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에 뒷덜미 잡히는 김기현 “비상, 비상”

국민의힘 당 대표에 도전하는 김기현 의원이 3일 오후 대전 동구 폴리텍대학에서 열린 국민의힘 대전동구당원협의회 당원 연수에 참석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당권 경쟁에 지각변동이 몰려오고 있다. 김기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동안 느긋하게 1위 자리를 향유했다. 하지만 나경원 유승민 전 의원이 불출마하면서 갈 곳을 잃은 ‘비윤계’ 지지 세력이 안철수 의원에게로 몰리는 이상 현상이 발생해 당권 경쟁 구도 자체도 리셋 되는 형국이다. 지난 2일에는 안철수 의원이 여권 지지층을 대상으로 한 다자 및 양자 대결 모두에서 경쟁자인 김기현 의원을 추월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까지 나와 김 의원측은 비상이 걸렸다.

여론조사 업체 리얼미터가 미디어트리뷴 의뢰로 지난달 31일과 지난 1일 전국 성인 남녀 1005명(국민의힘 지지층 42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안철수 의원은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43.3%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직전 조사(1월 25∼26일)보다 무려 9.4%포인트 수직 상승한 수치다. 김기현 의원은 직전 조사(40.0%)보다 4.0%포인트 하락한 36.0% 지지율을 기록하며 안철수 의원에게 오차범위(±4.7%p) 내 추월을 허용했다.

김기현 의원과 안철수 의원 간 가상 양자 대결에서도 안 의원을 선택한 응답이 직전 조사 대비 8.1%포인트 증가한 48.9%, 김기현 의원을 선택한 응답은 3.6%포인트 감소한 44.4%로 나타났다. 리얼미터측은 이에 대해 “안철수 의원은 다자구도에서 직전 조사의 유승민 전 의원 지지층을 오롯이 흡수한 것으로 보인다. 김기현 의원은 지지율 ‘매직 넘버’ 50%선을 앞두고 가수 남진 등과의 사진 논란에 지지율과 가상 결선대결에서 조정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당 대표 후보가 3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스타벅스에서 청년들과의 차담회에 앞서 카페에 방문한 어린이와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당선 가능성 질문에는 여전히 김 의원(44.4%)이 안 의원(41.0%)을 앞서는 분위기다. 김 의원이 이 결과만으로는 안심을 할 수도 있지만 두 의원 간 응답률 격차(3.4%포인트)는 직전 조사(19.8%포인트)보다 대폭 좁혀졌다는 점이 뼈아프다(기타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현재 시점에서 각종 여론조사 지표를 보면 안 의원이 무서운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김 의원은 그동안의 ‘친윤계’ 강력 지지에 따른 안주 모드가 이어지면서 좀처럼 반전의 국면을 잡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런 ‘안철수 우세 국면’이 지속될 경우 김 의원이 경선에 들어가더라도 맥없이 패배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김기현 의원이 그동안 1위를 고수하며 판을 이끈 배경은 자신의 ‘개인기’라기보다 ‘친윤계’가 강력한 바람잡이로 나섰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특히 이렇다 할 대중적 인지도도 없고 개인적 매력 자산도 별로 없는 김 의원이 ‘독자적인 힘’으로 상승 반전의 계기를 만들기도 쉽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더구나 김 의원이 차기 대권에 도전하지 않겠다며 스스로 자기한계의 선을 그어버렸기 때문에 당원들이 더욱 그를 지지할 명분이 약해지고 있다. 오로지 ‘윤석열 대통령의 성공’만 보고 김 의원을 지지해야 하는데 지난해부터 대거 유입된 ‘젊은 당원’들의 당내 개혁과 쇄신에 대한 욕구도 높아 김 의원이 그 공간을 제대로 메워주지 못하는 한계도 노정하고 있다. 김기현 개인의 매력도, 미래의 희망이나 가능성도 잘 보이지 않는, 있으나 마나 한 후보로 이미지가 점차 ‘화석화’ 되면서 ‘차라리 안철수’ 정서가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친윤계’는 비상이 걸렸다. 당장 윤 대통령을 ‘결사옹위’해야 하는 대통령실이 먼저 움직이고 있다. 대통령실은 최근 ‘난데없이’ 안철수 캠프 김영우 선거대책위원장을 국민통합위원직에서 해촉해버렸다. 윤 대통령도 즉시 이를 재가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중립성을 유지해야 하는 자리인데 특정 후보의 선대본부장을 맡고 있다. 직을 계속 유지하는 게 적합하지 않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14일 서울 삼청동에서 유럽연합(EU) 특사단의 결과보고를 받기 위해 EU 특사단장인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을 비롯한 특사단을 만나 이동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김기현 의원실 제공)

