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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성기노 칼럼] 대표 취임 3주 한동훈 “너무 느리고 흐리멍덩하다” 본문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취임한 지 3주가량이 흘렀다. 지난 7월 23일 전당대회 승리 이후 집권여당 대표로서 한동훈이 보여준 정치 퍼포먼스는 몇 점이나 될까. 아젠다 제시도 굼뜨고 개혁의 선명성, 정책의 차별성도 별로 안 보여 낙제 수준이다. 초반 정국 주도권 잡기에 실패했다는 의미다.
한동훈은 친윤계의 강력한 견제를 뚫고 전당대회 압승(62.8% 득표)으로 분위기를 제대로 탔지만 ‘집권’ 이후 보여준 리더십은 역시 정치 초보의 한계만을 극명하게 노정시켰다. 전당대회에서 압승한 당 대표라면 인사권 정도는 디폴트로 가져가는 것임에도 정점식 전 정책위의장 유임 여부를 두고 쓸데없이 힘을 빼버렸다. 한동훈은 대표의 고유권한인 당 인사권마저 용산 눈치를 보다가 강단 있는 미래권력이라는 강렬한 인상을 주는 데 실패했다.
특히 한동훈 자신이 법무부 장관 때 사면해준 김경수 전 경남지사 복권과 관련해서도 괜히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가 윤 대통령이 보란 듯이 ‘결재’해버리자 공개 망신만 당하고 아무런 실익을 챙기지 못했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논란과 관련해서도 명확한 태도를 보여주지 못한 채 침묵하고 있다. 한동훈은 8월 13일 서울 여의도 당사 출근길에 기자들이 ‘전날 김 관장에 대한 기자회견을 어떻게 봤느냐’고 묻자 답하지 않았다. 김경수 전 지사 복권 문제로 윤 대통령과 쓸데없이 대립각을 세운 것이 부담이 돼 김형석 관장 임명 문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속앓이만 하고 있다.
집권여당 대표라면 정국을 주도하는 큰 그림을 제시하며 거침없이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야 국민들도 미래권력에 대해 확신을 하는데 한동훈은 뒤돌아서서 건너온 돌다리를 다시 두드려보고 있는 것 같다. 한동훈은 지난 총선 이후부터 국민 눈높이를 줄곧 외치고 있다. 한동훈 정치의 요체는 ‘국민 눈높이’인 것이다.
김건희 특검법에도 국민 눈높이를 들이밀었다가 윤석열 김건희 부부의 눈 밖에 났다. 한동훈의 국민 눈높이는 국민과 권력의 그 어디쯤 애매한 기회주의 눈금에 절묘하게 걸쳐 있다. 한동훈의 국민 눈높이와 윤석열의 권력 눈높이는 태생적으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한동훈은 지금 양손에 떡을 쥔 채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국민과 권력은 양분될 수 없다. 국민이 곧 권력이다. 국민과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조응하는 것만이 권력의 올바른 행사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 눈높이가 아니라 권력 눈높이로 지금까지 달려왔고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동훈의 눈높이는 ‘우등생’이 설정해 놓은 심각한 자아도취의 한계선에 걸쳐 있다. 평생을 검사 기득권으로 살아왔고 자신의 노력과 땀으로 무언가를 쟁취한 것이 아닌 순전히 ‘형님’의 줄만 잡고 지금까지 온 한동훈이 하루만 장사를 안 해도 생계를 위협받는 서민들의 땀과 노력을 알 턱이 없다. 한동훈의 ‘국민 눈높이’는 국민 기만이자 권력욕의 배출구일 뿐이다.
한동훈 정치의 요체가 ‘국민 눈높이 맞춤’이자 윤석열과의 차별화라고 한다면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한동훈의 정치가 출발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태생적으로 그런 모순을 해결할 역량과 배짱이 없다. 한동훈은 윤석열 대통령과의 ‘전략적 공생’이라는 애매한 기회주의 처신을 하루빨리 버리는 것만이 차기주자로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에도 그것을 모르거나 무시하고 있다.
한동훈은 용산이 만들어준 다리를 불살라버려야 한다. 당 대표 취임 직후 ‘윤석열과의 단절과 차별화’ 전략으로 국민들의 주목도를 확 높여야 했지만 ‘집권’ 3주만에 개혁의 강도와 차기의 선명성은 김이 확 새버렸다. 지금이라도 용산과 강단 있게 이별해 마지막 승부를 벌여야 할 시점에 있다.
사실 보수정당의 대권주자들은 현재권력과 확실하게 선을 그을 때 비로소 차기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었다. 1997년 대선 당시 대세론에 얼큰하게 취해있던 이회창은 김영삼 대통령이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의 대선 비자금 수사 연기를 지시하자 꼭지가 돌아버렸다.
이회창은 대선 직전 포항의 대선 필승결의대회에서 그의 지지자들이 김영삼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두들겨 패고 화형식을 하는 초유의 사태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서 현재권력에 대한 앙심과 분노를 표출했다. 그 결과 차기주자 타이틀은 확실하게 챙겼지만 그에 열받은 김영삼은 이인제를 끝까지 내세워 이회창은 39만표 차이로 패퇴하고 말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09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추진하던 ‘세종시 수정안’을 공개 반대함으로써 확실한 미래권력 위상을 구축할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이명박 대통령과 친이계의 권력이 정점을 치달을 때였지만 박 전 대통령의 반대는 철옹성의 권력에 균열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부터 국민들도 ‘박근혜가 그래도 강단이 있다’는 자기최면에 서서히 취해갔던 것이다.
