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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성기노 칼럼] 장동혁과 한동훈의 싸움, 송시열-윤증의 재판인가 본문

한국 보수 정당사에서 전직 대표가 ‘가족 비위’ 문제로 당에서 제명되는 사례가 있었을까. 단언컨대 없다. 김영삼 전 대통령 제명은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이 야당 총재를 찍어 눌러 국회의원 배지를 떼버린 ‘정치 탄압’의 성격이었지 당 내부 시스템이 당수를 도려낸 케이스가 아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도 탄핵과 구속이라는 사법적 판단이 끝난 후 옥중에서 당적 정리(제명)가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한동훈 전 대표 제명 처리는 당내 주도권을 놓고 다투다가 벌어진 일종의 ‘숙청 참사’다.
‘장동혁 대표가 과했다’는 의견과 ‘한동훈 전 대표가 좁쌀 정치로 자기 인생을 망쳤다’는 평가가 오간다. 누가 더 잘못했느냐를 따지기 이전에 정당의 전.현직 대표가 한줌 자존심 때문에 당은 물론 보수 세력 전체를 형해화(形骸化)해 버린 것에 대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사회 곳곳의 난마처럼 얽힌 갈등을 풀어내는 것이야말로 정치인의 업이자 존재 이유다. 국민이 그들에게 막대한 세비와 보좌진, 온갖 특권을 부여하는 이유는 단 하나, 그 혜택만큼의 고도화된 정치력을 발휘해 사회적 비용을 줄여달라는 엄중한 위임이다.
그러나 작금의 장동혁과 한동훈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이 신성한 정치의 의무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쳤다. 거대 여당의 독주를 막아내고 민생을 돌봐야 할 본분은 뒷전인 채 오로지 사심과 탐욕에 눈이 멀어 자기 정치에만 골몰하고 있다. 또한 나이도 어린 데다 사과도 하지 않는, 심지어 검사(한동훈)가 판사(장동혁) 출신한테 개기는 게 얄미워 그냥 잘라버린 것은 갈등 해결의 정치 영역을 우습게 본 결과다.
둘 다 서울법대를 나온 엘리트들인데 정녕 ‘당게 사건’을 이런 식으로 풀 수밖에 없었을까. 역사는 비극으로, 때로는 희극으로 반복된다. 지금 야당에서 벌어지는 촌극을 보고 있자니 300년 전 조선 조정을 피로 물들였던 ‘회니시비’(懷尼是非)의 망령이 되살아난 듯하여 섬찟하다.
숙종 때 당대 최고의 엘리트이자 권력자였던 송시열과 그의 수제자 윤증이 갈라서게 된 계기는 나라의 정책이나 백성의 굶주림 따위가 아니었다. 어처구니없게도 ‘묘비명’ 때문이었다. 윤증은 스승에게 부친의 묘비명을 부탁했지만 송시열은 제자의 부친을 깎아내리는 듯한 뉘앙스로 글을 적어 보냈다.
“내 아버지를 모욕했다”는 제자의 분노와 “고칠 수 없다”는 스승의 아집. 고작 그 비석에 새겨질 글자 몇 마디 때문에 조선의 지배 세력은 그 유명한 노론과 소론으로 쪼개졌고 이후 100년 넘게 서로를 죽이고 유배 보내는 혈투의 당쟁(계파 갈등)을 이어갔다.
이런 당파 싸움은 국정을 공론의 장이 아니라 숙청의 무대로 전락시켜 조선의 외교·군사·민생 역량을 잠식하며 국가 쇠락의 구조를 고착화시켰다. 이후 왕조는 영·정조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그 누적된 균열을 끝내 극복하지 못한 채 결국 국권을 강탈당하는 치욕의 길로 접어들었다. 묘비명 몇 글자가 조선 왕조 500년을 무너뜨린 트리거가 된 것이다.
숙종 때나 2026년의 정치 풍경은 어쩌면 이리도 똑같은가. 한때 당 대표와 참모 관계였던 한동훈 전 대표와 장동혁 대표는 지금 서로의 목에 칼을 겨누고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다. 그 사단의 원인 역시 치열한 정책 경쟁이나 민생 대책이 아니었다. 국민의힘 게시판에 올라온 ‘당 대표 가족의 글’ 몇 줄이 화근이었다.
한쪽은 가족의 허물과 개인 자존심으로 타협의 길을 외면했고, 다른 한쪽은 어제의 주군을 제거하기 위해 ‘윤리위’라는 단두대에 세웠다. 윤증이 묘비의 문구를 놓고 자존심 싸움을 벌일 때 백성들은 기근과 역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고물가와 경제 양극화로 서민들의 삶은 팍팍하기 그지없고 보수세력은 비상계엄과 탄핵의 뻘 구덩이 속을 겨우 빠져나오려는 이때, 전.현직 대표는 국민의 삶과는 하등 상관없는 ‘게시판 글자 싸움’에 빠져 당을 쪼개버렸다.
그때나 지금이나 저 잘난 엘리트들에게 ‘백성’과 ‘국민’은 그저 자신들의 권력 투쟁을 위한 장기판의 졸(卒)에 불과한 것인가. 300년의 시차를 두고 망령처럼 되살아난 이 치졸한 정치인들의 자존심 싸움에 보수의 품격은 땅에 떨어졌고 국민에게 남은 것은 냉소뿐이다.
높은 의자에 앉았다고 모두 대표나 리더가 아니다. 진정한 권위는 완력이 아니라 민심을 두려워하는 겸허함에서 나온다. 아이들의 골목대장 놀이보다 못한 저들의 이전투구를 보고 있으면 정치라는 단어가 이토록 초라하고 허망하게 느껴진 적이 없다. 치기와 오기로 점철된 두 법 기술자의 시대착오적인 떼쓰기 정치를 도대체 언제까지 봐야 한단 말인가.
*이 글은 2026년 1월 30일자 투데이신문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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