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릉동 살인사건' 정당방위 인정...'궁금한이야기Y'의 주장은?
SBS '그것이 알고싶다' 등 다수 언론에서도 다뤘던 '공릉동 살인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술 취한 군인이 가정집에 무단침입했다가 여성 한명을 죽이고 자신도 칼에 찔려 사망한 사건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범인이 침입을 당한 사람에 의한 정당방위가 아닌 고의적으로 죽임을 당했다는 의혹도 나오면서 사건이 복잡하게 전개되었다. 일부 언론에서도 사건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집중 보도하기도 했다.
결국 사건 결론은 정당방위였다. 자신의 집에 몰래 들어와 예비신부를 죽인 군인을 살해한 혐의를 받았던 30대 남성이 사건 발생 2년 만에 '정당방위'를 인정받았다.
11일 뉴스1에 따르면 서울 북부지검 형사2부(부장검사 최용훈)는 양모씨(36)의 살인 혐의에 대해 죄가 성립되지 않아 불기소 결론을 내렸다. 검찰은 양씨가 군인 장모씨(20)를 살해하긴 했지만 양씨의 정당방위를 인정해 살인죄에 위법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사건 당시 장씨에 의해 예비신부가 살해당한 상황에서 양씨의 범행은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장씨는 2015년 9월 24일 오전 5시28분쯤 서울 공릉동의 한 다가구주택에 침입해 주방에 있던 흉기를 사용해 방에서 잠을 자고 있던 양씨의 예비신부를 수차례 찔러 살해했다. 이후 맞은편 방에서 잠을 자다 비명소리에 놀라 나오려던 양씨와 몸싸움을 벌였고 양씨의 칼에 찔려 숨졌다.
앞서 경찰은 양씨의 정당방위가 인정된다고 판단해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살인죄에 대해 정당방위가 인정돼 불기소 결론이 난 사례가 극히 드물고 법적 근거가 미비해 사건을 결론 짓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검찰이 2년 넘게 수사 결론을 내리지 않는 사이 사실상 피해자였던 양씨는 '살인자'라는 시선을 받으며 생계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고 매체는 전했다. 사건 당시 언론과 일부 TV 프로그램은 양씨가 군인 장씨와 예비신부를 살해했다는 듯한 추측성 보도를 쏟아냈고, 양씨는 지인들과 연락을 끊은 채 은둔 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살인죄가 검찰에서 '죄 안됨'으로 불기소로 종결된 것은 드문 일"이라며 "과거 사례와 외국의 판례 등을 검토한 결과 양씨의 살인죄에 위법성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고 밝혔다.
한편 이 사건은 지난 2015년 10월 방송된 SBS <궁금한 이야기 Y>에서도 자세하게 다루었다. 하지만 사건의 결론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당시 SBS <궁금한 이야기 Y>는 이른바 '공릉동 살인사건'이 벌어진 '6분'이라는 시간에 주목하며 사건 당사자이자 유일한 생존자인 양씨와 사건 현장 주위에 거주하는 주민들, 숨진 상병 유가족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와 함께 사건의 실체를 추측했다.
<궁금한 이야기 Y>는 우선 '살인이 일어난 6분'에 초점을 맞췄다. 사건현장 주위에 설치된 감시카메라에는 상병이 사건현장인 양씨 집으로 들어간 시간과, 부상당해 피를 흘리는 예비신부가 집에서 나오는 장면이 찍혀있어 사건 발생 추정 시간은 바로 그 '6분' 사이라는 것이다.
<궁금한 이야기 Y> 제작진은 "여성의 비명 소리를 들었다"는 주변 주민의 진술과 함께 '시간대 퍼즐조각'을 맞췄다. 해외 유학 중인 아들과 새벽시간 메신저 대화를 주고받던 여성은 비명 소리가 들린 시점을 분 단위까지 정확히 기억했다. 메신저를 치며 비명소리를 들은 때문이라고 이 주민은 말했다. CCTV에 기록된 시간과 대조해보니 당시 상병은 사건 현장인 집으로 들어가고 약 2분 후 비명 소리가 들린 것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제작진은 CCTV를 살펴보던 중 CCTV시간이 실제 시간보다 3분 느리게 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느리게 가는 CCTV 시간을 보정하고, 주민이 비명소리를 들었다고 말한 시간과 맞춰보면 '여성의 비명소리가 들린 후 상병이 집으로 들어갔다'라는 해석이 가능하다고 <궁금한 이야기 Y>는 전했다.