그렇다면 윤석열 대통령이 한동훈을 바라보는 시점은 어떻게 될까. 앞으로 윤 대통령은 철저하게 기회주의적으로 처신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윤석열과 한동훈이 짜고 치는 고스톱의 패를 돌리고 있다며 그들의 갈등도 권력 유지와 연장을 위한 ‘위장전술’일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권력은 기본적으로 승자와 패자의 양단 간 결말이 날 수밖에 없는 ‘올오어낫싱’ 전면전의 처절한 결과물이다.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격돌과 응전 속에서 승자가 모든 것을 쟁취해야 끝이 난다. 조선시대 태조 이성계와 아들 이방원도 현재와 미래권력의 충돌과 형제 간 살육으로 이어졌다. 권력에 부자지간도 없는데 핏줄도 아닌 ‘형, 동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윤 대통령이 차기주자도 품지 못하는 ‘협량 정치’를 하고 있다는 비판은 현재 시점에서는 너무도 한가한 해석이다. 윤 대통령은 한동훈을 과감하게 밀어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등을 돌리지도 않고 적당한 선에서 내버려 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친윤계가 몇 번 잽을 날려 한동훈이 휘청거린다면 그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어 여당대표를 물어 뜯어버릴 것이다.
권력은 언제나 현재와 미래가 부딪히며 그 독자적 자생력을 확보해왔다는 점에서 윤석열과 한동훈이 ‘한몸’이라는 해석은 설득력이 별로 없다. 두 사람은 이미 피할 수 없는 생존경쟁에 돌입했다. 형은 매우 한정적으로 동생을 도와주는 척할 것이다. 최소한 동생에게 형이 완전히 등을 돌리지 않았다는 신호 정도만 주면서 전략적 ‘방관’을 하는 것이다.
친윤계는 현재 집단적으로 ‘태업’을 하며 ‘한동훈이 얼마나 잘하나’ 지켜보고 있다. 한동훈이 계속 용산에 반항하는 모습을 보이는 과정에서 치명타를 입으면 언제든 달려들어 그를 끌어내리려고 한다. 하지만 한동훈이 끝까지 살아남는다는 시그널이 여론조사를 통해 계속 포착된다면 윤 대통령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한동훈 뒤에 줄을 설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한동훈의 한계가 명확하게 드러나고 천금같은 대권의 기회를 날려버릴 조짐을 보이면 스스로 사멸할 때까지 못 본 척 외면할 수밖에 없다. 항간에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김건희 여사 일가와 오랜 친분이 있다며 향후 대권 과정에서 김 여사가 오 시장을 지원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윤-김 부부 권력이 한동훈 카드를 버리고 오세훈 카드를 들이밀며 정권 재창출의 열망을 다시 살리려 할 가능성이 있다면 한동훈은 지금과 같은 얌전하고 느린 ‘샌님 정치’로 그 난전에서 승리할 수 없다. 이회창이 김영삼 인형 화형식을 못 본 척 ‘반항 분위기’를 조장한 기세등등 전략으로 대권주자 타이틀을 거머쥐었던 것처럼 한동훈도 윤석열이 전부 만들어준 대권의 다리를 일단 먼저 불살라버려야 한다.
한동훈이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 말을 바꾸고 용산과 한배를 탄 것처럼 ‘이상행동’하는 것은 그의 ‘모범생’ 성향이나 정치적 안목 부재를 봤을 때 일견 예상되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양손에 떡을 쥔 채로 주먹을 날릴 순 없다. 한쪽 손에 있는 떡은 과감히 버리고 권력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도 될까 말까다.
한동훈은 지금 당내 기반이나 인적 풀이 너무도 빈약하고 허약하다. 김상훈 정책위의장은 일면식도 없는 관계였지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영입했다. 지방선거 공천 밑그림을 총괄하고 조정해야 할 조직부총장에 당 상황을 전혀 모르는 초선 의원을 앉힌 것도 인재 풀의 협소와 함께 당 권력구도를 너무도 모르는 인선이었다.
이회창은 김영삼의 측근이었던 허주 김윤환부터 빼내면서 당을 밑바닥부터 완전히 장악했다. 하지만 한동훈은 자신이 대표 타이틀을 거머쥐었는데만 만족할 뿐 당을 완전히 장악하는 데 실패했다. 그 전조는 당무를 세세히 모르는 초선의 조직부총장 인선에서 이미 드러났다. 이를 목도한 친윤계도 ‘옳다구나. 혼자 한번 잘해 보라’며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
한동훈은 머리만 국민의힘 당수일 뿐 몸과 다리는 여전히 ‘적’의 수중에 내준 허술한 집권여당 대표에 불과할 뿐이다. 정치에서 누가 누구를 챙겨준다는 것은 ‘언제 밥 한번 먹자’는 빈말보다도 더 의미 없는 허무한 경구다. 한동훈에게는 지금 목숨 걸고 차기 권력을 쟁취해보겠다는 결기와 배짱이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많지 않지만 한동훈은 여전히 느리고 불명확하다. ‘헬기 맘’의 초 단위 스케줄 관리로 성공을 받아먹은 허약한 ‘우등생’의 처신으로 이해한다면 애저녁에 예측가능한 것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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