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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님, 청와대는 어디로 옮길까요?”

성기노피처링대표 2022. 2. 1.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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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5차 토론방송회 당시 윤석열 후보의 손바닥 왕자 논란 모습. (사진=ytn 캡처)




이번 대선은 ‘무속’ ‘역술인’ ‘도사’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언급된 ‘특이한’ 선거로 기록될 것입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경선 과정에서 손바닥에 ‘왕(王)’자를 새기고 나온 것이 드러나 파문이 커진 이후부터 최근의 ‘건진법사’ 논란과 부인 김건희 씨 청와대 영빈관 이전 발언 구설수까지 대선 판이 온통 무속의 혼령 속에 휩싸인 듯합니다. 

사실 한국의 정치인들이 무속과 역술에 의해 중대한 결정을 내린 예는 수없이 많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일생일대의 장기집권으로 가는 10월 유신(1972년 10월 17일)을 성공시키기 위해 당시 유명한 역술인에게 ‘날짜’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중앙정보부 판단기획실장 김성낙 씨(유정회 1기 의원 역임, 사망)가 당시 용하다고 소문난 세검정 모 점술가로부터 받아온 10월 17일로 정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점괘’만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사주명리학의 대가였던 박재현 씨에게도 사람을 보내 10월 유신의 성공 가능성을 물어봤다고 합니다. 그때 박재현 씨는 담뱃갑에 ‘유신’(幽神)이라는 글씨를 썼습니다. 즉 “유신(維新)을 하면 유신(幽神), 곧 저승의 귀신이 된다”는 무서운 예언이었고, 그는 곧바로 남산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호된 곤욕을 치러야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박 전 대통령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피살돼 박재현 씨 말대로 저승귀신이 되고 말았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6.29 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 결정을 한 이후 대선 일자를 12월 16일로 잡았는데 이것도 당시 여권의 선거관련 전문 점쟁이라고 불리는 ‘청운동 도사’에게 문의해서 결정했다고 합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0년 여의도로 당사를 옮기면서 기를 이어받아야 한다는 무속인 말에 따라 관훈동 구 당사에 자신의 사진을 남겼다고 합니다. 지난 1997년 대선 때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 있던 부친 묘와 포천에 있던 모친의 묘를 경기도 용인으로 이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집도 동교동에서 일산으로 이사를 했고 그 덕분인지 대권 ‘4수생’의 한을 풀 수 있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의 조상묘 이장 소식이 ‘신통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그 후 김종필, 이회창, 한화갑, 김덕룡, 이인제 등의 대권주자들이 줄줄이 조상묘를 이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대권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필자는 지난 2002년 대선을 취재할 때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노무현 민주당 후보의 자택을 풍수학자와 함께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후보는 가회동 빌라 사건 이후 자택을 청와대와 가까운 옥인동으로 옮겼습니다. 풍수적으로 나름 길지라는 주장과 함께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집의 대문과 현관이 일직선이 아니라 90도로 꺾인 형태였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 풍수설 가운데 하나는 대문이 시원하게 열려 있어야 복이 잘 들어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집 현관의 신발마저도 가지런히 정돈을 해놓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회창 후보의 집은 대문은 북향인데 현관문은 남향이었습니다. 복이 대문으로 곧장 현관 집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구조인 것입니다. 당시 풍수학자는 이에 대해 “한쪽에서는 기(에너지)가 들어오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그 에너지를 잘 보관하지 못하고 흘려보내는 형상”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반면 노무현 후보는 명륜동1가(현대하이츠 빌라)에 자리 잡고 있는데 건물 좌향(坐向·집이 들어앉은 방향)이 남향이라 정치인으로서의 입지가 강해지고 남에게 인정을 받게 되는 장점이 있다고 했습니다. 

