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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TV토론, 개그콘서트가 폐지된 까닭

성기노피처링대표 2021. 9. 30.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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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이 한창 진행중입니다. 이달 28일까지 총 4차례의 TV토론이 진행됐습니다. 이를 지켜본 국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냉소적입니다. 후보들 간의 수준 이하 토론 공방을 지켜본 네티즌들은 ‘개그콘서트가 폐지된 까닭’이라는 제목의 비아냥 글들을 줄줄이 올립니다. 한쪽에서는 ‘너무 준비가 안 돼 있다’라고 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퀴즈쇼를 한다’며 맞섭니다. 그럼에도 그동안 여론조사 숫자 분칠에 가려져 있던 후보들의 국가운영 능력 민낯을 TV토론을 통해서라도 볼 기회를 얻은 것에 대해 안도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당내 1위주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TV토론으로 잃을 게 많겠지만 나머지 주자들은 지지율 1%라도 올리기 위해 난타전을 유도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개콘’ 저리가라 할 정도의 낯 뜨거운 공방도 펼쳐집니다. 사실 TV토론을 잘 한다고 해서 훌륭한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을 갖췄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토론을 통해 대선후보의 평소 생각과 지적 능력, 판단력, 순발력, 논리적 사고, 배려심 등의 리더 자질들이 드러나게 됩니다. TV토론 하면 10년 ‘종편 출연’ 내공의 이준석 대표가 떠오릅니다. 토론 실력으로 치면 이 대표를 따라갈 여의도 정치인이 많지 않을 듯합니다. 심지어 이 대표는 영어전문채널 아리랑TV에도 출연해 유창한 영어로까지 토론실력을 뽐내곤 합니다. 토론능력으로 대통령 뽑기를 했다면 이 대표도 세손가락쯤 안에 들 것으로 봅니다. 

그런 이 대표가 출중한 토론 실력을 밑거름삼아 36세로 제1야당의 수장에 올랐지만 그에 대한 ‘중간평가’는 엇갈립니다. 토론에서 뽐냈던 현란한 ‘말’들이 정치현장에서 그대로 발현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말의 성찬으로 토론회가 끝나고 나면 그가 뱉었던 바로 그 말을 수습해야 하는 과정이 진정한 ‘정치’의 출발점입니다. 토론에서 쏟아낸 수많은 미사여구는 개인의 언어 발화일 뿐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정치적 언어’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상대와, 심지어 ‘적’과도 조응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말만 번지르르한’ 정치인에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토론회에서 말솜씨를 뽐낸다는 것이 꼭 리더의 자질을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아닌 것입니다. 

그럼에도, 현재 진행중인 국민의힘 TV토론을 보고 있노라면 한숨이 나온다는 국민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토론 도중 느닷없이 절을 하는 후보 정도는 ‘아재의 재롱’으로 봐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의 명운을 좌우할 수도 있는 국방 외교 등의 중차대한 주제에 대해 묻는 사람이나 답하는 사람이 완전히 헛다리를 짚고 ‘장소팔 고춘자’ 식의 만담개그를 한다면 국민들은 그 꼴을 보고 등골이 오싹할 수도 있겠습니다. 

지나간 해프닝이지만 다시 소환해보겠습니다. 바로 ‘작계 5015’ 소동입니다. 홍준표 의원이 윤 전 총장에게 “‘작계 5015’가 발동되면 대통령으로서 제일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어리둥절해하던 윤 전 총장은 “먼저 미국 대통령과 통화 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윤 전 총장이 얼버무리며 대충 대답하자 홍 의원은 기다렸다는 듯 “작계 5015가 되면 이미 미국 대통령과 협의가 끝난 것이다. 대통령의 자리는 순간적인 결심, 판단이 나라의 미래를 좌우한다. 그런 측면에서 대통령 되시려면 공부를 더 하셔야 되겠다”고 일침을 날렸습니다. 6개월 후 국군 통수권자가 될 수도 있는 대권후보가 작계 5015도 모른다니 말이 되느냐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홍 의원은 한 건 올렸다며 득의양양했습니다. 

