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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의 경제학

성기노피처링대표 2019. 4. 5.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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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골에 가면 빈집을 흔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중소도시만 가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 빈집이라는 것이 집만 비어있는 게 아닙니다. 빈집에는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빈집이 세계경제를 휘청거리게도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빈집의 경제학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빈집 얼마나 많아요?

지난 4월 4일 더불어민주당 김정호 의원은 눈에 띄는 법안 하나를 발의했습니다. 김 의원은 빈집의 효율적 정비·활용을 위해 빈집정비계획 수립 시 빈집정비사업의 유형별 추진계획 및 시행방법을 포함하도록 하는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빈집의 손상 정도, 화재·붕괴 위험, 위생 등을 유형화해 빈집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도록 하는 법안입니다.

2017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빈집은 126만4707호로 전체 주택의 약 6.7%에 이릅니다. 일본의 전국 평균 빈집 비율(13.5%)에 비하면 아직 그리 높지 않은 수준이지만 지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2017년 말 기준으로 전남의 빈집 수는 10만9799가구입니다. 전남의 총 주택 수는 76만7825가구로 주택 수 대비 빈집비율이 14.3%에 이릅니다. 전국 시도 중 가장 높은 빈집 비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주시의 경우 주택 수는 4만8326가구, 빈집수는 9643가구로, 빈집비율이 20%에 달합니다. 영암군의 빈집 비율도 19.3%(빈집 수 4941가구)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가 첫 번째 직격탄입니다. 그리고 지방빈집 비율이 높은 것은 도심(수도권) 집중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여기에다 주택 노후화 등으로 사람이 살지 않는 집들이 빠르게 늘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인구는 계속 줄어들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에 이 빈집 문제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빈집 증가 문제는 꼭 지방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서울에도 2만가구에 가까운 폐가가 있다고 합니다. 슬럼화로 사람들이 빠져나가거나 재개발이 무산된 지역에서 빈집이 계속 생기고 있는 것이죠. 특히 아파트가 많은 한국에서는 재건축이 불가능한 노후 아파트가 밀집한 구 도심의 빈집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부산 영도구의 한 아파트는 총 4개 동에 250가구 규모인데 지금 10여 가구만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 아파트는 밤이면 가출 청소년이나 노숙자들이 빈집에 숨어들어 술을 마시거나 잠을 자는 장소로 전락했다고 합니다.




 

도시도 재건축 불가능한 노후 아파트 빈집 늘어나 

더 심각한 문제는 앞으로 닥쳐올 것입니다. 2050년쯤에는 국내 빈집 비율이 일본 수준인 10%로 증가할 것이란 예측도 나왔습니다. 한국국토정보공사에 따르면 국내 빈집은 2035년엔 148만 가구로 늘어나고, 2050년에는 전체 가구의 10%인 302만 가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습니다. 국토정보공사에 따르면 2050년 강원(23.2%)과 전남(25.4%)은 인구 감소로 네 집 중 한 집에 사람이 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국토정보공사는 “2050년에는 65세 이상 혼자 사는 가정이 429만가구로 전체의 19%를 차지할 것이다. 노인 인구가 병원이나 요양시설로 옮기면 그 집은 자연스럽게 공가(空家)로 전락한다”고 밝혔습니다.

빈집 문제는 경제·인구 구조 면에서 시간을 두고 우리보다 앞서 가고 있는 일본의 현재 상황을 보면 먼 미래의 우리 모습도 예측해볼 수 있습니다. 한국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이미 오래전부터 빈집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방치된 빈집은 경관을 해칠 뿐만 아니라 화재, 붕괴 위험 등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사고가 발생하면 주변 집들까지 피해를 봅니다.

일본 대부분의 지자체는 빈집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아키야뱅크(空き家バンク)’를 운영 중이라고 합니다. 빈집 정보를 웹사이트에 게재해 매수, 매도를 도와주는 서비스를 말합니다. 빈집으로 등록된 주택의 가격은 우리 돈 100만원 선에서부터 2억원대까지 다양하다고 합니다. 공짜 집도 있지만 대부분 노후도가 심각해 수십만엔의 수리비를 투입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네요. 일부 전문 투자자들은 빈집 투자에 나서고 있다고 합니다. 빈집을 헐값에 산 뒤 리모델링해 되파는 비즈니스죠. 하지만 수요가 제한적이어서 그나마 활기가 있는 지역에서 제한적으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고 합니다. 좁은 국토 때문에 부동산 개발에 관한 한 선진국인 일본도 빈집 비즈니스는 그렇게 좋은 아이템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고전중이라고 합니다.

