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나경원은 왜 불출마 카드를 던졌나 본문

정치

나경원은 왜 불출마 카드를 던졌나

성기노피처링대표 2023. 1. 25. 18:02







728x90
반응형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한 뒤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이 1월 25일 3.8 전당대회 ‘드롭’을 선언했다. 불출마 선언 하루 전만 해도 대부분의 언론에서 ‘출마 강행’으로 헤드라인을 뽑을 정도로, 나 전 의원은 드롭 선언 직전까지 양손에 출마와 불출마 카드를 쥐고 좌불안석 고민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부 언론은 “나 전 의원은 24일 4시간여 마라톤 회의에서 출마를 결단한 것으로 전해졌다”는 ‘오보’를 날리기도 하는 등 당 대표 출마를 두고 막판까지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 나경원 전 의원의 ‘정치 스타일’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그가 결국 당 대표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 방점을 찍었다. ‘나경원의 정치’는 없는 길을 내는 스타일이 아니라 누군가가 어렵게 뚫어낸 길을 편안하게 걸어가며 떨어진 알곡을 줍는 스타일이다. 나경원 정치인생의 최대 하이라이트였던, 2019년 4월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때 선거법 개정안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빠루(쇠지렛대)를 들고 당을 진두지휘했던 그 ‘기개’도 사실은 제1야당 111명 의원 ‘동지’들이 뒤에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옆에서 챙겨주고 밀어주지 않으면 혼자서 돌파하고 감당해내지 못하는 스타일인 것이다. 그런 나경원의 ‘정치적 한계’가 이번에도 그대로 확인된 것이라 진즉에 불출마할 것이라는 예상도 많았다. 그래도 결론 내리는 것을 너무 미적댄 것은 그나마 ‘4선’을 하며 배운 ‘밀당 정치’의 흔적이었다.

정치권에서는 나경원의 드롭을 두고 여러 가지 뒷말도 나온다. 누가 봐도 윤석열 대통령이 ‘압착’해서 주저앉힌 것으로 본다. 나 전 의원이 ‘윤석열 검찰 정권’의 무서움을 알고 결국 ‘마지막 자존심’마저 버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당 안팎에서는 “나 전 의원의 딸과 아들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의혹과 그 외 ‘윤석열 검찰’이 확보하고 있는 ‘나경원 X파일’ 때문에 나 전 의원이 도저히 견딜 수 없어 할 수 없이 ‘회군’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2019년 4월 26일 오전 국회 의안과 앞에서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노루발못뽑이(일명:빠루)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나 전 의원이 ‘정치적 소리(小利)’를 택했다는 분석도 있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 전 의원의 당 대표 지지율은 3~4위 언저리로 주저앉아버렸다. 당장 전당대회에 나가더라도 당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정치적 현실을 받아들이고 내년 동작구 공천을 ‘보장’받는 실리를 챙기는 선에서 일단 2보 후퇴를 택했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희망가’를 연신 부르고 ‘윤심’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마지막까지 바짝 엎드렸다는 것은 공천권 한 장을 얻기 위한 눈물 겨운 분투였을 수도 있다. ‘친윤계’에서도 유력주자가 중도포기를 선언한 것에 대한 ‘답례’ 차원에서 내년 총선 공천은 눈감아주겠다는 ‘이면 합의’가 있었다는 설도 들린다.

한 달여의 ‘나경원 출마 파문’은 한국 정치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모두 노정했다는 점에서 ‘정치사 텍스트’에도 올려 분석해볼 필요가 있을 정도다. 먼저 나경원의 정치에는 ‘왜’라는 질문이 결여돼 있다. ‘왜 이번 전당대회에 출마하려고 했는지’ 그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나 전 의원은 내놓지 못했다. 나경원의 당 대표 도전에 대해 “선거만 있으면 자동으로 나가는 ‘출마 중독’ 때문”이라는 날선 비판도 나왔다.