하지만 이 논란은 애초 질문부터 틀린 것입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움직임이 포착되면 비상사태 데프콘1, 데프콘2, 데프콘3가 순차적으로 법령에 따라 ‘발동’됩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데프콘 시리즈가 즉각 ‘발동’되고 작계는 그 뒤 대통령이 선택할 군사적 대응 옵션의 하나일 뿐 의무적으로 반드시 ‘발동’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군사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교수). 홍준표 의원의 ‘작계를 발동했을 때’라는 질문 자체가 틀린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또한 홍 의원의 이런 틀린 질문에 대해 윤 전 총장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겠다’며 또 엉뚱한 대답을 한 것입니다. 내년에 국군을 통수할 수도 있는 두 유력주자의 군사적 대응 이슈의 질문과 대답은 이렇게 ‘만담’의 수준으로 전락한 채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습니다.


사실 TV토론에서 ‘버스 요금이 얼마냐’, ‘작계가 무슨 뜻이냐’는 등의 단답식 질문을 던져 그것으로 대선후보의 리더 자질을 총체적으로 재단하려는 얄팍한 시도는 지양되어야 합니다. 그 정도 모른다고 해서 국가운영 능력이 제로라고 말을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작계 5015 논란은 보수진영의 정권교체 열망과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제1야당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토론회 수준을 말해준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권이 편가르기와 포퓰리즘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면 국민의힘은 바로 국민들이 우려하고 비판하는 그 지점에 대한 확실한 국정대안세력으로서의 능력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총 4차례까지 진행된 TV토론 수준은 봉숭아학당의 개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후보가 8명이나 난립하면서 인신공격과 퀴즈대결식의 네거티브 공방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시간이 짧다는 것을 핑계로 심도 있는 토론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상대의 질문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시간을 핑계로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어물쩍 넘어가버리려는 행태도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4차례의 TV토론을 통해 가장 타격을 입은 후보는 윤 전 총장으로 보입니다. 보수진영에서는 윤 전 총장의 ‘토론 능력’에 대해 매우 우려하는 분위기가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토론 실력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형편없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입니다. 적어준 자료조차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해 엉뚱한 질문을 하거나 질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동문서답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 때도 기자들의 질문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얼렁뚱땅 넘어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대통령이 아무리 참모들의 보좌를 받아 국정을 운영한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국정운영 능력 소양이 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바로 이 ‘기본’이 심각하게 결여돼 있었기 때문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며 탄핵까지 당한 것입니다. 

정치권에서는 토론회 때문에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이 심대하게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윤 전 총장이 말을 잘 해서 지지율 1위를 하는 게 아니라 ‘반 문재인’의 기수로 인식되기 때문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토론회 때마다 참모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지지자들마저 윤 전 총장의 한마디 한마디에 마음을 졸이며 지켜보는 장면은 우려를 넘어 심각한 불안감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윤 전 총장도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기본’이 안 돼 있는 리더가 된다면 참모들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는 ‘허수아비’로 전락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실 말을 꼭 잘 해야 훌륭한 정치인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치는 말이 곧 전부이기도 합니다. 말 속에는 정치인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그 사람의 말은 그가 지나온 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말을 자주 바꾸는 정치인은 신뢰할 수 없습니다. 상황논리에 빠져 조삼모사하면서 원칙도 없이 이리저리 말을 바꾸는 정치인은 얄팍한 표 계산으로 국민들을 속이려고 합니다. 5년 전 탄핵 때의 박근혜(향단이)와 지금의 박근혜에 대한 평가가 다르고, 10년 전 노무현을 두고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이라고 했던 사람이 2021년 대선을 앞두고 묘지 방명록에 ‘2002년 노무현 후보처럼’이라고 쓴다면 누가 그 정치인의 ‘말’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결국 정치인의 말은 단어의 발화를 기가 막히게 잘 하는 언어 기술이 아니라 말에 담긴 진정성과 정직함이 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말을 좀 못 하면 어떻습니까. 자신이 뱉은 말을 최선을 다해 지키려는 ‘책임감’이 가장 훌륭한 말이 아닐까요. 정치인의 말이 정직한지 아닌지를 가려내는 대선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9월 30일 팩트경제신문 '정치언박싱'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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