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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부장들' 원작자 "김재규 지시, 김형욱 양계장 암살설 진실은..."

성기노피처링대표 2020. 1. 17.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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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을 앞두고 또 한 편의 한국 영화가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바로 <남산의 부장들>이다. 10.26 박정희 암살 사건이 벌어지기까지 40일간의 기록을 담고 있다. 이 영화는 1990년에 발간된 베스트셀러 '남산의 부장들'이라는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10.26 사건은 워낙 많이 알려진 스토리이기 때문에 누구나 이 사건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을 것이다.

 

국민들의 의식속에 오랫동안 각인된 역사적 사건을 영화로 만든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저마다 10.26 사건에 대한 정보가 있기 때문에 영화가 자칫 리얼리티를 잃게될 경우 보는 사람들도 몰입도가 떨어지고 '억지로 만든 이야기'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오래 전 10.26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이 그랬다. 긴장감이 극에 달하는 그 살인의 현장에서 배우들은 시종일관 농담과 실없는 연기를 해 극의 리얼리티를 떨어뜨렸고 관객들도 어색한 장면에 불편함을 느껴야 했다.

 

물론 영화적 환타지 속성을 살리려 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때 그 사람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 유가족들이 내용에 대해 소송을 하는 등 한동안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이번에 상영되는 '남산의 부장들'은 한 기자의 취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을 영화화했다는 점에서 사실적이고 고증이 된 장면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한다. 영화적 리얼리티가 80%에 달한다는 관계자의 언급도 있다.

 

그만큼 이번에 나오는 '남산의 부장들'을 기대하는 관객들도 많은 것 같다. '남산이 부장들'을 대할 때, 우발적이냐 구국의결단이냐는 단순 이분법이 아니라 한 충신이 임금을 시해하고 그 뒤 주군을 잃고 넋놓고 방황하고 어쩔 줄 모르는 한 인간의 우둔한 면모에도 초점을 맞추면서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김현정 앵커가 <남산의 부장들> 우민호 감독과 원작자 김충식 가천대 교수와 대담을 한 내용이 공개돼 소개해본다. 영화를 이해하고 현재의 관점에서 10.26 사건을 바라보는 데 이 두 사람의 증언이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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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산의 부장들' 배우 곽도원(김형욱 전 중앙부장역), 이병헌(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역), 이희준(차지철 경호실장역), 우민호 감독(왼쪽부터)이 12일 오전 서울 강남구 CGV압구정에서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남산의 부장들'은 중앙정보부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막대한 권력을 휘두른 당시 동아일보 김충식 기자가 2년 2개월간 연재한 '남산의 부장들'을 원작으로 한다.


◆ 우민호> 안녕하세요. <남산의 부장들> 감독 우민호입니다. 반갑습니다.

◇ 김현정> 그리고 이 <남산의 부장들>이라는 책의 원작자시죠. 가천대학교 김충식 교수, 어서 오십시오.

◆ 김충식> 안녕하십니까.

◇ 김현정> 저 시사회 보고 왔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개봉은 22일인데 시사는 한창 하고 계시는 거죠?

◆ 우민호> 네, 오늘부터 또 일반 시사가 또 있고요.

◇ 김현정> 우 감독님, 만족스러우십니까?

◆ 우민호> (웃음) 제가 만든 영화 제가 만족스러웠다고 말하기는 민망해서.

◇ 김현정> 하긴 감독 눈에는 100% 만족이라는 건 없을 것 같아요.

◆ 우민호> 안 좋은 지점들만 보이는데요.

◇ 김현정> 원래 그런 거죠. 그러면 우리 김 교수님도 보셨잖아요. 원작자로서 책의 내용하고 영화하고 어떤 점이 좀 다르던가요, 같던가요?

◆ 김충식> 한 80%는 같고 팩트를 존중했는데 한 20%쯤은 영화적인 상상을 가미한 그런 작품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 김현정> 잘 만들어졌던가요, 원작자 보시기에?

◆ 김충식> 저는 잘 봤습니다.



◇ 김현정> 우 감독님, 이 책을 읽고 영화화를 해야겠다고 꿈꾼 게 아주 오래전이라고 제가 들었어요. 어떤 계기로?

◆ 우민호> 제가 군대에서 복학해서 96년도, 97년도 됐을 거예요. 우연치 않게 교수님의 그때 책을 읽고서 되게 놀라움과 충격을 받았고 그리고 그게 동아일보에 90년도에 연재가 됐던 걸로 알고 있어서 더더욱...

