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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의 ‘포대기 정치’

성기노피처링대표 2023. 1. 12.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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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전 의원이 11일 서울 동작구청에서 열리는 신년인사회에 참석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금 여의도에는 온통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얘기뿐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신년 기자회견 이야기도 묻힐 만큼 현재 나 부위원장 관련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주제는 간단하다. 나경원 부위원장이 ‘절대권력’ 윤석열 대통령의 ‘명’을 어기고 고를 하느냐, 아니면 일단 숙이고 들어간 뒤 ‘친윤계’로 확실히 새 단장을 해 차기를 도모하느냐다. 윤석열 대통령이 나 부위원장을 아낀다며 사표 수리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뉴스에 나 부위원장도 화답하듯 ‘윤석열 정권 성공’으로 건배사를 했다. 현재의 상황으로는 나 부위원장이 결국 ‘스톱’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좀 더 우세한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무 개입 안 한다’는 지난해의 선언이 완전히 ‘식언’이 될 것을 우려해서인지 일단 숨을 고르는 모습이다. 한 일간지가 대통령실 관계자의 발언을 빌려 ‘윤 대통령이 나 부위원장에 대한 애정이 크다’며 사의를 수용할 뜻이 전혀 없다고 보도했다. 윤 대통령이 사의 수용 ‘거부’를 공개적으로 밝혀 나 부위원장이 ‘회군’할 수 있는 명분을 직접 만들어주고 동시에 대통령의 당무 개입 논란도 잠재우려는 ‘도랑 치고 가재 잡는’ 대응으로 보인다.

현재의 ‘전당대회 출마’를 둘러싼 옥신각신 정국의 브레이크는 나 부위원장이 쥐고 있다. 나 부위원장이 ‘출마하지 않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매진하겠다’고 한마디만 하면 상황 종료다. 하지만 나 부위원장은 자신의 지지율이 꺼지지 않고 계속 1위로 유지되면서 자꾸만 여당 대표 ‘명패’에 눈길이 가는 것 같다. 그럼에도 ‘찍히면 죽는다’는 정치권의 흉흉한 소문에 나 부위원장의 담력도 점점 쪼그라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정치인의 전당대회 도전에 대한 ‘자유 의지’를 두고 대통령과 수많은 ‘동료’들이 나서서 협박하거나 회유하는 사상 초유의 ‘집단 린치’ 사태를 나 부위원장도 처음 경험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대통령실은 일단 사표 거부로 호흡을 조절하고 있지만 국민의힘 친윤계는 여전히 나 부위원장을 완전히 누르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용산의 윤석열 대통령이나 아니면 ‘보이지 않는 그분’을 위한 충성경쟁이라도 하는 듯 너도나도 ‘나경원 출마 정국’에 ‘한마디 발자국’을 남기고 있다. 그 방식은 완전히 치고 빠지기 식이다. 때로는 회유로, 때로는 으름장으로 나 부위원장의 멘탈을 쥐고 흔들고 있다.

초반에 나 부위원장을 집단 린치하던 ‘친윤계’가 최근 들어서는 나 부위원장을 회유하는 정황도 포착된다. 친윤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진정성을 가진 몇몇 분이 나 부위원장에게 전화했다. 서로 불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 함께 가야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좋은 게 좋은 거다. 이번에 눌러앉으면 친윤계도 향후 합당한 대가를 줄 수 있을 것이다’는 회유에 나 부위원장 마음도 혹할 수 있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2011년 10.26 재보궐선거에서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의 선거 캠프를 찾아 격려하고 있다. 나 후보는 당시 박 전 대표의 대대적인 지원 속에서도 박원순 무소속 후보에게 패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또 다른 ‘친윤계’인 조수진 의원은 한 라디오에 출연해 “양손에 떡을 다 쥘 수는 없다. 무리수를 감안하고 나오는 경우에는 잃는 것도 많을 것”이라며 은근히 으름장을 놓았다. ‘윤석열 권력’의 매서움을 은연중 드러내며 나 부위원장의 굴복을 이끌어내려는 뉘앙스의 공개 발언이다. ‘친윤계’의 이런 ‘압착 정서’에는 나 부위원장의 정치적 파괴력을 평가절하하는 분위기와도 무관치 않다. 친윤계 일각에서는 ‘나 부위원장이 고를 선언하게 되면 윤석열 대통령과의 연결고리가 떨어져 나가게 되면서 급격하게 지지율도 하락할 것’이라는 ‘예언’을 하고 있다. ‘불감청고소원’의 심정으로, 여론조사 지지율을 인용해 나 부위원장의 지지율이 떨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 부위원장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처음 이 문제가 논란이 됐을 때만 해도 나 부위원장이 높은 지지율을 뒷배 삼아 전당대회 도전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다소 우세했다. 하지만 대통령실과 ‘친윤계’의 ‘집중 포격’이 이어지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화가 났다’는 분위기가 조성됐고 나 부위원장이 윤 대통령 고집을 꺾고 출마하게 될 경우 그 역린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공포감이 정국을 지배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래서 점차 많은 정치 전문가들이 “윤 대통령이 뜻이 저렇게 확고한데 ‘감히’ 나 부위원장이 그 뜻을 거스르고 출마를 할 수 있겠느냐”는 쪽으로 예상을 하고 있다.

