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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환상인가 혁신인가-1]가상화폐 ‘떡락’에도···꿈 좇는 2030 ‘사장님’들

성기노피처링대표 2019. 2. 7.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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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수씨(38·가명)는 컴퓨터 수리업체 기사였다. 서울 여의도의 한 공공기관에서 하루에 수십대씩 컴퓨터를 수리했다. 소형 채굴장을 운영하던 친구가 1년 전 “일손이 모자란다”며 동업을 제안했다. 1비트코인 가격이 2500만원에 이르는 등 가상통화 시세가 최고조에 이를 때였다. 채굴공장은 그야말로 ‘노다지 밭’처럼 보였다. 두 동업자는 기존 사무실을 처분하고, 2018년 초 경기 부천시 춘의동과 도당동에 채굴공장을 차렸다. 두 곳에서 채굴기 520대가 돌아간다. 가상통화에 ‘채굴’이란 광산업 용어가 붙은 건, 광물처럼 캐낼 수 있는 양이 한정된 데다 ‘계산’이라는 ‘일’을 해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채굴기는 일반 개인용 컴퓨터에 그래픽카드 6~12개를 연결한 형태다. 그래픽카드의 핵심인 GPU(그래픽처리장치)는 단순 반복 연산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어 채굴용으로 사용된다.


조씨의 채굴공장에는 한때 최고의 그래픽카드였던 ‘GTX 1080 Ti’ 6장으로 만든 채굴기도 있다. 가상통화 열풍으로 서울 용산 전자상가 등에서 한때 동이 났던 그래픽카드다. 장당 120만~130만원에 팔렸다. 이 채굴기를 하루 종일 돌리면 이더리움 0.7~0.8개를 채굴할 수 있다. 이더리움 1개 가격이 100만~200만원이었던 2018년 1월에는 채굴기 1대를 일주일만 돌리면 채굴기 값을 뽑고도 수십만원을 남길 수 있었다.


■ ‘떡락’에도 꿈 좇는 ‘사장님’


조씨는 다른 사람 소유의 채굴기도 운용해 관리비용을 받는다. 채굴기 3분의 2가 타인 소유다. 조씨가 ‘사장님들’이라고 부르는 그들은 주로 서울 강서·양천구 등지에 거주하는 30대 남성들로, 1명이 수십대의 채굴기를 갖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집이나 회사에서 원격으로 부천 채굴공장에 있는 자신의 채굴기를 켜고 끈다. 가정에서 채굴하기에는 전기료가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일반용 고압 전기를 쓰는 두 채굴공장의 한 달 전기요금은 3500만원 수준으로, 채굴기 관리비용에 포함된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갔다. 1비트코인은 380만원, 1이더리움은 12만원(2월 초 기준)으로 떨어졌다. 채굴공장 입장에서는 수익분기점이 마지노선에 가까운 가격이다. 조씨는 “부천 일대 공장 2~3곳이 문을 닫았다”며 “우리는 박리다매로 유지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떡락’(가상통화 가격 폭락을 뜻하는 은어)에도 여전히 ‘꿈’을 좇는 이들은 있다. 이제 사장님들은 가상통화거래소에 상장되지 않은 신생 코인을 채굴한다. 조씨는 “현재 가격은 0원이지만, 상장만 되면 가격이 뛰는 코인”이라고 말했다. 조씨 공장에 있는 채굴기 절반가량이 이런 신생 코인을 채굴 중이다.


