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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성기노 칼럼] ‘기사회생’ 이재명, 총선에서도 웃을 수 있을까 본문
더불어민주당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압승을 했다. 당시 진교훈 후보의 표정은 밝았지만 홍익표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는 ‘표정관리’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민주당의 보궐선거 공식 반응은 “민주당이 승리한 것이 아니라 윤석열 정권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었다. 맞는 말이다.
사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이 ‘실수’할 때 떨어지는 떡고물만 야금야금 받아먹는 ‘반사이익 전문 정당’이라는 비판 때문에 선거에 이기고도 마음대로 웃지도 못할 만큼 민심 눈치를 보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의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기사회생’의 발판을 마련한 뒤 보궐선거까지 승리하게 되면서 ‘이만하면 총선 승리는 떼 논 당상’이라는 낙관론 바이러스가 스멀스멀 퍼지고 있는 것 같다.
민주당에게 보궐선거 승리는 총선 승리 기대감을 무한확장으로 부풀어 오르게 하는 아찔한 ‘환각제’가 될 수도 있다. 이재명 대표도 구속영장 기각에 이어 보선마저 완승함으로써 반대파들마저 포용할 듯한 여유와 ‘다음 대권은 나다’라는 강력한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낙관론은 보궐선거 승리의 의미를 ‘야당 맘대로’ 확대 해석하는 ‘착시현상’일 수 있다.
‘한 숨 돌린’ 이재명 대표가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었던 체포동의안 찬성파들을 모조리 색출해 쫓아내겠다는 사생결단의 결기를 보일지는 의문이다. 이 대표가 10월 23일 당무에 복귀하게 되면 반대파 ‘숙청’보다 당의 통합을 첫 번째 메시지로 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반대파 처리’는 총선이 다가오게 되면 장외에 포진한 ‘개딸’ 등의 강경파들이 분위기를 잡아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란 계산도 깔려 있을 것이다.
민주당에서는 보궐선거 승리 이후 ‘쇄신’이라는 골치 아픈 단어보다 ‘통합’이라는 편한 말이 더 많이 사용된다. 이재명 대표가 당무에 복귀하더라도 당장 반대파를 색출하며 당을 초토화시키거나 ‘내 뼈를 깎겠다’는 결기로 쇄신을 추진할 것 같지도 않다. 어쨌든 ‘선거’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이 근거 없는 ‘낙관론 바이러스’를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얼마나 ‘목숨 걸고’ 막아내느냐에 따라 내년 총선 결과도 달라질 것이다. 쇄신의 강도는 패배의 충격과 비례하는 게 여의도 철칙이다. 호되게 당한 쪽은 반성도 절실하게 할 수밖에 없다. 대충 쇼만 하는 게 아니라 참패를 만회하기 위한 절박한 묘수를 생각해내야 한다.
벌써 윤석열 대통령부터 ‘여의도 호떡집’에 난 불을 끄느라 부랴부랴 움직인다. 비록 ‘뜬금포’라는 비판도 있지만 보궐선거 승리 이후 윤 대통령은 자신의 스타일을 완전히 바꾸고 있다. 이념은 이제 용산의 금기어가 됐다. 그동안 ‘내가 최고야’를 시전하던 대통령은 비록 참모들의 ‘입’이지만 ‘제가 잘못했어요’라며 급 반성과 사과 모드로 들어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집권여당의 ‘최대 상수’다. 윤 대통령이 돌변해 갑자기 통합과 협치, 양보와 배려의 아이콘으로 깜짝 변신한다면 정국은 그야말로 시계제로가 될 것이다. 실제로 윤 대통령의 정치적 옵션이 ‘사법리스크’에 옴짝달싹 갇혀버린 이재명 대표보다 훨씬 많고 다양하다. ‘상수’ 윤석열 대통령이 작심하고 움직이면 그 자체로 야권을 향한 최고의 공격 카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윤석열 신당과 이준석 신당이 지금은 아이디어 차원에서 거론되지만 윤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반전의 모멘텀을 만들어내 여권에 암울한 전망이 나오는 내년 총선에 베팅이라도 해볼 수 있다. 이재명 대표에게 전격적으로 ‘민생 영수 회담’을 제안하는 파격도 예상해볼 수 있다.
사실 윤 대통령이 보궐선거 참패 이후 갑자기 공손모드로 들어갈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국정운영 일방독주에 대한 자기부정을 해야 하는 정치적 부담 때문에 그동안의 강경 노선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는 분석이 더 많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선거 패배 이후 즉각적으로 사과를 하면서 앞으로도 더 ‘변신’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어두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갑자기 사과 모드로 들어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민주당이 주목해야 하는 것은 여권이 ‘고집불통’ 윤 대통령마저 변화의 기운을 보일 정도로 고강도의 쇄신을 하려는 그 ‘용암 분출’의 에너지다.
민주당이 한가하게 윤 대통령의 사과 진정성 여부를 따지거나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의자에 등을 기대려 한다면 내년 총선은 폭망이다. 민주당이 보궐선거에서 18%포인트에 근접하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고 해서 희희낙락해서 안 된다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윤석열은 변할 수 있지만 이재명은 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무결점주의’와 카리스마는 이미 보궐선거 패배를 통해 깨졌다. ‘영리한’ 윤 대통령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급 겸손 모드로 들어갔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이런 갑작스런 ‘태세전환’에 대한 대비가 전혀 안 돼 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신당 창당과 정계개편, 야당과의 협치 등 다양한 정국반전 카드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고 ‘앞으로도 윤 대통령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하나로 총선 전장에 뛰어들려고 한다.
