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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 칼럼] 용혜인이 오르고 싶었던 ‘봉우리’

성기노피처링대표 2026. 9. 11.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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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홈페이지 캡처)

 

작고한 김민기(1951~2024)는 ‘봉우리’에서 성공을 물었다. 그 노랫말 중 ‘고갯마루에 먼저 오르더라도 뒤돌아서서 고함치거나 손을 흔들어 댈 필요는 없어’라는 부분이 있다. 지난 10일 국회 소통관의 한 젊은 정치인을 보면서 이 가사를 떠올렸다.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 그의 기습 기자회견 소식에 기자들은 ‘사퇴할 것’이라는 예상을 해보며 소통관으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그는 격앙된 목소리로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하나하나 반박했다.

요지는 분명했다.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것, 언론이 이성을 찾아야 한다는 것, 인사권자가 기대하는 바가 있어 자신을 지명했을 것이라는 것 등등. 반쯤 높은 톤에 당당하고 흐트러짐 없는 자세에서 쉽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완강함이 느껴졌다. 자신에게로 날아오는 화살을 모두 쳐내는 그의 ‘철벽 회견’에 국회의원 재선의 내공이 비치기도 했다.

솔직히 한편으로는 마음이 쓰였다. 거대 양당 틈에서 버텨온 소수정당의 설움이 얼마나 컸을까. 젊은 여성 정치인에게 유독 잔인하게 쏟아지는 의혹과 지적 앞에서 얼마나 화도 났을까. 거대 양당정치에 끼여 소수정당과 연합정치의 가치가 종잇조각이 될 것이라는 걱정도 함께 들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동안 참았던 분노를 한꺼번에 발산하려는 조급함과 대담함을 보면서 왠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담장 위에 불안하게 올라타 있는 한 젊은 정치인의 모습에서 안쓰러움보다는 그동안 성취해온 것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집착과 오기가 언뜻언뜻 보였다. 그것이 가뜩이나 불붙은 여론에 기름을 붓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용 후보자의 회견을 지켜보던 기자들 중에는 작은 헛웃음을 내뱉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많았다. 비례대표 재선, 이미 기득권의 한가운데 선 사람이 마치 피해자처럼 강변하는 데서 오는 이질감이자 공감하기 어려운 난감함 정도일 것이다.

나는 그 헛웃음도, 내 안의 동정심도 어느 한쪽이 틀렸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그런데, 용혜인은 어쨌든 성공한 정치인이다. 그와 함께 거리에서, 현장에서 어깨를 걸었던 ‘언더 활동가’들 대부분은 아마 지금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을 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활동을 접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여전히 남아 이를 악물고 고군분투할 것이다.

그들 사이에서 단 한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었고, 재선을 했고, 이제 장관 후보자가 되었다. 그리고 의원직과 장관직, 둘을 모두 지키겠다고 한다. 물론 그의 강변은 소수정당의 실험, 연합정치의 취지를 존중해 달라는 것이다. 그 말이 전부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포장지 안에서, 우리 사회가 강제한 성공의 문법에 갇힌 한 젊은 정치인의 위태로운 발걸음이 나를 주춤거리게 한다. 우리 사회의 성공 방정식은 너무도 뻔하다. 좋은 대학, 안정된 직장, 대기업의 높은 직급, 서울의 내 집, 남들보다 높은 연봉. 그리고 한번 올라선 자리에서는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 것.

정치라고 다르지 않다. 의원이 되면 재선을, 재선을 하면 장관을 바라보는 것이 당연한 경로처럼 여겨지고 그 사다리에서 스스로 내려오는 것은 곧 실패로 읽힌다. 용혜인도 어느새 사회가 정해준 그 성공의 틀 안에 들어선 것이다. 의원직도 장관직도 내려놓을 수 없다는 그의 집착은 어쩌면 욕심이라기보다 우리 사회가 강요해온 성공의 문법에 너무 깊이 길들여진 결과인지도 모른다.

김민기가 ‘봉우리’에서 노래한 것도 결국 이런 것이 아닐까. 사람들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높고 뾰족한 봉우리는 남들이 정해준 목표일 뿐이라는 것. 성공이 각자의 것이라면 그 모양도 각자 달라야 한다. 거리에 남은 활동가에게는 그 거리가, 작은 당을 묵묵히 지키는 이에게는 그 작은 당이 봉우리가 되어야 한다.

그들의 봉우리가 용혜인의 봉우리보다 낮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특히 약자와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며 정치를 시작한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어느 순간 자신이 사다리 아래가 아니라 꽤 높은 곳에 올라와 있다는 사실을 잊는 순간, 그가 말하는 약자와 소수의 정치 또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또 하나의 사다리일 뿐이다.

용혜인 후보자가 이쯤에서, 자신이 올랐고 오르려 하는 두 개의 봉우리에서 내려왔으면 한다. 처음 거리의 활동가였던 때로 돌아가 맨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견디는 모진 일상을 같은 높이에서 바라봤으면 한다. 그리고 내가 너무 높이 올라온 것은 아닌지, 꼭대기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나지막한 고개였던 것은 아닌지, 지금의 성취가 내 능력만이 아니라 주변의 도움과 운이 함께 한 결과는 아니었는지 잠시 되돌아봤으면 한다.

용혜인 후보자는 아직 젊고 앞으로 걸어갈 길도 멀다. 다음에 그가 향하는 곳은 더 높은 봉우리가 아니라 낮은 곳으로 흘러 모두와 만나는 바다였으면 좋겠다.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속의 좁게 난 길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그래 친구여 바로 여긴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김민기의 봉우리 중에서)

 

*이 글은 2026년 9월 11일자 투데이신문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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