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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 본문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 선수가 은퇴를 했습니다. 8일 사직야구장에서 거행된 ‘이대호의 마지막 경기’는 오랜만에 보는 한 편의 감동 드라마였습니다. 나이가 들면 배트 스피드가 떨어질 만도 한데 이대호 선수는 은퇴 시즌에서도 타율과 타점 홈런 등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놀라운 기량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대호 선수는 시즌이 시작되기 전 올해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하겠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그의 ‘예고된 은퇴’가 더욱 돋보이는 것은 물러설 때를 알고 실천했다는 것입니다. 일부 스타 선수들이 은퇴 시기를 두고 구단과 갈등을 빚으며 ‘강제 퇴출’을 당하는 등 불명예스러운 퇴장이 많았기 때문에 그의 ‘물러섬’은 더욱 팬들의 존경과 찬사를 받았습니다. 시즌 내내 ‘말년병장’의 파이팅에 신이 난 팬들은 이구동성으로 ‘은퇴하지 말고 계속하라’며 그에게 번복을 부르짖었지만 이대호 선수는 ‘불멸의 10번 신화’를 남기며 아름답게 물러났습니다.
이대호 선수의 감동적인 은퇴 이벤트에 정치 이야기를 넣으면 언짢아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만약 20여년 정치인생 내내 지지율 30%를 넘기며 최고의 국민적 인기를 누리던 정치인이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갑자기 정계 은퇴를 선언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당장 열혈 지지층들이 그 정치인의 집을 에워싸고 밤샘 농성을 하며 은퇴 번복을 요구할 것입니다. 열혈 팬들의 ‘시위’에 며칠 장고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정치인은 마지못해 지지층의 목말에 태워진 뒤 은퇴 번복을 하고 다시 정계로 돌아오는 그림도 그려집니다. 그 극적인 ‘회군’ 뒤에는 정치인 개인의 선택보다 권력 기득권 유지라는 또 다른 올가미가 작용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정치 커리어의 최정점에서 이대호 선수처럼 아쉬움을 뒤로한 채 국민들의 존경을 받으며 정계를 떠난 정치인이 있을까요. 제 기억으로는 없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한국 정치인의 최종 목표는 하나같이 ‘대통령’(권력)이기 때문입니다. 말로는 ‘국리민복’을 외치지만 속으로는 누구나 ‘나도 대통령’을 꿈꿉니다. 그러니 정치 경력의 최고 정점은 곧 ‘대권’을 의미합니다. 그 아까운 인기를 오로지 대통령 되는 것에 써야 하는 것이 여의도 문법입니다. ‘국민을 위해 마지막까지 헌신하고 봉사한 것으로 만족한다’며 ‘무관의 제왕’ 자리에서 미련 없이 내려오는, 그런 훌륭한 정치인을 우리는 마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선거에 지고도 어떻게 해서든 다시 정계로 돌아오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2007년 대선 참패로 보수정권 10년의 길을 열어준 정동영 전 의원은 최근 ‘호남 올드보이의 귀환?’이라는 헤드라인과 함께 2024년 총선 준비를 저울질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 번의 대선 패배와 3번의 대선후보 경선 패배에도 ‘만만한’ 지방자치단체장 직을 쇼핑하듯 차고 다니는 홍준표 대구시장은 또 다시 다음 대선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지난 대선에서 0.7%포인트 차로 패배한 그 진한 아쉬움 때문인지 역대 최단기 정계 복귀와 함께 차기를 준비 중입니다. 여의도에서는 이를 ‘오뚝이 정치인’으로 미화하곤 하지만 여기에는 정치인의 책임 의식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명제가 빠져 있습니다. 정치인에게 선거는 모든 것입니다. 선거에서 패배했다는 것은 곧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패배가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패자부활전이라는 훌륭한 미덕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인에게 책임 의식은 생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일찍이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통해 정치를 소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자질로 ‘열정, 균형감각, 책임감’을 꼽았습니다. 정파를 떠나 독일국민들이 가장 사랑했던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는 신념 윤리의 정치인보다는 책임 윤리의 정치인을 더 존중한다고 말했습니다. 책임 윤리는 자신의 행위로 인한 결과들에 책임을 진다는 뜻입니다. 훌륭한 리더라면 선거를 비롯한 모든 정치적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고 또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정치인들 가운데 그 책임 윤리를 따른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선거에 패배하더라도 어떻게 하면 다시 ‘복귀’의 명분을 찾을지 아이디어를 쥐어짜서 안면몰수하고 정치판으로 되돌아옵니다. ‘비판은 잠시, 권력은 오래’라는 탐욕이 정치인의 낯을 더 두껍게 합니다. 국민보다 ‘우리 편’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후안무치의 생존술을 부립니다.