◇ 김현정> 그 취재기를 연재했던 걸 묶어서 책으로 나온 거죠.

◆ 우민호> 그때 보고서는 그게 제가 미처 몰랐던 어떤 근현대사의 기록들과 그리고 또 교수님의, 이런 말씀드려서 그렇지만 책에 담긴 기자 정신. 그리고 어떤 투철한 사명감 같은. 그게 쉽지 않으셨을 텐데 그런 것에 놀라움과... 그리고 그런 게 또 그 문체에도 담겨 있어서 제가 사실은 영화 이 연출을 하는 데 있어서 원작이 갖고 있는 정신과 시선. 그렇게 냉철함. 예리한 시선들을 제가 가져오려고 노력은 좀 했죠. 그게 잘 담겼는지는 모르겠는데.

◇ 김현정> 책을 그 당시에 이 취재기를 읽고 손을 부르르 떨었다. 제가 어디서 그렇게 말씀하신 걸 들었는데.

◆ 우민호> 부르르 떨다가 책을 놓치는.

◇ 김현정> 그랬다고 제가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에 품고 있다 이번에 영화로 만드신... 그런데 누가 봐도 그 당시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극중의 인물들은 본명을 쓰지 않으셨더라고요. 박정희 대통령, 김재규, 차지철, 김형욱, 전두환 다.

◆ 우민호> 실제 사건과 실존 인물들을 토대로 베이스로 가져왔지만 영화는 사실 등장인물들의 어떤 내면과 감정에 쫓아가는 이야기예요. 그래서 그거는 사실 고증이 되거나 알려진 바가 거의 없기 때문에. 물론 원작을 통해서 추측은 가능하겠죠. 그렇기 때문에 실명을 쓰는 것은 좀 부담스러움이 있었고.

◇ 김현정> 그들의 심리까지 취재한 건 아니기 때문에.

◆ 우민호> 아니기 때문에. 추측은 가능하겠지만. 이런 정황과 사건과 이런 걸 통해서 추측은 가능하겠지만 그게 팩트라고 보기에는 조금...

 



◇ 김현정> 조금이라도 틀리는 부분이 당연히 있죠, 극이니까.

◆ 우민호> 그래서 아무래도 다큐멘터리가 아니고 영화다 보니까 조금 창작의 자유를 갖고 싶어서.

◇ 김현정> 김재규 역은 김규평, 전두환은 전두혁. 김 교수님, 박정희 대통령이라고 연상되는. 거기서는 프레지던트 박 이렇게 부릅니다. 이성민 배우가 역할을 했고 김재규 부장이라고 연상되는 역할에는 이병헌. 차지철 실장은 이희준 씨, 또 김형욱 부장은 곽도원 씨. 전두환 씨 역할을 한 배우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제일 싱크로율이 높았던 어떤 배우는 누구라고 보십니까, 원작자는?

◆ 김충식> (박 대통령 역을 맡은) 이성민 씨가 내가 만일에 감독을 했더라도 역을 맡았어야 됐을 것 같고 동아일보 편집국장 지내신 정구종 선배님도 그 시사회 보시고 이름은 모르지만 정말 박통 역할을 잘하더라. 깜짝 놀랐다.

◇ 김현정> 귀 분장까지 일부러 했다고 제가 들었어요.

◆ 김충식> 그다음에 연기로는 역시 이병헌 씨가 김재규 역할을 충실하게 소화해 줬다. 그렇게 봅니다.


1964년 2월 국회 국방위 소속 차지철 의원( 오른쪽)이 6사단을 방문, 김재규 사단장(준장)을 옆에 앉힌 채 상석에서 브리핑을 받고 있다. 포병 간부 출신인 차지철은 중령으로 예편했고, 육사 2기 김재규는 차지철보다 여덟살 많다. 김재규는 차지철의 안하무인 격 행동에 분격하곤 했다. 




◇ 김현정> 그렇습니다. 이런 영화인데. 여러분, 이 영화에 바탕이 된 게 남산의 부장들이라는 책인데요. 전화번호부만큼 두껍더라고요. 이게 얼마 동안 쓰신 거예요, 김충식 교수님?

◆ 김충식> 26개월. 그러니까 매주 한 번씩 연재를 그렇게 했죠.

