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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일까, 날리면일까’ 윤석열의 노림수

성기노피처링대표 2022. 9. 27.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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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에 참석한 뒤 행사장을 나오면서 "XX들이 XXX 쪽팔려서" 등의 말을 한 장면이 포착되고 있다. (사진=MBC 영상 캡처)


윤석열 대통령이 5박 7일 해외순방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대통령의 해외순방이 이렇게 논란이 된 것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윤 대통령이 지나가면서 뱉은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OOO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는 이 한 마디로 전 국민들은 ‘듣기평가’의 시험에 들게 됐습니다. 진보를 응원하는 국민들은 ‘바이든’으로, 보수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은 ‘날리면’으로 들리는 이 희한한 발음 하나로 한국 정치는 또 다시 진영대결의 막장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애초 대통령 품성론으로 시작된 해외순방 비속어 해프닝은 MBC 좌파언론의 선동-가짜뉴스로 무장한 불순세력의 정권 흔들기로 판이 커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번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을 보면 과연 이 사건이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될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었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먼저 대통령실의 1차 대응입니다. 필자는 대통령실의 1차 대응에 사건의 ‘진실’이 담겨 있다고 봅니다. 대통령의 1차 초동 대응은 가장 초기에 나온, 정무적 마사지가 가미되지 않은 진위 여부에 대한 사실 확인이었기에 보태고 빼고 할 게 없었고 그럴 시간도 없었을 것입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뉴욕 현지 프레스센터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외교 참사라는 비판이 나온다’는 질문에 “어떤 사적 발언을 외교적 성과로 연결하는 것은 대단히 적절치 않다”는 첫 번째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이는 대통령실도 온라인상에서 퍼지는 윤 대통령의 발언을 인지한 뒤 그 ‘팩트’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부정을 하지 않고 오로지 외교적 성과에만 방점을 찍어달라는 주문과 같습니다. 만약 이때 대통령실이 윤 대통령에게 직접 확인을 거쳐 ‘나는 그런 발언을 한 사실이 없다’라는 명쾌한 답을 받았다면, 그래서 문제의 발언에 대한 ‘자막’이 잘 못 나갔다고 팩트 정정을 요청했다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참모의 질문을 받고 대충 얼버무렸거나 아니면 상당히 바쁜 대통령에게 그런 ‘사적 발언’까지 확인할 정도의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던지, 어쨌든 대통령실의 의중은 ‘그런 말을 한 것을 보지 말고(사실은 인정하지만) 외교적 성과를 주목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는 가운데, 윤 대통령 비속어 발언 피켓이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이 발언으로 미국 의원들이 윤 대통령을 향해 조롱성 글을 공개적으로 올리는 등 심상찮은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될 움직임이 보이면서 ‘사건’은 ‘사태’로 번지게 됩니다. 그리고 윤 대통령과의 충분한 협의 끝에 나왔는지 사건 발생 13시간이 지나고 김은혜 홍보수석이 다시 해명에 나섰습니다. 김 수석은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고, ‘이 XX’는 야당을 지칭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대통령의 ‘실언’(slip of the tongue)은 단순한 실수에서 발음의 진위 논란으로 비화됩니다. 김은혜 홍보수석이 내놓은 ‘기가 막힌’ 해명은 기자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습니다. 실제로 한 여기자의 믿지 못하는 반응이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될 정도로 김 수석의 변명은 예상 밖의 반전이었습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낯 뜨거운 충성경쟁도 문제입니다. 대통령실 홍보수석의 말은 곧 윤석열 대통령의 뜻이기도 합니다. ‘윤심’을 재빠르게 파악한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대다수의 국민들이 상식적으로 들은 그 비속어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며 윤 대통령을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배현진 유상범 박수영 의원 등은 ‘잡음’을 제거한 윤석열 대통령의 음성을 거론하며 ‘이XX’도 ‘바이든’도 없다고 강변하고 나섰습니다. 이들은 모두 ‘이XX들이’를 ‘이 사람들이’라며 ‘지록위마 전략’을 시전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김은혜 수석이 ‘이XX’는 맞지만 미국 의회가 아닌 ‘한국 의회’를 지칭한 것이라고 한 공식적인 해명마저 무시하며 혼란을 가중시켰습니다. 이렇게 여권에서까지 대통령의 말을 두고 엇갈린, 다분히 ‘정치적인 해석’을 내놓자 국민들은 윤 대통령의 문제 발언에 대해 더욱 의심을 하게 됐습니다. 