해당기관인 국민통합위도 언론 공지를 통해 “최근 수차례 방송에 출연, 국민통합위원 자격을 명시하며 ‘윤심’ 소재 관련 발언 등을 한 것은 매우 부적절했다”고 대통령실의 결정을 거들었다.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실이 갑자기 김 위원장 해촉을 결정한 것은 ‘윤심’을 확실히 강조하기 위해 무리하게 ‘제 2의 나경원 해고’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다급해진 대통령실이 경선에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비윤계’의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들도 ‘집단 린치’ 대열에 뛰어들고 있다. 그동안 전당대회에 말을 아꼈던 대통령실 일부 참모들은 “윤 대통령의 뜻은 안 의원이 아니다”라고 언론에 대놓고 말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여전히 중립적 입장”이라면서도 “안 의원 본인이 ‘윤심팔이’를 하려는 것 같은데, 대통령이 안 의원을 지원한다는 것은 분명 사실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는 당무에 ‘불가근불가원의 원칙’을 견지해온 대통령실이 “‘윤심’은 안 의원이 아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대통령실이 정치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윤심 규정’에 나선 것은 그만큼 현재의 당권 경쟁 판세가 김기현 의원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자인한 것이다.

대통령실이 ‘윤심 알리기’에 적극 나서자 그동안 ‘집단 린치’ 논란으로 눈치를 보던 ‘윤핵관’들도 다시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윤핵관’ 이철규 의원은 자신의 SNS에 “정권교체 후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고 있는 동지들을 향해 윤핵관이니 윤심팔이니 비난하면서 대통령의 인사와 국정 수행에 태클을 걸던 분”이라며 “스스로 친윤이니 진윤이니 하면서 가짜 윤심팔이 하는 모습이 볼썽사납다”고 안철수 의원을 직격했다.

‘신 윤핵관’ 박수영 의원도 “(윤 대통령이) 개각할 때 안 의원에게 장관 또는 총리를 부탁했는데 거절했다. 아주 서운해하셨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추정해보면 장관이 되면 안랩의 주식을 전부 백지신탁을 해야 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그 연장선상에서 (안 의원과) 한 번도 밥도 차도 안 마셨다고 보고 있다”며 노골적인 인신공격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대통령실과 당의 ‘윤핵관’들이 총동원돼 ‘안철수 때리기’에 나서자 당 안팎에서는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대통령실과 ‘윤핵관’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어 노골적인 ‘편 들기’에 나서는 현상은 분명 비정상적이다. 윤 대통령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통령을 욕보이는 ‘팀킬 유발자’가 될 수도 있다. 김기현 의원의 지지율이 순식간에 안철수 의원에 역전당한 까닭도 ‘윤핵관’들과 일부 대통령실 참모들의 비이성적이고 맹목적인 충성경쟁이 국민의힘 지지층에까지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인 2021년 9월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가수 이승철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를 불렀다. 그는 이 노래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2009년 대구지검에 있을 때,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 그때 내가 이 노래를 많이 불렀다”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좋아했던’ 노 전 대통령이 살아있다면 그에게 이런 조언을 했을 법하다.

“겸손한 권력이 강한 권력을 만든다.”(2001년 12월 10일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선거 출마 노무현의 연설 중에서)

 

(파이낸셜투데이 2월 3일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