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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 칼럼] ‘바이든은 날아갔다’ 윤석열은 안전한가?

성기노피처링대표 2024. 7. 31.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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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을 107일 남겨두고 민주당 후보직에서 사퇴하고 해리스 부통령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었다. (사진=연합뉴스)



오늘은 미국 정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미국같은 민주주의 토대가 탄탄한 나라에서 재선 출마가 기정사실화되던 바이든 대통령이 갑자기 등 떠밀려 후보직을 사퇴한 뉴스는 실로 놀랍고 당혹스러웠다. 바이든은 지난 6월 27일(현지시각) 딱 한 번의 TV토론회에서 ‘어리바리’를 타는 바람에 ‘세계 대통령’에 재등극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내려놓았다. 

바이든으로서는 대성통곡하며 억울해 할 일이다. 하지만 그는 “남은 기간 대통령으로서 의무를 다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쿨한 성명서 한 장을 남기고 미련 없이 정치를 떠났다. 바이든은 그의 ‘이미지 메이커’에 불과하던 부통령 해리스를 민주당 대선후보로서 전폭 지지한다는 깔끔한 뒷수습까지 잊지 않았다. 

6월 27일 TV토론회 뒤 81세 바이든의 ‘고령 리스크’가 점화되면서 결국 후보사퇴까지 이르렀던 7월 21일까지, 그 25일동안 미국 정치권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무리 재선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TV토론회 단 한 번으로 후보선출 프로세스가 리셋되는 것이 가능할까. 

바이든 사퇴에 대한 일반적인 원인 분석부터 살펴보자. 1차 TV토론회를 전후로 이미 민주당 내부에서는 ‘저런 병들고 허약한 모습으로 대선 파도를 넘을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서서히 퍼져나가고 있었다. TV토론 참패는 그런 민주당의 회의적 기류를 확신으로 바꿔준 결정타가 됐을 뿐이다. 

바이든에 대한 호의적인 여론의 둑이 무너진 1차 붕괴는 이렇게 민주당 내부에서부터 시작됐다. CNN은 “TV토론 참패 이후 바이든이 자신의 승리를 주장했지만, 바이든의 이너서클은 최측근과 가족들로 줄었다”며 바이든에 대한 당내 기반이 급격히 사라진 것을 사퇴 결심의 핵심 원인으로 꼽았다. 

민주당 지지층의 붕괴 조짐은 금세 선거자금 봉쇄라는 2차 진앙지로 옮겨갔다. 한국에서도 ‘후원금 모금이 불과 몇 분 만에 끝났다’는 게 정치인의 인기 척도가 되듯이 미국도 기부금 급감이 준 나비효과는 선거운동원들의 몸과 마음을 돌리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터진 트럼프 전 대통령 피격 사건은 그의 ‘파이팅’ 이미지를 극대화했고 기세가 오른 트럼프는 어울리지 않는 통합 카드를 들이밀며 대선 승리를 기정사실화하는 듯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7월 21일(현지시간) 민주당 대선 후보직에서 사퇴하면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바이든은 트럼프 피격 일주일여 만에 백기를 들고 말았다. 미국 정치에서 재임기간 중 웬만한 중대 실수나 논란만 없다면 재선이 통상적이라는 점에서 바이든의 ‘낙마’는 단순히 ‘고령 리스크’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더 존재했을 것이다. 

