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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노의 정치 피처링
영국 97세 필립공이 불지핀 논쟁..."노인"은 자동차 운전 허용하면 안 된다? 본문
영국에서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92)의 남편 필립공(97)이 승용차를 몰고 도로로 나올 때마다 관심이 쏟아진다. 여왕의 남편이 직접 운전대를 잡고 차를 운전한다는 것 자체가 의아하게 받아들여질뿐더러 그가 100세를 불과 몇 년 앞둔 고령자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특히 지난달 필립공이 몰던 차가 도로에서 다른 차량을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한 이후 그가 계속 운전대를 잡도록 놔둬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영국에서 일었다.
고령 운전자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는 영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서도 제기된 상태다. 기대수명이 급속히 늘어난 가운데 베이비붐 세대가 고령화되면서 고령 운전자가 늘어났고,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도 덩달아 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운전은 나이에 상관없이 계속 누릴 수 있는 권리일까? 제한돼야 한다면 과연 몇살까지 운전이 허용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리스 왕족 출신으로 어릴 적 영국으로 이주해 1947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결혼한 필립공은 지난달 17일(현지시간) 노퍽 카운티의 왕실 별장 인근 도로에서 다른 차량을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필립공이 운전하던 랜드로버 차량은 전복됐고, 다른 차량은 길가 숲에 부딪혔지만 두 차량의 탑승자들은 모두 큰 부상을 입지 않고 무사했다. 필립공은 사고 원인에 대해 “햇빛에 눈이 부셔서 다른 차량을 미처 보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영국 언론은 전했다.
소식이 전해지자 영국인들 사이에선 왕족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놀라움과 함께 “필립공이 아직도 직접 운전을 한단 말인가?”라는 반응이 나왔다. 아무리 왕족이라고 하지만 100세를 내다보는 그가 운전대를 계속 잡도록 허용해서는 안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런 논란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듯 이틀 뒤 왕실 별장으로 새 랜드로버 자동차가 배달됐고 필립공이 별장 인근에서 새 자동차를 운전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가 안전띠를 매지 않고 운전을 한 것으로 나타나 또한번 논란이 일었다.
필립공은 과거 자동차 경주에 나가 상을 받을 정도로 운전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운전이 구설수에 오르면서 운전광인 그가 정작 운전면허를 취득한 적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영국은 1935년 처음 운전면허 시험이 실시됐는데, 1921년생인 필립공은 18살 때인 1939년 영국 해군에 입대했다. 의문이 제기되자 영국 왕실은 그가 운전면허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식 확인했다. 영국 법률상 운전면허 없이 운전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유일한데,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종종 손수 운전을 한다.
영국에서는 고령자 운전의 위험성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이미 진행 중이었다. 영국에서는 대중교통이 잘 갖춰지지 않은 지방 소도시나 시골 지역일수록 고령자들이 이동을 위해 직접 운전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영국은 2025년이 되면 운전면허를 보유한 85세 이상 고령자가 100만명에 도달할 전망이다. 나이가 들수록 시력이 퇴화하고 외부의 자극에 대한 반응속도가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령자의 운전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요 논거 가운데 하나가 이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나이가 많다고 운전을 제한할 이유는 없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적어도 영국에서는 사고 발생률로 치면 고령자보다는 젊은이들의 운전이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영국의 자동차 및 운전면허 관리 기관 ‘DVLA’(Driver and Vehicle Licensing Agency) 통계를 보면 지난해 영국에는 70세 이상 운전면허 소지자가 530만명이었고, 이 연령대 운전자가 일으킨 교통사고로 인한 피해자는 1만1245명으로 1000명 당 2명꼴이었다.
반면 17~24세의 운전자 280만명이 일으킨 교통사고 피해자는 4배가 넘은 1000명당 9명꼴이었다고 BBC는 보도했다. 정부가 사고 발생률 때문에 운전면허증을 박탈하려면 고령자보다는 젊은층이 먼저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고령자 운전에 대한 논란은 자동차 운전이 현대인의 일상생활이 된 데다 기대수명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등장한 현상이다. 젊은 시절부터 자동차 운전이 습관이 된 사람들은 나이가 들었다고 운전대를 놓을 이유를 별로 느끼지 못한다.
한국의 경우 고령자로 분류되는 65세 이상 인구는 2013년 602만여명에서 2017년 707만여명으로 크게 늘었다. 65세 이상 고령자 중 운전면허 소지자는 2014년 207만여명에서 2017년 279만여명으로 34%가량 늘었다. 이에 따라 65세 이상 운전자가 일으킨 교통사고 건수도 2013년 3만건 정도에서 2017년 3만7000여건으로 늘었다. 특히 75세 이상 운전자의 교통사고 발생률은 10년간 163%나 증가했다는 통계도 있다. 한국이 고령사회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다가가고 있는데 따라 생긴 현상이다.
이런 현상에 대응하기 위한 대응책도 속속 나오고 있다. 새해 들어 시행되고 있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75세 이상 운전자의 운전면허 갱신 및 적성검사 주기를 5년에서 3년으로 줄였고, 면허취득 또는 면허증 갱신 전에 반드시 면허시험장에서 2시간 짜리 교통안전교육을 받도록 했다. 고령자들이 자진해서 운전면허증을 반납하도록 하는 지자체도 등장했다. 부산이 지난해 전국 최초로 65세 이상 운전자를 대상으로 면허증 자진 반납 인센티브 제도를 도압한 이후 이와 비슷한 제도를 도입했거나 도입을 검토하는 지자체가 늘고 있다.
해외 각국도 일찌감치 고령 운전자 관련 안전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이 펴낸 자료를 보면 일본은 면허증 갱신 주기가 70세 미만의 경우 5년이지만 70세는 4년, 71세 이상은 3년으로 차등화 했다. 한국처럼 70세 이상 운전자가 면허를 갱신할 때는 따로 교육을 받아야 한다. 미국 역시 주별로 고령 운전자 면허갱신 주기를 짧게 하거나 교육 프로그램 수강을 의무화하고 자진 반납을 권유하고 있다.
호주는 80세부터는 매년 시력, 청력 및 각종 의학검사 결과를 면허관리청에 제출해야 하고 85세부터는 의학검사 외에 실제 도로주행 능력 시험을 매년 통과해야 한다. 영국도 70세부터는 매 3년마다 의학검사 결과를 제출토록 했다. 뉴질랜드에서는 아예 80세가 되면 운전면허가 자동으로 말소된다. 80세 이상 고령자가 운전을 하려면 2년마다 운전면허시험을 다시 봐야 한다.
성기노 피처링 대표(www.featu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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