서울법대 선후배 사이로 오랫동안 윤석열 대통령을 지켜본 나 부위원장으로서도 대통령의 ‘한 성격’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고와 스톱’ 관심사가 최절정에 이르렀을 때 나 부위원장은 한 발 빼는, ‘김 새는’ 대응을 하고 말았다. 나 부위원장은 11일 동작구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뜬금없이’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강조했다. 그는 “지금 윤석열 정부의 성공이 무엇보다 중요한 때다. 이를 위해 무엇이 중요한지 고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골리앗에 맞서 싸우는 ‘작은’ 다윗을 응원하던 사람들도 박수를 치던 손에 힘이 빠졌다.

역시 정치는 타이밍이다. 친윤계와 대통령실, 하다 못해 국무총리까지 우르르 몰려가 ‘나약한’ 한 정치인을 집단 린치를 하는 최절정의 상황에서 묵묵히 맞고 있던 나 부위원장이 갑자기 ‘제발 살려줘. 나 안 그럴게’ 한다면 최고시청률 흥행 요소가 아니다. 잔다르크처럼 벌떡 뛰쳐나가 ‘내 갈 길 갈 테니 마음대로 해 보라’며 당찬 도전장을 던진다면 심드렁해하던 국민들도 ‘윤-나 대전’에 솔깃해질 것이다. 다가올 결말도 무척 궁금해질 것이다. 살판 난 듯 때리던 친윤계도 잠시 어안이 벙벙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반전의 드라마를, ‘나경원’은 쓸 수 없다.

 

16대 대통령선거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특별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한 나경원 전 의원은 당시 판사출신 여성보좌관으로 언론의 조명을 받았으나 임명 후 다음날부터 할 일이 없었다며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고 당시를 회상한 바 있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까지 ‘포대기 정치’를 해왔기 때문이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콜’로 17대 국회에서 비례대표로 처음 금배지를 단 나 부위원장은 4선 관록의 정치인이다. 하지만 그는 이회창 이명박 박근혜의 옆자리에서 안락한 정치를 해왔다. 유력 정치인의 권력과 세력에 업혀 정치를 한 것이다. ‘나경원’이라는 정치인의 독립적인 브랜드와 정체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누구의 측근으로 안주하며 오랫동안 ‘곁불 쬐는’ 정치를 해 온 것이다. 그렇게 힘센 권력의 ‘포대기’에 싸여 성장해왔기 때문에 총탄이 쏟아지는 ‘야전의 정치’에 익숙하지 않다.

풍찬노숙하며 권력과 맞짱을 뜨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지금 나경원 부위원장에게 펼쳐지고 있지만 그것에 맞서는 게 두렵다. 윤 대통령과 맞짱을 뜬다고 해서 혹시나 하고 지켜보던 국민들은, 그가 난데없이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하여 절대 화합”이라고 건배사를 하고 이에 ‘친윤계’ 맏형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이 “아주 잘했다”며 물개박수를 치는 장면에서 TV 드라마를 끄고 싶을 것이다. ‘나경원은 여기까지’라는 말들이 나오는 것도 그의 ‘포대기 정치’ DNA를 보면 너무도 당연히 예상되는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정치생명이 끈질긴 홍준표 대구시장은 정치인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뛰어난 편이다. 그가 ‘나경원’을 ‘비평’한 것은 적확하다. 홍 시장은 나 부위원장에 대해 “내용 없이 이미지만으로 정치하는 시대는 끝났다. 얕은 지식으로 얄팍한 생각으로 이미지만 내세워 그만큼 누렸으면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 쏘아붙였다. 또한 홍 시장은 “친이에 붙었다가 잔박에 붙었다가 이제는 또 친윤에 붙으려고 하는 거를 보니 참 딱하다. 자기 역량으로 자기 노력으로 자기 지식으로 국민에 대해 진심(眞心)을 갖고 정치해야 그 정치 생명이 오래간다는 걸 깨달아야 하는데 여기저기 시류에 따라 흔들리는 수양버들로 국민들을 더 현혹할 수 있겠느냐”고 덧붙였다.

홍 시장의 결론은 “그냥 조용히 침잠(沈潛)의 시간을 가지는 게 좋지 않겠느냐”였다. ‘그냥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자리도 감지덕지하니 그 자리에만 신경 쓰라’는 선배의 ‘품격 있는’ 조언이다. 나 부위원장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 성공’ 건배사로 대통령과 맞짱을 뜨던 드라마는 김빠진 사이다가 됐다. 그래도 여전히 양손에 떡을 쥐고 어찌할 바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나경원 부위원장의 ‘포대기 정치’를 보니 지금까지 수집한 금배지 4개가 좀 아깝다는 생각도 든다.

 

(파이낸셜투데이 1월 12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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