조씨는 직접 신생 코인을 캐면서 비용 대비 효율이 높은 코인을 찾는다. ‘어떤 코인을 채굴하냐’고 묻자 그는 “영업비밀”이라고 했다. 조씨는 “코인 채굴에 사람들이 몰릴수록 효율은 크게 떨어진다. 100개 채굴할 것을 50개만 채굴하게 되고 코인 가격도 낮아진다”면서 “다만 우리 채굴장을 이용하는 사장님들과는 정보를 공유한다. 같은 배를 탄 이들과 어려운 상황을 함께 헤쳐가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김정현씨(35·가명)도 그런 꿈을 좇았다. 김씨는 “인터넷이 지금처럼 쓰이기 전, 인터넷상에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프로토콜이 여러개 있었지만 결국 ‘HTTP(HyperText Transfer Protocol)’로 통일됐다. 이젠 다들 인터넷 주소를 적을 때 주소 앞에 ‘http’를 입력하지 않냐”며 “지금 가상통화가 딱 인터넷 초기와 같다. 수많은 가상통화가 나오고 있지만 이 중에 뭐가 ‘http’가 될지 모른다. 그 코인이 만들어내는 부가가치는 엄청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2018년 1월 가상통화 ‘리플’에 2500만원을 투자했다. 리플은 가상통화 시가총액 2위(2월 초 기준)로, 전 세계 은행이 실시간으로 자금을 송금하기 위해 사용하는 블록체인 프로토콜이다. 김씨는 “리플은 거래량이 많고 ‘호가벽’이 두꺼운 안정적인 가상통화라는 점이 끌렸다”고 했다. 1리플에 3800원인 시점에 투자했다. 하루도 안돼 4500원까지 뛰었다. 하지만 사나흘 후 3000원 밑으로 떨어지더니,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1000원 아래로 폭락했다. 급하게 뺀 투자금은 1000만원도 되지 않았다.


■ ‘펌핑 코인’을 찾아라


모두가 가상통화 투자에 실패한 건 아니었다. 곽동수씨(37·가명)는 김씨가 투자하기 두 달 전, 리플에 투자해 억대 수익을 냈다. 그는 원래 부동산 투자만 했다. 2015년 서울에 부동산 2채를 구입해 갭 투자로 수익을 냈다. 주식은 수익률이 낮아 뛰어들지 않았다. 대신 가상통화를 선택했다. 곽씨는 “2017년 11월 아내 몰래 1000만원을 리플에 투자했다. 1리플이 280원일 때 넣어서 꼭대기(4500원)를 찍고 조금 내려왔을 때 팔았다. 다른 코인 재투자로 20배 가까운 수익을 냈다”고 했다. 곽씨는 지금도 10개 코인에 5000만원어치를 투자한다. 그는 “‘거품’이 꺼지고 있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은데 진짜 거품은 아직 오지도 않았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가상통화를 인정하고 기관투자가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또 한번 큰 장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동료는 큰돈을 벌고, 자신은 평생 모은 돈을 잃는 상황은 이들을 ‘투기’로 이끈다. 리플 투자로 ‘쪽박’을 찬 김정현씨는 이번에는 전략을 정반대로 짰다. 단가가 낮고 호가벽이 얇은 신생 코인을 노렸다. 김씨는 “주로 텔레그램의 ‘리딩방’ ‘펌핑방’ 등에서 매수·매도를 지정해준다. 거래량 적은 코인들이 ‘펌핑’(코인 가격이 인위적으로 급등하는 현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락장이라고 해도 시세가 하루에 100~200%씩 오른다. 오로지 내 돈을 복구해야 한다고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광민씨(31·가명)도 한 소규모 거래소의 자체 코인 2000만원어치를 구입했다. 박씨는 “투자자들 사이에서 ‘펌핑의 명가’로 알려진 거래소가 만든 코인이다. 일부 소규모 거래소들은 거래 수수료 같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기보다는, 자체 코인을 만든 뒤 ‘자전매매’ 등으로 코인 가격을 높이는 방식으로 돈을 번다”고 말했다. 박씨와 김씨가 투자한 신생 코인은 ‘펌핑’되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1비트코인이 2500만원까지 가기 전을 생각해보세요. 100만원(2017년 1월)이 되자 ‘너무 올랐는데 더 오르겠어?’ 하다가, 500만원(2017년 9월)이 되자 ‘진작 할 걸. 이젠 늦은 것 같아’라고 생각했죠. 근데 그게 1000만원(2017년 11월 말)까지 갔어요. ‘이제 떨어지겠지’ 싶었는데 1500만원(2017년 12월 초)이 되고 주변에서 돈을 벌었다는 이들이 나타났죠. 가상통화 투자가 ‘부의 추월차선’ ‘계층이동의 마지막 사다리’라는 말이 돌았어요. 2000만원(2017년 12월 말)까지 가니까 다들 눈이 뒤집혔죠. 2500만원쯤 되면 (가상통화를) 믿게 돼요. 이젠 비트코인은 늦었으니 대신 거래소가 펌핑하는 신생 코인으로 대박을 노리자는 이들이 상당수죠.”