지금의 이재명 대표에게서 윤 대통령이 자의든 타의든 받아들였던 ‘정치적 유연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민주당은 내년 총선과 대선도 ‘무조건 이재명’이다. 민주당은 ‘상수 이재명’을 제거하지 못한다. ‘이재명 제거’는 그들 집권 시나리오에 없다.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이마저도 민주당 주류의 기득권 지키기로 비쳐지지만) ‘이재명 외통수’만이 유일한 총선, 대선 전략이다.
윤 대통령이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내년 총선에서 완전히 새로운 ‘통합의 아이콘’으로 등장한다면 그 후 민주당은 과연 누구를 잡으러 가야 할까. 민주당이 ‘이재명 불사조’ 전략만을 견지하는 한 윤 대통령의 다양한 흔들기 작전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 ‘이재명 사수’ 외에 별다른 총선 전략이 없는 민주당과 재빨리 ‘잘못했어요’라며 변신의 단초를 보여준 윤 대통령 중 누가 더 총선 승리에 대한 가능성이 있을까.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은 차라리 이재명 대표가 구속되고 보궐선거에서도 패배를 했어야 그 초토화된 땅에서 새로운 집을 지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마저 나온다. 이왕 맞을 매였다면 화끈하게 맞고 새롭게 시작하는 게 나은데 어중간하게 맞다 보니 반성은커녕 오히려 더 기고만장해질 수 있다는 경고다.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도 향후 재판과정에서 유죄를 받아 또 다시 사법리스크가 불거지기 전의 ‘생명연장 주사’에 불과했다는 지적도 있다.
이 대표 구속영장 기각 이후 ‘개딸’ 등의 민주당 강경지지층은 더욱 기세등등해졌다. 그들은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김혜경 여사의 법인카드 사적사용에 대해 ‘폭로’하자 극도의 반감을 드러내며 김 지사를 ‘집단 린치’할 정도로 더 과격해지고 배타적인 세력이 돼 가고 있다. ‘개딸’이 존재하는 한 이재명 대표의 ‘대권 무한도전’을 위한 민주당의 ‘기우제’는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이재명 대표가 보궐승리 이후 태만해져 비명계(비 이재명)를 적당히 공천해 주는 등 ‘정치적 유연성’을 발휘할 경우 강성지지층들이 이 대표마저 ‘수박’으로 내몰지 모른다. 이 대표 또한 ‘민주당 묻지마 집권’의 호랑이등에 올라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당내 통합’이나 유연성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윤석열 정권의 독주로 얻은 반사이익은 이재명 대표 구속영장 기각으로 1차 명운이 다 했다. 보궐선거에서 윤 대통령을 응징한 민심은 이제 그 냉엄한 눈초리를 민주당쪽으로 돌리고 있다.
민주당이 ‘너희는 잘 하고 있느냐’는 국민들의 물음 앞에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으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열쇠는 오로지 이재명 대표가 쥐고 있다. 이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의 총선 공세에 맞설 유일한 무기는 '공천 개혁'이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지난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대선 패배의 후유증을 수습하고 당을 완전히 환골탈태하기 위해 자신의 정치적 '후견인' 역할을 했던 김윤환을 비롯해 이기택 신상우 등 중진 거물들과 현역 의원 43명을 공천에서 탈락시키고 오세훈 원희룡 김영춘같은 개혁파를 영입하는 파격적인 정치개혁을 단행했다.
당시 이회창의 이 살벌한 '도박'은 정당사에서 '공천 학살'의 효시가 되었다고 할 만큼 엄청난 파장을 낳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회창의 공천 개혁은 국민들의 뜨거운 응원과 지지를 받았고 한나라당은 정치권의 예상을 깨고 과반에 근접하는 133석을 차지해 제1당을 지켜냈다.
총선과 같은 최대 정치 이벤트에서 인적 쇄신만큼 확실하고 상징적인 개혁 조치는 없다. 이재명 대표가 친명계(친 이재명) 중진 절반 이상을 쳐내는 강도 높은 공천 개혁 의지를 보여주고 계파를 초월해 젊고 참신한 인물들을 과감하게 수혈한다면 내년 총선에서 '사법리스크'를 조금이라도 분산시키며 국민들의 기대와 관심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회창 총재 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성지지층의 입김이 센 현재의 민주당 상황에서 이재명 대표가 과연 '개딸'들의 극렬한 반발과 당내 저항선을 뚫고 자신의 '동지'들을 쳐낼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국민들은 더 이상 민주당의 ‘반사이익’과 ‘무임승차’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보궐선거가 윤석열 대통령의 일방독주에 대한 국민들의 응징이었다면 내년 총선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와 오만에 대한 심판이 될 수도 있다. 선거에서 이긴 쪽이 진 쪽보다 더 목숨 걸고 쇄신하지 않는 건 권력의 생래적 본능이다. 이런 정치법칙을 깨는 기적을 이뤄내야 민주당이 내년 총선에서 진짜 마음껏 웃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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