일본 도쿄의 위성도시 치바현을 가보면 빈 아파트를 자주 보게 됩니다. 대부분 베이비붐 세대들이 샀던 아파트입니다. 이제 그들이 사망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도쿄나 다른 곳으로 이주한 자식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아 자연스럽게 빈집이 돼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빈 아파트는 관리조합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아 기초적인 관리·수선도 하지 못하고 방치되고 있습니다. 자연히 거래도 안되는 것이죠. 도쿄도(東京都)가 아파트 관리 상황의 신고를 의무화하는 조례안을 제출하는 등 지자체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작되고 있지만 빈집 증가와 관리부실, 거래 감소의 부정적 순환을 끊는 것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조합이 없으면 관리 부실의 틈을 노린 침입자로 인해 해당 지역이 범죄의 온상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거주 주민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에 악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단독주택이나 임대 아파트 등 소유자가 1명인 부동산은 빈 집이 될 경우 리모델링 후 새로운 거주자를 모집하거나 사무실이나 가게로 임대하는 등 다양한 혁신 방안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또한 소유자가 1명인 단독주택 매물이라면 건물을 철거하고 토지만 매각하는 등 선택의 여지가 많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지분을 공유하는 아파트는 이런 처분이 어렵다보니 빌려주거나 처분하지 못하고 그냥 빈 집으로 방치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유자 사후에 빈집이 될 가능성이 높은 집을 지자체 및 관리 조합에 기부할 수 있는 구조가 검토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소유자가 불명·부재인 상태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도 이 문제를 적극 검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은 10여년 뒤 3가구 중 1가구가 빈집 예상

현재 일본의 빈집 비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2033년에는 전체 주택 중 빈집의 비율이 30.4%에 이를 전망이라고 합니다. 3가구 중 1가구가 빈집으로 전락하는, 아주 무서운 예측입니다. 일본 정부는 2014년 빈집대책특별조치법을 제정하고, 2015년엔 마을·사람·일자리 재생 종합전략을 개정하는 등 대책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빈집 문제는 비단 일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빠르게 경제성장을 하고 있는 이웃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일본과는 사뭇 다른 빈집 문제 패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018년 발발한 미·중 무역 전쟁 이후, 중국 경제는 이미 빨간불이 커졌습니다. 미국 기침에 중국도 떨고 있는 것이죠. 고공행진을 하던 중국 경제성장률이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9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하락하면서 중국 경제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에 2019년 1월 시진핑 주석은 이례적으로 블랙 스완(예측하지 못한 위기)과 회색 코뿔소(예상되지만 간과하는 잠재적 위험)를 언급하며 중국이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음을 경고하고 나섰지만 여전히 중국의 각종 경기 지표들은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중국의 경제문제 기저에 빈집 문제가 숨은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경기호황의 신호는 바로 부동산에서 먼저 나타납니다. ​중국의 부동산 개발 붐은 전 세계에서 그 유례가 없을 정도의 쾌속도와 거대규모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또한 중국 경제 성장을 견인했죠. 미국이 100년 동안 쓴 시멘트 양을 중국이 3년 만에 사용했다는 놀라운 통계가 있을 정도입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중국의 내수 시장을 견인한 것이 바로 건축, 부동산 시장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 중에는 30대에도 집을 3채 이상 소유한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집이 저축보다 더 좋은 투자처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뭐, 이런 경우는 우리 부동산 재테크와도 비슷한 사례입니다. 중국인들이나 우리나 집을 여러 채 소유하는 이유는 시세 차익을 노린 투기가 목적입니다. 그렇다 보니 여유가 있으면 임대보다는 가격이 오를 때까지 집을 ‘소유’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중국 상하이의 고층 빌딩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중국의 빈집문제는 경제 몰락의 뇌관?

베이징과 텐진 사이에 위치한 신도시 경전신시에서는 10년 전 3천 채에 달하는 대규모 별장촌을 조성해 불티나게 팔리며 큰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내로라 하는 부자들이 몰려들어 별장을 쇼핑하듯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별장을 산 사람들 중 이곳에 사는 사람은 300가구도 채 안 된다고 합니다. 재테크 수단으로 별장을 싹쓸이한 사람들은 집을 버려둔 채 가지고만 있었던 겁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빈집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만 100만 채, 전국적으로 최대 6천 5백만 채가 ‘빈집’ 상태라고 합니다. 5곳 중 한 곳이 빈집이라고 하네요. 경제규모가 크다 보니 빈집 숫자도 상상을 초월합니다. 유령도시를 연상하게 하는 엄청난 규모의 빈집. 전문가들은 중국의 빈집이 중국 경제에 치명적인 뇌관으로 작용할 것이라 경고하고 있습니다.

