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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 칼럼] ‘의대 증원 유예’ 한동훈 승부수냐, 윤석열 출구전략이냐

성기노피처링대표 2024. 8. 29.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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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8월 23일 7명이 숨지고 12명이 다친 경기도 부천의 한 호텔 화재현장을 방문해 손을 턱에 괴고 고뇌하듯 소방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취임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밍숭밍숭한’ 리더십으로 국민들의 시선을 확 끌어당기지 못하고 있다. 그가 집권여당 대표가 된 뒤 국민의힘 지지율은 35%에서 32%로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이 그 방증이다. 

한동훈은 명석한 편이라 지금 판세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집권여당 대표에 취임했음에도 당 지지율은 정체에다 이미지 정치도 ‘꺼리’가 거의 떨어져 한계에 다다랐음을 인식하고 뭔가 재도약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그가 작심하고 ‘사고’를 치고 있다. 의대 정원 증원 문제를 전격 꺼내든 것이다. 그런데 한 대표가 하필 ‘의료 개혁’이라는 벌집을 건드린 것은 미숙한 정무 감각을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일단 보기에는 ‘국민 건강을 염려하는 집권여당 대표의 진정성의 발로’라며 언론플레이 하기 딱 좋아 보이기는 하다. 한동훈 스스로도 “대통령실의 대안 없는 반대는 국민 건강을 놓고 도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다.

하지만 한동훈은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의료 개혁 문제는 윤 대통령이 취임 이후 가장 가시적으로 자신의 치적을 자랑할 만한 ‘핫 이슈’이기에 그동안 신줏단지 모시듯 해왔다. 지금까지 이렇다 할 개혁의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한 윤 대통령으로서는 의료 개혁 문제만큼은 절대 의사 기득권과 타협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의료산업 전체를 과감하게 뜯어고칠 꿈에 부풀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찌 보면 의료개혁은 윤 대통령이 가장 자신 있게 승부수를 띄울 만한 이슈다. 국민들이 의사 증원 문제에 여전히 공감하고 있고 의사들이 기득권을 좀 내려놔야 한다는 비판여론도 높기 때문이다. 의대 증원 문제는 윤 대통령이 취임 후 가장 여론의 지지를 많이 받는 개혁과제라는 점에서 이를 섣불리 거둬들일 수도 없다. 

아무리 한동훈 대표가 국민 건강을 명분으로 내세우더라도 윤 대통령이 6개월 동안 사투를 벌여 만들어놓은 의료 개혁의 토대 자체를 허물고 다시 원점에서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안이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연금 의료 교육 노동’의 4대 개혁 가운데 의대 증원 문제 하나만이라도 국민들에게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줘야 대통령 체면이 서는 것임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동훈은, 윤 대통령이 그동안 보물단지 모시듯 애지중지 다뤄온 의료 개혁 이슈의 ‘역린’을 정면으로 건드린 꼴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 1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제13회 국무회의를 열고 모두발언을 통해 의료개혁은 더이상 미룰 수 없다고 강조했다. (사진=KTV 유튜브 캡처)

 


사실 윤 대통령이 그동안 온갖 비판과 저항을 무릎 쓰고 일관성 있고 강력하게 밀어붙인 의대 증원 문제를 1년 유예하는 것은 상당히 굴욕적이고 또한 비현실적이다. 지금까지 정치권 관행 상 개혁 과제가 진통 끝에 ‘몇 년 유예’로 결론 났을 경우 사안 자체가 흐지부지 되고 만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한동훈 대표의 ‘유예 제안’은 정무적으로도 아직 임기가 3년이나 남은 현직 대통령에게 백기투항과 굴복을 대놓고 강요하는 무식한 전법이다. 또한 정책적으로도 유예는 한심한 제안이다. 골치 아프니 일단 뒤로 미루자는 것은 구체적 대안도 되지 않거니와 입시 등에서 더 큰 혼란만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한 대표는 범야권 190여석을 점유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에게 의대 증원과 의료 개혁을 같이 해결해보자고 압박을 했어야 한다. 한동훈은 완전히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한 대표가 의대 증원 유예 제안에 대해 의사 단체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하지 않는 점도 정책적으로 실패했다는 방증이다. 유예에 따른 파급효과나 충격파를 어떻게 수습할지, 유예 기간에는 어떤 실효성 있는 의료 개혁 과제를 수행할지 등의 구체적 대안 제시 없이 그냥 일단 뒤로 미루자는 발상은 그가 그토록 중시하는 국민건강 문제를 충분한 과학적 합리적 근거 없이 졸속으로, 더 나아가 정치적 야심 때문에 추진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 스스로 실토하는 셈이다.

한동훈은 한때 ‘제 3자 추천 채상병 특검법’ 발의를 주장하며 윤석열 대통령에 맞서는 듯한 연출로 한껏 기세를 올렸지만 용산의 ‘어림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는 강력한 반대 기류를 읽은 뒤부터 유보적인 입장으로 선회해버렸다. 채상병 특검으로는 윤 대통령과 싸움 자체가 안 될 것을 직감하고 조용히 칼을 칼집에 넣어버렸다. 

그 뒤 고육지책으로 찾아낸 아이템이 바로 의대 정원 증원 유예 제안이다. 채상병 특검을 찔러보고 잘 안 될 것 같음을 눈치 채고 이번에는 의료 개혁을 또 질러보는 식으로 비쳐진다. 뭔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 조급해 하는 모습이 정치 초짜의 전형적 대응방식이다. 

