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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힘은 당원의 힘?

성기노피처링대표 2021. 11. 9.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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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이 끝났습니다. 보수진영은 이번 경선을 통해 ‘산업화 세력’의 저력을 다시 한번 보여줬습니다. 윤석열 후보는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홍준표 의원에게 10.26% 포인트 차이로 졌지만 책임당원 투표에서 22.97% 포인트 차이로 크게 이기면서 무난하게 당선됐습니다. 예상을 뒤엎는 당심의 압도에 윤석열 캠프도 놀란 모습입니다. ‘민심이 당심을 누를 것’이라고 예상한 결정적 ‘논거’였던 당원 증가율은 젊은 층이 높았지만 가입자 수만 놓고 보면 50대 이상의 비중이 더 우세했습니다. 전체 당원 숫자로 보면 50대 이상 비중이 65~70%에 이르기 때문에 이들 중장년층이 윤석열 당선의 1등 공신인 셈입니다. 

돌이켜 보면 보수진영은 지금까지 대선 승리를 위해 그 어떤 파격적 선택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도 따지고 보면 전통적인 여의도 정치인이 아닌 감사원장 출신의 ‘외부인사’였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기업인 출신으로 서울시장을 거쳐 대권에 오른 또 다른 ‘성공신화’였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정도가 국회의원과 야당 대표 등을 거쳐 대권에 오른 교과서적인 권력쟁취 패턴입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웬만해선 ‘외부인사’의 틈입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표적인 ‘여의도 정치인’이었고 문재인 대통령도 민정수석 등을 거쳐 또 다시 야당 대표 등을 맡아 대권수업을 확실히 받았습니다. 진보진영이 이처럼 외부인사 영입에 부정적인 것은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충실히 따르는 인물 위주로 대권주자를 뽑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번 경선에서 나타난 국민의힘 당원들의 ‘전략적 선택’은 무서울 정도로 탄력적이고 유연합니다. 최종 후보 선출이 다가올수록 당심이 민심을 따라가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민심이 당심을 따라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당심이 민심을 좇아갈 것’이라는 일부 전문가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전국 245개 당협위원회 가운데 160개 이상을 ‘조직화’한 결과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국민의힘 저변에서부터 분출하는 그 어떤 응집력이 있습니다. 국민의힘 당원들 핏속에는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지키는 일이라면 반드시 이기는 후보를 밀어 올려야 한다는 승리 DNA가 흐르고 있습니다. 허물이 있든 없든(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 사건에서 보듯이) 이길 수만 있다면 집권세력 검찰총장 출신도 거부하지 않는 승리 지상주의 DNA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승리 DNA는 국민의힘 당원들이 누리던 전통적인 정치질서에 대한 향수는 아닐까요? 국민의힘의 전통적인 당원들은 묘한 자존심 같은 것이 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존경하는 산업화 세대 주역으로서 ‘우리가’ 나라를 일으켜 세웠다는 것입니다. 긍정적 의미로 ‘주인의식’일 수도 있지만 그들만의 기득권 질서에 사로잡혀 시대의 변화를 거부하는 구태의 전형으로도 비쳐집니다. 이번에 홍준표 의원을 압도한 국민의힘 당원들의 ‘윤석열 선택’은 대선에서의 홍 의원 경쟁력을 부정적으로 본 것이 첫 번째 요인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좀 부족한 것 같습니다. 

국민의힘은 ‘민정당의 후예’라는 달갑지 않은 평가를 받지만 전통적인 당원들은 그들의 인내와 지지로 오늘날 대한민국이 존재한다는 남다른 자부심도 있습니다. 산업화 세력은 민주당에 의해 비정상으로 전락한 대한민국을 오로지 국민의힘이 바로 세울 수 있다며 경선에서 윤석열이라는 1등 주자를 ‘묻지마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이 ‘산업화 세력’은 ‘상상속의 공동체’에서만 머물며 그들만의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듭니다. 국민의힘 경선결과를 두고 일각에서는 ‘민심과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퇴행적인 선택’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후유증은 긴 꼬리를 남길 것으로 보입니다. 