◇ 김현정> 매주 한 번씩 26개월을. 이게 소설이 아닌 취재기인 거죠, 그 당시 동아일보 기자셨던 거고.

◆ 김충식> 그렇습니다. 동아일보 기획 기사였는데 내용이 좀 다채롭고 밀도가 있다 해서 출판을 하자고 했는데 보통 신문사 연재물이 출판 성공하는 경우가 드문데.

◇ 김현정> 이 책은 50만 부가 그 당시 팔렸을 정도로 베스트셀러고 지금까지도 읽히는 스테디셀러고 아니 누구보다 중앙정보부의 부장들 이야기. 또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 깊이 취재하고 연구하신 분으로서 저는 이 장면이요. 먼저 누구나 아는 거니까 이건 영화 스포라고 할 수는 없을 거고 중정부장 김재규는 왜 박통을. 박 대통령을 총으로 겨눴는가. 왜라고 보세요? 일단 그 당시 수사를 했던 합동수사본부에서는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혀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허욕이 빚은 내란 목적 살인 사건.

◆ 김충식> 대체로 수사 본부의 조사 내용은 뭐 맞는 것 같은데. 다만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라고 하는 부분은 좀 오버한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그게 기자적으로 분석해 보면 폭행 치사와 살인을 구별하기 위해서 그렇게 예를 들면 김재규의 행위가 일종의 폭행 치사가 될까봐 그런 의도를 반영해야 되는 수사본부의 입장에서 그것을 대통령이 되기 위한 부분을 강조를 했는데. 그분을 변호했던 분들을 취재해 봐도 대통령을 하고자 했던 의도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 김현정> 그러면 뭐예요? 뭐라고 보세요?

◆ 김충식> 일단 본인의 말대로 유신을 종식시켜야 되겠다. 이게 어떤 대량의 유혈 사태로 가거나 더 이상의... 그게 굉장히 큰 폭발 직전의, 일종에 빅뱅 직전의 상황 같은 것을 미국 사람들의 반응, 미국의 보도, 미국 의회의 반감, 카터 정부의 비판적인 입장 등을 강둑 위에서 가장 많이 본 김재규로서는 굉장히 심각하게 봤을 것이고 그것이 이제 야당의 저항이 점점 강렬해지지 않겠어요? 약세를 봤으니까. 거기다가 YH 여공 사건으로 인한 어떤 민심의 이반 또 부산, 마산 사태 등을 보면서 굉장히 이렇게 본인은 굉장히 심각하고 획기적인 시국 처방을 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나오지 않고 오히려 탱크를 뭐한다든가.

◇ 김현정> 계엄령 내리고.

◆ 김충식> 발포 명령은 대통령이 내가 하면 되지 않겠냐라는 식의 얘기가 나오기 때문에 벌어진 일로 보고 있습니다. 

 

1979년 추석 이틀 뒤인 10월 6일 박정희 대통령(오른쪽)이 경북 구미에서 성묘를 한 뒤 생가를 방문해 막걸리를 들고 있다. 왼쪽부터 차지철 경호실장, 김계원 비서실장. 



◇ 김현정> 그럼 정말로 순수하게 나라를 위한 유신을 종식시켜야겠다는.

◆ 김충식> 순수하다고 보기에는 본인의 약간 차지철과의 경쟁 관계에서 뒤진 것에 대한 사감이라고 할까.

◇ 김현정> 피해 의식도 일부 들어가 있었다고 보시고요.

◆ 김충식> 중앙정보부라고 하는 거대 조직을 거느리는 수장으로서의 프라이드 선상에 대한 것도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 김현정> 그래서 거사를 치릅니다. 암살을 합니다. 10월 26일. 그런데 김재규는 육군참모총장을 차에 태우잖아요. 사실 그 당시에 우리의 정권이라는 것은 군대만 장악하면 나라를 장악할 수 있는 상황인데 육참총장을 차에 태우기 때문에 이대로 자신의 안방인 중정으로 가서 군을 장악하면 끝나는 거였는데. 중간에 차를 돌립니다. 육본으로 갑니다. 육군본부로 가다가 체포됐잖아요.

◆ 김충식> 그래서 앵커의 궁금증을 저도 갖고서 장성들을 여러 번 제가 인터뷰해 봤어요. 차를 돌리지 않고 남산으로 정승화를 끌고 가서 군을 지휘했더라면 그게 시퍼렇게 살아 있는 남산 권력의 통제 하에서 국가를 움켜쥐고 성공적인 쿠데타를 할 수 있었을 거 아니냐라고 하는 가설이 있는 거예요.

