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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전유물’ 논란

성기노피처링대표 2021. 5. 21.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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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 민주화운동은 전두환 군부독재 세력의 권력 찬탈 과정에서 발생한 불행한 한국 현대사의 한 단면입니다. 이 사건은 1979년 12·12 군사반란으로 잉태됐고 이후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전두환 등 신군부 쿠데타세력이 무고한 광주 시민들을 학살한 반인륜적 중대범죄입니다. 일부 보수층에서는 전두환의 주장을 답습하여 폭도들의 무장 폭동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대법원에서는 여러 차례 그 주장에 근거가 없음을 재확인했고 정당한 저항권 행사로서 역사적 정의가 내려진 상태입니다. 5.18은 불의에 항거한 3.1운동, 4.19 의거의 정신을 계승한 국민 저항운동의 상징입니다. 

5.18의 정신은 41년전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국민들의 삶속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군부독재의 불의에 항거하며 정의를 부르짖었고, 평등과 평화의 가치를 목숨 걸고 지켜냈기에 오늘날 한 걸음 더 나아간 민주주의를 향유하고 있습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역사 속에 올바르게 자리매김하는 데는 5.27 도청사수의 희생이 큰 밑거름이 됐습니다. 5월 27일 전남도청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항쟁파들은 목숨을 건 옥쇄작전을 펼쳤습니다. 당시 계엄군은 “밤 12시까지 무기를 반납하지 않으면 도청소탕 작전에 들어간다”는 최후통첩을 내렸습니다. 

26일 오후 도청에 있던 시민군은 항쟁파와 투쟁파로 나뉘어 격렬한 논쟁을 벌인 끝에 20여명이 빠져나갔지만 최후까지 항전하자는 결의를 다졌습니다. 전력 면에서 절대적으로 우세한 계엄군에게 살해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윤상원 대변인 등의 항쟁파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내던지며 불의에 저항했습니다. 이 항쟁파의 최후저항이 없었다면 5.18은 다르게 쓰여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5.18은 폭동이 아닌 진정한 민주 항쟁으로 기억될 수 있었습니다. 

5.18 민주화 운동이 광주에서 일어나기는 했지만, 그 이전의 서울의 봄과 부산마산 저항운동도 그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독재 타도’에 대한 열망이 없었다면 광주의 최후항거와 저항의 응집력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5.18의 정신은 광주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한국 시민저항운동의 상징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18일 오전 10시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진행된 ‘우리들의 오월’ 기념식에서 ‘국민통합’을 강조했습니다. 김 총리는 “5월 정신을 국민통합의 정신으로 계승해나가자”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김 총리의 메시지는 정치권의 5.18 ‘전유물’ 논쟁으로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습니다.


 

야권의 유력한 대권주자 윤석열 전 총장이 ‘5·18은 독재에 대한 저항이자 현재도 살아있는 역사’라는 메시지를 발표하자 여권에서 벌떼공격을 퍼붓고 있습니다. 정청래 의원은 “윤씨가 5·18에 대해 한마디 걸치는 것을 보니 안 어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다. 어쩐지 정치와 민주주의 이런 종목에는 안 어울리는 선수 같다. 차라리 UFC가 적성에 맞을 것 같은 이미지”라고 포문을 열었습니다. 이후 여권에서는 “독재에 맞서 싸우며 겪어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아는 체하며 함부로 말하는 것을 보니 헛웃음이 나온다”(신동근 의원), “윤석열 검사가 5·18 진실을 알리기 위해 어떤 노력과 고민을 했는지 매우 궁금하다”(김성주 의원)는 등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윤 전 총장이 5·18과 민주주의에 대해 기여한 바가 없다며 공격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여권의 비난 쇄도에 대해 국민의힘은 “5·18 광주가 지키고자 했던 민주주의와 공동체 정신은 특정 정당과 진영의 전유물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윤석열 전 총장이 서울대 재학시절 모의재판에서 ‘전두환 사형’ 선고를 내렸다는 인연을 들먹이며 5.18 메시지를 던진 것도 좀 뜬금없기는 합니다. 하지만 현재 대권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잠룡’의 메시지 정치라는 점에서 그의 정체성과 이념적 지향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습니다. 보수층 일각에서는 “메시지가 5.18의 현상적 해설에 불과하고 현 시대에서의 의미와 대안 제시 등이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권에서는 윤 전 총장의 메시지에 대해 ‘니가 감히 5.18을 언급할 자격이 되느냐’며 인신공격에 가까운 저주를 퍼붓고 있습니다. 이 또한 일각에서는 여권의 오만한 태도라고 지적합니다. ‘5.18의 정신을 국민통합으로 계승하자’며 김부겸 총리가 직접 호소했음에도 여권이 윤 전 총장의 5.18 메시지를 대하는 태도는 정략적인 대권주자 흠집내기 차원에 머물러 있습니다. 5.18은 불의에 항거하고 정의와 공정을 외쳤던 저항정신의 상징입니다. 이 5.18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살아 있습니다. 집권세력의 권력 남용과 위선, 불공정한 행위에 대해 단호하게 저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17일 국민의힘 성일종 정운천 의원은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41주년 5.18민중항쟁 추모제에 참석했습니다. 성 의원과 정 의원은 사단법인 5.18민주유공자유족회 초청으로 참석했습니다. 보수정당 국회의원이 5.18 유족회의 초청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안성례 전 오월어머니집 이사장은 “잘 왔다. 5·18을 잘 부탁한다. 유족의 한을 풀어주셔서 고맙고 이제 역사가 발전할 것이다”며 정운천 의원의 손을 감싸쥐기도 했답니다. 그동안 유족회측은 보수정당을 ‘전두환의 후예’들이라며 각종 공식행사에 초청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올해 유족회측은 처음으로 보수정당 의원들을 추모제에 공식 초청한 것입니다. 

오늘날의 5.18 기본정신인 국민통합을 실천한 쪽은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아닌 유가족, 바로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피같은 자식 형제 친척들이 희생되었지만 마음으로 ‘전두환의 후예’들을 용서하고 진정한 화해의 손을 먼저 내민 사람들은 바로 ‘민중’들이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인들에게 국민보다 반걸음만 앞서가라고 설파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정치는 여전히 국민들보다 몇 걸음이나 뒤쳐져 그들만의 권력놀음에 빠져 있습니다. 5월 27일 전남도청에서 목숨을 걸고 민주주의를 사수한 사람들도 바로 평범한 시민들이었습니다. 지금도, 역사의 수레바퀴는 앞에 나서서 잘난 척하는 정치인들이 아니라 민초들의 묵묵한 힘으로 굴러가고 있습니다. 

 

(5월 18일 여성경제신문 '정치언박싱'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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