먼저 세대단절론입니다. 국민의힘은 이번 경선으로 ‘노인의힘’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습니다. 5070 세대의 압도적인 지지로 윤석열 후보가 의외의 압승을 거두자 홍준표 의원을 지지하는 2030들은 탈당 러시를 이뤘습니다. 이에 대해 윤석열 캠프 측에서는 “아직까지 조직적으로 탈당하는 움직임은 없다”며 젊은 층의 탈당 분위기를 평가절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준석 대표는 이런 안일한 기류에 대해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려 “지난 주말 수도권에서만 1800명이 넘는 탈당이 있었고 탈당자 중 2030비율은 75%(1350명)가 넘는다”고 밝혔습니다. 경선 이후 젊은 층의 이탈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고 중대한 변곡점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국민의힘은 이준석 대표 체제가 들어서면서 가까스로 2030 공략에 대한 교두보를 마련했습니다. 젊은 층 사이에서 국민의힘 당원 가입 인증이 한때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닌, 당당한 소신으로 인정받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위선적인 민주당보다 낫다는 기류도 생겨났습니다. 홍준표 의원은 직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 제시 화법으로 젊은 층의 인기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홍 의원의 패배는 곧 젊은 층의 정치참여 욕구를 끊어놓는 배타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윤석열 후보가 경선과정에서 홍준표 의원이 구축한 2030 교두보를 어떻게 다시 쌓을지 관심을 모읍니다. 한번 떠난 민심은 웬만해선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도로한국당’의 극복도 쉽지 않습니다. 윤석열 후보는 경선 내내 철저하게 ‘집토끼 사수전략’을 택했습니다. 위기 때마다 문재인 정부의 실정과 이재명 후보의 대장동 사태를 직격하며 빠져 나갔습니다. 본인의 검찰 고발사주 의혹이나 부인 김건희 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장모의 사기 연루 의혹 등 경선 내내 터진 각종 의혹에 대해서도 정면대결로 돌파하며 당원들의 이탈과 동요를 막는 데 주력했습니다. 비전과 정책대안 능력을 유심히 보는 중도층은 이번 ‘예선’에서 아예 젖혀놓은 듯한 행보를 보였습니다. 집토끼를 잡기 위해 지역기득권 세력들인 당내 중진들을 포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들을 줄 세우는 장면을 공개해 대세론을 공고화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측근 중용 정치’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두 번씩이나 실패한 전력이 있습니다. 이회창 전 총재는 개혁성향이 강했음에도 한나라당 수구화의 장본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가 1997년 신한국당 대선 경선에서 승리한 결정적 배경에는 민정계의 단합과 지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 전 총재 주변에서는 측근 7인방 등의 이름이 거론되기도 했습니다. 이들에 대한 ‘보은심리’ 때문에 이 전 총재는 민정계를 중용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는 민심과의 소통을 막는 상징적인 ‘만리장성’이 됐습니다. 이들은 이 전 총재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믿고 지역에서 선거운동을 하기보다 이 전 총재 주변에 날마다 모여들어 눈도장 찍기에 바빴습니다. 

당시 당사는 이 전 총재에게 줄을 대려는 사람들의 ‘면담 요청’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윤석열 후보가 승리를 하고 난 뒤 그에게 눈도장을 찍으려는 의원들의 악수요청 세례와 ‘이회창 대통령’을 믿고 모여든 수많은 권력바라기들이 묘하게 오버랩 됩니다. 중장년층이 중심이 돼 윤석열 후보를 탄생시킨 국민의힘은 자칫 ‘제 2의 자민련’이 될 수도 있습니다. 대선후보 경선과 같은 큰 이벤트에서 프레이밍 된 정당의 이미지는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특히 그 하드웨어의 결정체인 대선후보가 젊은 층의 비호감 인물로 포지셔닝 되고 있다면 더욱 큰 문제입니다. 

윤석열 후보는 젊은 층의 이탈과 ‘도로한국당’의 우려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홍준표 의원을 향해 뒤늦게 ‘선배님’ 호칭을 남발하며 구애를 펼치고 있습니다. 후보가 된 이후 가장 역점을 두는 것도 청년층을 향한 매력 발산입니다. 하지만 이준석 대표나 홍준표 의원을 앞세워서 사진만 같이 찍는다고 떠난 젊은 층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윤 후보 몸에 체화된 청년층과의 맞춤코드가 있어야 합니다. 몇 달 속성과외로 그런 코드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당에서도 노력을 할 뿐이라는 말 외에 이렇다 할 대안이 나오지 않습니다. 국민의힘 경선은 당심과 민심이 50 대 50이었지만 민심 순도 100%의 진짜 대선 승부가 남아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윤석열 후보의 젊은 층과 중도층 ‘도장 깨기’를 유심히 봐야합니다. 작의적인 연출은 시청률 추락만 부를 것입니다.

 

 (11월 9일 팩트경제신문 '정치언박싱'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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