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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제정 낙태죄, 이제 떠나 보낼 때가 되었나요? 본문

사회

1953년 제정 낙태죄, 이제 떠나 보낼 때가 되었나요?

성기노피처링대표 2019. 4. 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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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폐지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낙태는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선택권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도 속에서 논쟁이 돼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건강권 행복추구권과 같은 인권적 관점에서도 바라보는 흐름이 생겨났습니다. 6.25전쟁 직후 갓 생겨난 낙태죄가 아직도 우리 사회의 형법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최근 낙태죄 폐지 찬반논쟁이 뜨겁습니다. 과연 이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할까요?


우리나라는 임신한 여성이 아이를 지울 경우 법적으로 처벌을 받습니다. 그 근원은 상당히 오래됐죠. 낙태죄는 지난 1953년 제정된 뒤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형법 제 269조와 270조에 규정돼 있습니다. 낙태를 한 여성은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합니다. 낙태를 하게 한 사람도 낙태를 한 여성과 똑같은 처벌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녀를 치상(致傷)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치사(致死)한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임신중절수술은 엄연하게 불법입니다. 그리고 수술을 하다 여성을 다치게 하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면 더 가혹한 형벌을 내리는 것이죠. 

하지만 이 처벌조항은 사실상 사문화돼 유명무실해졌습니다. 1960년대부터 시행된 가족계획사업(통칭 산아제한정책)으로 수많은 여성들이 낙태죄가 엄연히 존재함에도 임신한 아이를 지워야했습니다. 당국의 ‘방관’ 속에, 엄격한 법이 있음에도, 많은 여성들은 울면서 강제로 산부인과에 끌려가야 했습니다. 그 시대에는 산부인과가 어려운 곳이 아니었고, 낙태 수술 버스까지 돌아다니며 마음만 먹으면 인공임신중절이 가능했습니다. 그 시대 전체 가임 여성의 35%가 인공임신중절을 한 바 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이 많은 여성들 중의 대부분은 자신들이 원해서 인공임신중절을 한 것이 아닙니다. 정부의 산아정책으로 임신중절로 내몰리는 여성의 선택권과 인격권은 온데 간데 없었고, 그 과정에서 낙태죄는 사실상 기능하지 않는 처벌조항이 돼 버렸습니다. 이렇듯 우리의 낙태죄 논란은 1960년대 광범위하게,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져온 무분별한 임신중절수술을 바탕에 깔고 접근해야 합니다. 

그런데 낙태죄가 한번씩 우리의 관심을 끌었던 이유는 임신중절수술을 하다 적발된 의사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했기 때문입니다. 남들도 다 하는 임신중절수술을 일부 의사들이 적발돼서 유죄 판결을 받자 기능하지도 않는 법 때문에 자신들이 억울하게 범법자가 되었다며 헌법소원까지 내는 것이지요.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연간 약 17만 건의 낙태수술이 이뤄진다고 합니다. 절망적인 인구감소 시대에 참 어마어마한 생명의 씨앗이 사라지는 안타까운 순간이네요. 이 가운데 문제가 불거져 공개적으로 기소가 되는 경우는 연간 10여 건에 불과합니다. 피고인 80명 중 56명(70%)은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진이었습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하루 평균 낙태수술을 하는 건수는 3000여 건으로 추정됩니다. 낙태 사실은 당사자인 여성과 수술한 의사, 상대 남성 등 극소수만 알고 있어 셋 중 한 명이 고소하지 않는 한 드러나기 힘듭니다. 

그래서 고소인은 대부분 상대 남성 또는 남성 측 가족일 경우가 많습니다. 남편이나 남친 몰래 임신중절수술을 했다가 그 사실이 드러나 감정싸움으로 발전하면서 처벌까지 가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지요. 그런데 낙태 사실이 발각되면 여성과 의사는 처벌을 받지만 남성은 수술에 동의했다는 명시적 증거가 없으면 처벌을 면한다고 합니다.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남자에게 낙태 사실을 알리지 말라’는 게 암묵적인 요령이 통용되는 까닭도 이런 연유에서입니다. 하지만 상대 남성의 동의 여부가 확인되지 않으면 수술을 거부하는 산부인과 의사가 많습니다. 임신중절사실을 모르고 있던 남성측이 배신감에 고소를 할 경우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법원도 같은 낙태 여성이라도 남성 측 동의를 받으면 선고유예 처분을 하지만 동의 없이 한 경우 벌금형으로 더 무겁게 처벌합니다.

 


그런데 지난 5년간 80건의 낙태 판결에서 실형이 선고된 사례는 단 1건에 불과합니다. 낙태 시술을 받던 여성을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집행유예 형을 받은 조산사가 20대 여성을 또다시 낙태한 혐의로 2012년 부산고법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사례가 유일합니다. 이 사건은 피해자가 사망해 문제가 심각했고, 다시 ‘재범’을 한 경우라 실형을 선고받는 경우입니다.  나머지 피고인은 선고유예(51.3%)와 집행유예(36.3%) 등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렇듯 법이 엄연하게 존재함에도 처벌은 되지 않는 희한한 상황이 수십년동안 유지돼 왔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바탕에는 유교사회의 전통이 남아 있는 우리 사회의 보수적인 관습이 깔려 있습니다. 종교계 등에선 낙태죄가 폐지될 경우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태아의 생명권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여기에다 남녀차별의 전형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현행법상 낙태죄 처벌 대상은 '엄마'와 '의사' 뿐이며 '아빠'는 처벌되지 않습니다. 한 생명에 대해 공동책임을 지고 있는 아빠와 엄마이지만 낙태죄의 영역에서는 아빠는 법적으로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여성계에서는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을 하게 됩니다. 낙태죄 논란은 애초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선택권 외에 젠더 보혁갈등과 같은 복잡한 요소들이 눈덩이처럼 더 불어났습니다.
 
