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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윤석열 정부의 안일한 상황 인식 본문
이태원 압사 사건으로 154명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발생했습니다. 2014년 304명이 희생된 세월호 이후 최악의 국가 대참변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즉각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하고 사태 수습에 나섰습니다. 속보로 공개되는 각종 영상에는 곳곳에서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며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아비규환의 현장이 국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선진국이라고 믿었던 국민들은 전형적인 후진국형 압사 참사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사고 원인이 조만간 발표되겠지만 이번 사태를 보면서 대통령의 존재와 대형 사고의 관련성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먼저 이번 사태의 원인을 두고 정부나 지자체의 대형인파 관리 소홀이 직·간접적인 책임으로 연결되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100만 명이 운집했던 여의도 세계불꽃축제가 인명사고 없이 무사히 마친 배경에 서울시가 중심이 돼 합동종합안전본부가 운영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이태원 압사 참사도 경찰 등 관련기관이 군중 규모를 예상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의 1차 원인 분석은 경찰의 인파 관리 허점이 아니라는 데 있어 비판이 거셉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다. (중략) 어제(29일) 잘 알다시피 서울 시내 곳곳에 여러 가지 소요와 시위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곳으로 경찰·경비 병력이 분산됐던 측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국민의 안전을 총괄하는 실무 장관이 사태가 불가항력인 것처럼 그 책임을 ‘천재지변’으로 전가하는 태도를 보여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고구마 줄기처럼 딸려 나오는 원인 규명과 책임자 소재 논란을 굳이 들추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 이태원 압사 참사가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 인식과 태도에 더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윤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시간이 날 때마다 강조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최근 자신 있게 내보였던 ‘이벤트’ 하나를 보면서 그의 국민 안전 수호 의지는 듣기 좋은 ‘말’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이틀 전인 27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했는데 이 회의 전 과정 80분을 생중계하도록 참모들에게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우리가 이만큼 하는데 왜 그것을 몰라주나. 차라리 우리의 치열한 국정운영 노력을 전부 보여줘 공개적인 평가를 받아보자’는 식으로 경제문제를 인식하는 것은 국민의 수준을 낮게 보는 오만한 태도로 보입니다. 비상경제민생회의 전 과정을 본 국민들의 반응도 대체로 싸늘했습니다. ‘서민이 체감하는 경제의 어려움에 대한 공감대가 전혀 없다’ ‘문제에 대한 대안 제시와 냉철한 현실 인식보다는 자화자찬 자기방어 식의 보여주기 쇼’라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보수언론에서도 ‘비상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레고랜드 사태로 금융시장이 질식 상태에 있는데도 그 해결을 위한 치열하고도 자기반성적인 토론이 전무했다’며 비판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국무위원들에게 “너무 긴장하지 말아 달라. 국민들께 진정성 있게 솔직하게 하면 될 것 같다. 저도 국민과 함께 잘 경청할 테니까 걱정 마시고 편안하게 해주시길 바란다”는 대목에서는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습니다. 한 분야의 최고 전문가인 장관들을 웅변대회 앞두고 얼어 있는 초등학생을 달래는 듯한 태도로 ‘어르는’ 것은 국무위원들을 토론과 협력의 대상이 아니라 지시와 상명하복의 ‘철부지 부하’로 생각하는 대통령의 오만한 평소 습성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습니다.
국민들은 ‘이만큼 열심히 한다’고 내놓은 윤 대통령의 생중계 회의를 보면서 ‘아 이제 안심해도 되겠구나’ 하고 생각할까요, 아니면 정작 국민들이 궁금해한 고환율, 주식 폭락, 채권시장 마비 등에 대책이나 언급은 단 한마디도 안 하고 자신들 하고 싶은 말만 한 것에 대해 ‘쇼하고 있다’라고 생각할까요. 윤 대통령의 경제위기 대책이 고작 80분 회의 생중계 ‘단독 아이디어’ 제공이나 ‘곳간 다 떨어지겠다’는 농담에 희희낙락하는 정도라면 국민들은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위기감을 느낄 것입니다.
