

장애인 돌봄을 오롯이 가족의 사랑과 헌신이라는 미명 아래 가두는 것은 국가의 책임 방기이다. 빈번하게 발생하는 장애인 가족의 비극적인 참변은 더 이상 개인의 인내로 해결할 수 없는 한계치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2023년 말 기준 국내 등록장애인 264만 명 중 약 10%인 27만 명이 발달장애인이다. 여기에 지적장애인은 23만 명(8.7%), 자폐성장애인은 4.3만 명(1.6%)이다. 이들을 보호하는 부모들까지 합하면 결코 작지 않은 수의 사회적 약자들이 국가의 안전망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장애인 돌봄은 가족의 영역이 아닌 사회 공동체의 연대와 책임으로 해결해야 할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이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곧 비장애인을 바라보는 척도이다. 장애인을 동정의 대상이나 시혜를 베풀어야 할 객체로 보는 인식은 비장애인에 대한 사회 불평등과 차별 또한 당연한 질서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과거 우리 공동체는 이웃이 어려울 때 서로 돕는 품앗이를 통해 고달픈 일상을 버텨냈다. 장애인의 문제를 개인사로 치부하고 돌봄의 굴레를 가족에게만 전가하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미성숙한 장애인 인식을 여실히 드러내는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한국자폐인사랑협회를 이끌고 있는 김용직 회장은 행정고시와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전도유망한 판사의 길을 걷다가 아들의 장애를 알게 된 뒤부터 자폐성장애(오티즘) 단체를 설립해 지금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그런데 업무협약을 맺은 인연으로 김 회장과 안부 메시지를 주고받다 실수를 저질렀다.

‘장애인 차별은 곧 정상인에 대한 차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를 바꾸는 데 같이 동행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는데 여기에서 잘못된 표현을 썼기 때문이다. ‘정상인이라는 말을 사용하면, 장애계에서는 장애감수성이 없다고 지적을 받습니다. 비장애인’이라는 김 회장의 답을 보고 뜨끔한 미안함이 솟구쳤다.

무심코 사용한 단어 하나에도 우리의 인식은 드러난다. 비장애인들이 생각하는 장애감수성은 여전히 우리의 일상과는 조금은 동떨어져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장애인이 대접받는 나라는 비장애인의 삶 또한 소홀히 대하지 않는다. 장애는 특정한 사람의 불운이 아니라 우리 누구나 마주하게 될 가장 보편적이고도 실존적인 삶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2026년 2월 27일자 투데이신문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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