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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박노자 교수가 윤석열이었다면 본문

박노자 교수(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의 생각과 가치관을 존경합니다. 그의 글은 웬만한 한국 지식인이 쓴 것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적확한 단어 구사, 조어 능력, 논리적 구조 등을 보면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그의 글에는 '한국인'이 간과하고 있거나 외면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냉엄한 사회 부조리 현상이 잘 묘사돼 있습니다. 박 교수의 글에는 이를 객관적으로 잘 지적하는, 냉철한 시각이 담겨 있어 좋습니다. 그의 인터뷰를 보면 말솜씨 또한 뛰어납니다. 한국말을 잘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단어 하나하나를 정확하고 적확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보입니다. 평소 책과 언론 글을 많이 읽으면서 정밀하게 단어 선택을 하고, 발음도 정말 노력을 많이 한 흔적이 엿보입니다.
그가 이렇게 정확하게 한국말을 쓰는데, 그것에 담긴 내용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예리하고 풍부한 시각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지난해 그는 2020 총선에 담긴 의미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라본 우리 정치의 주류 폐해를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법조인출신이 기형적으로 많아 발생하는 한국 정치의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여론 수렴구조도 지적한 바 있습니다. 현재 진행중인 국민의힘 선대위 구성 내홍을 보노라면 박노자 교수의 법조인 출신 정치인 폐해 지적이 다시 떠오릅니다.
윤석열 대선후보와 그를 따르는 일단의 '측근그룹'에 검사 등의 법조인이 다수 포진해 있다는 것을 주목합니다. 윤 후보 본인이 검찰의 총수를 지낸 정통 골수 법조인입니다. 그리고 검사 출신 국회의원들 다수가 그의 측근을 자임하고 있습니다. 윤 후보가 당내 경선을 통과한 뒤 보수 유튜버들 사이에서는 '윤석열 영웅 만들기'가 한창입니다. 압권은 윤석열의 리더십에 대한 것입니다. '기다릴 줄 알고 때가 되면 폭풍과 같이 과감하게 결단하고 추진한다'는 것입니다. 네,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치 입문 이제 갓 6개월이 지난 사람에게 보수의 메시아 수준의 찬사를 보내는 것에 좀 거부감도 듭니다. 이렇게까지 보수진영의 정권교체 열망이 높았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이번 대선에서는 윤석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못한 인물이 나온다고 해도 보수는 이미 그들의 눈에 새카만 '정권교체' 색안경을 끼고 있기 때문에 누구든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윤석열 후보가 어떤 말실수를 하거나 심각한 국정운영 능력 미비점을 노출해도 그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입니다. 윤 후보는 지금 이준석의 '사보타주'를 그냥 외면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일종의 치킨게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후 사정은 이미 나온 대로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 대선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 있습니다. 경선 압도적 승리에 경도된 윤 후보는 중도층 빼고 가도 이긴다는 자만심에 빠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준석은 중도층을 배제하면 박빙의 승부에서 결국 패배할 것이라며 선대위 구성에서부터 중도층을 끌어안는 인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과정에서 법조인 출신 '검사' 윤석열의 리더십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가 검사로 재직할 때는 위에서 내리누르는 것을 사표를 써가며 저항했고, 총장이 되면서부터는 밑에서 올라오는 저항을 형님 리더십으로 감싸거나 찍어누르면서 비켜갔습니다. 정치는 모든 것을 얻는 게임이 아닙니다. 타협과 협상, 양보와 배려 없이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법조인들에게는 오로지 유죄와 무죄, 흑과 백만이 존재합니다. 그 절충지대인 회색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양단 간에 결정을 내리는 일에만 익숙해져 있다 보니, 이준석의 '태업'을 감싸안는 절충과 타협의 리더십을 곧 패배와 나약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끝까지 맞서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보다 훨씬 악성의 갈등 양상들이 폭발할 것입니다. '천하의 배신자'로 그를 전혀 받아들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 여당은 180석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오랜 야당 경험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투쟁'으로 집권세력에게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린' 이준석 한명을 단도리 하지 못해 선대위 전체가 누명을 쓰고 있고, 결국은 윤 후보가 대통령감이 되는지 안되는지 따져보는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이준석을 끌어안으면 패배(유죄)가 되고 이준석을 내치면 승리(무죄)가 되는 이분법의 덫에 윤석열 후보는 빠져 있습니다.
윤 후보가 검사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했다는 것은, 단순히 '일머리'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검사 시절 일머리가 있었기 때문에 정치도 잘 할 것이라는 천하태평의 낙관적 사고관을 가진 윤석열 후보에게서 나랏일 걱정과 갈등의 조정, 해소에 밤잠을 설치는 수많은 역대 군주들의 치열함은 없습니다. 정치인으로 업을 바꾸었다면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이 인내와 타협, 그리고 통찰력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나라는 일방통행으로 흐르고 사회는 혼란과 분열에 빠지게 됩니다. 사회 갈등의 최고 조정 위치에 있는 정치의 본령을 윤 후보가 한번쯤 되새겨 봤으면 합니다. 이준석과의 갈등은 그가 청와대에 입성한다면 맞닥뜨려야 할 상황과 비교하면 정말 사소한 문제일 수 있습니다. 권력을 내준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권력을 효율적으로 공유한다는 생각을 해야 이준석의 난제는 풀릴 것입니다.
박노자 교수 얘기를 하다가 한참 딴길로 새버렸네요. 박 교수는, 한국 정치는 법조인 출신 정치인들이 대거 포진해 있기 때문에 여론의 수렴이 일방적이고 가부간 흑백을 가리는 피아 구별의 정치가 돼 버리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다양성이 죽은 정치는 폭력입니다. 윤석열이라는 보수의 메시아가 나타났지만 그가 과연 '다양성'이라는 정치의제를 얼마나 신봉하고 추구하는지 의문스럽습니다. 중진 기득권세력으로 가득 채워진 '윤석열 권력집단'은 이준석같은 미꾸라지 한마리조차 끼어들기를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승자독식의 전통적 권력지배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시대 변화를 읽는 통찰력이 부족합니다. 윤석열 권력집단은 다양성을 통해 권력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디지털 시대의 리더십과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정치처럼 역동적이고 실험적인 장도 없을 것 같습니다. 한국정치가 지금은 퇴행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민도가 높고 시민사회의 상식과 성숙된 여론형성이 정치의 수준을 더 높여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 훌륭한 시민의식을 언론이 제대로 반영해주는 것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미천하지만 시민들에게 형성되는 상식과 생각의 흐름을 잘 포착해 글로 옮기고 싶습니다. 다양성을 인정해주는 정치, 출신보다 능력이 존중받는 정치, 무엇보다 깨어있는 시민들이 참여해 세상을 바꾸는 정치가 되도록 저도 노력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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