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쇼트트랙 계주 3000m 금메달...대역전극 이끈 김아랑의 리더십
한국 여자 쇼트트랙 계주팀이 다시 한번 세계정상에 섰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20일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 결승에서 세계 최강 한국 대표 팀은 레이스 중반까지 어려움을 겪었다. 캐나다와 중국의 수비가 매우 단단했다. 쌍두마차 최민정과 심석희가 호시탐탐 인코스와 아웃코스를 노렸지만 어려웠다. 추월 기회가 연이어 물건너 갔다. 6바퀴를 남기고 3위. 선두권과 차이는 외려 벌어졌다.
6바퀴를 남았을 때. 3번 주자 김아랑이 승부를 걸었다. 아웃 코스에서 속도를 올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다른 팀이 바톤 터치를 할 때 김아랑은 아웃코스에서 더 스퍼트를 해서 캐나다를 제쳤다. 1위 중국이 눈앞이었다.
김아랑은 바톤을 터치하는 과정에서 넘어지는 아찔한 상황을 연출해지만, 주자가 넘어가는 과정은 이상이 없었다. 순식간에 2위로 올라선 한국은 최민정이 추월에 성공하면서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8번째 대회에서 6번째 금메달. 쇼트트랙 강국을 증명한 순간이었다.
원래 김아랑은 예선에서 뛰지 않았지만 결선에서 김유빈을 대신해 투입됐다.
월드컵에선 4번으로 뛰었지만 한국 벤치는 김아랑을 3번에 두는 승부수를 걸었다.
경기가 끝나고 박세우 감독은 작전 성공이라고 기뻐했다.
"여러가지 옵션이 있었다. 처음 작전은 민정이가 하는 것이었는데 상황이 좋지 않아서 아랑이가 하기로 했는데 잘해줬다"고 칭찬했다.
이날 김아랑은 그야말로 롤러코스트를 탔다. 막판 스퍼트로 역전의 기회를 제공하긴 했지만, 바톤 터치에서 넘어지면서 경기 뒤 실격 가능성에 숨을 죽여야 했다. 김아랑은 한국팀의 최종 금메달이 확정되자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며, 자칫 자신 때문에 금메달이 날아갈 수 있었던 끔찍한 상황에서 벗어났다.
사실 김아랑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어떤 시련이 찾아와도 웃어야 했다. 그는 이제 겨우 23살의 어린 나이지만 대표팀의 ‘맏언니’다. 김아랑은 자신의 행동 하나가 후배들에게도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예전에는 언니들을 따라 다니면 됐는데 지금은 이끌어야 한다”며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럽다. 힘든 것도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김아랑은 후배 최민정이 500m에서 실격 판정을 받았을 땐 곁을 지키며 다독여줬다. 최민정이 1500m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시련을 이겨냈을 땐 가장 먼저 다가가 축하해줬다. 자신의 성적(4위)에 대한 아쉬움은 뒤로 미뤄놓았다.
김아랑은 이날 승부처에서 아웃코스를 공략하는 등 공격적인 경기 운영으로 한국의 금메달에 큰 힘을 보탰다.
이번에는 동생들이 김아랑을 위로했다. 경기 후 코치의 품에 고개를 박고 울고 있는 그에게 심석희와 최민정, 김예진이 모두 다가가 김아랑을 위로해줬다. 기쁨의 눈물을 흘리던 김아랑은 후배들을 번갈아가며 안았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4년 전 소치에서 김아랑은 눈물을 펑펑 흘렸다. 그리고 2018년 평창에서 또 한번 눈물을 쏟았다. 처음에는 대표팀 막내로, 지금은 대표팀 맏언니로….
2013년 김아랑은 전주제일고등학교 3학년 학생으로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심석희, 박승희에 이어 3위를 차지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선수가 아니었지만 명성이 아닌 오롯이 자신의 실력으로 손에 쥔 소치올림픽 출전권이었다.
그러나 최악의 컨디션으로 주 종목 1500m경기를 치러야 했다. 당시 김아랑은 급성 위염으로 식사도 하지 못한 채 가까스로 결승까지 올랐지만 레이스 초반 넘어지며 실격 당했다.
그때 김아랑을 보듬고 일으켜 세운 주인공은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의 리더 조해리(32) 현 SBS해설위원이었다. 올림픽이라는 일생일대의 무대에서도 후배들을 먼저 챙기는 조해리의 헌신 속에 김아랑은 자신감을 되찾았고 여자 3000m계주 결승전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아랑은 동료들의 깊은 우정과 사랑 속에 성장한 선수다. 전주 출신으로 홀로 상경해 어쩔 수 없이 남자선수들 합숙소에 들어가야 할 상황에서 손을 잡아 준 것은 박승희(26·스포츠토토)였다.
박승희의 어머니 이옥경씨는 지방출신 학생들의 합숙소가 대부분 남자선수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쇼트트랙을 하는 아들 박세영을 대신 합숙소로 보내고 김아랑에게 방을 내줬다.
▲ 20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1,000m 예선에서 한국 김아랑이 지난 경기 헬멧에 붙였던 세월호 리본 스티커를 검은색 테이프로 가리고 경기에 임하고 있다.
김아랑은 집안 제사도 함께 지내고 매일 함께 훈련장에 가며 수년간 박승희와 친자매처럼 지냈다. 동네 사람들이 당연히 박씨집안 막내딸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다.
2018년 평창에서 김아랑은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의 든든한 맏언니다. 조해리는 은퇴했고 박승희는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 변신했다.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은 올림픽 직전부터 예상치 못했던 악재가 있었지만 김아랑이 빨리 분위기를 즐겁게 바로 잡으며 세계 최정상급 기량을 뽐내고 있다. 김아랑은 항상 밝게 웃으며 후배들을 다독였다. 17일 1500m결승에서 정작 자신은 4위로 메달에 실패했지만 금메달을 딴 후배 최민정에게 진심어린 축하를 보냈고, 이 모습은 큰 화제가 됐다.
20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여자3000m 계주에서 한국은 또 한번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의 위대함을 보여줬다. 김아랑은 최민정, 심석희, 김예진과 호흡을 맞춰 중국, 이탈리아, 캐나다와 함께 진출한 결승전에서 완벽한 레이스로 우승하며 올림픽 2연패에 성공했다.
김아랑은 경기 도중 빠른 질주로 4위에서 선두권으로 치고 나오는 역전극을 직접 이끌었다. 레이스 때 충돌로 넘어지는 순간까지 페널티 실격을 막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1위로 레이스를 마친 후 펑펑 운 김아랑은 캐나다와 중국이 페널티 판정을 받고 금메달이 확정된 후 특유의 밝은 미소와 함께 눈물을 흘리며 후배들과 기쁨을 나눴다.
여자 팀추월 대표팀의 인터뷰 논란 사태로 빙상종목은 초상집 분위기였다. 하지만 김아랑 선수와 계주 선수들은 배려와 헌신의 팀워크를 발휘하며 기쁨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인성과 실력, 그들에게는 두 개의 빛나는 금메달이 더해졌다.
성기노 피처링 대표(www.featuri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