만약 중국의 부동산 버블이 붕괴하면, 빈집 소유주들은 이것을 팔기 위해 내놓을 겁니다. 이때 주택 가격이 더욱 추락하게 됩니다.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 대출을 감당하지 못해 파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거나, 팔리지 않는 집을 떠안은 사람들의 경제활동도 위축됩니다. 그것이 바로 중국 경제에 직격탄이 될 것이라는 진단입니다. 현재 중국의 부동산 기업들은 엄청난 부채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업계 1위에서 20위까지 부채가 10조 위안, 한화로 약 1700조 원에 달하는 건 매우 위험한 수치라고 합니다. 실제로 곳곳에서 파산 업체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빈집들이 중국 경제의 주춧돌을 부서놓고 있는 겁니다.

일본이 인구감소와 고령화에 따른 사회문제로서 빈집이 늘어나고 있다면, 중국은 왜곡된 투기와 과욕으로 인한 빈집 문제가 경제몰락의 전조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상황은 어떨까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더불어민주당 김정호 의원의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정확한 실태 조사 선행돼야 

김 의원의 진단은 우리가 빈집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그 나침반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빈집이 장기간 방치될 경우 건축물의 구조 및 안전상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쓰레기 무단 투척 등 도시경관 및 미관 해치는 요인이 되고, 청소년들의 탈선 및 범죄 장소로 이용될 소지가 있는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 이에 대한 효율적 관리 및 조치가 시급한 실정”이라는 게 김 의원의 진단입니다.

김정호 의원은 이에 대해 “현행법은 빈집정비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실태조사를 실시한 후 그 결과를 바탕으로 빈집정비계획을 수립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빈집은 발생원인 및 안전상태, 지역별 특성 등이 다양하기 때문에 효과적인 빈집정비사업의 시행을 위해서는 빈집의 특성을 고려해 유형별로 추진계획 및 시행방법을 수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시장·군수 등이 빈집정비계획을 수립하는 경우 빈집정비사업의 유형별 추진계획 및 시행방법을 포함하도록 함으로써 빈집의 효율적 정비·활용에 기여하고자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제안이유를 밝혔습니다.

김 의원은 “개정안이 통과되면 빈집을 물리적 실태와 위해성 수준에 따라 유형화할 수 있다”며 “유형화된 빈집은 건축물 수명평가 지표, 건축물 구조 안전성, 지붕 구조 및 손상 정도, 외부 시설 및 설비, 건축물 화재 및 붕괴 위험, 빈집의 위생, 경관, 통행 방해 등을 지표로 삼아 유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유형에 따른 사업계획을 수립하도록 해 보다 빈집에 대해 효율적인 관리가 가능해 질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4월 3일 제주특별자치도는 한국국토정보공사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도내 전역의 빈집에 대한 실태조사에 돌입한다고 밝혔습니다. 실태조사 대상인 '빈집'은 1년 이상 아무도 거주 또는 사용하지 않은 주택입니다.

 

범정부 차원의 '빈집' 국가 데이터베이스부터 

제주도는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빈집의 붕괴 및 화재를 예방하고, 도시미관과 주거환경을 개선키 위한 정비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실태조사는 한국전력 제주지역본부와 상하수도본부의 데이터를 토대로, 지난 1년간 전기, 상수도, 기타 에너지 사용량이 없는 도내 약 3000여호를 대상으로, 오는 10월까지 7개월간 실시된다고 합니다.

제주도는 빈집의 위치와 현황 등의 조사와 함께, 소유자의 의견을 묻는 현장조사, 빈집의 노후.불량상태 조사 등 등급산정조사를 실시해 이를 바탕으로 빈집 정비계획 수립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합니다. 또한 실태조사를 데이터화하는 한편, 관계법령 및 제도 개선을 추진할 예정입니다.

이렇게 철저한 실태조사를 해야하는 곳이 제주도뿐이 아닙니다. 정부가 국가적인 데이터베이스부터 확보해야 합니다. 지자체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국가가 빈집 문제를 통합 관리해야 합니다. 빈집 문제는 단순한 주거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 좀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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