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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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데스크 칼럼] 대한민국 골든벨

성기노피처링대표 2019. 8. 4.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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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에 촛불이 다시 켜졌다. 연일 35도를 웃도는 이 뜨거운 여름에,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들과 학생, 노인들은 ‘NO 일본’ 피켓과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을 다시 찾고 있다. IMF 이후 22년만의 국난이다. 난리가 닥칠 때마다 민초들의 삶은 힘겨웠다. 국가나 임금이 미처 대비하지 못해 일어난 사태를 민초들은 그 영문도 모른 채 의병으로, IMF 금반지로, 불매운동으로 맞서고 있다. 베트남 국민들이 온 국토를 전쟁 불바다로 만들어 미국을 쫓아낸 것처럼, 우리도 한일 경제전쟁을 지옥의 전장으로 만들어 일본을 물러나게 하자는 과격한 시나리오도 회자된다. "먼지 나는 각개전투는 국민이 할 테니 정부는 당당하게 맞서라"는 민초들의 열망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왜 이렇게까지 사태가 심각하게 됐을까. IMF가 일본의 직접적인 도발로 시작되었다는 분석이 있다. 당시 우리의 단기외채 비중은 외환보유액 대비 211%였다. 단기외채의 대부분이 일본에서 빌린 돈이었다. 일본은 세계경제의 사이클이 나빠지니까 단기외채 연장을 해주지 않고 상환을 요구하게 되면서 우리에게도 직접적인 타격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등장한다. 그가 중국 지도부와 만나 이야기를 하면서 "일본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해 일본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박지원 의원은 최근 이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의 말이 IMF (위기의) 동기가 된다. 소위 일본이 우리나라 어음 가지고 있는 걸 다 돌려버렸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번 화이트리스트 배제도 일본의 직접적인 도발이 그 원인이다. 여기에서도 그 ‘구타유발’의 원인을 두고 위정자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일본은 그동안 강제징용 재판과 위안부 합의 파기 등과 관련해 줄기차게 협의를 요구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어떤 이유’(한일갈등을 유도해 국내정치에 이용하려 했다는 게 야당의 주장)로 거절했기 때문에 경제도발로 이어진 것이라는 해석이다. 여당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책임론을 거론하기도 한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부, 일본에 동조한 박근혜 정부 고위 관료 등이 공모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해 일본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법원 판결을 뒤엎으려 하는 등 책임을 미루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 IMF와 일본 경제도발의 원인을 따져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달은 났고, 그 고통은 국민들에게 직하(直下)하고 있다. 정호승 시인의 ‘술 한 잔’이라는 시에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라는 시구가 있다. 시인은 "나는 내 인생을 위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으나 내 인생은 나를 위해 열심히 살아오지 않았다는 느낌이 불현듯 들었다"고 고백하면서 "내가 뭘 잘못했는데 이런 고통을 주는가. 나는 지금까지 열심히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한 죄밖에 없다. 그런데 내게 이럴 수가 있는가" 하고 절대자를 원망했다고 한다. 내게 고통을 주는 어떤 절대적 행위자가 있다고 생각하고 후미진 골목의 블록 담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그를 증오하고 원망한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 시인은 그 뒤 자신의 원망을 후회했다고 고백한다. "어머니가 아무런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인생도 아무런 조건 없이 나에게 ‘술 한 잔’을 사준다. 어떠한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희망과 사랑의 술을 사준다. 그래서 요즘은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었다’라고 고쳐 읽는다"고 한다. 이 시를 노래로 부른 가수 안치환 씨가 "인생이 정말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느냐"고 물었을 때 "사줘도 너무 많이 사줬다"고 대답했단다. 

22년전에는 집안에 있는 금덩어리를 모두 팔아 나라의 곳간을 채워주려 했던 국민들. 이제는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일본 가족여행을 취소하거나 일본의 ‘일’자라도 들어간 것이 있으면 현미경 체크를 하며 불매하려는 생활의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국가는 그들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지만, 민초들은 기꺼이 그 빈 술잔 앞에서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처연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일본과의 경제전쟁이 끝나는 날, 대한민국은 그들에게 술 한 잔 사줄 수 있게 될까. 과연 내 인생에, 대한민국의 골든벨을 들을 날이 오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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