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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성기노 칼럼] 이재명 대표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본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6월 12일 대북송금 사건으로도 기소됐다. 이제 그는 ①대장동 및 성남FC(뇌물 배임) ②공직선거법 ③위증교사에 이어 ④대북송금(제 3자 뇌물죄)까지 총 4개 재판을 한꺼번에 받게 됐다. 역대 정당 대표가 이렇게 재판을 많이 한꺼번에 받은 전례가 없었던 만큼 이 대표를 누르는 심리적 압박은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보인다. 요즘 들어 이 대표가 침울한 표정을 짓는 장면이 자주 노출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실 이재명 대표의 재판 출석 부담이 엄청나게 커졌다. 이 대표는 지금까지 일주일에 두세 차례 재판에 나왔지만 이제는 주당 3~4차례 출석해야 한다. 지금까진 서울중앙지법에서 모든 재판을 받았지만 대북송금 재판은 수원지법에서 이뤄진다는 것도 부담이다. 법정에 오가는 시간을 포함하면 업무시간의 절반 이상이 날아가 버리는 셈이다.
범야권 192석을 쥐고 있는 제1 야당 대표가 거의 매일 재판정에 나가야 하면서 생기는 ‘의정 공백’은 이 대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당은 22대 총선 압승 이후 ‘무능한’ 윤석열 정부를 대신해 거의 매일 상임위 소집을 벼르고 있을 만큼 국정 운영에 막대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안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당은 국민의힘 ‘시행령 저항’에 맞서 활발한 입법 활동으로 국정운영을 사실상 책임지겠다는 결연한 자세를 보이고 있지만, 정작 야당 대표가 재판 준비뿐 아니라 날마다 법정에 출석하면서 생기는 ‘국가적 손실’에 대해서는 모른 척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민주당의 ‘국정운영 책임론’과도 앞뒤가 맞지 않다.
실제로 이 대표의 갑작스런 ‘당무 이탈’로 22대 개원 초기 민주당의 의정 활동도 영향을 받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관련 제3자 뇌물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다음 날인 6월 13일 돌연 공식 당무 일정을 취소했다. 당 대표실은 “비공개 일정이 생겼다”고만 밝혔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선 즉각 “기소 관련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하루 시간을 비운 것 아니겠느냐”란 해석이 나왔다.
앞으로 이 대표는 1주일 3~4번 재판 출석과 그 준비과정에서 생길 각종 ‘돌발변수’ 때문에 ‘당무 일정’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대표는 그동안의 재판에서 당무를 이유로 재판에 출석하지 않거나 별도 협의 없이 무단 불출석해 판사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당시 담당 판사는 “자꾸 이러시면 강제소환을 검토할 수 있다”며 엄포를 놓기도 했다.
이 대표로서는 잦은 재판 출석과 그 준비로 인해 당무도 소홀하게 되고 재판에도 불성실하게 임하면서 자칫 ‘게도 잃고 구럭도 잃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사실 이 대표로서는 재판과 당무 그 어는 것 하나 소홀할 수가 없는 입장이다. 이 대표가 13일 갑자기 공식 당무 일정을 취소한 이유에 대해 민주당은 겉으로는 별일 아니라는 반응이지만 그 ‘속사정’에 대해 상당히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이 대표의 잦은 출석에 대해 민감한 이슈라 말을 아끼고 있지만 그들은 이 대표의 ‘정신적 스트레스’와 그에 따른 돌발변수를 우려하고 있다. 필자가 접촉한 민주당 인사들 가운데에는 그동안 끊임없이 시달려온 ‘사법리스크’에 대한 이재명 대표의 ‘정신적 상태’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사실 이 대표가 재판에 거의 매일 불려나가는 상황이 되면 당연히 당무 협의와 진행에 있어서도 당 대표의 재판 스케줄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일정부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문제는 야간으로 시간을 조정하는 등 유연성 있게 대처할 수가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이재명 대표의 정신적 스트레스다.