사실 나경원이 그토록 외치던 ‘윤석열 정권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란다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기후환경대사 직은 4선에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로까지 오른 그의 경력을 볼 때 최적의 자리다.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경륜 있는 4선의 국회의원 출신이 관료집단과 의회를 거중조정하며 얼마든지 정치력을 펼칠 수 있다. 이를 통해 나경원의 진정성과 전문성은 재조명되고 그것이 대권도전의 든든한 발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경원은 왜 자신이 2개의 ‘장관급’ 자리를 감사하게 받은 뒤 4선의 정치인으로서 ‘한국 사회의 병폐들을 한번 내 손으로 해결해보겠다’는 진심을 가질 수 없었을까. 여기에는 나경원의 정치에는 ‘왜’라는 질문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무엇’에게만 눈이 돌아간다. 그에게 16년동안 금배지의 영광을 준 국민들에게 ‘이번에야말로 그것에 보답하고 봉사하기 위해’라는 태도를 가졌다면 어땠을까. 나경원은 오로지 자신의 대권 꿈과 정치 커리어를 위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자리를 생각하기 때문에 2달 남짓 해온 자리를 미련 없이 걷어차 버렸다. 이는 한국 엘리트 정치인들이 가지고 있는 숙명적인 한계인 ‘탐욕’과 ‘무한출세주의’에서 기인한다.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힘의힘 당사에서 전당대회 불출마 입장을 밝힌 뒤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나경원은 불출마 회견에서 “부위원장 자리는 상근이 아니라 ‘장관급’이 아니고 기후환경대사도 무보수 봉사직”이라고 말했다. 각종 수당과 경비 등으로 한해 꼬박꼬박 1억5천만원 이상씩 16년을 받아 챙겼으면 한번쯤 ‘무보수 봉사직’도 해볼 마음이 들어야 상식적인 것 아닌가. 그나마 회기가 아니면 일도 하지 않고 해외로 놀러 다니기 바쁜 국회의원 자리를 16년동안 했으면 누릴 것은 다 누린 셈인데 상근이든 비상근이든 무보수 명예직이라도 한번쯤 국민을 위해 땀을 흘릴 생각은 왜 하지 않을까. 국민을 바라보지 않고 오로지 ‘내 정치 생명’만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상식적’인 결정마저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나 전 의원이 결정적으로 불출마를 선언한 배경에는 ‘여론조사’도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다. 그가 1월 초 ‘딴 마음’을 먹게 된 결정적인 배경이 바로 ‘여론조사 1위’였다. 여론조사는 특정 시점의 특정 층의 여론을 반영하는 것일 뿐 그것이 곧 당선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영광스러운’ 부위원장 자리를 박차고 나갈 정도의 결기를 가졌다면 ‘팔랑귀’들에게나 통할 법한 여론조사는 참고자료로만 활용했어야 했다.

여기서 또 다시 ‘왜’라는 질문이 나온다. 나경원은 ‘왜’ 3.8 전당대회에 나가려했던 것일까. 그리고 ‘왜’ 맥없이 불출마를 선언했을까. 나경원이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이 없었기 때문에 단순한 숫자놀음일 수도 있는 ‘일부’ 여론조사에 혹해 그냥 내지른 것으로밖에 이번 해프닝은 보이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여론조사 1위를 전가의 보도처럼 들고 다니며 출마를 부추겼던 ‘일부 참모’들의 감언이설에 어리숙하게 속아 넘어가는 나경원의 정치적 자질도 비판받아야 한다.

한국 정치에서 ‘왜’라는 질문은 빠진 채 ‘무엇’에만 집착하다보니 여론조사같은 ‘바람의 유혹’에 그냥 넘어가는 것이다. 국민들의 민생과 당원의 행복을 ‘진심으로’ 원해 나경원이 칼을 빼들었다면 그깟 여론조사가 대수일까. 지는 싸움이라도 당당하게 나가 ‘윤석열 정권’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경륜 있는 비판과 대안을 내놓고 ‘윤핵관’들과도 토론하고 싸운다면 그것이 곧 ‘윤석열 정권’의 성공을 담보해주지는 않을까.




정치를 오랫동안 지켜본 전문가들과 기자들도 이번 나경원 출마 해프닝을 보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는 말을 많이 한다. 정치가 희화화되고 그것이 국민들의 혐오감만 더 부추긴다면 정치가 왜 필요한가. 나경원이 한달여 동안 보여준 불필요한 소모전을 보면서 이 시대에 과연 ‘당 대표’라는 직이 꼭 필요한지도 의문이다. 어차피 의회는 원내대표가 지휘하고 그 외 전반적인 ‘당무’는 이미 대통령이 개입해 원격조종을 하고 있다. 당 대표라는 ‘위인설관’식의 자리를 만들어 놓고 자기들끼리 ‘자리 내놓아’라며 싸우는 행태는 지금의 민심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다.

당 대표가 선출된다고 해서 국민들에게나 당원들에게 어떤 유용한 효과가 있는가. 이준석처럼 한 칼에 잘라내도, 그리고 그가 없어도 당은 비대위원장이 잘만 이끌어 나가는데 말이다. 없어도 될 자리를 억지로 만들어 그것이 마치 나경원의 ‘모든 것인’양 설레발을 치는 참모들이나 그에 ‘놀아난’ 언론도 반성해야 한다. 한 달여 동안 정치 뉴스의 대부분이 ‘나경원 출마 여부’로 도배되는 작금의 행태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시대에 역행하고 국민에게 ‘무 쓸모’인 당 대표 자리는 없애는 게 맞다.

마지막으로 나경원 전 의원의 불출마 회견을 보면서 ‘차라리 정계은퇴를 선언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치 생명을 끊겠다’고 선언한 뒤 윤핵관의 문제점과 윤석열 정권의 성공을 위한 충언을 했다면 그것으로 ‘나경원의 정치’는 더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금배지 4개’로 밀어준 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나경원 정치’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었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파이낸셜투데이 1월 25일 칼럼)

728x90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