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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

성기노피처링대표 2021. 6. 18.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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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3일이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2주년이 됩니다. 그의 극단적 선택을 두고 보수정권의 정치적 핍박이라는 의견과 전직 대통령의 무책임한 행위라는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무현’이 한국 정치에 남긴 족적은 결코 미미하지 않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국 정치에 ‘친노’라는 정치적 팬덤을 처음으로 형성했습니다. 동시에 ‘사람’이라는 가치를 정치의 중심에 최초로 끌어 온 인물이기도 합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도 ‘노무현의 정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노무현의 정신은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언급됩니다. 노무현의 정신이 지금 이 시대에 던지는 화두는 과연 무엇일까요?

“12년 동안 한 번도 꿈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뵙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새벽, 노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처음으로 긴 시간 꿈을 꿨다. 꿈에서 깰 때 ‘사랑한다’고 하면서 안아드렸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지난 1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꿈꾸던 ‘사람사는 세상’을 주제로 한 전시회 ‘2021 사람사는 세상(展)’ 개막식에서 노 전 대통령을 꿈에서 만났다며 이같이 전했습니다. 필자 또한 정치부 기자 시절 노무현의 꿈을 꾸었습니다. 2019년 5월 23일은 토요일이었습니다. 금요일 기사 마감과 함께 ‘자동 음주의 날’을 마치고 토요일 아침 숙취 상태에서, 미몽간에 들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속보’는 충격 그 이상이었습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가족에 대한 검찰 수사로 뉴스의 중심에 서서 상당히 불안정한 상태에 처해 있었습니다. 

노 전 대통령 사망 다음날 꾸었던 필자의 꿈은 온통 잿빛이었습니다. 잿빛 얼굴을 한 노 전 대통령은 회색빛 콤비 재킷을 입고 승용차의 운전석에 앉아 어디론가 막 떠나려는 모습이었습니다. 죽음의 비보만큼이나 어두침침하고 음울한 장면이었습니다. 그렇게 노 전 대통령은 ‘친노’들에게는 억울한 죽음을, 보수에게는 일말의 양심과 후회의 죽음을 남긴 채 떠나갔습니다. 필자 또한 작성하던 기사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을 자주 ‘접했기’ 때문에 그의 죽음이 더 아프고 생생하게 다가왔던 기억이 납니다. 

유시민 전 이사장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회고하며 “누군가에 대한 원망이나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이나 분노, 이런 것을 시간이 많이 덜어가 준 듯하다. 그런데 그리움은 시간이 못 덜어가는 것이 아닐까, 아침에 깨서 그 생각을 잠시 했다”며 ‘노짱’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유 전 이사장이 느꼈던 그리움보다 일종의 죄책감과 함께 책임감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가 한국 정치에 남긴 숙제를 후대에서는 반드시 풀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보수정권 10년 동안 한국 정치에서 ‘사람’과 ‘가치’에 천착하는 정치는 실종됐습니다. 실용과 원칙이 난무하는 사이 여야의 정치는 타협과 협상의 중간지대가 사라지고 승자독식과 증오의 정치만이 남았습니다. 노무현의 정신을 계승했다고 자부하는 문재인 대통령도 집권 기간 내내 공정과 내로남불의 사이를 오가며 혼란을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에 보수세력은 문재인 정권의 위선적이고 일방적인 권력행태를 비판할 때 ‘노무현 정신’을 자주 소환하고는 합니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신은 과연 무엇일까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사람’입니다. 힘없고 약한 사람들에 대해 정치가 처음으로 인간적인 눈 맞춤을 시도했던 권력자가 바로 노무현이었습니다. 권력자라면 으레 국민위에 군림하는, 대접받는, 하늘같은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그 ‘대통령’에 대한 인식을 처음으로 ‘소탈한 사람’으로 내려오게 한 정치인이 노무현이었습니다. 그는 한국 정치에 ‘소탈한 권력자’라는 이율배반적인 조합을 가장 먼저 실현하려고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노무현은 ‘사람 사는 세상’을 외치며 정치의 중심에 권력자 대신 국민을 세우고자 애썼습니다. 

두 번째는 특권 없는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노무현은 권력자들의 불의와 특권의식에 분노했습니다. 유시민 전 이사장은 이것을 “그런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부당한 권위에 대한 분노. 부당한 불의에 대한 분노. 연민과 분노가 그분의 마음에 가장 압도적인 감정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정치인이면 으레 국민을 대표한다는 생각에 선민의식과 특권의식을 가지기 마련입니다. 정치와 국민의 삶이 쉽게 합일하지 못하는 것도 권력자(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익만을 좇기 때문입니다. 노무현은 그런 정치인들의 부당한 권위와 불의, 특권의식에 늘 분노하고 강자의 그늘에 가려진 약자에 대해 연민의 감정을 자주 표출했습니다. 문재인 정권에서 가장 큰 논란이 되고 있는 내로남불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 시대에 살아있다면 분명 권력자들의 위선과 특권의식을 준엄하게 꾸짖었을 것입니다. 

노무현의 정신은 ‘국민이 정치의 주체가 되는 세상’과 ‘군림하는 권력자에 대한 경계’가 그 핵심입니다. 보수야당에서도 그 노무현의 정신이 중요하고 그것을 오늘에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최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5.18 정신에 대해 언급했다가 진보여당으로부터 무차별 공격을 받은 ‘5.18 전유물 논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그 자체는 긍정적으로 봐야 되고, 반가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5·18 정신이란 게 여야가 없는 거고 진보 보수가 없는 거고 민주주의 역사 그 자체”라며 최근 일련의 여당 공격에 대해 ‘반성’하는 자세를 보였습니다. 

노무현 정신 또한 진보여당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권력을 가진 정치인들이라면 ‘오만의 함정’을 경계해야 합니다. 최근 우리 정치의 새로운 세력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2030 젊은 세대가 가장 목말라 하는 것은 공정한 경쟁입니다. 온갖 특혜와 특권으로 기득권을 유지해나가는 기성세대와 무능한 정치인들에 대해 그들은 분노합니다. 노무현도 국민 위에 오로지 군림하려 드는 정치인들에 분노했고 평범한 사람이 공평하고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갈구했습니다. 권력집단의 불공정과 내로남불이 시대적인 화두가 된 오늘날,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을 꿈꿨던 노무현의 정신은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5월 21일 여성경제신문 '정치언박싱'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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