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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원이 3원으로 된다고요?" 민주당이 화폐개혁 군불 지피는 까닭

성기노피처링대표 2019. 4. 17.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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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2월 14일 한국은행 관계자가 화폐박물관에서 2차 화폐개혁 당시 찍어낸 최고액권인 1천원(1천환으로 통용)과 현재의 최고액권이 5만원권을 들어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은 설립된 이후 처음 실행한 리디노미네이션(화폐 액면단위 변경)인 제2차 화폐개혁(1953년 2월 15일)이 2013년에 60주년을 맞이했다고 밝혔다. 

 

OECD 회원국 중 1달러와 교환비율 4자리는 원화뿐

어느 날 3000원이 30원 또는 3원이 된다면 어떨까요? 그냥 계산하기 편하게 우수수 붙어 있는 0을 떼내는 거죠. 이렇게 화폐 단위를 낮추는 것을 ‘리디노미네이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 이런 얘기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여행할 때 우리나라 화폐단위가 커서 환율 계산할 때 불편하고, GDP 세계 12위의 경제 위상에도 맞지 않다는 지적이 그동안 계속 있어왔습니다. OECD 회원국 중 1달러와의 교환비율이 4자리인 나라는 우리나라뿐입니다. 하지만 반대 여론도 꽤 되는 것 같습니다. 생활에 당장 불편한 일도 많이 일어날 것이고요. 그럼에도 우리 경제가 더 탄탄해진다면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은 리디노미네이션을 가지고 우리 경제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리디노미네이션이 그야말로 논의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이 연구는 꽤 오래전에 해 놓은 게 있습니다.”

지난 3월 25일 국회 기재위 업무보고에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말한 공식 멘트입니다. 화폐를 찍어내는 국가기관 수장이 이 정도 발언을 했다면 리디노미네이션이 선뜻 우리 곁으로 다가올 것만 같습니다. 왜 한국은행 총재가 국회 공식석상에서 이런 답변을 했을까요?

이 총재가 갑자기 한 말은 아니었고요. 여당인 민주당의 이원욱 의원이 이 총재에게 리디노미네이션 필요성에 대한 질문을 던져 ‘자신이 듣고 싶었던 대답’을 이끌어낸 것이 정확합니다. 이 총재의 이날 멘트 하나로 경제계에서는 “민주당과 한국은행이 물밑으로 화폐개혁을 벌써 논의하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민주당에서 리디노미네이션 이슈를 국회를 통해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원욱 의원은 화폐개혁을 추진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아마 민주당이 이원욱 의원을 내세워 화폐개혁 이슈를 밀어붙이려고 하나 봅니다. 민주당 최운열 의원도 이에 대해 “우리 당에서도 적극적으로 정책위 차원에서 검토한다든지, TF를 구성한다든지 해서 화폐단위 변경이 가져오는 장점·단점을 다 들춰내 놓고 토론해봐야 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3월 25일 오전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 전체회의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민주당 이원욱 의원의 화폐개혁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변을 했다. 




내년 총선 앞둔 민주당이 화폐개혁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까닭은...

실제로 여당은 관련 공개 토론회를 계획하는 등 화폐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원욱 의원실 측은 리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에 대해 ‘토론회조차 진행된 적이 없었다’며 그것을 추진할 의사를 밝히고 있습니다. 국회에서 화폐개혁 관련 토론회가 열리는 것은 5만원권 도입여부를 두고 논쟁이 뜨거웠던 2005년 이후 처음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리디노미네이션을 하게 될 경우의 장.단점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 논의가 여당을 통해 먼저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여당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기필코 승리를 해야 하는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청와대 또한 문재인 대통령의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서라도 총선 승리는 절대목표입니다. 그런데 선거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국민들의 심리와 기대를 표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국민들을 기분 좋게 해주는 뭔가를 여당이 만들어내야 합니다. 지금은 남북관계 정체, 경기침체 등으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50%대 밑으로까지 떨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래저래 여당은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 않고 여당과 청와대를 붐업 시킬 만한 것을 찾아야 합니다.