한동훈은 완전히 딜레마에 갇혀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차별화를 하려니 사사건건 용산의 무시와 반대에 부딪히게 되고 윤석열 정권과 한 몸으로 같이 가자니 미래권력의 스타일이 나오지 않으니 양손에 떡을 쥔 채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그러다 의료 개혁 아이템을 하나 찾아낸 것 같다.  

 

지난 2010년 6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반대토론에 나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의정생활 12년만에 첫 본회의 토론에 나서 더 화제를 모았다.

 

한동훈과 참모들은 아마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명박 세종시 수정안 공개 반대’ 사례를 참고했음 직하다. 지난 2009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노무현 정권 때 입안해 확정한 세종시 문제를 중앙부처 이전이 아닌 기업도시로 바꾸자는 수정안을 제시했었다. 이에 박근혜 전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대통령의 수정안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명해 정국이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대충돌로 이어졌다. 

결과는 박근혜의 판정승이었다. 세종시 수정안은 국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사장되어 버렸다. 그 후 박근혜의 주가는 수직상승했고 결국 집권까지 이룰 수 있었다. 한동훈도 ‘제 2의 박근혜’가 되고 싶을 것이다. 박근혜는 미래권력이 현재권력을 누르고 집권한 유일한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의대 증원 문제에 공개 반대 의사를 표명하며 여론의 지지를 얻고 차기 주자로서 확실한 눈도장을 찍어보겠다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동훈은 박근혜 급이 못 된다. 박근혜가 세종시 수정안 전투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첫 번째 요소는 정밀하게 기획된 단 한 방의 언론플레이가 결정적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0년 6월 29일 세종시 수정안 반대토론자로 나서 직접 반대토론을 하는 ‘깜짝쇼’를 연출해 큰 재미를 봤다. 당시 친박계 의원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박근혜의 파격적인 등장에 언론은 대서특필을 했고 국민들도 박근혜의 강단 있는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이 장면은 국민들의 뇌리에 현재권력에 맞서는 차기주자의 강한 소신과 열정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고 대통령 자리에도 어울릴 수 있겠다는 ‘환상’과 ‘확신’을 심어준 계기가 됐다.

한동훈에게도 이런 결정적 한방이 있을까. 처음 한동훈이 등장했을 때만 해도 엘리트 정치인의 이미지가 신선하게 새롭게 보였다. 하지만 그는 초반에 자신의 장점을 너무 과하게 소비해버렸다. ‘셀카 정치’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은 지난 총선 참패가 말해준다. 

그는 최근 부천 화재 호텔 현장을 찾아가 소방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다가 카메라가 돌아가는 걸 보자 손으로 턱을 괴고 고뇌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어색하게 ‘연기’하는 것이 도마에 올랐다. 한동훈이 얼마나 어설픈 이미지 메이킹에 사로잡혀 있는지 알 수 있는 이 해프닝은 한동훈 정치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박근혜는 공개든 비공개든 자주 모습을 노출하지 않아 자신의 이미지가 값싸게 소비되는 것을 극도로 꺼렸고, 호들갑을 떨며 카메라 앞에서 어색한 포즈를 취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정치인 이미지 메이킹의 첫 번째 요소인 ‘신비감’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고수했다. 이런 점에서 한동훈은 ‘셀카 정치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자신의 이미지를 너무 남발해 신비감이 극도로 떨어졌고 국민들도 한동훈의 설레발 이미지에 피로감을 느끼기에 이르렀다. 

 

지난 1월 14일 국민의힘 한동훈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 충남 예산 스플라스리솜에서 열린 충남도당 신년인사회에 셀카를 촬영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근혜는 또한 영남이라는 강력한 지지층이 존재했다. 하지만 한동훈에게는 뜬구름 잡는 지지층만이 있을 뿐이다. 그가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62.8%라는 비교적 높은 득표를 올린 것은 당원들의 ‘전략적 선택’일 뿐이다. 그 수치는 그를 차기주자로 ‘확정’했다는 뜻이 아니라 당 대표직에 올려놓고 대통령감인지 아닌지 시험해보겠다는 뜻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지금 한동훈은 ‘차기 대통령 코스프레’에 완전히 빠져 있다. 지지율이 최하 수준에 머물러 있는 현직 대통령이 자신의 직까지 걸 정도로 올인하고 있는 의료 개혁 문제로 돌파구를 마련해보려고 하는 것에 집권여당 대표가 구체적 대안도 없이 그냥 유예하자며 어설프게 싸움을 건 것은 최악의 패착이 될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한 대표의 유예 제안이 윤 대통령과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의대 정원 문제가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전국 병원의 응급실이 고사 수준에 이르는 등 부작용이 예상보다 심각해지자 윤 대통령이 출구전략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그 총대를 한동훈이 멘 것이라는 그럴듯한 시나리오다.


 

하지만 지금 터져 나오는 대통령실 고위관계자 ‘워딩’의 불쾌감과 분노 정도를 보면 짜고 치는 고스톱의 선을 넘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윤 대통령이 지금까지 어렵게 키워 놓은 의료 개혁 캐릭터를 ‘동생’에게 공짜로 넘겨줄 만큼의 정치적 도량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대통령실은 한 대표의 유예 제안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 성격을 가장 잘 알 만한 사람이 뻔히 안 되는 일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그냥 보여주기 식 쇼일 뿐 진정성이나 현실성은 결여돼 있다’는 기류가 강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동훈 대표는 지지율도 정체에다 셀카만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 의료 개혁 이슈에 돌진했지만 대통령의 외면과 여론의 불신만 가중시키고 있다. 연기를 하려면 세련되게 하든지, 카메라 보고 어설프게 손을 턱에 갖다 대는 수준의 ‘발연기 대통령’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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