◇ 김현정> 남산 중정으로 갔으면. 가설이 있죠.

◆ 김충식> 바로 그 가설이 터무니없다는 결론이 났어요.

◇ 김현정> 왜요?

◆ 김충식> 왜냐하면 군의 생리를 알기 위해서 군 장성을 여러 명을 인터뷰를 했어요. 했더니 혼란은 길어졌고 문제가 2, 3일 더 걸렸을지 모르지만 김재규는 체포당하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 김현정> 왜요?

◆ 김충식> 정승화 총장이 구체적으로 역모에 대한 가담을 한 일이 없고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인데. 총장도 박정희의 사람이고 박정희에 대한 충성이 있고 또 군 전체가 김재규의 한 마디에 무슨 입장을 돌릴 상황이 아니다. 그런 18년 관성 위에 존재하는 군대로서는 결국은 우발적이고 사소한 계획에 의해서 박정희를 시해한 김재규를 체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라는 결론이 나는 거예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사진은 1980년 1월 23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항소심 2차 공판 당시 사진.



◇ 김현정> 중정으로 갔어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 김충식> 결과는 같았다라는 거예요. 그게 2, 3일 시차는 있었을지언정. 그렇습니다.

◇ 김현정>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결과적으로 이렇게 됐을 거라고 말씀은 하셨지만 그 순간에는 왜 그런 판단을 했을까요?

◆ 우민호> 그건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저한테는. 아마 10.26사건 바로 그렇게 한 다음에 제 느낌에는 좀 제정신이...

◇ 김현정> 정신이 나갔다?

◆ 우민호> 정신이 좀 나간 상태였지 않았을까. 그래서 영화에서 보면 그리고 난 다음에 되게 자기가 뭔가를 계획적으로 하기보다는 뭔가 되게 마치 좀 주군을 잃은...

◇ 김현정> 그런 감정도 있었죠.

◆ 우민호> 신하가 뭘 해야 될지 모르는 어디로 가야 될지 모르는 그런 느낌으로.

◇ 김현정> 그런 표현이 있더라고요. 피가 흥건하게 젖은 자신의 양말을 보는 그런 장면들. 우 감독님, 사실 김재규 부장 앞에 전임자였던 김형욱 부장은 베일에 많이 가려진 인물이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 속에서는 상당힌 중요한 부분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더라고요. 곽도원 씨가 연기를 하고. 그 김형욱 부장이 미국으로 이주해 살면서 박 정권의 실상을 폭로하다가 실종된 것까지 팩트죠.

◆ 우민호> 그렇죠.

◇ 김현정> 거기까지 팩트죠. 실종 후에 대해서는 사실 누구도 정확히는 모르는 거죠.

◆ 우민호> 그런데 사실 국정원 과거진상위원회에서 발표를 했죠.

◇ 김현정> 거기서는 어떻게 발표했죠?

◆ 우민호> 중앙정보부 김재규 부장의 명령으로 프랑스에서 납치해서 죽였다고 과거진상위원회에서 발표를 했죠.

 

1966년 10월 필리핀 방문 당시 박정희 대통령(오른쪽에서 두번째)이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의 보고를 듣고 있다.



◇ 김현정> 저는 이제 이 다음이 궁금합니다. 김 교수님, 사실은 말이에요.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설이 프랑스 양계장에서 암살당한 뒤에 처리됐다. 그렇게 처리됐기 때문에 뼈조차 발견되지 않았다라고 이 설이 계속 도는데. 이건 그냥 누군가 부풀린 설입니까? 아니면 뭔가가 좀 진짜로 뭐가 있어서 나온 얘기예요?

◆ 김충식> 2005년경에 국정원에서 사체 처리를 실행했다고 하는 요원이, 퇴직 요원이 인터뷰를 하고

◇ 김현정> 프랑스에서? 김형욱의 사체를 처리했다고 하는 사람의 인터뷰가 나온 적이 있습니까?

◆ 김충식> 그런데 거기에 그 사람이 진술했던 바에 의하면 동경에 가서 제3자의 여권과 비자를 받아서 파리에 가서 그 담당 게시자의 관련 공사의 지휘 하에 남쪽 지명에 보르도가 있고 프랑스 북쪽에 보르도가 있는데 남쪽은 포도주가 많이 나는 데고 북쪽은 전혀 관계 없는 작은 보르도라고 하는데. 농촌 지역에 가서 이렇게 처리를 했다. 이렇게 얘기를 한 내용이 진술이 되어 있습니다.

