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발달장애인 가족의 삭발식을 보면서 본문

마이스토리

발달장애인 가족의 삭발식을 보면서

성기노피처링대표 2022. 4. 20. 12:46







728x90
반응형

지난 1월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ACEP 2022 발달장애 아티스트전에 참가한 작가들의 모습. (사진=성기노)

올해 2회째를 맞은 ACEP 발달장애 아티스트전을 준비하면서 보람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꼈다. 예술의전당이라는 큰 무대에 자신들의 그림을 올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하던 발달장애 작가들과 부모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큰 감동과 위로를 받았다. 전시장소를 구하지 못해 동네 커피숍이나 외진 카페에서 그림을 전시해왔던 그들에게 '뜻밖의' 환대는 놀람과 경이로움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우리는 왜 전시회를 작고 허름한 곳에서만 해야 하나'라는 단순하고 기본적인 의문조차 던져보지 못한 채 발달장애 아티스트들은 '구석진' 전시장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인간의 천부적인 인권이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게까지 스며들여야 한다는 것은 보편적인 사회가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자유롭게 이용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의 영역이다. 하지만 그들은 최소한의 이동권조차 얻지 못한 채 온 몸에 쇠사슬을 감고 위험한 시위를 하며 몸부림을 친다. 발달장애 작가들의 그림도 여건과 상황이 허락한다면 당연히 예술의전당같은 훌륭한 전시장에서도 걸려야 한다. 하지만 발달장애 작가들의 그림이 예술의전당에 전시된 것이 지난 2020년에 이어 2022년 ACEP 발달장애 아티스트전이 처음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 아직도 우리는 상식과 기본이 외면당한 채 숨죽이며 살아가는 수많은 장애인들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그런 차별의 사각지대를 인식하지 못한다. 알아도 그들과의 '공존'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선을 긋고 심지어 그들을 쫓아내기도 한다. 

누구에게 그 잘못과 책임이 있는지 이 글에서 따져보는 것이 아니다. 선진국 대열에 당당히 입성했다고 자부심을 느끼는 국민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과연 그 벅찬 자긍심을 당연히 느껴도 되는지 가끔 회의가 들 때가 있다. 특히 어제 마주한 하나의 장면이 그랬다. 



19일 오후 1시 청와대 인근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 촉구 전국 집중 결의대회’에서 삭발하는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 (사진제공=에이블뉴스)


19일 청와대 인근에서 발달장애인과 가족 500여명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에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요구하며 단체로 삭발식을 했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정부지원이 4시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그 시간을 더 늘려 달라는 것이다. 언뜻 들으면 '24시간을 풀로 지원하면 부모는 무엇을 하느냐''며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발달장애 가족이 없는 필자가 2번의 발달장애 아티스트전을 준비하면서 경험했던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상황을 떠올려보면 그들이 왜 눈물을 흘리며 삭발까지 하는지 이해가 된다. 

올해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수많은 발달장애 작가들을 만났다. 그들은 모두 비슷한 지적발달장애를 겪고 있지만 미술에 대한 재능만은 일반인들의 경우와 동일할 정도로 뛰어났다. 그림에 있어서만은 피카소와도 비견되는 독특한 영감과 독창적인 접근법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작가도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그림을 그릴 때 외에는 그냥 평범한 발달장애인들이었다. 고맙게도 청와대 김정숙 여사나 현재 대통령 당선인 신분인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 전시회를 방문했다. 그때 발달장애 작가들에게 자신의 그림을 그들에게 설명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발달장애 작가들은 '어른'이 요구하는 수준의 인내심을 가지지 못했다. 어떤 작가는 소리를 지르며 바깥으로 나가려고 했고, 온 전시장을 뛰어다니기도 했다. 전시준비를 하는 책임자로서 아찔한 상황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다행히 큰 해프닝은 없었고, 오히려 방문해준 내빈들은 그들의 고성과 지루함의 표현마저도 그림감상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성숙하게 대처해줘 속으로 무척 고맙게 생각했다. 

