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경제가 어렵다고요?" 본문

정치

"경제가 어렵다고요?"

성기노피처링대표 2019. 4. 8. 17:34







728x90
반응형

 

요즘 시장을 가든지 어디를 가도 “정말 경기가 없다”는 말이 자주 들립니다. 하지만 야당 의원들이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이 많다”고 질의를 하면 정부 관계자들은 “근거를 대라”며 맞서는 게 다반사입니다. 실제로 ‘경제가 어렵다’는 말은 ‘배가 고프니 밥 먹어야겠다’는 말만큼 우리들의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것은 아닌지, 저도 의구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나라경제가 이만큼 부강해졌으면 그리 나빠진 것은 아니겠지’ 정도의 위안을 삼으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겠죠.

그런데 이 ‘경제가 어렵다’는 말 속에는 다분히 정치적 편향성도 들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경제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정부 여당 관계자들이야 ‘펀드멘털도 괜찮고, 감기 정도 걸린 것인데 중병을 앓는 것처럼 지적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야당 입장에서는 ‘시장에 나가서 상인들 한번 만나 보라. 지역구 가면 대부분 ’죽겠다‘고 아우성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이 간극은 너무나도 커서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엄살을 넘어 정치적 공세 내지는 왜곡으로 받아들입니다. 반면 야당 입장에서는 ‘자신들 보기 편한 자료만 인용하는 불통정권의 극치’라고 맞받아칩니다. 이 과정에서 ‘악마의 통계’라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객관적인 수치통계가 자의적으로 해석되기도 하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3월 13일 “그동안 계속 감소하던 숙박·음식업 취업자가 소폭이나마 21개월 만에 증가로 전환한 것은 의미 있는 변화”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홍 부총리는 이날 여의도 수출입은행에서 열린 제10차 경제활력대책회의 모두발언에서 “2월 고용지표를 전체적으로 보면 13개월 만에 취업자가 20만명대로 회복된 점은 다행스러운 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홍남기 부총리의 '근자감'

이날 통계청이 발표한 2월 고용 동향을 보면 취업자는 1년 전보다 26만3천명 늘어 지난해 1월 이후 13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고 합니다. 숙박·음식점업 취업자 수는 1천명 늘며 2017년 6월 감소하기 시작한 뒤 처음으로 증가 전환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홍 부총리는 “노동시장의 활기를 보여주는 경제활동 참가율이 상승하면서 실업률과 고용률이 동반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늘어난 취업자가 대부분 세금으로 만든 노인들의 단기 알바(40만명)이고, 나라경제의 허리인 3040세대 일자리(-24만명)가 산업의 핵심인 제조업에서 크게 감소한 것은 지적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홍 부총리 입장에서야 자신에게 유리한 통계 위주로 말을 하는 게 당연한 것이겠지요. 그런 부총리로부터 경제현안 보고를 받으면서 문재인 대통령도 낙관적인 평가를 내렸다고 합니다. 올 들어 경제가 여러 측면에서 개선된 모습을 보여 다행스럽다는 것입니다. 국가 경제가 견실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문 대통령과 경제팀의 이런 경제현실 인식과 발언은 국내외 전문기관들이 한국의 경제지표와 기업들에 대한 경고음을 잇달아 울리는 것과 동떨어져 있어 우려를 더 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투자ㆍ생산ㆍ고용 등 핵심지표가 부진하고 수출까지 반도체 수출 저하로 넉달째 감소하는 데도 정부 홀로 낙관론을 펴고 있다는 지적도 뼈아픕니다.

외국의 신용평가사들도 한국 경제에 경고음을 울리고 있습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S&P는 “한국 기업들의 신용도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하락세에 접어들었다”며 올해 한국의 간판기업들이 대거 신용등급 강등 위험에 놓일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2015~2017년 꾸준히 개선됐던 신용도가 악화로 돌아섰다는 것입니다. 앞서 무디스는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지난해 2.7%에서 올해 떨어지며 주요 20개국(G20)에서 최저 수준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정부여당과 야당의 경제를 보는 시각 차도 상당히 크다. 사진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4월 3일 최저임금 및 탄력근로제 관련 입법을 요청하기 위해 국회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를 찾은 뒤 자리에 앉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연합뉴스
정부여당과 야당의 경제를 보는 시각 차도 상당히 크다. 사진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4월 3일 최저임금 및 탄력근로제 관련 입법을 요청하기 위해 국회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를 찾은 뒤 자리에 앉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연합뉴스
 

여야의 경제를 보는 시각차는 상당히 크다. 



외국 신용평가사들의 경고 신호

사실 신용평가사들은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나라에 먼저 거시경제의 침체 위험성을 알립니다. 그 다음 주요 기업들의 신용등급 하향을 예고하죠. 정부-기업으로 이어지는 단계별 경고입니다. 신용등급 하락 경고가 개별 기업 수준에 도달했음은 경제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집니다. 당장 호들갑을 떨 정도는 아니지만, 국내 경제 지표 중 핵심 몇 개가 부진한 게 팩트입니다. 국내기업들도 투자를 꺼리고 있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3월 1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예금은행의 기업예금 잔액은 425조8778억원으로 2017년 말에 비해 6.8% 증가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기업예금이 400조원을 넘은 것은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라고 합니다. 반면 가계 은행예금 잔액은 3.1% 증가한 618조4422억원이었습니다. 기업예금 증가율이 가계 증가율보다 3.7%포인트 높은 셈입니다.