 

지난 1997년 대선 때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 있던 부친 묘와 포천에 있던 모친의 묘를 경기도 용인으로 이장하고 집도 동교동에서 일산으로 이사했다. 그 덕분인지 대권 '4수생'의 한을 풀 수 있었다. 사진은 지난 1999년 9월 김대중 대통령이 26일 청남대에서 추석연휴를 보내고 귀경하는 길에 용인 선영에 들러 가족들과 함께 성묘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당시 필자가 느낀 두 대권주자의 자택 풍수 분위기는 사뭇 달랐습니다. 이회창 후보의 집은 길가에 외롭게 서 있었고 노무현 후보의 집은 복잡하지만 다른 주택들과 어울려 있었습니다. 권위적인 분위기와 친근함이 묘한 대조를 이뤘습니다. 이회창 후보는 기자의 갑작스런 초인종 방문에 싸늘한 반응을 보이며 문전박대를 했습니다. 하지만 노무현 후보는 저녁 늦게 방문한 취재진을 선뜻 맞아주며 차를 대접하는 따뜻함을 보여주었습니다. 덕을 쌓으면 운이나 관상도 좋은 쪽으로 변하는 것 같습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는 경찰이 정보보고용으로 전국 각지의 역술인들을 만나 국운 전망 보고서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당시 경찰의 보고서 제목은 ‘역술인들의 새해 국운 전망’인데 “대통령께서는 언 땅에 꽃을 피우는 사주로 대운이 올 것입니다. 북악산, 남산, 인왕산이 청와대를 감싸고 있는 대통령님은 양의 배를 쓰다듬어 울음을 그쳐주는 상입니다”라는 낯 뜨거운 아부성 내용도 덧붙여 대통령의 심기를 살폈다고 합니다.  

요즘도 무속이나 역술은 정치인들이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누구보다도 중용되는 ‘1급 참모’의 역할을 합니다. 일부 의원들은 의원회관에 새로 입주할 때 사무실 가구 배치나 의원의 책상 방향까지 조언을 받는다고 합니다. 한 전직 의원은 이에 대해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선거다. 어떤 지역구가 나의 사주와 맞는지, 상대후보는 어떤 사람이 나와야 내가 이길 수 있는지 등을 물어보고 출마지역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어떨 때는 보좌관이 여론조사 데이터와 각종 바닥 민심까지 샅샅이 조사해서 올린 보고서보다 신통한 점쟁이 말을 더 신봉하기도 한다. 보좌관을 뽑을 때 사주 등을 보고 의원과 궁합이 맞는지도 보는 경우가 있다. 유력한 대권주자와의 궁합을 본 뒤 줄서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지역현안이나 당내 이슈 등에 대해 일일이 역술인에게 물어보고 결정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라고 말했습니다.  

최근 윤석열 후보의 부인 김건희 씨의 녹취록이 큰 파문을 가져왔습니다. 그 내용 중에 서울의소리 이명수 씨가 “내가 아는 보도 중 청와대 들어가자마자 영빈관으로 옮겨야 된다고 하더라”라고 말하자 김씨가 기다렸다는 듯 “옮길 거야”라고 말한 것이 ‘무속 정치’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사실 청와대는 풍수지리적으로 ‘흉지’라는 주장이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습니다. 지난 2010년 이명박 정권 말기에는 김승기 대한풍수지리연구원장이 “지금의 청와대를 지을 때 풍수학자의 자문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지만 풍수지리상으로 매우 잘못된 건축물이다. 후반기를 맞은 이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들의 임기 말 불행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청와대를 나와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청와대가 뒤로는 북악산, 앞으로는 남산과 관악산의 정기를 받고 명당수인 청계천이 감아 돌아가 전체적인 입지로만 보면 명당이지만 터가 좋지 않다는 분석에 근거해서입니다. 

 

(사진=연합뉴스)



실제로 청와대를 거쳐 간 역대 대통령들은 대부분 임기 말 불운을 맞았습니다. 또한 일본식민지 시대에 지금의 청와대에 머물렀던 이들의 운명도 매우 불운했습니다. 청와대 터는 일본식민지 시대에 총독관저가 있던 곳이었는데 그곳에 기거했던 조선 총독 가운데 일부는 교도소 복역 중 사망하거나 불운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교도소 ‘노년 운’을 생각해보면 당시의 청와대 ‘흉지’ 지적이 전혀 틀린 것 같지도 않습니다. 