자, 이런 저런 이유로 낙태죄는 세월이 흘러 흘러도 그대로 유지돼 왔습니다. 그러다 지난 2012년 마침내 낙태죄 논란을 공론화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처벌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에서 재판관 4 대 4 의견으로 낙태죄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낙태죄로 처벌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입니다. 9명의 헌법재판관 중 6명이 위헌 의사를 밝혀야 특정 법률의 위헌 결정이 내려지는데, 낙태죄의 경우 그 수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입니다. 당시 헌재는 “태아의 성장상태와 관계없이 생명권의 주체로서 보호받아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보다 생명권을 중시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다시 7년이 흘렀습니다. 산부인과 의사 A씨가 지난 2017년 2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것입니다. 그는 69차례 임신부의 승낙을 받아 낙태했다는 범죄사실로 기소됐는데, 낙태죄가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헌재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떠밀리고 떠밀려 드디어 4월에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사실 7년전 헌재의 판결은 낙태죄 처벌조항에 대해 완전하게 합헌의 손을 들어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언젠가는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그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는 해석이 많았습니다. 우리 사회가 급격하게 보수에서 진보로 기울어지는 법조계의 우려도 담겨 있었죠. 당시 헌재는 태아의 생명권을 인정하면서도 낙태죄가 허용될 경우 나타날 사회적 부작용을 우려했습니다. 처벌조항이 사라지면 낙태가 만연해지는 생명경시풍조가 나타날 것이라고 봤습니다. 

헌재가 계속 낙태죄 완전 폐지를 주저하는 것은 그 처벌조항이 사라지는 순간 온갖 부작용들이 봇물 터지듯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고민이 깔려 있습니다. 여성계에서는 이번에야말로 위헌결정이 내려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2년 낙태죄 합헌 결정 당시 재판관들이 모두 물러났다는 것이 그 첫 번째 이유입니다. 그리고 신임 재판관들 중 일부는 이미 인사청문회에서 낙태죄 폐지에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은 바 있어서, 2012년 합헌결정이 뒤집어질만한 조건들이 갖춰졌다고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난관도 있습니다. 완전한 위헌이 아니라 일종의 과도기적 결정을 또 다시 내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8인 가운데 6인의 합헌결정이 필요한데 현재로서는 헌재가 위헌이 아닌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국민들의 관심 대상으로 뜨거운 논란이 돼 왔던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해 헌재는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라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낙태죄도 완전한 위헌결정이 아니라 어떤 조항이 위헌성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특정 시점까지는 유효하다고 판단하는 결정, 즉 헌법불합치로 낙태죄 폐지의 완급을 또 다시 조절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위헌을 선고해 어떤 조항이 바로 효력이 없어진다면 사회적 혼란이 올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서입니다.


 

낙태죄를 규정한 조항이 헌재의 위헌 결정에 따라 바로 효력이 없어지면 당장 현장에서는 낙태가 전면 허용되게 됩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따른 사회적 혼란도 무시할 수 없겠지요.  또 형벌 조항에 대한 위헌 결정은 ‘소급효’가 있어 기존에 처벌을 받은 이들도 재심을 청구해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게 되는 점도 헌재 입장에선 부담입니다. 하지만 헌재가 시점을 특정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다면 국회는 낙태죄 조항을 헌재 결정의 취지에 맞게 개정해야 합니다. 헌재가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조항을 판단할 때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 국회가 대체복무제 관련 입법을 해야 하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낙태죄 조항도 국회가 개정에 나서게 될지 헌재의 결정을 지켜봐야 한다. 

낙태(임신중지·임신중단)를 둘러싼 논의는 전통적으로 ‘여성의 선택권’ 대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이뤄져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낙태 문제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넘어 건강권·행복권·재생산권 등 삶 전반을 규정짓는 핵심적 인권 이슈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가톨릭국가 아일랜드가 지난해 국민투표를 통해 낙태죄를 폐지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임신중단 합법화’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낙태에 대한 인식이 전향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이 높습니다. 한국갤럽이 지난 3월 29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필요할 경우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응답이 77%(남성 79%, 여성 75%)로 나타났습니다. 


낙태죄 폐지는 시대적 요구입니다. 그렇다고 대안 없이 바로 없애버리는 것 또한 그 이후 일어날 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을 듯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 헌재의 고민이 깔려 있습니다. 임신은 여성만 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성의 인격권은 본인의 의사와 달리 사회적 억압에 의해 알게 모르게 침해받아온 게 사실입니다. 특히 낙태의 경우 여성의 건강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임신은 이제 더 이상 여성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적 잣대가 아니라 건강과 인격의 틀에서 봐야할 때가 왔습니다. 헌재의 현명한 결정과 이를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의 성숙한 모습도 함께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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