기업은 인적 자원 양성이나 생산 설비 확충, 다양한 연구 등에 많은 투자를 해야 보다 더 좋은 상품을 만들어 큰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기업이 투자보다 자본을 쌓아두는 데만 집중하면 일자리 확충이 둔화되고 국가경제 전체의 활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투자가 아닌 예금에 더 골몰하는 모양새는 분명 좋은 시그널은 아닙니다. 특히 그 이유가 외국 신용평가사들이 경고한 국내 기업의 ‘부진’을 전제로 한 것이라면 더 문제가 심각합니다.

‘경제가 어렵다’는 논란에 대해 길게 나열한 까닭은 최근 국책연구기관 KDI가 내놓은 ‘진단서’를 우리가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는 뜻에서였습니다. KDI는 4월 경제동향 보고서에서 “최근 대내외 수요가 위축돼 경기 부진이 우려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분명히 ‘부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지난해 11월 KDI가 경기 ‘둔화’라는 표현을 처음 꺼낸 지 5달 만에 수위를 더 높여 ‘부진’이라는 더 부정적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KDI는 내수 경기를 보여주는 각종 지표가 전반적으로 부진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먼저 소비를 살펴보면, 지난 1~2월 소매판매액 증가율은 평균 1.1%로, 전년도 같은 기간인 4.3%보다 크게 줄었습니다. 2월 설비투자도 26.9% 감소해, 전달에 비해 감소 폭이 커졌습니다.우리 경제의 버팀목이던 수출도 반도체 등 대부분 품목에서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고 KDI는 평가했습니다. 3월 수출액은 1년 전보다 8.2% 감소했고, 2월 수출물량지수도 감소세로 전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가운데 국제기구나 신용평가사 등도 올해 우리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잇따라 하향 조정하고 있습니다. 신용평가사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와 투자은행 노무라는 올해 한국의 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2.5%에서 2.4%로 내렸습니다. 우리 정부가 내놓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인 2.6~2.7%를 밑도는 수치입니다. 앞서 국제통화기금, IMF도 한국이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야만 지금의 목표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다고 평가해, 곧 내놓을 경제전망에서 기존의 성장률 전망치를 낮출지 주목됩니다.

 

경기의 핵심지표들이 몇 달 계속 하방 국면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초 평일 저녁시간 부산 자갈치 시장의 모습이다.


 

KDI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까닭

자, 지금까지 ‘경제가 어렵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을 정부 관계자들이 KDI의 진단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지 궁금해집니다. 무조건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정부 정책은 명확한 상황인식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정부의 경제정책이 성과를 내려면 경제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부터 견지해야 한다. 냉철한 현실 분석을 기반으로 정책을 숙고해야 대처가 가능하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지표만 강조해 발표하거나, 그것에 꽂혀 다른 부정지표들을 애써 모른 척 한다면, 그래서 현재의 상황만 슬쩍 모면하려 한다면 그게 우리 경제에 무슨 도움이 될까요?

‘경제가 어렵다’는 클리셰는 더 이상 정부를 막연히 비판하는 진부한 표현이 아닙니다. 그것의 구체적인 팩트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어렵다’는 말을 인식하고 있는 정부는 당장 6조원 규모의 추경을 통해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합니다. 더 장기적인 대책도 나올 수 있습니다. 바로 금리인하입니다. 아직까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금리 신호는 분명합니다. 금리 인하는 검토할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현재의 경제 어려움을 가리려는 ‘위장막’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금융가에선 하반기에 금리 인하가 단행될 것이라는 기대섞인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추경이 단기적인 어려움 극복이라면 금리인하는 장기적으로 정부가 만지작거리고 있는 또 다른 카드일 것입니다. 지난 3월 중순 국제통화기금(IMF)도 한국의 경제성장이 중단기적으로 ‘역풍’을 맞고 있어 정책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권고했습니다. 상당한 규모의 추경과 실질적인 금리 인하를 주문한 바 있습니다.




 

이해찬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얘기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다"

역대 정권에서 정부여당의 경제정책 실정을 공격할 때마다 정부도 ‘경제는 심리다’며 잘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심리라는 것이 다분히 자의적인 것입니다.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할 여지가 많죠. 하지만 최근의 경기지표는 그런 아전인수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 같습니다. 정부가 경제지표에 눌려 절망적으로 봐도 안 되겠지만, 지나치게 낙관하거나 현실을 왜곡하면 문제를 치료할 기회를 놓치고 경제는 더 악화될 것입니다. 경제는 심리인데 그게 바로 정책입안자들의 객관적인 심리였으면 합니다. 정치색이 묻어나지 않는 순수한 경제심리 말이죠. 대통령에게 꿀단지같은 말만 늘어놓을 게 아니라, 경제관료로서 용기있게 직언을 해야 합니다. 홍남기 부총리가 임명됐을 때, 기재부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한 전직 고위관료는 "예스맨의 전형이 수장이 됐다. 이제 이 정부에 더 이상 신뢰 있는 경제정책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말을 제게 한 적이 있습니다. 이 전직관료의 우려가 실제로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지난해 10월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경제 문제는 언제나 어렵다.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얘기를 제가 지금까지 공직 생활하면서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라고 일갈한 바 있습니다. 지금 경제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똑똑한 기재부 관료들도 이런 생각으로만 무장돼 있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 저잣거리에 나가 서민들의 경제심리를 한번이라도 제대로 들어보았으면 합니다. "경제가 어렵다고요?"라고 되묻지만 마시고요. 

728x90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