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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성기노 칼럼] 윤석열의 ‘민정수석 부활’은 검찰정치 시즌 2 본문
윤석열 대통령은 오는 5월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을 한다. 대통령실은 ‘질문 주제는 무제한’이라며 집권 이후 최고의 의욕을 보이고 있지만 별로 기대감은 없다. 22대 총선 대참패 이후 국민들의 ‘자기 쇄신’ 요구를 귓등으로 들었고 결국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의 영수회담도 성과 없이 끝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총선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전향적인 자세로 ‘무제한 질문’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등 열린 자세로 국정운영을 할 것이라며 기대를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애초에 하지 않는 게 낫다. 여야 영수회담이나 취임 2주년 기자회견보다 더 주목해봐야 할 핵심 이슈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민정수석의 부활이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 이후 “민심 청취 기능이 너무 취약해 대통령에게 민심 전달이 잘 안 된다고 해서 고심 끝에 복원하게 됐다”며 ‘구차한’ 변명까지 덧붙인 것을 보면 민정수석을 부활하면서 주변 눈치도 엔간히 본 모양이다. 윤 대통령이 이렇게 조심스럽게 민정수석 부활을 평소의 그답지 않게 ‘소심하게’ 선언하는 것을 보면 뭔가 뒤가 구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인 2021년 7월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민정수석실 문제는 검사시절부터 꾸준히 생각했다. 국민과 소통하는 민정 기능은 다른 곳에 두면 된다”며 폐지의 소신을 밝혔다. 그 후 2022년 3월 대통령 당선인 시절에도 “민정수석실은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털기와 뒷조사를 했다. 이제 그런 잔재를 청산하겠다”며 거듭 폐지 의사를 밝혔다.
그 뒤 2년이 지나 총선에서 대패한 뒤 그가 찾은 국정 운영 동력의 재확보 솔루션은 대통령실 개편도, 야당과의 협치도 아닌 민정수석의 부활이다. 윤 대통령이 민정수석 부활에 얼마나 매달렸는지는 그의 부활 논리를 보면 알 수 있다. 정기적인 대통령 기자회견이나 야당 대표와의 회담을 ‘정치 관행’에 따라 실천해온 역대 정권의 최소한의 협치 방식은 따르지 않으면서 민정수석 부활을 선언할 때는 “모든 정권에서 그 기능을 둔 이유가 있어서 한 건데 (현 정부에서) 민정 업무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저도 고심했고 복원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역대 정권의 ‘선례’에 기댔다.
또한 윤 대통령은 “지난번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회담 때도 민심 청취 기능을 지적하면서 일선 민심이 대통령께 전달이 잘 안 되는 거 같다고 해서 민정수석실 복원을 이야기한 바 있다”고 밝혀 야당 대표의 협조 ‘단도리’도 미리 쳐두는 치밀함도 보였다.
정치 신인으로서 기존 정치관행을 깨려고 청와대까지 옮긴 결기는 어디 가고 이제 와서 역대 정권의 사례를 언급하는지, 궁색하다 못해 절박함이 느껴진다. 이재명 대표에게까지 직접 협조를 구할 정도로 민정수석 부활이 그토록 국정운영 쇄신의 핵심이 되는지도 알 길이 없다.
윤 대통령이 이토록 대선 공약을 폐기하면서까지 민정수석 부활을 통해 얻으려는 정치적 이익은 무엇일까. 윤 대통령은 민정수석 부활을 통해 그의 국정운영 주요 ‘나침반’이었던 ‘검찰 정치’의 시즌 2를 선언한 것일 뿐이다. 정진석 비서실장이나 홍철호 정무수석 임명은 ‘심복’ 김주현 민정수석 자리를 깔아주기 위한 일종의 빌드업이었다. 대통령실 넘버원이 비서실장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 정치를 잘 아는 정진석을 앉히긴 했지만 이번 김주현의 임명으로 대통령실 ‘왕수석’은 누가 봐도 김 수석의 차지다.
윤 대통령이 왜 그토록 민정수석에 집착하는지는 그 공식적인 ‘임무’를 봐서도 알 수 있다. 민정수석실은 국정 현안에 관한 민심 청취 기능(민정)과 대통령실 내부 감찰 기능(공직기강), 대통령실 외부 행정기관에 대한 사정 기능(반부패), 대통령의 법률 보좌 기능(법률) 등의 일을 한다. 민정수석실의 기능은 대통령이 휘두를 수 있는 모든 국정운영 파워의 주요 에너지원임을 알 수 있다.