정재계에서는 여당의 화폐개혁 추진을 일단 이런 연장선상에서 보고 있습니다. 여당은 화폐개혁을 통해 경기를 끌어올릴 촉매제를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 이슈를 정부가 아닌 여당이 주도하는 것은, 국회에서 만만하게 먼저 논의를 해서 시험 삼아 띄워보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황의 터널에서 벗어나기 위해 화폐개혁이 가진 인위적 경기 부양 효과를 노리고 여당이 정부 대신 총대를 메고 나선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3000원이 3원 되면 물가가 올라간다고요?

의도가 어떻든 간에 화폐개혁을 추진해서 우리 경제가 좀 더 튼실해진다면야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여당은 화폐개혁을 진짜 원하고 있는 것일까요? 여당의 기대를 한번 보겠습니다.

국회에서 가장 최근 화폐개혁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던 것은 5만원권 도입여부를 두고 논쟁이 뜨거웠던 2005년입니다. 이보다 앞선 2003년에는 한은이 1000원을 1환으로 바꾸는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하자는 내용의 화폐제도 선진화 방안을 노무현 정부 인수위원회에 보고하기도 했습니다. 이듬해 민주당은 이 같은 방안을 담은 한국은행법 개정안을 국회에 발의했죠.

당시 한은은 화폐개혁 추진에 대해 “거래 편의성과 후진국 이미지 개선” 등을 꼽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에 비해 화폐의 액면 단위가 너무 작아 국민 순자산이 1경원 대로 기록되는 등 표기나 거래에 불편함이 따른다는 지적입니다. 이와 함께 지하 경제 양성화도 리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주요 논리였다고 합니다. 화폐개혁을 통해 숨어 있는 자산들이 시장에 돌게 만들어 경제에 보탬이 되게 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 자체만 놓고 보면 화폐개혁의 불편함을 무릅쓸 만큼 이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지난 2013년 2월 14일 한국은행은 제2차 화폐개혁당시(1953년 2월 15일) 찍어낸 화폐를 공개한 바 있다. 




하지만 이 논의는 말 그대로 구두선에 그쳤습니다. 화폐개혁이 더 이상 추진되지 못했던 가장 큰 요인은 경제의 컨트롤타워인 기획재정부의 반대 때문이었습니다. 기재부는 화폐개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우려했습니다. 예를 들어 화폐 단위를 1000대 1로 바꾸면 현재 950원짜리 물건은 0.95원이 돼야 맞지만, 현실에서는 1원으로 오를 가능성이 커집니다. 계산상 복잡하기 때문에 0.95원을 더 내리지는 못하고 0.5원을 더 올려 1원에 거래될 가능성이 많은 것이죠. 실생활에는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지만 기업의 장부거래 등에 있어서 이 문제는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닙니다. 또한 5억 5000만 원짜리 집이 55만 원이 되면 갑자기 집값이 싸 보여 60만 원으로 오를 수도 있다고 합니다. 심리적으로 싸다는 생각 때문에 큰 돈도 우습게(?) 보여 더 많은 돈을 지불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결국 물가가 올라간다는 얘기입니다.

이 때문에 리디노미네이션을 할 경우 물가 상승은 불가피한 것이죠. 그렇지 않아도 한국의 물가가 외국에 비해 높다는 체감물가 불만(이 문제도 향후 한번 다뤄보겠습니다)이 상당한데 리디노미네이션으로 더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면, 여론은 이에 대해 그리 긍정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기서 좀 복잡한 논쟁이 하나 불거집니다. 리디노미네이션을 할 경우 이렇게 물가가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즉 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날 수 있죠. 인플레이션이란 통화량의 증가로 화폐가치가 하락하고, 모든 상품의 물가가 전반적으로 꾸준히 오르는 경제 현상을 말합니다. 인플레이션에는 여러 가지 유발 효과가 있는데요. 앞서 본 것처럼 리디노미네이션을 통해서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민주당이 바로 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기 위해 화폐개혁을 단행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왜일까요?

사실 인플레이션의 효과를 볼 때, 물가상승이 “안정적으로만” 이루어진다면 시장에서의 수요와 공급 활동을 촉진시켜서 전체 경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즉 침체된 경기를 ‘살짝’ 살릴 수 있는 마중물 정도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최근 재점화하고 있는 화폐개혁 주장이 이런 인플레이션 효과를 이용하기 위한 것이란 주장도 하고 있습니다. 좀 정치적으로 해석해보면, 경기 침체가 예상보다 심각하게 이어지면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당이 표밭갈이를 위해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을 쓰려고 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리디노미네이션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잘만 활용된다면, 물가 지표가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카드로 유용할 것이라는 얘기죠.