아무리 ‘강심장’ 이 대표라고 해도 앞으로 거의 매일 재판에 불려 다니다 보면 멘탈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이 대표는 이번 대북송금 1심 결과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에게 검찰이 기소한 제3자 뇌물죄는 금액이 1억원 이상(쌍방울 대납 800만달러(110억원))이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에 관한 법(특가법)이 적용되기 때문에 자칫 10년 이상 무기징역에도 처해질 수 있는 중범죄에 해당한다. 백현동 개발 특혜와 관련된 재판에서도 이 대표는 업무상 배임 의혹을 받고 있다. 업무상 배임도 50억원이 넘어가면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을 받을 수도 있는 특가법이 적용된다.
재판을 받아본 사람만이 그 고통을 뼈저리게 실감한다. 더구나 1개도 아니고 무려 4개 재판을 동시에 받는 이 대표로서는 여간 힘겨운 싸움이 아니다. 물론 22대 총선 압승을 통해 ‘사법리스크’에 관한 정치적 부담이 어느 정도 해소됐다고 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재판은 재판이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사법 단죄’의 ‘정치적 효용성’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는 최근 이재명 대표를 겨냥해 헌법 84조 ‘대통령의 불소추(不訴追) 특권’에 대한 의견을 내놓아 법조계에서도 논란이 됐다. 한 전 위원장은 “이미 진행 중인 형사재판은 형사 피고인이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중단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가 대통령만 되면 자신을 둘러싼 모든 ‘유죄 항목’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없었던 일이 될 수도 없고 이미 진행중인 형사재판 결과에 따라 대통령이 되더라도 그 자리에서 내려와 사법의 단죄를 받아야 한다는 게 한 전 위원장의 주장이다. 이런 헌정사 초유의 상황에 대해 헌법학자들마저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대북송금을 포함하면 4건의 형사재판을 받게 될 이 대표가 2027년 21대 대선까지 확정판결을 받지 않은 채로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상황이 상당히 복잡해진다. 헌법 84조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않는다’라는 조항에서 ‘형사상의 소추’를 어디까지 인정할지가 애매해지는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수사 중인 피의자 대통령’의 경우 재임 기간 공소시효가 중단된다고 결정한 적은 있지만 ‘피고인 대통령’의 형사재판에 대해선 해석한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다. 그래서 헌법학자들 사이에서도 ‘형사상 소추’를 기소로만 특정하는 협의의 개념으로 해석할지, 아니면 공소를 유지하고 형사재판을 진행하는 광의의 개념으로 해석할지를 두고 의견이 뚜렷하게 갈리고 있다.
물론 대통령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솔로몬의 판결’을 내려야 하는 사법부가 그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재판부가 재판을 임의로 중단하는 ‘편법’을 쓸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 따른 보수층의 반발과 국론 분열은 지금의 여야 진영대결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막대한 후유증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22대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도 자신들의 집권 1순위 대권주자가 ‘판사봉 한방’으로 날아가 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수수방관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민주당은 공공연히 ‘재판부 탄핵소추’로 직무를 정지시킬 계산을 하고 있다. 더 나아가 아예 ‘법 왜곡죄’를 도입하거나 개헌이 필요한 ‘판사 선출제’까지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 사법부의 ‘재판 장벽’을 뚫고 이 대표를 용산으로 보내겠다는 비장한 결의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민주당의 뜻대로 재판부 탄핵이나 판사 선출제 등의 ‘힘의 논리’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민심의 향배가 중요하다. 이 대표의 사법부 유죄 판결에 대해 대통령직을 수행하지 못할 정도의 결격사유는 아니라는 여론이 서서히 형성돼 간다면 이 문제는 여야의 ‘정치적 타협’으로 해결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 대표에게 있어 최악의 상황은 여야 타협도 없고 민주당의 재판부 탄핵 등 물리력도 여당에 의해 저지될 경우 재판은 그냥 재판대로 진행되고, 이 대표는 그 절차와 결과에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경우에 이 대표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법치주의 국가에서 현실적 법 제도의 울타리를 벗어날 탈출구는 사실상 없다.
