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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의 죽음과 '한국에서 살기' 시가 남긴 것

성기노피처링대표 2017. 9. 7.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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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교수가 자살로 인생을 마감했다. 그와 인연은 없지만, 그의 죽음을 보면서 왠지 나도 그에 대해 일말의 '책임'이 있는 것처럼,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이 든다. 


1989년 '가자 장미여관으로'라는 시집이 나왔을 때, 입대를 앞둔 나는 당시 인기스타였고 교수였던 마광수의 시집을 사서 읽었다. 하지만 표현이나 내용을 보고 적잖이 실망했다. 그때만 해도 조정래나 이문열에 빠져 있던 나로서는 '이게 문학인가'라는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그 시집은 방 깊숙이 쳐박혔고, 나는 그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하지만 그 뒤 마광수의 행로는 '천로역정'이 아니라 '지옥역정'이었다. 1991년 출판한 '즐거운 사라'의 외설논란으로 그는 1992년 강의 도중 불현듯 구속됐다. 그리고 1995년 대법원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되어 연세대 교수직에서 해직됐다. 창작의 자유가 음란물이라는 형사적 시각에 걸려 영어의 몸까지 되는 치욕을 맛본 것이다. 그 후 1998년 특별사면을 받았고 2002년 복직했다. 하지만 문단의 시선은 싸늘했고, 심지어 같은 대학 교수들로부터 왕따를 당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2017년 등단 40주년을 맞아 시선집 '마광수 시선'을 펴냈으나 평생 그를 옭아맨 '음란물 작가'라는 주홀글씨의 저주에 신음하다가 결국 하늘나라로 떠나버렸다. 


마광수의 죽음은 우리 시대 사유의 죽음이다. 지적 다양성과 관용에 대한 타살이다. 그가 음란물 작가였는지, 자유로운 영혼의 작가였는지는 문단이 평가할 일이다. 하지만 한 교수의 창작물이 형사법에 의해 재단되고 유죄까지 받은 것은 분명 사상의 자유에 대한 권력의 침탈이었다고 본다. 


무엇보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지적 자유가 보장되는 교수집단으로부터도 그가 왕따를 당했다는 사실이다. '점잖은' 교수님들끼리 그를 손가락질하고 비웃었을 것이다. 마광수의 죽음은 그래서 더욱 슬프다. 지성의 최후의 보루, 바로 그 대학이란 곳에서 그는 지적인 타살을 당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 미래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우연히 그가 남긴 시 '한국에서 살기'를 읽고,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마광수는 홀로 외롭게 떠났지만, 남은 자들은 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한국에서 사는 게 떳떳하다'는 시를 꼭 쓰고 싶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성기노 피처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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