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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 칼럼] 진보의 부동산 징크스

성기노피처링대표 2025. 10. 31.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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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송파구 아파트 단지.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APEC 한미정상회담 중 진행된 관세협상에서 ‘대박’을 쳤다. 관세협상 후 나온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소폭 올랐다는 것은 민심이 미국이라는 골리앗을 상대로 나름 한국 협상팀과 이재명 대통령이 선전한 것에 반응했다는 시그널로 읽힌다. 긍정 평가 답변도 ‘외교’ 분야가 가장 많았다.

 

그런데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항목 중 부정 평가 답변에서는 ‘외교’와 함께 ‘부동산 정책’이 가장 많이 나왔다. 두 항목은 막상막하의 공동수위를 차지하고 있다. 주로 보수층에서 이 대통령의 이념과 국가관에 대해 미심쩍은 불만을 ‘외교’ 분야로 투사한다고 하더라도 그와 함께 부동산 정책이 부정 평가의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이재명 정부가 반드시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역대 정권의 부침을 살펴보면 그 핵심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부동산 민심’이었다. 국정운영 지지율이야 등락이 있지만 이 부동산 민심만큼은 한번 나빠지면 좀처럼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경제 논리가 아닌 차별과 기회의 박탈이라는 ‘불평등의 담론’이 부동산 민심을 지배하는 순간, 정권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사실 진보진영은 참 묘한 징크스가 있는 것 같다. 이상하게도 부동산 문제에 관한 한 맥을 추지 못하는 것이다. 오히려 안보 분야는 보수 정권이 전공인 것 같지만 굵직한 외교안보통상 이슈는 김대중(남북정상회담) 노무현(한미FTA)의 진보 정권 때 대부분 이뤄졌다.

 

문재인 정권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지만, 한미 미사일지침에 묶여 있던 사거리 제한을 완전히 해제함으로써 한국이 ‘미사일 주권’을 회복했다는 것에 더 주목하는 사람도 있다. 평화 담론 중심의 진보 정권이 오히려 안보 주권을 실질적으로 강화한 사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무현-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정책은 그들의 치적에 비하면 상당히 초라하다. 노무현 정부 때 부동산 폭등은 대표적인 민심 이반 요인이었다. 분양권 전매제한, 투기지역 지정 등 다양한 규제가 단행됐으나 오히려 ‘시장불신’과 투기수요만 자극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진보정권=집값폭등’이라는 정치적 낙인은 이때 고착됐다.​

 

문재인 정부도 노무현 정권의 전철을 밟았다. 문재인 정부에서 서울 아파트값은 5년 동안 거의 두 배(93% 상승)로 올랐다. 비록 강남·송파 등의 강남 라인이 가격 폭등을 주도하긴 했지만 문재인 정부 때부터 부동산 가격 폭등과 정책 관리의 불균형이 만성화되는 결정적 전환점이 된 것은 사실이다.

 

이렇듯 진보정권에서는 부동산이 폭등해 그것이 민심의 이탈 궤도가 되는 징크스가 계속해서 발생했다. 그런데 이런 징크스가 이재명 정부에서도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후 4개월 만에 3번째 고강도 부동산 정책을 발표했지만 여전히 집값이 잡힐 것이라는 확신은 나오지 않는다.

 

한국에서 부동산은 경제 현상이 아니라 정치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내가 집이 없다’는 단순한 명제는 ‘내가 부동산 정책으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묘한 차별의식을 강화한다. ‘내가 집이 없는 이유’는 나의 노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 기득권들이 나의 이익과 권리를 빼앗아갔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이는 부동산을 경제가 아니라 정치의 영역으로 내모는 결정적 배경이 된다.

 

진보진영의 부동산 징크스는 바로 이 부동산에 대한 한국인들의 양가적(투자와 거주의 개념이 혼재된)이고 모순적인 감정을 제대로 다독여주지 못한다는 데 있다. 진보진영은 언제나 ‘집은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주거의 권리’라고 주장해왔다. 모범적인 구호였다.

 

그러나 현실의 부동산 시장은 진보의 이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냉정하다. ‘평등’이라는 가치가 ‘시장접근’을 제약하고 정책이 시장의 파동을 제어하지 못할 때 그 피해는 늘 서민에게 돌아갔다. 이념의 언어로는 ‘투기 억제’였지만 체감의 언어로는 ‘기회 박탈’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공급을 억제하고 보유세를 강화하면서 정작 중간층과 무주택층은 시장에서 더 멀어졌다. 평등을 위한 정책이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반복됐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수억 빚내 집 사는 세태가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을 때 공감보다 분노가 일었던 것도 바로 이 괴리 때문이다.

 

그동안 이재명 정부는 내란 단죄와 사법개혁 등 굵직한 현안에 매달려왔다. 그러다 보니 부동산은 자연스레 후순위로 밀려나 있었던 것 같다. 이 과정에서 부동산 민심을 세심하게 헤아리지 못한 데서 오는 국민들의 박탈감과 거부정서를 다독여줄 여력은 없었는가 싶다. 아니면, 이 대통령이 아무리 ‘행정의 달인’이지만 부동산만큼은 잡지 못하는 ‘불가침의 성역’임을 자인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기도 하다.

 

과연 이재명 대통령은 노무현-문재인도 피해가지 못한 부동산 징크스를 깨뜨릴 수 있을까. 외교안보에서 어렵게 쌓은 점수가 부동산 앞에만 서면 너무도 쉽게 깎이는 현실이 안타까워 부동산 넋두리를 읊어보았다.

 

*이 글은 투데이신문 2025년 10월 31일자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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