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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최전선 병사들의 ‘수호신’ K-9 자주포의 대굴욕과 대변신

성기노피처링대표 2017. 9. 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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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7년 7월 14일 인터넷매체 보안뉴스에 기고한 기사입니다.)




병사들에게 전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의외로 ‘총알’이 아니라 ‘포격’이라고 대답하는 게 대부분이라고 한다. 2차 대전에서 포병의 적 사살률은 60%이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독일이 2차대전에서 개전 초반에 소련 등의 적대국을 압도할 수 있었던 요인 중의 하나도 막강한 포병 때문이었다. 최전방 독일보병들에게 있어 수호신격인 독일의 장거리 포격 지원능력 만큼은 당시 세계 최강이었다고 한다. 특히 소련과의 전투에서 1943년 하계 공세 기간 내내 하르코프,오렐, 브리얀스크등 드네프르강과 도네츠크강 사이 모든 격전지에서 소련군은 독일군을 눈앞에 포위하고도 독일측 후방에서 날라오는 엄청난 장거리 포격에 의해 막대한 희생을 치르며 다 잡은 물고기들을 놓치며 힘들게 전진했던 적이 있었다. 


현대전도 여전히 포병부대는 상당히 유용하다. 특히 한국군은 K-9 자주포라는 세계 최강의 포를 가지고 있다. 자주포는 차량에 탑재되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대포를 말한다. 견인포의 경우 포병이 한번 이동하고 진지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병력이 포를 차량과 결합하고 다시 진지를 구축하고 포를 배치하는 데만 해도 몇 십 분이 걸린다. 그 사이 적은 아군의 포병에 대한 대포병 작전을 실시하여 포대를 초토화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자주포가 등장하고 나서 실전에서 운용은 매우 간단해졌다. 자주포 자체가 이동하는 포대진지이기에 부대 전개와 이동에 필요한 부수적인 시간이 절감되었다. 그리하여 포격 이후에 약 1~2분 만에 장소를 이동하여 공격하는 ‘사격 후 신속한 진지변환 (SHOOT AND SCOOT)’이 가능해졌다.


우리나라는 이미 고려 말에 최무선이 흑색화약을 개발하는 등 화포 개발의 선진국이었다. 우리 육군도 포병전력의 국산화에 노력을 기울여 70년대 초부터 105mm와 155mm 견인포를 국내 생산하였다. 미군으로부터 M107 자주포를 도입하여 자주포를 운용해오던 우리나라는 1985년부터는 K-55 자주포를 생산하여 약 1천여 대를 배치하고 있다. 이런 국산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80년대 당시 우리의 화포 전력은 북한에 비하여 열세에 있었다. 북한군의 포병전력은 수적으로 우위에 있었을 뿐 아니라 보유한 화포의 절반가량이 자주화 및 차량탑재용이어서 기동성이 뛰어난 포병전력을 보유했다.



우리 육군은 이런 양적 열세를 질적 우위로 극복하고자 했다. 특히 사정거리가 증가된 야포를 배치하여 군단 종심작전에 대한 화력지원이나 화력전 수행능력을 향상시켜야만 했다. 이에 따라 KH179와 K-55의 개발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육군은 K-55를 이어갈 차세대 자주포의 개발에 착수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차세대 자주포 K-9은 우리 군의 전력에 일대 전환점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 K-9 자주포는 1989년부터 체계개념연구가 시작되어 약 10년간의 집중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1999년부터 전력화되었다. 국방과학연구소의 주도로 개발된 차세대 자주포는 삼성테크윈, WIA, 풍산, 한화, LG정밀 등 백여 개의 업체가 개발에 참가했다. 그래서 K-9은 1990년대 국방과학기술의 총화와도 같은 존재이다. 또한 우리나라가 세계에 자신 있게 내놓은 제1호 국산 명품 무기체계가 되었다.


이런 점에서 방산업체 한화테크윈이 현재 생산하고 있는 ‘국산’ K9 자주포는 상당히 의미가 깊은 무기로 통한다. 한화는 K-9을 주력으로 수출 전선을 뚫고 있다. 2001년 터키를 시작으로 2014년 폴란드에 공급한 데 이어 올 들어 핀란드와 인도에서 수출 승전고를 울리고 있다. 한화테크윈은 K55 자주포를 통해 생산 노하우를 축적, 1998년 국방과학연구소와 함께 K9을 개발했다. 최대 사정거리는 40㎞이며 최고 시속은 67㎞다. 정지 상태에서 30초, 움직이면서 60초 내 표적사격을 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시간 내 사격할 수 있다는 성능이 알려지면서 터키와 폴란드, 핀란드, 인도에서 주문이 늘고 있다고 한다. 


한화테크윈은 K9 자주포를 폴란드에 120문, 핀란드에 48문, 인도에 100문 수출한다. 유럽 선진국인 핀란드가 K9 자주포를 선택했다는 것은 그만큼 기술력을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K9 자주포는 동급 미국 M109A6 팰러딘, 영국 AS90 브레이브 하트 대비 우수한 성능과 강한 내구성을 갖추고 있다. 당대 최고 자주포로 평가받는 독일의 PzH2000 대비 높은 가격경쟁력도 보유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화테크윈은 이런 강점을 바탕으로 아시아, 중동 등에도 K9 자주포 수출을 추진 중이다. 북유럽과 동유럽 국가를 대상으로도 적극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다.




하지만 K-9의 굴욕도 있었다. 지난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도발 때 K-9은 ‘대굴욕’을 겪었다. 북한군이 방사포(다연장로켓) 등으로 연평도를 포격했을 때 연평도에는 모두 6문의 K-9 자주포가 있었고, 해병대는 13분 만에 대응 포격에 나섰다. 하지만 6문 중 3문이 작동하지 않았다. 1문은 포사격 훈련 중 불발탄이 끼어 사격 불능 상태였고, 2문은 자주포 근처에서 북한 포탄이 터지면서 충격에 예민한 사격통제장치의 전자회로에 이상이 생겨 작동 불능 상태에 빠졌다. 연평도에서 유일하게 북한의 포 기지를 공격할 수 있는 K-9 절반이 먹통이 된 참사였다. 정치권에서 군에 대한 비난이 빗발치자, 김태영 당시 국방장관은 국회에 출석해 “불비한 점이 있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이 후폭풍은 당시 K-9을 생산하던 삼성도 크게 흔들었다. 자존심 강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2011년 6월 삼성테크윈의 경영 진단 과정에서 임원들을 크게 질책한 뒤 바로 삼성테크윈 사장을 경질해버렸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K-9의 불량 및 방산비리 논란이 삼성그룹 전체의 이미지에 악영향을 끼친다며 상당히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됐던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삼성은 한화로 방산부문을 넘기는 초강수까지 두게 된다. 그래서 현재 K-9 자주포는 한화테크윈에서 생산 중이다.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은 K-9은 한화테크윈에서 인수한 뒤 지속적인 기술개발과 품질혁신으로 세계 여러나라에 수출하는 ‘성공’을 거둔 것이다. K-9 자주포 뒤에는 우리 방산업체의 실패와 성공의 작은 역사가 오롯이 남아 있다. 


성기노 피처링 대표



(이 글은 2017년 7월 14일 인터넷매체 보안뉴스에 기고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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