박정희 정부 때인 1968년 신설된 민정수석은 직급은 차관급이지만 검찰 경찰 국정원 국세청 국군방첩사령부 등 이른바 권력기관 인사와 업무를 조율하는 등 대통령의 권력을 ‘총괄’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한 뒤 맨 먼저 그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문재인에게 민정수석을 맡긴 것만 봐도 그 직책의 무게감을 알 수 있다. 문재인은 민정수석을 2번이나 지내면서 대한민국 권력의 흐름을 누구보다 세세히 파악할 수 있었고 그것이 향후 대통령 권좌에까지 오른 자신만의 경쟁력이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대통령의 힘이 곧 민정수석의 힘이고 민정수석의 힘은 ‘인사’에서 나온다. 민정수석의 주 임무가 민심 청취이고 그것을 윤 대통령이 직제 부활의 주요 배경으로 설명했지만 민심 파악이 안 돼서 여당이 선거에서 대패했다고 믿는 국민들은 없다. 민정수석은 민심 청취보다 주요 공직자들의 ‘사정 기능’을 공식적으로 수행하기 때문에 관가에서는 ‘저승사자’로 불리기도 한다.
민정수석이 관료들이나 심지어 정치인들의 생사여탈권까지 쥐고 있다 보니 그가 자의적으로 타깃을 잡아 털기 시작하면 그 어느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 역대정권이 검사를 주로 민정수석에 기용한 까닭도 그들이 민심 청취에 기막힌 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주요 공직자들의 비리나 약점을 그 누구보다도 ‘쉽게’ 찝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윤 대통령의 ‘검찰조직통제사’로 임명된 김주현 민정수석의 ‘특기’는 바로 인사였다. 문재인 정부 시절 민정수석을 지낸 바 있는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김주현 신임 민정수석이 ‘기획통’이라는 보도가 잇따른다. 대국회 업무와 수사 지휘에 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법무부 검찰과장과 검찰국장을 역임한 ‘인사통’이라는 점은 간과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이 권력을 차지한 뒤 검찰을 앞세워 국정을 마음껏 요리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윤 대통령은 검찰 재직 시 쌓아둔 인맥들을 국정의 주요 포스트에 박아두고 일방독주를 시전했다. 그리고 그 검찰 정권 독주의 후폭풍이 바로 총선 참패였다. 힘이 있을 때는 굳이 민정수석이라는 거추장스러운 ‘정거장’이 필요 없었다. 윤 대통령 한 마디에 자신이 심어둔 검찰 수족들이 군말 없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당이 총선에서 대패한 뒤 대통령의 검찰 조직 내 말발은 현저히 떨어졌고 권력의 향방에 본능적인 촉수를 가지고 있는 기회주의적인 검찰이 ‘윤석열 힘 빠졌다’며 슬슬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상황이 되자 윤 대통령으로서는 새로운 검찰 통제의 공식적인 기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법조계에선 민정수석에 ‘인사통’ 김주현 수석을 발탁한 것을 두고 “대통령실이 곧 있을 검찰 인사를 제일 중요하게 고려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힘 빠진 권력의 멱살을 잡는 데 가장 능통했던 윤 대통령이 이제 자신이 그런 위기에 처하자 대선 공약 파기 비판도 무릅쓰고 부랴부랴 민정수석을 만들어 ‘자기방패’로 삼은 셈이다.
윤 대통령의 민정수석 부활은 총선에서 그토록 국민들에게 두들겨 맞아가며 ‘자기 쇄신’과 야당 협치를 강요받았지만 결국 만사 도루묵임을 말해준다. 대통령은 통치 결심에 따라 얼마든지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인물도 요직에 기용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총선의 민의가 협치와 통합이 주요 메시지였고 그것을 존중할 의사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민정수석에도 얼마든지 중립적이고 직언을 할 수 있는 ‘통합적 인사’를 기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인사가 만사’라는 관점에서 보면 윤 대통령이 이번에 검찰 출신 인사를 민정수석에 기용한 것은 그의 국정운영 방향이 여전히 검찰을 등에 업은 ‘캐비닛 정치’(“검찰이 캐비닛에 보관해 온 민감한 정보를, 필요한 때에 꺼내 정적을 탄압하고 정치에 개입하기 위해 활용하는 것은 더 이상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조국 3월 25일)에 집착할 것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윤 대통령은 총선에서 그토록 참담한 치욕을 겪었음에도 여전히 검사들을 앞세운 검찰 정치에 아둔하게 집착하고 있다. 총선에서 드러난 국민들의 분노와 절망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가 제 살길 찾는 데는 본능적인 생존의식을 발휘하는 대통령의 사심 정치가 바로 민정수석의 부활로 나타난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트리거가 됐던 우병우 민정수석과 정권교체의 방아쇠가 되고 말았던 문재인 정권의 조국 수석에 이어 윤석열 대통령의 김주현 민정수석 임명은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 민심은 안중에도 없고 권력의 맛에 취해버린 윤 대통령의 권좌에 대한 집착은 또 다른 비극을 재촉하는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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