◇ 김현정> 그런데 그 처리가 정말로 지금 설로 계속 돌고 있는 그 양계장 처리설이 맞습니까?

◆ 김충식> 그래서 기자적인 입장에서 제가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를 이해하기로는 사체 처리를 그런 형식으로 했다고 할 경우에... 정부의 입장으로 그걸 발표할 경우에 프랑스와의 외교 관계에서 일종에 부채를 공식화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냥 사체를 낙엽에 파묻고 말았다라고 처리를 발표한 것으로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어떤 농장의 양계장에서 사체를 처리했다라고 발표할 경우 이게 불법이고 프랑스와의 외교 관계가 복잡해질 수 있기 때문에 과거사위에서는 그냥 야산에서 처리한 것으로. 발견은 끝까지 안 된 거죠.

◆ 김충식>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처리한 것으로 발표했다라고 증언이 나온 바가 있다. 하여튼 뭐 그렇습니다. 우 감독님, 사실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한 거기 때문에 감독이 어떤 시각으로 이걸 그리냐에 따라서... 저는 다른 영화도 봤었고요. 드라마도 봤고 책도 봤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상당히 다르더라고요. 우리 우민호 감독께서는 어떤 부분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셨습니까?

◆ 우민호> 저는 물론 실제 사건을 가지고는 왔지만 거기에 등장하는 어떤 인물들의 공과 과를 영화가 판단하지 않아요. 저도 판단하지 않고. 단지 그들이 왜 그렇게 비극적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을까. 한때는 다 동지들이었고. 그런 군인들이 왜 그렇게 비극적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을까라는 그 인물의 어떤 내면과 감정을 좀 따라가면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역사에서 드러나지 않는 그런 어떤 개인들 간의 관계 그리고 감정. 거기에서 오는 어떤 균열, 파열. 어떻게 보면 10.26이라는 게 거기서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런 감정들이 특별난 감정이 아니라 어떻게 본다면 되게 보편적인 충성,배심, 존경, 사랑, 모멸, 자존심. 이런 것들이 우리도 흔히 느낄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그런 것들의 어떤 파열음과 균열로 시작해서 한국 근현대사에 큰 변곡점이 됐던 10.26이라는 사건이 벌어진 거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그들의 내면과 한번 감정을 쫓아가서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 김현정> 그 심리묘사가 아주 잘 묘사가 되어 있더라고요, 정말. 그 눈동자의 흔들림. 피에 젖은 양말을 바라보는 그 모습. 이런 것들 하나하나가. 역시 심리에 주목을 하신 거군요. 누가 제일 연기 잘했어요?

◆ 우민호> 다들 잘하셨죠. 사실은 제가 이 작품을 기획하고 시나리오를 썼을 때부터 이 배우들이 아니었으면 아마 이 작품이 못 나왔을 거예요. 왜 그러냐면 말 그대로 인물들을 집중해서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 배우들을 믿고 찍을 수 있었던 거죠, 제가 근본적으로.

◇ 김현정> 여러분, 22일날 이제 개봉을 앞두고 있는. 이미 화제가 굉장히 됐더라고요. 워낙 또 관심이 있는 사건을 다룬 영화기 때문에. 남산의 부장들에 우민호 감독, 영화 내부자들의 감독이시죠. 우민호 감독 그리고 김충식 교수 원작자와 함께 했습니다. 두 분 고맙습니다.

◆ 우민호> 고맙습니다.

◆ 김충식>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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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부장들을 쓴 김충식 기자는 가천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그는 영화가 개봉되면서 언론에 자주 출연해 자신이 책을 쓴 배경과 박정희 김재규 차지철 김형욱에 얽힌 권력갈등을 설명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김 교수는 책을 처음 집필했을 때 인지하지 못했거나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부분을 '남산의 부장들'을 만든 우민호 감독의 색다른 접근과 연출을 통해 새롭게 깨닫게 된 것도 있다고 말했다. 

