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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엄마랑 집에 가자” 애타는 부모의 잠수교 메모, 아들은 결국...

성기노피처링대표 2021. 3. 25.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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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교에서 실종된 김성훈씨의 가족들이 남긴 메모. 

 

싸늘한 죽음으로 돌아온 한 젊은이의 뉴스가 사람들을 울리고 있다. 

 

“아들아, 사랑하는 내 아들. 지금 어디에 있니, 엄마랑 같이 집에 가자.” “안경끼고 키는 175, 남색잠바 착용...보신 분은 연락 부탁드립니다, 도와주세요.”

23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잠수교. 이런 내용이 적힌 노란색 메모지 100여장이 4~5m 간격으로 빼곡히 붙어있었다. 지나가던 시민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메모를 읽거나 사진을 찍었다. 이를 붙인건 지난 7일 잠수교 근처에서 실종된 김성훈(24)씨의 가족들이다. 지난 16일부터 19일까지 나흘간 매일같이 이 곳에 나와, 펜으로 직접 쓴 메모지가 혹시나 바람에 날아갈까 스카치테이프로 하나하나 붙였다.

가족의 애타는 호소에도 김씨는 24일 오전 11시 45분 동작대교 부근 한강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김씨의 시신은 김씨 가족들에게 인계됐다. 경찰 관계자는 “가족들이 따로 요청하지 않는 한 사망 이유와 경위 등에 대해선 조사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찰에 김씨 관련 신고가 들어온 것은 지난 12일 오후 1시10분. 잠수교를 지나던 시민이 ‘수상한 차가 며칠째 정차돼있다’며 김씨 소유의 흰색 그랜저 차량을 경찰에 신고했다. 차량은 이 곳에 5일간 세워져 있었다. 출동한 서울 반포지구대 경찰이 차 안을 보니, 조수석 뒷자리에 버너로 번개탄을 피운 흔적이 있었다. 주변 시트와 콘솔박스도 전부 불에 그을린 상태였다. 옆에는 빈 소주병 3개와 반쯤 마신 소주 페트병 1개가 뒹굴고 있었다. 개통된 휴대폰 2개, 미개통된 휴대폰 공기계 1개도 발견됐다.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듯한 흔적이지만 차량 내부는 물론 근처에도 사람은 없었다. 

 

차량 전·후방 블랙박스는 모두 전원선이 뽑힌 채로 최근 상황이 녹화돼 있지 않았다. 다만 휴대폰 한 대에 유언으로 보이는 1분 5초짜리 영상이 녹화돼 있었다. 차량에서 번개탄을 피우기 전으로 추정되는, 7일 오후 5시 48분에 찍은 영상이었다. 영상 속 김씨는 “엄마 아빠 미안해. 열심히 살아볼라 그랬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거 같아. 난 그냥 까미 옆에 갈게”라고 했다. 까미는 김씨 가족들이 15년간 키우다 죽은 강아지 이름이라고 한다. 경찰은 신고가 접수된 지난 12일부터 수색 작업을 벌였다. 

 

경찰은 추가 단서로 CC(폐쇄회로)TV 영상을 확보했다. 지난 7일 서울 잠수교의 한 교량에 달린 CCTV에 김씨의 모습이 찍힌 것이다. 검은색 마스크를 쓴 채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김씨가 차에서 내려 남쪽으로 걸어가다, 다시 돌아서서 차량으로 향하는 모습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가 잠수교에 차를 세우고, 유언 영상을 녹화하고, 차에서 내려 주변을 걷다 CCTV에 포착된 것이 모두 한 시간 안에 이뤄진 것”이라고 했다.

 

 


김씨의 고향은 전남 해남이다. 작년 9월부터 지난 1월까지 광주의 마트를 돌며 식품 납품일을 하는 성실한 청년이었다는게 가족들 얘기다. 지난달 초 “아직 젊으니 독립해서 살아보고 싶다”며 경기도 오산으로 떠났다. 이후 어머니 신모(53)씨와 ‘걱정하지 마 엄마’ ‘평택 생산라인에서 일하고 있어’ ‘나중에 한번 집 갈게’라는 메시지도 주고 받았다. 그런 김씨가 집을 떠난 지 한달여 만에 실종됐다는 소식에 가족들은 충격에 빠졌다.

가족들은 지난 한 달간 김씨의 행적을 추적했다. 실종 신고가 들어온 다음날인 지난 13일 경기 오산시 궐동에 있는 김씨의 원룸 자취방을 찾았다. 방에는 소주병, 맥주캔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집주인은 “3개월 단기 계약을 한 상태였다”고 했다. 지난 14일에는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인 보배드림에 ‘처남이 실종됐어요 잠수교 목격자를 찾습니다’란 글과 함께 김씨의 얼굴, 차량 사진도 올렸다.

가족이 확인한 김씨의 핸드폰에는 김씨 명의의 사업자등록증 사진과 동업자로 보이는 ‘김실장 형’이란 인물과의 대화가 남아 있었다. 둘은 사업자등록증 신청과 폐기, 신용카드 한도 상향 등의 대화를 주고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가 숨지기 전 마지막으로 통화한 사람도 그였다. 가족들은 김씨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뒤지다, 지난 2일 페이스북의 한 개인회생 관련 페이지에 ‘현재 은행권 4곳에 총 4700만원의 빚이 있는데 너무 힘들다. 어떻게 하면 되느냐’란 댓글을 남긴 것을 확인했다.

김씨 가족은 김씨가 시신으로 발견된 뒤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김씨의 누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좋으신 분들 성훈이 아직 못찾았나 걱정에 잠 못드실까 찾아주시다 몸이 상할까 겁나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며 “이번에 성훈이가 실종되고 난 후 저희 가족처럼 같이 찾아아주시고 걱정해 주시고 위로해주시며 또 저희가 혹여 흔들릴까 잘 잡아주시던 분들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썼다. 이어 김씨 누나는 “서울 가서 확인해보니 우리 성훈이 얼마나 오래 있었던건지 우리 막둥이 많이 상해있었어요”라며 “성훈이 데리고 해남으로 갑니다. 부모님께선 우리 성훈이 우리 아들 배 많이 고팠을꺼라고 맛있는거 많이 많이 차려줘야한다고... 어서가자 성훈아 어서 가자 하시며 계속 우십니다. 마음이 찢어집니다. 마음이 찢어지는게 이런걸까요”라고 썼다.

 

코로나19 사태로 청년층의 구직 행렬이 이어지고 있지만, 오히려 다니던 직장에서도 밀려나는 등 청년층은 최악의 실업률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 사업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려는 청년들도 늘어나고 있지만, 사회의 안정적인 지원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아 김씨처럼 은행 등에 개인 빚을 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부는 단발적인 현금 지원 등으로 생색만 낼 뿐 정작 어려움에 빠진 청년층의 고용과 자립 지원은 난망한 상황이다. 전도유망한 한 청년이 채무에 못 이겨 생을 마감한 씁쓸한 뉴스에 네티즌들도 애도와 함께 큰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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