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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인자하고 소탈한 이재명'이 아쉽다 본문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이 제기돼 파문이 확산될 것으로 보입니다. 당내 대표적인 친문계로 꼽히는 전재수 의원은 이 대표의 방산주 매입과 관련해 “좀 실망스럽다”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차기 유력주자로서 당내에서도 ‘언터처블’로 통하는 이 대표에 대해 공개저격을 한 것을 두고 친명계 지지층들은 ‘수박’에 대한 ‘조리돌림’에 들어갔습니다. 특히 친명계는 이 대표에 대한 사소한 지적이라도 당에서 제기될 경우 그것이 보수언론 등에 의해 ‘이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경계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전 의원의 작심발언은 당내에 만만찮은 후폭풍을 부를 전망입니다.
전재수 의원은 ‘문재인의 남자’라고 불릴 만큼 친문계 핵심 의원입니다. 그는 친노와 친문을 잇는 민주당의 확실한 주류였지만 지난해 9월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이광재 후보 경선 철수 이후 이재명 후보에게로 ‘전향’했습니다. 당시 이재명 후보 측은 “천군만마를 얻었다”고 할 만큼 지극히 반겼습니다. 이재명 대세론에 친문계가 암묵적으로 동의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가 이번에 이재명 대표의 방산주 매입과 관련해 쓴소리를 던졌습니다.
전 의원은 17일 BBS 불교방송 ‘전영신의 아침저널’과 인터뷰에서 이재명 대표가 대선이 끝난 뒤 2억3125만원 어치의 방산주식(한국조선해양, 현대중공업)을 매입했고 이를 보유한 상태에서 국방위에 지원한 지점과 관련해 “좀 실망스럽다. 대통령 선거에 진 것은 좁게는 이재명 대표 개인이 졌지만 넓게는 민주당이 진 것이고 민주당을 지지했던 1600만명이 넘는 국민들이 진 것이다.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이 뉴스도 못 보고 널브러져 있는데 혼자 정신 차리고 주식 거래를 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습니다.
발언의 강도나 어휘 선택이 상당히 공격적이고 비판적입니다. 지난 8월 전당대회에서 역대 최고 득표율(77.77%)로 당선된 이재명 대표에 대한 당내의 지지 점도는 최고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속어 발언 등으로 집권 초반부터 헤매기 시작하자 민주당 내부에서는 ‘차기는 확실히 이재명’이라는 묵시적 분위기가 점증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현재 내부의 조그만 이견이나 갈등도 용납하지 않고 역대 최고의 ‘팀 분위기’로 대선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의 ‘헛발질’과 국민의힘 대선주자들의 지리멸렬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민주당은 더욱 운동화 끈을 죄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오로지 이재명’을 외치는 충성 경쟁 분위기가 당 전체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살얼음판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 없습니다. 최근 이재명 대표를 둘러싼 당내의 불만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기는 했지만 그 누구도 ‘공개 저격’을 하지 못합니다. ‘개딸’들을 비롯한 맹렬 지지층들에게 둘러싸여 자기반성을 요구받기 때문에 좀처럼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 하지 않습니다. 최근 불거진 이재명 대표의 방산주 주식 매입 문제도 당내에서 쉬쉬 하며 넘어가는 분위기였지만 일각에서는 ‘1600만명의 지지를 받고도 패배한 대선후보라면 최고 강도로 자숙할 필요가 있는데 그 새를 못 참고 혼자 주식을 샀다는 게 공인의식이 너무 부족하다’는 따끔한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이재명 대표의 속마음은 도대체 알 수가 없다”며 “대선 패배의 그 혼란한 와중에 혼자 주식을 매입할 정도로 태평한 마음을 유지했다니 그 속을 정말 한번 들여다보고 싶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별다른 ‘자숙기간’ 없이 곧바로 국회의원과 당 대표를 접수하고 대선판으로 복귀한, ‘돌아온 이재명’에 대한 정치권의 평가는 엇갈립니다. 비판적인 목소리는 “이 대표가 대선 전과 달라진 게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대선에서 ‘연패’한 이회창 후보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 번 진 선거에 다시 나온 ‘이회창’의 브랜드는 여전히 ‘오만’과 ‘권위주의’로 똑같았습니다.