 

김충식 교수는 먼저 김재규의 박정희 대통령 살해 동기에 대해 우민호 감독의 접근법에 경탄을 했다고 한다. 그는 "이번 영화를 보면서 제가 기자로서 영화감독한테 놀랍고, 경탄했던 것은 바로 김재규 심리 안에 72년 납치사건에서 중앙정보부가 호되게 실패하고, 당했던 경험을 알기 때문에 김형욱을 파리에서 소리, 소문 없이 임무를 완수했다는 것 자체가 김재규로서 굉장한 우쭐함이에요. 그렇지 않겠어요? 그게 10월 초고, 그로부터 20일 후에 10.26 총성이 울린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김재규로서는 지금 강둑에서 자기가 정부를 보다 보니까 엄청난 일들을 자기가 보고 있는데, 그중 가장 큰 문제인 김형욱 제거를 통해서 박통의 가장 큰 문제를 해결했다고 하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거기에 대놓고 말하자면 작은 정보부를 가진 차지철, 또 월권하는 차지철, 물정을 잘 모르는 차지철을 앞세워서 자꾸 견제를 하고, 오히려 차지철 편을 들면서 소극적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 큰 반감을 가졌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김재규가 비록 박정희 대통령의 최측근 핵심참모이긴 했지만 정국의 거의 모든 운영은 그의 밑그림과 실행으로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김재규로서는 '내가 없으면 대한민국도 없고, 박정희도 없다'는 의식이 은연중에 깊게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긴 하지만 박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은 누구보다 높았고 또 존경심도 의심할 바 없었다는 게 중앙정보부 측근들의 일관된 증언이다. 오히려 그런 진실된 충성심이 김재규를 대통령 살해까지 몰고간 동인이었는지 모른다. 

 

박 대통령의 최대 골칫거리였던 김형욱마저 제거해주게 되었을 때 김재규로서는 박 대통령에게 큰 신뢰를 얻었고 '이제는 내가 없으면 안될 존재인지 확실하게 알았겠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후도로 박 대통령은 김재규의 그런 일종의 '은덕'은 무시하고 오히려 라이벌 차지철을 더 신뢰하고 그의 말만 따르고 김재규를 무시하는 것이 더 노골적으로 나타나자, 김재규로서는 아마 '이제 모든 것을 잃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만큼 충성심도 깊었기에 그에 대한 배신감과 박탈감을 상상을 초월할 만큼 커졌고, 그것이 김형욱 제거 20일만에 박정희 대통령 살해로 배신감을 극대화 표출시킨 것이다. 김충식 교수는 '남산의 부장들'에서 김재규의 그런 심리묘사가 상당히 뛰어났다고 지적한다. 물론 이 부분은 자신의 원저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자 접근법이다. 

 