마지막으로 윤석열 대통령 본인이 이번 사태의 본질을 360도 뒤바꾸는 화룡정점을 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귀국 뒤 처음 가진 도어스테핑에서 ‘비속어 사용 및 발언 왜곡’ 논란 등과 관련해 “논란이라기보다는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하는 건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또한 “그와 관련한 나머지 얘기들은 먼저 이 부분에 대한 진상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더 확실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민의힘 박성중 간사와 위원들이 26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 비속어 발언을 최초 보도한 MBC에게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한’ 일부 언론보도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습니다. 대통령도 남이 듣지 않을 때 사석에서 도가 지나친 말을 할 수도 있는데 그것을 국익을 고려치 않고 심지어 왜곡해서 보도한 것이 이번 사태의 1차적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발언으로 미국 정치권을 비롯해 세계적 조롱거리가 된 국익 침해 사건의 책임이 무분별한 언론 보도에 있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이번 사건에 대한 진상이 더 확실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한 대목입니다. 윤 대통령은 불과 며칠 전 자신이 ‘발화’했던 그 말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장본인입니다. 해외화제가 돼 버린 ‘휘바이든’ 논란을 자신이 직접 공개적으로 ‘반복’해주면 모든 의혹과 시빗거리는 해소가 됩니다. 더구나 김은혜 수석의 해명대로라면 윤 대통령은 민주당을 향해 ‘상소리’를 한 것을 인정한 셈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나 유감 표명도 없이 ‘진상 규명’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분초를 다투며 뛰어다니는 대통령의 충심을 몰라주고 꼬투리만 잡는 야당이 밉다고 해도 사실로 드러난 것조차 무시하고 뭉개며 극단적인 대결구도로 몰아가는 것은 또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것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김대기 비서실장도 ‘가짜뉴스가 나라를 혼란스럽게 한다’며 일부 불순 세력의 조직적인 정권 흔들기를 경계해야 한다는 본말이 뒤바뀐 정국 인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윤 대통령과 여권 인사들이 조직적으로 반격하는 것은 지지율 하락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정권이 ‘여기에서도 밀리면 끝장’이라는 위기의식이 작용해 강경대응으로 치닫는 것 같습니다. 여권의 강경책은 MBC 등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에 대한 견제와 흩어진 보수세력의 화력을 ‘윤석열 지키기’ 한 곳으로 모으는 등의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진영대결로 몰아가다 보면 그 끝에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있습니다. 사법 리스크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이 대표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려 정치판 전체를 이전투구로 만들면 결국 거대야당 책임론도 나오게 되고, 정권의 책임론은 희석될 수밖에 없습니다. 윤 대통령의 ‘비속어’ 의혹으로 촉발된 논란은 이제 여야의 진영대결로 확실히 프레임 전환이 이뤄졌고 ‘팩트’는 오리무중의 공간 속으로 빠져버렸습니다. 결국 또 민생은 뒷전으로 밀려났고 그것을 주도한 장본인은 바로 윤석열 대통령입니다. 

이번 윤 대통령의 ‘설화’를 보면서 역설적이게도 ‘듣기’에 대해 먼저 생각해봅니다. 지도자의 첫 번째 덕목은 말이 아니라 듣는 것입니다. 그 경청의 시작은 듣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말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상대의 말을 잘 듣기 위해서는 상대가 말을 편안하게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청자의 말본새와 자세도 중요합니다. 윤 대통령과 관련된 ‘XX’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이준석 전 대표도 윤 대통령이 술자리에서 자신을 그렇게 지칭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참모나 주변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말’에 기가 눌려 아첨꾼이 된 참모들과 일부 여당 의원들은 용산 주변만을 맴돌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고 있습니다. 말을 함부로 하는 지도자는 듣는 자세도 오만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연일 급등하는 환율로 ‘제 2의 IMF’까지 우려되는 작금의 시국에서 ‘바이든’과 ‘날리면’으로 또 다시 나라가 두 동강 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귀는 열고 입은 닫는 지혜로 대통령의 권위와 위엄을 다시 세워나갔으면 합니다. 

 

(여성경제신문 9월 27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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