또한 그 시간 그 곳에 오게 된, 숨진 상병의 동선도 추적했다. 군복무 중 휴가를 나와 친구들과 어울려 술자리를 가진 그는 친구들과 "만날 사람이 있다"는 말을 남기고 헤어진 후 만취상태로 공릉동 골목길을 배회하며 주택가 유리창을 깨뜨려 손에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이곳 저곳 현관문을 두드리고 사람들에게 "반창고를 달라"고 부탁하는 행동을 해 많은 동네 주민들이 상병을 목격한다.
술취해 벌인 우발적이고 폭력적 행동으로 보이나, 목격 주민들은 상병이 만취 상태에서도 예의있게 행동했다고 SBS와 인터뷰했다. 이웃의 할머니는 노크 소리에 문을 열고, 상병의 요청을 거절하자 상병은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한 후 조용히 돌아갔다고 전했다.
문을 잠그는 것을 잊고 잠들어있다 일어난 한 주민은 거실까지 들어온 상병을 보고 크게 놀랐으나 상병은 고개를 숙여 사과한 후 나갔으며, 집에 들어올 때에도 신발을 벗고 들어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술에 취해 하는 행동에는 일관성이 있다. 대부분 만취 상태에서 예의바른 행동을 하다 폭력적으로 변하는 경우는 많지 않으며, 그 반대인 경우도 거의 없다"는 의견과 함께 "상병이 그렇게 인사까지 하며 낯선 사람들을 응대하다 흉기를 들고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것은 희귀한 사례다"라고 말했다.
상병 유가족은 상병의 손에 아무런 상처가 없는 점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양씨가 10회 넘게 머리와 가슴 부분 등을 흉기로 습격당한만큼,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사람이 아니라면 흉기를 쥔 손에 상처가 날 가능성이 큰데 상병의 손은 깨끗하다는 것이다. 프로그램은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적이고 객관적으로 고려해 신중히 수사해야 한다"는 취지로 맺었다.
그리고 사건 발생 후 양씨를 불구속 입건해 수사해온 경찰은 지난 9일 "예비신부가 습격당한 모습을 목격했고 자신도 위협당하다 상처입은 경우로, 정당방위 요건이 인정된다"며 양씨를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사건 이후 제기되어온 의문점들에 대해서는 "흉기의 손잡이와 숨진 예비신부 손톱에서 상병 유전자가 검출됐고, 역시 두 사람의 손에서 동일한 섬유가 검출됐으나 생존자 양씨에게서는 나오지 않았다. 상병이 예비신부를 살해했다는 증거"라고 밝혔다.
여성이 비명지르는 소리를 들었다는 주민의 진술에 대해서는 "상병이 양씨 집으로 들어간 뒤 2분이 지나 여성의 비명을 들었다는 주민 진술을 여러 건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궁금한 이야기 Y>와 '비명소리'에 대해 인터뷰한 주민의 진술은, 메신저 대화 중이어서 분단위까지 시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고는 하나 이 또한 객관적 증거나 물증으로 증명할 수 없는 주관적 진술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또한 거짓말탐지기에서 양씨가 "상병이 박씨를 살해했고 나에게도 흉기를 휘둘러 내가 흉기를 빼앗았다"에 진실 반응이 나왔다고 경찰은 밝혔다. 상병이 범인이라고 보는 편이 현재까지 드러난 증거로 볼 때 가장 타당하다는 설명이다.
이번 사건은 정당방위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동안 가정폭력에 시달려오던 여성이 남편을 흉기로 살해한 사건들이나, 지난해 심야시간에 집에 침입한 도둑을 빨래건조대를 들고 지속적으로 가격해 뇌사 상태에 빠뜨린 사건 등에 경찰이 그간 '정당방위' 적용을 보수적으로 대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에 '자신과 타인의 법익에 대한 부당한 침해'라는 정당방위 요건을 지금까지보다 폭넓게 인정하는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의의가 있다.
예비신부의 연인이었던 양모씨는 이번 사건의 피해자다. 그는 사건 뒤 2년여만에 언론 인터뷰에 응하기도 했다. 10월 19일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나는 여론살인을 당한 것이다"며 "(오해를 부른 방송에 대해서) 형사고발, 민사고발 고소 둘 다 진행할 것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양씨는 이제 자신의 명예훼복을 위한 또 다른 길에 나섰다.
성기노 피처링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