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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3철'의 아름다운 2선 후퇴와 문재인의 도전 본문
대통령 만들기의 핵심 역할을 했던 최측근 인사들은 청와대나 국정원 등 중요 기관으로 가는 게 보통입니다. 그것도 정권 출범과 동시에 가야 합니다. 권력이 가장 힘이 있을 때 핵심요직에서 일을 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정권 초기의 인사는 교통정리가 쉽지 않습니다. 많은 비판을 무릅쓰고서라도 역대 정권은 그들의 비선실세들을 청와대 요직에 앉히곤 합니다. 그게 정치권력의 본질적인 습성입니다. 그런 동기부여가 있어야 참모들도 목숨 걸고 일을 합니다. 정권 초기에 혹시라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면 초조해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도 모르기 때문이죠.
그리고 오래 떨어져 있으면 권력이라는 태양에서 멀어지기 마련입니다. 당연히 ‘한기’를 느끼게 되죠. 기다림과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오래 떨어져 있으면 멀어진다는 얘기는 권력이라는 것이 만들어지기 전과 후가 천양지차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자유롭게 실세로서 ‘보스’와 접촉이 가능했지만, 대통령이 되는 순간 수많은 인의 장막이 형성됩니다. 대통령이 챙겨주려고 해도 뜻대로 안 될 때도 있습니다. 실세들의 권력지도도 새롭게 그려집니다. ‘개국공신’과 ‘영입 신세력’간의 알력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양 전 비서관과 함께 물러난 최재성 전 의원도 이에 대해 “권력을 운용할 때 적합한 사람이 있고 권력을 만들 때 적합한 사람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은 ‘후자’쪽이라는 것이죠.
아무래도 권력자들은 자신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을 쓰려고 합니다. 대통령의 철학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죠. 그래서 개국공신이 계속 정권의 요직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개국공신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내가 고생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 결과물을 왜 다른 사람에게 내놓아야 하느냐”는 생각도 들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번 ‘3철’(이호철 전 민정수석, 양정철 전 홍보기획비서관, 전해철 전 민정수석)의 퇴장은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보여주지 못한 파격적인 인사입니다.
그들은 문재인 대통령을 정치로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노 전 대통령의 핵심브레인이었던 ‘3철’은 문재인 대통령을 끈질기게 설득해 정치에 입문시킵니다. 정치권에 있으면서도 그 주변을 맴돌던 문 대통령의 ‘정치 가정교사’가 바로 그들입니다. 그 결과 2012년 4.11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 19대 국회의원에 입문하고 곧바로 2012년 대선에 출마했지만 낙선하고 맙니다. 문 대통령과 ‘3철’의 이런 숙명과 같은 인연 때문에 ‘친문 패권주의’라는 말도 많이 나왔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광재 안희정 등을 보좌관으로 두면서 권력을 쟁취했다면 문 대통령의 경우는 ‘3철’이 보좌관이자 현실정치의 ‘가정교사’ 역할까지 했기 때문에 그들이 문 대통령을 앞세워 권력을 휘두른다는 비판도 많았습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15일 청와대 관저에서 임종석 비서실장,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 그리고 양정철 전 비서관과 함께 3시간 동안 만찬을 가졌다고 합니다. 바로 이 자리에서 양 전 비서관은 “국정 운영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공직을 맡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합니다. 대선 기간 내내 ‘궂은일’을 도맡아 온 양 전 비서관의 ‘깜짝’ 신상 발언에 문 대통령도 결국 눈물을 보인 것으로 알려집니다.
문 대통령으로서도 안타까운 마음일 겁니다. 자신의 정치입문 과정과 그 스타일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곁에 없다는 것이 상당히 마음 아픈 일이겠지요. 그런데 문 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그의 국정운영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면 국민의 이해를 구한 다음 자신의 곁에 둘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는 철저하게 공정과 소통 속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역대 대통령처럼 자신의 곁에 ‘3철’을 둘 수도 있었겠지만, 이는 반대세력과 소모적인 전쟁을 치러야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조기대선이 이뤄진 것도 어찌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실세 발호가 그 핵심 요인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이번 대선은 ‘운’이 따랐습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에 따른 반사이익이 없었다고는 말 할 수 없죠. 이렇게 문재인 정권은 비선실세의 폐해에 따라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정권이 또 다시 비선실세로 의심받고 있는 ‘3철’을 쓰기에는 상당한 부담이 따랐을 것입니다. ‘3철’이라고 문 대통령 곁에서 정권 수호자의 역할을 하고 싶지 않았을까요.
절대 문 대통령 핵심 측근들의 2선 후퇴를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3철’의 희생이 있었고, 그것은 역대 정권이 결코 해낼 수 없었던, 뼈를 깎는 고통 위에서 이뤄진 것입니다. 하지만 ‘3철’의 전면 등장은 비선실세의 폐해에 항거한 촛불민심을 거스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정치적 상황이 ‘3철’의 2선 후퇴를 어찌 보면 ‘종용’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정치적 상황 때문에 ‘3철’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필자는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의 1등 공신이었던 한 캠프 핵심 인사에게 전화를 걸어봤습니다. 그는 ‘개국공신’이었지만 정권 초반 이상득-박영준 라인과의 갈등으로 핵심요직에서 배제된 아픈 경험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이번 양 전 비서관의 퇴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나도 진정성이 있는 후퇴라고 생각했다. 문재인 정권이 정말 뭔가 다르구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그쪽 다른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니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더라. 양 전 비서관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는 말을 들었다. 이번 퇴진에 대해 양 전 비서관도 말 못할 속사정이 있는 것 같았다고 한다. 정권 중반으로 가면 어떤 식으로든지 복귀할 가능성이 있고, 또 양 전 비서관이 먼 곳에 있다고 해도 영입 참모들이 보좌를 잘못 한다고 느끼면 언제든 판을 깨는 등의 권력 갈등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3철’의 후퇴는 문재인 정권이 초기에 개혁과제를 성공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도덕적 안전장치와도 같습니다. 이제 문 대통령은 ‘친문 패권주의’나 ‘비선실세’ 논쟁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습니다. 그런 도덕적 우위가 개혁 드라이브를 거는 데 가장 확실한 액셀러레이터 역할을 할 것입니다.
‘3철’의 퇴진은 언론과 여론의 호의적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권력자가 자신의 ‘수족’을 잘라내는 게 결코 쉽지 않습니다. ‘3철’의 희생과 결단도 아름답습니다. 이들의 진정성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여야의 인재들이 고루 중용되는 실질적인 ‘통합의 정치’를 문재인 대통령이 실현해내야 합니다. 그렇게 될 경우, 필자가 그동안 비판해왔던 ‘친문 패권주의’도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도전은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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