김형욱이 중앙정보부의 극심한 감시와 암살 위험성을 느끼면서도 파리에 홀로 간 것에 대해서는 "그만큼 김재규 팀의 유도 작전이 치밀했고, 또 돈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그때 주머니가 많이 비어 있어서 경제적인 문제로 절박해서 아마 파리로 돈 받으러 간 것 같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또한 김 교수는 "큰 틀에서는 김재규 정보부가 파리 현지의 정보부 담당 공사를 중심으로 해서 실행조를 짜고, 거기에서 권총으로 사살하고, 사체 처리는 별도의 인멸하는 형태로 했다"라고 추측했다. 그리고 암살사건의 핵심 인물로는 이상렬 당시 파리 공사를 꼽았다. 이 공사는 얼마 전에 사망했지만 김형욱 사건과 관련해 일체의 이야기를 끝까지 하지 않았다. 김 교수는 이상렬 공사에 대해 "그분은 85년에 버마 대사까지 하고 쭉 공직을 했었다. 그래서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데, 실제로 했는지, 안 했는지에 대해서 했다고 하더라도 본인은 말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김재규 시해의 배경에는 최태민 목사도 개입돼 있다는 분석도 이번에 나왔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큰 원인이 됐다. 왜냐하면 최태민에 대한 여러 가지 나쁜 여론 때문에 정보부가 정보보고를 했더니 박 대통령이 큰 영애한테 그것을 던져서 큰 영애가 그것을 반발해서 우리는 좋은 일만 하는데 무슨 이야기입니까, 그렇게 해서 박 대통령 앞에서 큰 딸하고 김재규가 같이 심문(친국)을 당하는 그런 치욕적인 일이 있어서 그 점도 굉장한 프라이드의 사나이 김재규로 봐서는 욱하는 대목이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종합해보면 김재규가 박정희를 시해한 배경에는 목숨을 다바쳐 주군에게 충성하고 그에게 걸림돌이 되는 것이라면 무슨 일이든지(암살을 포함해) 선제적으로 대응해서 묵묵하게 처리해 주었지만 박정희가 그런 큰 공적에 대해 별다른 인정을 하지 않았던 것이 배신감의 표출과 함께 대통령 살해까지 결행하는 결정적 원인이 됐다. 그 다음이 자존심이 상당히 높았던 김재규가 자신이 하는 큰 일에 비해 큰영애씨와 최태민과 관련한 대통령의 친국까지 당하고, 급기야 경호실장 앞에서 느슨한 정국인식과 관련해 면박까지 당하게 되면서 인내심이 임계점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김재규는 평소 '사나이 결심'이라는 노래를 좋아할 만큼 행실이 반듯하고 사나이의 길을 가려는 정의감도 남달랐다. 김형욱처럼 비리도 은연중 함께 하면서 때가 묻었다면 대통령의 인정과 배신감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이 덜 했겠지만 오로지 박정희와 국가만을 위해 살아왔던 김재규로서는 자신이 목숨처럼 믿던 일종의 '신'에 대한 기대와 신뢰가 무너지자 자신을 컨트롤 할 수 없을 정도로 한꺼번에 무너져내린 것이 박정희 살해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구를 바라봤을 그 찰나, 그의 머릿속에는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스쳐갔을까. '내가 김재규를 너무 믿었거나, 내가 김재규를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지금 교도소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것도 '최순실'이라는 인물을 너무 믿었거나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불행한 사태가 일어났을 수 있다. 박정희 가문의 피가 원래 사람을 잘 못 보는 치명적 결함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JP의 지원으로 4대 정보부장에 오른 김형욱은 곧 자신의 실력을 굳혀가며 육사 8기 동기생 JP를 적대시했다. 그것은 박 대통령의 용인술 때문이기도 했다. 김형욱은 69년 3선 개헌의 행동대장을 맡았으나 개헌 성공 뒤 곧 정보부장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73년 미국으로 망명한 그는 77년부터 박정희 타도에 앞장서는 선봉장이 되었다. 김재규는 전임 중정부장이었던 김형욱의 말로를 똑똑히 지켜봤다. 박정희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려던 김형욱이었지만 그 용도가 폐기되자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김형욱의 신세를 누구보다도 잘 알았을 것이었다. 그도 박정희의 오른팔로서 유신정국을 훌륭하게 이끌었지만 부마항쟁 뒤 엄습해오는 '미래의 김형욱' 말로를 미리 예견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박정희가 그를 밀어내거나 죽이려 하기 전에, 먼저 주군에게 방아쇠를 당긴 것은 아닐까. 왼쪽부터 김종필, 김형욱, 김용태.
1979년 10월 26일 박 대통령이 삽교호 준공식에 참석해 배수갑문 스위치를 누르는 모습. 고인의 생애 마지막 공식행사 사진이다.
1975년 1월 31일 건설부(정부종합청사)를 초도 순시하는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왼쪽 둘째), 김재규 건설부 장관(오른쪽). 김재규는 76년 12월 4일 중앙정보부장에 발탁되면서 차지철과 치열한 충성 경쟁을 벌이게 된다. 박 대통령은 고향 구미 후배이자 육사 동기인 그를 군 시절부터 중용했다. 김재규는78년 초 김종필 전 총리에게 “박 대통령을 종신대통령으로 모시는 게 정보부의 기본 임무”라고 말하기도 했다.
61년 5·16 직후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과 호남비료 사장이었던 김재규 준장(오른쪽). 
1979년 6월 10일 한양대학교에서 촬영된 박근혜와 최순실의 모습. 당시 온 사회를 휩쓸었던 ‘새마음 운동’의 일환으로 ‘제 1회 새마음 제전’이라는 행사가 열렸는데, 이 행사에 당시 박근혜 새마음 봉사단 총재가 깜짝 방문했다. 마치 연예인처럼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손을 흔드는 박근혜 총재의 옆을 최순실 씨가 그림자처럼 수행했다. 이 날 행사를 주최한 ‘새마음 대학생 총연합회’의 회장이 최순실 씨였기 때문이다. 최 씨는 당시 단국대 대학원 1학년에 재학중이었다. 박근혜는 27살, 최순실은 23살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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