이렇듯 청와대 풍수지리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많이 나왔던 것을 김건희 씨도 잘 알고 있다는, 그가 이명수 씨의 지적에 곧바로 ‘옮길 거야’라고 대답을 한 대목은 의미심장합니다. 최근 윤석열 후보는 정치관련 공약을 발표하면서 자신은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서 근무하고 숙소는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옮길 것이라고 공언했습니다. 청와대를 국민들에게 돌려준다는 취지에서 나온 말이지만 경호 상의 어려움 등 대통령 집무실과 숙소 이전은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그럼에도 윤 후보는 대통령 집무실과 공관을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습니다. 김건희 씨의 청와대 영빈관 이전 발언 논란과 맞물린 윤 후보의 집무실 공관 이전 공약이 ‘무속 정치’와 연관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미얀마 군정 지도자 탄 슈웨 장군은 주술에 사로잡혀 수도를 옮긴 적이 있었습니다. 탄 슈웨 장군은 2006년 미얀마 수도를 최대 도시인 양곤에서 정글 깊숙한 네피도로 옮겼는데, 전기와 수도시설도 설치되지 않았던 정글로 수도를 옮긴 이유는 그의 수석 점성술사가 운이 다하고 있어 수도를 그곳으로 옮기지 않으면 정권이 몰락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한 지도자가 점성술사의 조언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여 수도를 아무런 기반시설이 없는 정글로 옮기는 황당한 일까지 일어나는 것이, 주술 무속 정치의 극단적 사례입니다. 정치인들이 정책판단이나 의사결정을 순전히 ‘운세’에만 맡길 경우 그 나라는 어디로 향할지 걱정되는 대목입니다.


 

주술정치의 또 다른 문제점은 바로 확증편향에 빠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무속인 역술인 중에서는 오로지 ‘신점’이나 정밀한 사주분석에 의거해 ‘정확한’ 운세를 소신 있게 얘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상대가 원하는 ‘답’을 아무런 근거도 없이 사탕발림 식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필자가 만난 한 무속인은 지난 2000년 초반 ‘신점’을 너무도 정확하게 맞춰 상까지 받은 유명인이었습니다. 그는 상을 받은 뒤 많은 정치인들의 방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신점’을 잘 보기 때문에 관상이나 분위기까지 직접 보고 이야기를 해주는데 원칙은 ‘소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운세를 묻는 정치인이나 부인에게 심한 욕을 듣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자신은 분명 정치인의 낙선을 예견해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해주는데 듣는 사람은 도무지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모욕을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무속 정치에 빠지다 보면 이렇듯 특정 사안에 대해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선택적으로 믿고 주변의 조언이나 주장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는 경향이 생기게 됩니다. 정치인들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이 바로 맹목적인 독선입니다. 현재 윤석열 캠프 주변에서 나오는 무속 정치 논란은 지금까지 무속인과 역술인들이 ‘조언자’에 머물러왔지만 이번에는 그들이 직접 핵심 사안을 좌지우지하는 ‘반 정치인’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위험성 때문입니다. 합리적인 의사 결정이 이뤄지지 않고 몇몇 비선라인의 ‘도사님’들 조언을 윤 후보가 ‘확증편향’으로 믿고 밀어붙일 경우 그 후유증은 정치의 단계에서 풀지 못할 정도의 악성 종양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점을 믿으십니까? 그냥 재미삼아 볼 뿐 진지하게 믿는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인생에 ‘앞날’을 예견해 준다는 말만큼 솔깃한 일도 없습니다. 정치에서도 선거의 ‘당락’을 미리 알려준다는 말만큼 정치인들을 달뜨게 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일국의 대통령이 되려는 대선후보들도 무속의 세계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드나 봅니다. 그런데 최근의 무속 정치 논란에 대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신문의 ‘오늘의 운세’ 보는 독자도 주술과 무속에 빠진 사람인가”라고 반문하며 윤 후보 주변의 무속 정치 논란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오늘의 운세’ 수준의 무속과 역술이 청와대 영빈관을 옮기고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는 수준으로 발전한다면, 그래서 경호 공백으로 대통령의 유고사태까지 발생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점은 ‘믿거나 말거나’로 끝날 수 있지만, 선무당이 한 국가를 거덜 낼 수도 있다는 것은 7명의 개인 점성술사를 두었던 미얀마 군부지도자 탄 슈웨의 해괴한 정글 수도 이전이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2월 1일 팩트경제신문 '정치언박싱'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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