먼저 미국이나 한국이나 국민들의 정치인 판단 기준이 점점 표층적인 이미지에 좌우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 경력으로만 치면 바이든은 미국 정치에서 대통령감으로 손색이 없다. 오바마 전 대통령 밑에서 무려 8년 동안 부통령을 지내며 미국 정치 권력의 메커니즘을 속속들이 꿰뚫고 있을 뿐 아니라 세계 정치의 흐름도 그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다. 트럼프가 즉흥적이고 선동적인 정치로 반짝 인기를 모았다면 바이든은 가장 숙련된 ‘기장’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바이든은 단 한 번의 TV 토론에서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이번 바이든-트럼프 TV토론을 보면서 1960년의 케네디-존슨 TV 토론회가 오버랩 됐다. 미국은 1960년 대통령 선거에 TV 토론을 처음 도입했고 케네디는 그 첫 번째 수혜를 가장 톡톡히 누린 대통령으로 기억된다. 지금도 이 첫 번째 TV토론은 미디어 분야의 ‘정치인 이미지 메이킹’ 중요 텍스트로 회람되고 있다.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과 민주당 존 F 케네디 후보가 맞붙은 1960년 미국 대선에서 현직 부통령으로 높은 인지도에 경험과 노련함을 앞세운 닉슨과 상원의원이던 43세의 정치 신인 케네디의 TV토론 대결은 결과가 뻔히 예상됐다. 하지만 TV에 비쳐진 두 후보의 모습은 완전히 정반대였다. 

케네디는 젊고 건강한 쾌남 대통령의 이미지를 시종일관 여유 있게 어필했던 반면 초췌하고 위축돼 보이는 존슨은 식은땀까지 흘리며 불안하고 초조한 모습을 드러냈다. 흑백 TV에서 짙은 색 옷을 입은 케네디의 모습은 세련되게 부각됐고 닉슨의 회색 양복은 스튜디오 배경색에 묻혀 ‘촌로’의 모습으로 비쳐졌다. 일단 이미지 메이킹은 케네디의 완승.

TV토론 스킬도 케네디가 압도적이었다. 요즘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연예인들이 자신을 비추는 카메라부터 먼저 찾듯이 케네디도 시종일관 자신을 잡는 카메라만 응시하며 시청자들에게 속삭이듯 말하고 친숙함을 나타냈다. 반면 닉슨은 카메라는 안중에 없었고 계속 케네디만을 보면서 말을 해 시청자들은 그의 옆얼굴만 강제로 볼 수밖에 없었다. 국민들과의 ‘아이콘택트’에도 실패했으니 TV토론 스킬도 보나마나 케네디의 완승. 

 

1960년 9월 미국 대선 첫 TV 토론회가 케네디와 존슨의 대결로 펼쳐졌다.

 


대선 결과는 불과 0.17%포인트(11만여 표) 차이의 케네디 신승이었다. TV토론이 없었다면 케네디는 아마 대선에서 존슨을 이길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찰나의 순간에 비친 정치인의 이미지는 그 자체로 강렬한 잔상을 남기기 마련이다. 이때부터 TV토론은 미국 대선의 향방을 가르는 중요한 변수로 자리매김했다. 그러고 보니 TV토론에 비친 바이든은 64년 전 존슨과 묘하게 닮아 있는 것 같다. 

지금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경선이 한창이다. 이재명 의원은 대표 재선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사법 리스크’는 끊임없이 그를 옥죄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재명은 끊임없이 ‘범죄자’ 이미지에 노출됐고 그런 ‘낙인 효과’ 때문에 2022년 대선에서도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국민들 중 일부, 특히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이재명이라는 야당 대표의 정치적 능력이나 리더십을 보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그가 범죄자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증오의 논리’를 가지고 있다. 

한번 ‘찍힌’ 이재명의 범죄자 이미지는 결코 반전될 수 없다. 유시민은 한 칼럼에서 “국힘당 지지자는 이재명을 그저 싫어하고 미워할 뿐이다”라고 진단한다.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를 옹호하는 뜻에서 이런 지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인의 정책개발 능력과 리더십이 ‘깔끔한’ 이미지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이 점점 간과되고 있다는 사실에 절망할 뿐이다.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판단으로 정치인을 재단하는 것은 ‘보기 싫다, 갈아보자’는 탄핵 무한루프에만 빠지게 할 뿐이다. 미국이나 한국의 이런 ‘이미지 확증편향’ 현상은 정치혐오를 부추기고 극단적인 진영대결만 더 판을 치게 만들 것이다. 