인플레이션 유발 효과로 디플레이션을 잡는다구요?

이 인플레이션 효과는 디플레이션을 잠재울 것이라는 기대감도 반영돼 있습니다. 최근 국내 소비자물가는 디플레이션에 대한 위기감을 키우고 있습니다. 디플레이션은, 통화량의 축소에 의해 물가가 하락하고 경제활동이 침체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현재 우리 시장은 소비자물가와 체감물가의 간극이 커지고 있습니다. 경제 심리 위축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실제로 지난 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4%에 그쳤습니다. 지난해 9~10월 2%대로 올라섰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같은 해 12월 1.3%로 추락하더니, 올해 1월(0.8%)과 2월(0.5%)에 이어 3개월째 0%대 상승률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은행 목표치인 2%에 크게 못 미치는 수치입니다. 하지만 체감 물가 상승률은 2%대로 소비자물가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가 디플레이션 국면에 접어든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만한 대목입니다. 경기 위축 단계에 벌써 돌입했다는 분석이 많기도 합니다. 이런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대책으로 화폐개혁 카드도 여당에서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당의 이런 시도와 어찌보면 ‘불장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습니다. 리디노미네이션으로 물가 지표를 어느 정도 개선하는데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것이 경기 회복을 위한 근본적 처방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지 수치적 변화, 통계를 위한 대증요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숫자로 국민들을 현혹시키기 위한 ‘꼼수’라는 얘기죠.

특히 경기 침체가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교롭게도 여당이 리디노미네이션을 들고 나서다 보니 타이밍 상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은 모양새가 되었기 때문에 그 진정성을 일단 의심을 해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디플레이션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진지하게 논의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경제는 디플레이션의 어두운 그림자를 맞이하고 있다. 사진은 썰렁한 남대문 시장 모습. 




50만원짜리 아파트를 사는 그날?

문재인 정부가 야심차게 준비했던 ‘국민경제자문회의’의 1기 부의장을 지낸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이에 대해 “전체적으로 불확실성이 높은 상태에서 또 하나의 큰 불확실성을 가미하는 건데, 그것이 가져올 부작용이 더 크다고 본다”라며 부정적인 시각을 나타냈습니다. 

화폐개혁의 키를 쥐고 있는 사람 중 한명인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국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화폐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질문에 “필요할 때는 됐다고 본다”고 답했던 적이 있습니다. 다만, 정치권에서 먼저 논의해야 할 사안이라며 확대 해석에는 선을 긋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이 총대를 멜 일은 아니지만 정치권에서 논의한다면 들어줄 용의가 있다는 정도로 해석됩니다. 논의 주체가 선거를 앞둔 여당이라는 점이, 화폐개혁의 장점을 희석시키고 그 진정성도 의심받고 있는 것 같네요.

요즘 카페에 가보면 아메리카노 한잔에 3.5, 즉, 3500원이라는 뜻으로 표기하는 곳이 제법 있습니다. 이미 시장에서는 이렇게 화폐단위를 줄여 쓰는 곳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매일 사 마시던 아메리카노 3000원짜리를 3원에 사 먹는다고 하면 부자가 된 것 같아 이전보다 경계심 없이 돈을 더 많이 쓸 거 같기도 하네요. 하지만 공식적으로 화폐 단위를 바꾸는 것은 경제나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히 큽니다. 아무래도 사회적 공감대가 우선 마련돼야 하겠죠.

사실 외국 나가서 달러나 파운드 계산할 때 우리 돈이 조금만 해도 수백만 수천만 단위로 올라갈 때 기분이 좀 묘하긴 합니다. 괜히 우리가 더 약한 나라라는 생각도 들고요. 이런 불편한 마음을 생활 속에서 좀 바꿔보려고 해도, 그 안에는 정치와 경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50만원짜리(5억원의 리디노미네이션) 아파트를 사는 날이 올까요? 그래봐야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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