이대호 선수는 자신의 야구 인생을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50점이다. 수많은 편견과 싸워오면서 (22년간 기록한) 개인 성적은 괜찮은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롯데에서 우승하지 못하고 은퇴하는 게 감점 요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프로야구에서 그는 전인미답의 독보적인 성적을 남겼습니다. 2001년 롯데 자이언츠에서 데뷔한 뒤 일본과 미국 리그까지 섭렵한 최초의 타자입니다. 2010년에는 타율(0.364), 홈런(44), 안타(174), 타점(133), 득점(99), 출루율(0.444), 장타율(0.667) 부문 1위에 오르며 전무후무한 7관왕을 달성했습니다. 하지만 롯데자이언츠의 우승을 끝내 못 본 것에 대한 회한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깎은 50점은 ‘우승을 못 이룬 죄인’이 팬들에 대해 느끼는 염치의 점수였을 것입니다. 한 분야의 최고봉에 올랐던 사람도 이렇게 겸손하고 부끄러움을 아는 법입니다.
지금 국정감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국정감사장에서는 막말과 저질 말싸움이 일상이 됐습니다. 상대 말꼬리 트집 잡아 물고 늘어지기, 의사진행발언 통해 정적 비난하고 창피 주기로 아까운 시간을 흘려보냅니다. 피감기관은 뒷전이고 자기들끼리 물고 뜯고 싸우는데 그 이유가 고작 ‘어디서 반말이야’ 정도입니다. 783개 피감기관을 한 달 동안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대충하는데 그마저도 자기들끼리 말싸움만 하다 끝을 냅니다. 국감 무용론은 해마다 나오는 언론사의 단골 기사입니다. 정치인들은 전 국민이 보는 자리에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사사건건 막말과 반말로 언짢은 장면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서민들의 생활고와 애환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그렇게 뻔뻔스러운 행동을 서슴없이 하지 못할 것입니다. 염치가 없습니다.
기업이나 공무원들이 공개석상에서 국회의원들이 하는 것처럼 ‘패악질’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정치인들의 질타와 조리돌림에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유독 정치인들만은 그런 수준 낮은 막무가내 싸움을 ‘정치’의 이름으로 용인받고 추태를 남발합니다. 언제까지 국민들이 그 꼴사나운 막장극을 보고 있어야 할까요. 왜 국회의원들만 그런 난장판을 만들어도 국민들은 참고 넘어가야 하는 걸까요.
사생활이 거의 없는 국회의원을 ‘굳이’ 하겠다는 정치지망생들이 여전히 넘쳐납니다. ‘시장 논리’로 보자면 정치가 힘들기만 하고 개인에게 돌아오는 이득이 없다면 누가 금배지를 달려고 할까요. 날마다 지역구 내려가서 2~3번씩 저녁을 먹으며 하기도 싫은 ‘얼굴도장 찍기’를 억지로 하는 이유는 그 고생만큼 금전과 명예, 권력이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누리고 싶고 군림하기 위해 그런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고 부나방처럼 선거판에 뛰어듭니다. 국회의원에게 주어지는 각종 특혜와 어마어마한 금전적 지원을 대폭 줄이고 명예봉사직으로 정치개혁을 이뤄내야 합니다.
최고가 되었을 때 미련 없이 떠나는 이대호 선수의 뒷모습은 아름다웠습니다. 은퇴식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이대호 선수는 국민들에게 물러섬과 염치의 미덕을 안겨주고 떠났습니다. 정치는 왜 그런 감동을 주지 못할까요. 왜 정치만 난장판의 성역이 되어야 할까요. 정치판에서도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를 보고 싶습니다.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요.
(여성경제신문 10월 11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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