가상통화 거래는 금융거래로 인정되지 않다보니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 적용되지 않는다. 특정인이 서로 짜고 거래하면서 시세를 조작하는 ‘통정매매’와, 자신이 주문을 내고 자신이 사들이는 방식으로 시세를 올리는 ‘자전매매’는 주식시장에서는 금융당국에 의해 강하게 처벌받지만, 가상통화 시장에서는 용인되거나 처벌 수위가 낮다. 보안이 허술해 해킹을 당하는 거래소도 많다. 투자자의 출금 요청에 출금을 제대로 해주지 않아 고소를 당한 거래소도 있다.




■ ‘블록체인’에 주목하는 청년들


대학생 임호태씨(26)는 지난해 7월 ‘숭실대 블록체인 연구회’를 만들었다. 전공이 다른 9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임씨는 “다 같이 모여서 공부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빨리 배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같은 학회 홍종화씨(26)는 “블록체인이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자 암호기술을 발전시킨 ‘사이퍼펑크(Cypherpunk)’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고 했다. 그는 “누군가는 블록체인이 ‘인터넷 혁명’을 뛰어넘을 것이라며 모든 것을 바꿀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지금으로선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양측의 거래에 은행이나 카드사 같은 제3자가 개입할 수밖에 없는 현행 시스템의 ‘빈틈’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범죄에 사용된 가상통화 계정이 거래를 하려고 할 때 이를 즉시 발견하고 차단하는 법은 없을까.’ 지난달 19일 홍콩 가상통화거래소 ‘바이낸스’ 주최로 싱가포르에서 열린 블록체인 해커톤에서 한국의 ‘수호’ 팀은 줄곧 이 질문에 매달렸다. 프로그램 개발자들이 참여하는 해커톤은 특정 주제가 주어지면 실제 동작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겨루는 대회다. 미국, 네덜란드, 홍콩 등에서 온 20여개 팀은 모두 지역 예선을 통과했다. 지난달 12일 열린 서울 예선을 1등으로 통과한 수호는 고려대 대학원 박사과정 중인 박지수씨(28)와 고려대 교수들이 공동설립한 스타트업이다. 박씨는 “해외에는 범죄에 사용된 가상통화를 깨끗하게 세탁해주는 서비스가 많다. 가상통화를 여러 계좌로 분산시켰다가 다시 합치는 과정을 반복해 출처를 알기 어렵게 만든다. 우린 이 패턴을 정리하고, 비슷하게 행동하는 의심 계정들을 머신러닝(기계학습) 방식으로 찾아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1박2일 해커톤 기간에만 6만건의 의심 계정을 수집했다. 그의 팀은 최고기술상을 받았다.



“싱가포르나 독일의 베를린, 미국 샌프란시스코는 블록체인 생태계가 잘 갖춰졌어요. 반면 한국은 블록체인 기술 회사들이 아직 많지 않아요. 기술적으로 겹치는 회사들이 많아야 서로 경쟁도 하고 논의도 하고 시장도 만드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아요.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도 비슷해요. 이번 해커톤 주제였던 보안 문제도 저희처럼 다들 머신러닝으로만 구현하려고 하죠. 하지만 해외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이들이 많았어요.”


블록체인 관련 업체들은 가상통화 가격이 안정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한 외국계 기업 관계자는 “블록체인 시장이 커지려면 투기가 잠재워지는 과정은 필수다. 그동안 한국 기업과 함께 사업을 벌이려고 해도, 코인 얘기만 꺼내면 손사래부터 치는 업체들이 많았다”고 했다. 바이낸스 해커톤의 서울 예선을 주관한 송현석 엑시옴즈 대표는 “지금은 투기세력 때문에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의 기술 가치마저 묻혀버리는 상황”이라며 “투기를 잠재울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 가상통화 시세가 안정세에 이르면, 이후 코인의 기술 가치가 올라와서 시장을 건전하게 끌고 나가지 않겠냐”고 말했다.


성기노 피처링 대표(www.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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