발달장애 아티스트전을 마무리하면서 나는 작별인사를 하는 부모님들을 붙잡고 "고맙다"는 말을 수없이 했다. 그냥 그렇게 인사가 나왔다. 필자도 자식을 가진 부모이지만 솔직히 그들 부모처럼 '발달장애 자식'들을 돌볼 자신이 없었다. 특히 발달장애 작가들은 대부분 20~40대의 어른들이지만 부모가 단 한 순간도 그들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돌봐줘야 하는 순진무구한 '아이'들이었다. 장성한 '아이'를 그렇게 하루종일 돌봐줘야 하는 부모들과 가족들의 '어쩔 수 없는' 장면을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어떤 부모들은 작가들의 기다림 시간이 길어지자 묘안을 내기도 했다. 그림 근처에 도화지와 붓만 주면 ‘아이’는 몇 시간이고 기다릴 수 있으니 작은 그림도구를 좀 가져다 놓으라고 부탁했다. 관람에 방해가 된다는 내부 판단에 따라 전시장 옆의 조그만 스태프 공간을 내줘 그곳에 기다리게 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발달장애 작가들은 그림을 그리는 시간에는 고도의 집중력과 재능을 발휘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그냥 어린아이 수준의 지적능력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발달장애 부모들이 눈물을 흘리며 삭발하는 장면을 보면서 마치 내 일처럼 가슴이 저몄다. 발달장애 아티스트전을 기획한 작은 경험이지만 내가 그들의 가족이 된 것처럼 안타까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이 요구하는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이라는 요구가 너무나도 이해가 되었다. 한시도 ‘아이’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부모로서의 삶은 아예 포기하고 살아가야 하는, 그래서 자신들에게 들러붙은 그 무거운 책임을 마치 ‘천형’으로 알고 살아가야 하는 부모님들의 눈물을 보면서, 같은 아비로서 슬펐다. 만삭의 수어통역사가 삭발중인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사연을 통역하다가 눈물을 쏟은 장면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수어통역사 이현정씨가 19일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 촉구 1박 2일 집중 결의대회'에서 통역 도중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페이스북)



그들은 정부가 발달장애인들을 24시간 돌보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사각에 묻혀있던 발달장애인들에 대한 차별의 장벽을 깨려는 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에 대한 원망이기도 할 것이다. 발달장애 부모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아이’를 남기고 그들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떠나면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죽고 나서도 발달장애인들이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 속에서, 최소한의 기본적인 삶이라도 영위하도록 하기 위해 머리를 깎고 울부짖는 것이다. 





한국의 등록 장애인은 263만여명으로 전체 인구의 5%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10% 안팎으로 추정된다. 10명에 한 명꼴로 장애인이다. 그런데 막상 주변을 둘러보면 장애인들을 그리 많이 접할 수 없다. 숫자가 작아서가 아니다. 그들이 편하게 세상을 돌아다닐 수 없기 때문이다. 불편한 시선도 그렇지만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시설도 너무나 부족하다. 

청와대 김정숙 여사가 발달장애 작가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성기노)


90년대 영국에서 유학할 때 가까운 독일에 여행을 갔다. 공항에 내려서 버스를 탔는데 버스가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휠체어에 앉은 장애인이 넓은 출입문을 이용하기 위해 리프트가 가동중이었던 것이다. 그때 난생 처음 저상버스를 보았다. 승객들은 휠체어 장애인이 완전히 버스에 올라 좌석에 갈 때까지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고, 심지어 그가 자리에 안착하자 모두들 박수를 쳐주었다. 그때 목격한 독일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태도는 지금도 머리에 깊이 남아 있다. 아마 지금 한국사회의 경제적 수준이 90년대 독일 상황을 추월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정신적인 선진국 진입은 어디쯤 와 있는지 돌이켜볼 일이다. 

 

장애인 문제는 우리 사회 10%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다. 그들을 목숨을 걸고 책임지는 가족들이 있고, 그 가족들과 또 씨줄날줄로 얽힌 ‘우리’가 있다. 장애인은 남의 ‘가족사’가 아니고 같이 살아가야 하는 ‘우리’ 공동체의 문제인 것이다. 특히 장애인 문제는 우리 사회의 평등 지수를 나타내는 중요한 척도다.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지원이 부족한 사회가 ‘일반인’들을 제대로 지켜줄 수 있을까. 민주주의는 법 아래 누구나 평등해야 한다. 장애인이 국가로부터 제대로 보호받고 존중받는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장애인들을 지켜내지 못하는 사회는 ‘일반인’들도 지켜낼 수 없다. 

올해 다시 발달장애 아티스트전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같은 사람도 예술의전당에서 전시회를 할 수 있어요?’라고 되묻는 발달장애인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하고 싶다. 


발달장애 아티스트 전시회 마지막날 작가들과 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한 기념식이 열렸다. (사진=성기노)

728x90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