윤 대통령이 ‘떨지 마라’며 자신이 대선 때 정치 신인이지만 카메라 앞에서 사내답게 말 잘하고 자신만만하게 해서 대통령이 되었다는 ‘부심’을 장관들에게 은근히 자랑하려는 듯한 태도는 아직도 ‘이겨봐서 아는데’ 증후군에 빠져있는 운 좋은 승자의 자아도취로 비칩니다. 경제 대책이라며 장관들 앞세워 이것저것 언급한 것만으로 국민들을 안심시키고 미증유로 빠져들어 가는 경제위기를 극복해낼 수는 없습니다. 윤석열 정권은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야당과의 협치는 파탄 직전이고 여론은 ‘술’과 ‘무능력’을 대통령과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대권 도전에 나서면서 ‘정치에 문외한인데 잘 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그래도 일머리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며 자신만만해했습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말하는 ‘일머리’의 기준이 다분히 자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국정운영의 눈높이를 ‘윤석열의 자기만족’에 걸쳐놓지 말고 엄정한 공적 의식과 국민의 상식에 맞춰야 합니다.
최고의 정책은 장관들끼리 앉아서 ‘이것도 대책, 저것도 대책’이라며 어떻게 될지도 모를 사안들을 남발하는 것이 아니라 야당의 협력과 국민의 공감 아래 최선의 결과를 도출해내는 것입니다. 현재의 윤석열 ‘내각’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경제문제나 국민 안전 등의 국정 주요 이슈에 대해 얼마나 치열하게 구체적 대안을 만들어가고 있는지, 비상경제민생회의 ‘쇼’를 보면서 회의와 의문이 남습니다.
또한 기회 있을 때마다 국민 안전을 외치던, 일머리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 철학이 이태원 압사 참사에 대해서는 어떤 정도의 효력을 발휘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참모들이나 관련 장관들이 윤 대통령의 국민 안전 의지와 노력을 얼마나 받들고 충심으로 이행하는 노력을 보였는지 여전히 의문입니다. ‘곳간 다 떨어지겠다’는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주고받는 것을 국가 최고책임자들의 비상스러운 경제민생회의라고 내세우는 정도가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인식이라면 장관들에게까지 그 느슨함과 안일함이 그대로 전이될 수도 있습니다.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책임지는 행정안전부 이상민 장관이 이번 사태를 대하는 태도와 원인 분석을 보면 윤 대통령의 안일한 국정운영과 책임 전가 식 상황 인식이 그대로 투영된 듯합니다. 윤 대통령의 ‘충암고 후배’ 이 장관은 이태원 압사 참사 원인에 대해 집회와 시위 때문에 경찰력이 분산된 측면이 있다고 남 일처럼 말합니다. 책임 장관으로서 직을 걸고 ‘우리가 이런 실수를 했다. 앞으로 이런 점은 고쳐야 한다’고 해야 ‘제2의 이태원 참사’를 막을 수 있습니다. 6·25 때 국민들을 속이고 혼자 도망쳤던 이승만 대통령처럼 일만 터지면 가장 먼저 도망치려는 존재가 장관이라면 이력서 칸이 모자랄 만큼 화려하게 적은 그 알량한 엘리트 경력을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150여 명이 하루아침에 죽어도 도대체 그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애먼 국민들만 이번에도 국운을 탓하고 선진국 운운했던 자신들의 경박함을 자책하면서 사태를 흐지부지 넘겨야만 할까요. 말로만 국민 안전을 외치는 대통령과 장관들을 ‘보유’한 대한민국은 선진국은커녕 가장 후진국적인 사고로 단 몇 시간 만에 150여 명의 생때같은 젊은 목숨이 사라지는 세계 톱뉴스의 소재 제공 나라로 전락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부터 자만과 독단의 세계에서 벗어나 국민과 역사 앞에 겸손해져야 합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여성경제신문 11월 1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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