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청원 홍준표 친박축출 전쟁의 최대 변수...녹취록에 담긴 내용은?
대개 정치권에서 녹취록은 치명적인 증거로 기능할 때가 많다. 특히 정적과의 싸움이 최고조에 이를 때 녹취록으로 언론플레이를 할 경우 상당한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를 흘린 측도 부담이 크다. 전쟁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흘린 정황이 드러날 경우 오히려 역풍을 맞기도 한다. 이처럼 '녹취록 카드'는 자신의 손도 베일 수 있는 양날의 검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축출직전 위기에 놓인 서청원 의원이 빼든 마지막 히든카드는 바로 '녹취록'이었다. 성완종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유죄가 날 경우 대표직에서 물러날 수도 있는 홍준표를 향한 마지막 승부수가 바로 녹취록이다.
현재로서는 녹취록의 정확한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상황을 예단할 수 없지만 내용 수준에 따라 홍준표 대표는 커다란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그 반대로 서청원 의원이 '무고죄'로 몰릴 수도 있다.
이렇듯 친박계 인적청산을 둘러싼 자유한국당의 내분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2015년 '성완종 리스트' 사건 때 홍준표 대표와 서청원 의원의 대화가 담긴 녹취록의 존재여부가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녹취록 공방은 한국당으로부터 탈당권유 징계를 받은 서 의원이 지난 22일 기자회견을 통해 "검찰수사 과정에서 홍 대표가 나에게 협조를 요청한 일이 있다"고 폭로하면서 시작됐다.
다음 날인 23일 국민의당 이용주 의원은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두 사람의 통화내용은 단순한 협조요청이 아니라, 항소심에서 진술을 번복해달라고 한 것이다. 객관적인 자료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항소심을 앞두고 서청원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중요 증인의 진술을 번복하도록 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당이 “전화통화 관련해 객관적 자료를 확보했다”고 밝힌 것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등검찰청과 산하 지방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용주(국민의당) 의원은 “항소심을 앞두고 서 의원과 홍 의원 사이에 오간 얘기는 ‘항소심 가서 (홍 의원에게 돈을 전달한 당사자로 지목된) 윤승모씨가 진술을 번복해달라’였다”면서 “전화통화와 관련한 객관적 자료를 우리 당이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의원은 “서 의원을 조사해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녹취록이 있는지 등 확인해야 하는 데 노력하고 있느냐”며 “우리당은 객관적 자료를 확보했는데 검찰은 왜 미온적으로 대처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홍 대표는 2011년 6월 한나라당 대표 경선을 앞둔 상태에서 성완종 당시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1억원의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2015년 7월 기소됐다. 당시 돈을 전달한 당사자로 지목된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회장은 검찰 조사와 재판 단계에서 “직접 홍 대표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진술을 했고, 홍 대표는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됐다가 2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윤씨가 홍 대표를 돕기 전에는 서청원 의원과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에 홍 대표가 서 의원에게 ‘진술번복’을 부탁했다는 게 이 의원 쪽의 설명이다.
앞서 서 의원도 지난 22일 기자회견을 열고 "고 성완종 의원 관련 사건 검찰수사 과정에서 홍 대표가 제게 협조를 요청한 일이 있다"며 "만약 홍 대표가 진실을 얘기하면 그냥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제가 진실을 증명하겠다"며 의혹을 증폭시킨 바 있다.
그러자 한국당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24일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만약 녹취록이 있어서 내용이 공개된다고 하면 누군가 한 사람은 거짓말을 한 것이다. 지금 대법원에 가 있는 홍 대표의 재판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편 서청원 의원이 지난 26일 홍준표 한국당 대표에 대한 ‘녹취록’에 대한 진실을 밝힐 수 있다고 밝히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서 의원과 함께 탈당 권고를 받은 최경환 의원도 27일 귀국할 예정이라 이들의 입국 이후 친박계가 조직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더군다나 북핵외교를 위해 방미 활동 중인 홍 대표의 입국도 28일로 예정돼 있는데, 홍 대표가 박 전 대통령과 서·최 의원에 대한 당적정리 문제를 돌아와서 논의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홍 대표와 친박계의 본격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녹취록 내용은 이미 정치권에 널리 회자되고 있다. 특히 녹취록 자료를 서청원 의원측이 국민의당에 건넸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이 국정감사 때 녹취록 내용 일부를 ‘발설’하기도 했다. 박지원 의원도 한 인터뷰에서 “서청원 의원이 이미 얘기했는데, 재판과정에서 (홍준표 대표가) 자기(서청원 의원)한테 부탁한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홍 대표가 서청원 의원에게 항소심에서 진술을 번복해달라는 것이 현재까지 나온 녹취록 내용의 ‘전부’다. 판결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위증’을 해 달라는 요구였다면 이는 중범죄에 해당한다.
하지만 홍 대표는 이에 대해 “협박만 하지 말고 녹취록이 있다면 공개해서 판단을 받아보자”고 받아쳤다.
홍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수사 당시 2015년 4월18일 오후 서청원 의원에게 전화를 해 ‘나에게 돈을 주었다는 윤모씨는 서대표 사람 아니냐. 그런데 왜 나를 물고 들어가느냐. 자제시켜라’고 요청한 일이 있다. 그 이후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서청원 의원과 만난 일이나 전화 통화 한일이 단 한번도 없다”고 반박했다.
이렇게 홍준표-서청원의 빅매치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맞붙고 있다. 이 전쟁의 승패는 녹취록에서 갈린다. 만약 서 의원 증언대로 홍 대표가 재판판결을 유리하게 받기 위해 서 의원에게 진술 번복을 요청한 사실이 밝혀질 경우, 홍 대표는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친박청산에 대한 동력도 급격하게 사그라든다.
반면, 서 의원의 녹취록 주장에서 홍 대표에 대한 별다른 혐의점이 드러나지 않을 경우 거꾸로 서 의원 책임론이 불거지고 출당 사태는 불가피해 보인다. 현재로선 서 의원이 홍 대표에 맞설 최후의 무기로 이 녹취록 카드를 그동안 아끼고 있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고, 먼저 이것으로 문제제기를 한 만큼 그냥 단순한 녹취록은 아닐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비록 녹취록이 홍 대표를 단칼에 날릴 정도의 파괴력은 아니더라도, 이 문제가 그를 끊임없이 '정치적으로' 괴롭힐 민감한 소재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친박청산의 호소력도 녹취록으로 점점 그 빛이 바래지고 있다.
성기노 피처링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