두 번째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조응하는 것도 정치인의 역량이자 능력이라는 것이다. 바이든은 40년 이상 미국 정치의 중앙 무대에 있었던 엘리트였다. 판세를 읽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는 민주당 내부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비토론’의 둑을 막아낼 수 없음을 직감했을 것이다. 

더 수치스럽게 쫓겨나기 전에 해리스를 대선 후보로 지명해 혹시라도 그의 막후 실력자가 되는 것이 정치적으로 더 이익이라는 현실적 판단을 했을 수 있다. 바이든 캠프 내부에서는 ‘여론에 나약하게 굴복했다’는 불만도 나왔지만 바이든은 최악이 아닌 차악을 택했다. 바이든은 그의 ‘여론 존중’ 정치가 40년 정치판에서 얻었던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증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6월 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8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 정치판을 한번 보자. 한국의 정치인들은 기본적으로 ‘여론’을 믿거나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여론에 따르는 것을 배짱이 없거나 굴욕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하다. 여기에서 권력자가 내세우는 것이 국익이다. 그들은 최선의 국익은 여론에 열린 태도를 취하는 것이라는 점을 무시하거나 모른 척 한다. 

특히 한국의 정치인들은 집권하게 되면 묘한 ‘우국충정론’에 빠지게 된다. 여론을 거스르고 꼼수로 빠져나가는 것을 정치인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촛불을 들거나 말거나, 총선에서 궤멸적 참패를 당하거나 말거나, 권력자는 기어코 여론의 너머에 혹시 있을지도 모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부터 먼저 찾거나 그들에게 의지하며 현실을 회피하려 한다. 그렇게 해서 어떤 대통령은 탄핵을 당했고 어떤 대통령은 그럴 위기에 빠져 있다. 

권력자들은 자신들에게 쓴소리를 하는 여론을 ‘중우 정치’로 매도하는 우매한 자기 확신에 빠져 있기 쉽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에 제출한 ‘채 상병 특검법’ 재의요구서에서 ‘중우 정치’란 표현을 쓰며 자신의 거부권 행사를 정당화하고 나섰다. 

윤 대통령은 “다수결은 늘 다수 의견의 오류 가능성과 정치적 악용 가능성이 있으므로, 소수의견을 존중하고 더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얻기 위하여 다양한 노력을 하여야 한다. 이러한 노력 없이 ‘법대로’를 주장하며 다수결로 밀어붙이게 되면, 다수결 제도가 가지는 약점 즉, ‘중우정치’와 ‘정치적 악용’ 문제가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이 생각하는 여론과 국민들이 받아들이는 여론의 기준점이 차이가 나면 날수록 그 국가는 독재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이 ‘여론’의 정의를 어디까지 겸손하게 ‘내리느냐’가 민주주의 성숙도의 척도가 된다. 불행하게도 윤석열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 여론을 중우 정치에 의한 정치적 악용 사례로 받아들이고 있다. 

윤 대통령이 말하는 여론과 채 상병 특검의 언저리에 놓인 여론은 과연 다를까. 권력자는 자신에게 불리한 이슈는 중우 정치로 매도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일은 ‘리더십’으로 포장해 알리려 한다. 이런 여론에 대한 ‘선택적 수용’은 결국 권력자의 몰락을 가져올 뿐이다. 

바이든은 자신의 권력이 손바닥위에서 빠져나가는 한 줌의 모래로 인식하고 대선 후보직을 내려놓았지만 25일 만에 그가 보여준 담대한 결정은 용기의 소산이자 여론과 민주주의에 대한 존중에서 나온 것이라고 본다. 여론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그 여론의 파도 위에서 담담하게 국정 운영하는 것을 굴욕이나 굴복으로 생각한다면 그 정치인은 권력의 장검을 거둬들여야 한다. 무엇이 여론이냐고? 2024년 4월 10일이 그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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