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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중’ 이낙연, 독해져서 돌아왔다

성기노피처링대표 2023. 6. 27.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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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1년간의 미국 유학 생활을 마친 뒤 6월 2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지지자들을 가리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6월 24일 귀국했습니다. 그런데 등장부터 심상치가 않았습니다. 이 전 대표는 평소 신중한 성격에 웬만해선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스타일입니다. 총리 시절 KTX 열차를 주로 이용했는데 휴대폰 통화를 할 때는 항상 객실 바깥 보조 의자를 이용할 정도로 주변에 ‘민폐’ 주는 걸 극도로 꺼리는 ‘엄중낙연’입니다. 

하지만 이 전 대표가 귀국하는 날, 그를 환영하는 지지자 1000여명으로 공항 대합실은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버스 10여 대를 통해 ‘조직적으로’ 지지자들을 실어 날랐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입니다. 설훈 이개호 김철민 박영순 윤영찬 이병훈 의원 등 ‘친낙계’(친 이낙연) 의원들도 대거 이 전 대표를 맞이하러 공항에 나왔습니다.

주변에서는 “마치 대선 출정식 같았다”는 반응들이 많았습니다. 이 전 대표 측은 지지자들을 싹싹 끌어모아 뭔가 세 과시를 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아직도 한국 정치는 ‘청중 동원’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는 씁쓸한 구태정치처럼 비쳐졌다”는 지적도 나왔지만 이낙연의 귀국은 정치권에 강렬한 ‘인생 포토’ 한 장을 남겼습니다. 자신의 귀국에 ‘사심 한 덩어리’를 얹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 전 대표는 ‘이낙연만 오면 뭔가 달라지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을 등에 업고 공항에서부터 작심한 듯 ‘세몰이 정치’의 구태를 보여주었습니다. 귀국 일성도 짜릿해 측근들도 놀랐다고 합니다. “저의 못다 한 책임을 다하겠습니다”며 그 누구도 부여하지 않은 ‘정치적 책임’을 직접 꺼내 들었습니다. 지지자들의 대대적인 환호와 스스로 부여한 ‘구세주 정치’의 미장센으로 이낙연은 자신의 귀국을 극적으로 부각하려 했습니다. 

이날 맨 청록색 넥타이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계에 복귀하며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의 상징색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선 패배 뒤 영국 ‘도피’를 간 뒤 극적으로 정계로 돌아와 대통령까지 오른 신화를 재현할 마음으로 청록색 넥타이를 맸을 것입니다. 앞으로 ‘이낙연이 독해져서 돌아왔다’는 메시지를 계속 던지면서 ‘이재명 대체재’로서의 존재감을 더욱 부각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낙연 전 대표가 이처럼 자신의 ‘귀국’을 동네방네 떠들어댄 건 현재의 혼란스러운 민주당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국민이 준 소중한 180석으로 곳간을 가득 채웠지만 그동안 야금야금 알곡만 축내다가 어느덧 167석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무엇보다 민주당이 수권정당으로서 그 실력을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의 실정에 대한 반사이익만 주워 먹는 ‘민폐 정당’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뼈아픕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가 1년간의 미국 유학 생활을 마친 뒤 귀국한 6월 2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 마중 나온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렇듯 민주당이 쇠락한 원인에 이 전 대표도 총리와 당 대표를 지낸 이력으로 직접적인 책임이 있지만 지난 대선 패배로 정국이 리셋되면서 그 책임의 ‘독박’은 오롯이 이재명 대표의 몫이 됐습니다. 대선후보 경선에서 ‘0선’의 이재명에게 패배한 것도 억울한데 당을 맡겨 놓고 미국에 갔더니 당이 완전 엉망이 됐다는 ‘뒤틀린 노파심’의 표현이 공항에서의 ‘군중 정치’로 나타난 것 같기도 합니다. 

현재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와 일부 의원들의 ‘사법 리스크’로 만성적인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수능 킬러문항 배제 논란 등으로 윤석열 정권이 죽을 쑤고 있음에도 당의 지지율은 오히려 국민의힘에 뒤처지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낙연 전 대표는 “지금 대한민국은 국민이 나라를 걱정하는 지경이 됐다”며 윤 대통령 비판에 집중할 뜻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 전 대표의 ‘바람’과는 달리 민주당 넘버 2 대권주자의 복귀는 그 자체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죽기 살기 식 계파 권력투쟁이 시작된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이 전 대표가 귀국에서부터 요란하게 등장한 것은, 앞으로 이재명 대표가 당을 더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갈 경우 더 이상 방관하지 않고 들어내겠다는 노골적인 ‘선전포고’입니다. 설훈 의원이 이 전 대표의 향후 행보에 대해 “당이 위기에 처하면 몸을 던져 당을 구해내겠다는 취지라고 볼 수도 있다”고 말한 대목은 ‘더 이상 당의 혼란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표현입니다. 