지금 이 대표를 둘러싼 충직한 참모들이 그를 충심으로 보좌하고 있지만 그들도 영원한 ‘이재명의 사람’들이 아닐 수 있다. 이 대표 재판에 대한 국민적 합의나 여야의 정치적 합의도 진전이 없고 지금처럼 재판은 재판대로 진행돼 2심 결과에 이어 최종 유죄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게 되면 민주당과 참모들의 동요는 불을 보듯 뻔하다. 지금이야 총선 압승 직후이기 때문에 참모들이 이 대표의 서슬 퍼런 권력에 납작 엎드려 있지만 유죄 확정과 대선 도전 불가능 이슈가 현실화될 경우 ‘친이계’ 중에서 이탈자가 생길 수도 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이 대표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싸움을 해야 한다. 정치는 비정한 것이다. 친이계들이 ‘민주당의 집권’을 명분으로 이 대표를 배신해 떠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을까. 이 대표로서는 재판 출석의 번거로움 때문에 멘탈이 무너지는 게 아니라 바로 주변사람들의 배신을 두려워하면서 엄청난 심적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정신적 침하’ 상태가 지속되면 이 대표에게도 통제불능의 돌발변수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그러면 무리수가 무리수를 낳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현재 보수여권은 이 대표와 관련된 재판 일정을 최대한 앞당겨 대통령 선거와 직접 연관된 ‘사법리스크’의 불확실성을 확실히 제거해야 한다며 일제히 포문을 열고 있다. 실제로 사법부에도 정밀한 촉수를 대고 있는 윤석열 정권이 이재명 대표 재판이 의도적으로 ‘지연’되거나 잠정 중단될 기미가 보이면 즉각 그 문제에 개입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또한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 전당대회에 나서 당 대표가 될 경우 그의 ‘전매특허’인 ‘이재명 사법 단죄’에 당력을 집중시켜 궁지에 빠진 여당의 탈출구로 삼으려 할 가능성도 높다. 한 전 위원장 또한 자신의 정치적 명운을 걸고 이 대표의 재판 지연 사태나 대통령 ‘형사상 소추’의 광의적 해석 추진을 끝까지 저지할 것이다. 이렇게 여권이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전 위원장을 쌍두마차로 앞세워 ‘이재명 사법 단죄’에 국정 동력을 총결집시킬 경우 이 대표와 민주당으로서도 의회권력만으로 막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자칫 이재명 대표는 역대 대선 후보 가운데 가장 불운한 정치인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지난 20대 대선에서 16,147,738표(19대 대선 문재인 대통령 13,423,800표 득표)를 기록, 역대 야당 대선후보 가운데 가장 많은 득표수를 올렸고 22대 총선에서도 범야권 192석의 상징적 대표가 돼 의회권력까지 장악했지만 정작 대선 출마가 좌절돼 영어의 몸이 된다면 이 대표의 모든 정치적 영화는 안타깝게도 ‘사법의 단죄’ 앞에서 끝나게 된다.
지금 이재명 대표에게는 그 어떤 정치적 조언도 잘 들리지 않을 것이다. 대권은 둘째 치고 재판이 재판대로 진행될 경우 자칫 10년 이상 무기징역의 단죄를 그 자신이 홀로 감내해야만 한다. 누가 대신 감옥살이를 해주지도 않는다. 지금 이 대표의 권력은 최고정점에 달해 있지만 과연 그 ‘영화’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참모들도 입을 꾹 닫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표는 또 다시 ‘외통수’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서고 있다. 최근 민주당은 당 안팎에서 제기된 ‘이재명 맞춤형’ 논란에도 당헌·당규 개정을 1차 마무리했다. 6월 12일 국회의장·원내대표 경선에 권리당원 투표 20%를 반영하는 당규 개정안을 의결한 데 이어, 오는 17일에는 ‘대선 1년 전 당대표 사퇴’ 규정에 예외를 두는 당헌 개정안도 최종 의결할 방침이다. 민주당은 이 대표 앞에 그 어떤 장애물이 놓이더라도 반드시 그것들을 제거하고 대선장에 그를 끌어다 놓으려고 한다. 이 대표도 그 모든 ‘무리한’ 시도들을 사실상 용인하며 한 배에 몸을 싣고 있다.
사실 이 대표만큼 ‘사법의 단죄’를 두려워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오히려 더 기세등등하게 사법부와 ‘맞짱’을 뜰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갈대처럼 살아갈 필요도 있다. 미래를 위해 차기 당 대표에 불출마하고 잠시 내려놓는다면 겉보기엔 갈대처럼 연약해 보이겠지만 거센 바람이 불어도 꺾이지 않을 수도 있다. ‘법대로’보다 국민의 ‘마음’에 의지하고 갈대처럼 바람에 몸을 맡기다 보면 보이지 않던 길도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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