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DJ와 춤을’이라는 예능적 요소를 선거판에 도입하는 등 절치부심 ‘올드보이’ 스타일에서 벗어나려고 애썼습니다. 차갑고 무거운 인상에서 친근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변신하는 데 성공해 대권에까지 오른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재명’이라는 브랜드는 대선 전과 후가 거의 똑같습니다. 상대(윤석열 대통령)가 빈틈을 보이면 그것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이득을 취합니다. 최근 이 대표는 한미일 연합훈련에 대해 ‘극단적 친일 국방’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을 맹비난했습니다. 이 문제는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폭넓은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한 사안입니다. 그럼에도 ‘한반도에 일본군이 진주한다’거나 ‘욱일기가 한반도에 걸릴 수 있다’는 등의 무책임한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물론 야당 대표로서 다분히 정치적인 언사를 동원한 측면이 있지만 국방문제만큼은 진영논리를 벗어나 민족의 생존논리가 작동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 대표의 진영논리 공세는 복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동안 수차례 강조했지만 이재명 대표의 대권전략에서 아쉬운 대목은 ‘내가 잘해서’가 아닌 ‘상대가 못해서’에 본능적으로 반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미일 연합훈련에 대해 ‘친일 이분법 접근’이 아닌 이재명만의 특출난 대안을 반복 주장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재명 대표를 ‘포퓰리스트’라고 여기고 그래서 그의 리더십은 신뢰할 수 없다고 하는 국민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민주당이 진영 논리라는 ‘말초적인 무기’로 차기 대권에 다시 도전한다면 실패할 것입니다. 더욱 우경화돼 가는 국민의힘을 이기기 위해서는 진영 대결을 넘어서는 확고한 대안 제시 정당으로 승부를 해야 합니다. 이재명 대표를 다음 대선에 ‘재활용’하려면 ‘진영을 넘어선 이재명’이라는 ‘국민통합 브랜드’를 반드시 장착시켜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민주당은 최초로 당사에 ‘당원존’을 개설해 당원 중심의 정당을 뿌리내리는 데 열성적입니다. 이 대표도 직접 개소식에 참석해 열혈당원들을 격려했습니다. 당원이 당의 뿌리라는 데 이견은 없습니다. 하지만 일부 강경 지지층이 당원을 ‘과대 대표’하는 단점도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 균형점을 찾는 첫 걸음이 바로 진영 논리에서 탈피하는 담대한 행보입니다.
이재명 대표로서는 전재수 의원에게 많이 섭섭할 것입니다. 굳이 언론에 나와서 당 대표를 흔들 필요가 있었느냐는 심정일 것입니다. 이 대표는 기자들이 자신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주식매입에 대한 이유를 물었지만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굳게 입을 닫았습니다. 하필 이 장면은 이 대표가 ‘언론자유 간담회’에 참석한 이후 나왔습니다. ‘별문제도 아닌데 언론이 나를 죽이려 하는구나’ 하는 피해의식이 언뜻언뜻 드러났습니다. ‘수지청즉무어’(水至淸則無魚)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없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너무 야박하거나 지나치게 똑똑하면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하고 피하여 가깝게 다가서지를 못합니다.
사람 본성을 바꿀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이재명 대표에게서 ‘인자함’이나 ‘소탈함’ 정도를 기대한다면 지나친 욕심일까요. 이재명 대표는 결점이 있는데 결점이 없는 것처럼 애를 씁니다. 어떻게 해서든 커튼으로 자신의 몸만 가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 옆과 뒤는 훤히 보이는데 앞만 감추는 데 급급합니다. 완전무결한 사람은 없습니다. 허물도 있고 실수도 하는 법입니다. 심지어 욕설도 합니다. 때로는 자신의 허물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담담하게 이해를 구하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전재수 의원이 또 ‘수박’으로 조리돌림을 당할 일을 생각하면, 민주당이나 이재명 대표가 더 딱하게 보입니다.
(여성경제신문 10월 18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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