민주당 내부에서 이낙연 전 대표의 귀국을 두고 ‘흔들리는 이재명 대표 체제를 도와줄 천군만마가 왔다’는 분위기가 아니라 ‘여차하면 끌어낼 것’이라는 데 더 방점을 두는 의견이 많습니다. 결국 이낙연의 출현으로 이재명 체제의 불안정성이 더 커질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이 전 대표의 정계 복귀는 내년 총선에서 ‘이낙연계’를 살리기 위해 호시탐탐 당권이나 ‘꼭두각시 비대위’ 체제를 노리는 전략으로 귀결될 것입니다.  

하지만 국민들이 진정으로 이낙연 전 대표에게 바라는 ‘정치적 역할’은 무엇일까요. 야당의 존재가치를 증명하지 못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찬 ‘똥볼’만 받아먹으려 한다는 비판에서부터 벗어나는 게 민주당의 최대 숙제입니다. 국민들은 민주당에 편향된 이념과 도그마적인 가치에 얽매이지 않고 국가의 이익을 위해 헌신한다는 ‘정치적 역량과 실력’을 원합니다. 

국민들의 이런 바람에 이낙연이라는 인물은 과연 얼마나 부합할까요. 오매불망 그의 귀국을 바랐던 ‘친낙계’들의 총선 금배지 욕망을 해소해 주기 위해 귀국했다는 인상을 주는 한 이낙연의 정치적 효용성은 없습니다. 

 

1993년 7월4일, 김대중과 이희호는 대선 패배 직후 충격의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쫓기듯이 영국으로 떠났다가 이날 귀국했다. 김대중은 일정을 앞당겨 6개월 만에 전격 귀국, 정국에 파란을 몰고오게 된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김대중 영국 귀국 후 만 30년 만에 인천공항에서 이와 똑같은 모습으로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며 정치복귀의 결의를 다졌다. 이낙연의 '정계복귀'는 과연 성공할까. 사진은 김포공항에 마중 나온 이기택(맨 오른쪽) 민주당 총재 등 지지자들의 환호에 김대중이 두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


이낙연의 정치적 재기는 이재명의 부활과 직결합니다. 이 전 대표가 자신을 한없이 희생하며 이재명 대표 체제의 안착과 야당의 수권정당 능력 발현의 최대 도우미로 역할을 할 때만 그의 정계 복귀 명분은 유효합니다. 이재명 대표가 낙마하는 틈을 이용해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욕심으로 덤벼들 경우 이낙연의 ‘차기’는 없습니다. 민주당이 더 나락으로 떨어져 당 해체 수준으로 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낙연의 정치를 두고 그 지향점과 가치, 실체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대선후보 경선에서 그가 비주류였던 이재명 대표에게 패한 결정적 이유도 그 정치적 지향점이 ‘친문재인’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총리 시절 보여준 ‘사이다 답변’은 이낙연 정치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이었을 뿐 주제가는 아닙니다. 

오히려 총리와 당 대표를 거치며 민주당을 탄탄하고 실력 있는 집권당으로 변모시키는 데 하나의 밀알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낙연 전 대표가 문재인 정권의 유력한 대권주자로서 이룬 정치적 성과와 실적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이낙연 전 대표는 ‘반이재명’이라는 반사이익 프레임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습니다. 공허한 말장난이 아닌 당을 탄탄한 수권정당으로 만드는 데 희생적인 역할을 한다는 믿음을 줄 때 그에게도 정치적 공간이 열릴 것입니다. 주변 참모들의 부추김으로 조급하게 ‘이재명 대타’의 권력욕심을 드러낼 경우 영원히 그에게 기회는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낙연 전 대표는 사심 없이 민주당의 미래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자기희생과 진심을 보여줘야 천금 같은 기회가 올 것입니다. 하지만 인천공항에 ‘동원된’ 1000여명 지지자들의 ‘오버액션’과 평소와 달리 요란한 의전을 즐기며 권력 탐욕의 발톱을 은근히 드러낸 이낙연의 귀국 한 장면은 민주당의 암울한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합니다. 

 

(여성경제신문 6월 27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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