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이명박 전 대통령, 국정원을 개인 심부름센터로 전락시킨 이유

성기노피처링대표 2017. 10. 6.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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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 시절 국정원의 인터넷 여론 조작이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반체제 인사나 정권에 적대적인 연예인들을 분류해 철저하게 관리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후 몇달 만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로 정권 초기부터 상당한 애로를 겪었다. 그뒤 이 전 대통령은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사찰’하고 불이익을 준 정황이 확인되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이 국정원과 사이버사령부를 조종해 민간인 사찰과 여론조작을 한 증거는 마치 1970년대 박저희 유신정권의 중앙정보부를 떠올리게 한다. 권력과 자신의 정책을 반대.비판하는 세력에 '종북 딱지'를 붙이고 철저하게 인권을 유린했다.


70년대 중앙정보부는 정치공작, 선거조작, 이권배분, 정치자금 징수,미행 도청, 고문 납치, 문화예술의 사상 평가, 심지어 대통령 ‘여색’ 관리, 밀수 ,암살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온갖 정권탄압을 다 저질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국정원을 개인의 한을 푸는 도구로 전락시켰다. 그는 특히 광우병 촛불사태 이후 완전히 다른 행보를 보인다. 취임 첫해 임명했던 '유약한' 김성호 국정원장으로는 국정장악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취임 1년도 안돼 전격적으로 측근 중의 최측근인 원세훈을 국정원장으로 앉혔다.


원세훈은 '70년대 김기춘'과 닮았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국정원내에 '심리전단'을 승급시키고 인력을 대폭확대했다. 그리고 지방선거에 나선 야당 후보들을 인터넷 공간에서 공격하는 것으로 '2010년판 중앙정보부식 통치'의 서막을 열었다.


이명박 정부는 '대한민국 사이버 세상은 좌파가 모조리 장악하고 있고 그들의 조종자는 퇴임한 고 노무현 대통령 일당'이라고 생각했다.


70년대 중정식 '마타도어 수법'도 동원됐다. 그때처럼 드러내놓고 원초적인 '여색 관리'를 할 수 없고 시대도 바뀐지라 배우 문성근 씨와 김여진 씨의 나체 사진을 합성해 사이버 공간에 마구 뿌렸다. 정부의 권력기관이라 하기엔 너무나 유치하고 어처구니가 없다.


국정원을 앞세운 공안기획통치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를 파악케 하는 흥미로운 증언이 최근 국정농단 재판에서 나왔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법정구속된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 수석은 "국정원 보고가 오류가 많아 수석들이 피로감을 느꼈다"는 충격적 증언을 했다.


▲ 스마트폰 해킹을 당해 논란을 빚었던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김 전 수석은 지난 7월 27일 1심에서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그는 9월 26일 박근혜 전 대통령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검사:마지막으로 질문 하나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아까 종북도서가 도서관에 있고 전수조사를 하는 과정에 대해 진술을 하셨습니다. 여기보면 국정원에서 수석에게 온 정보보고 문건에 관한 진술도 있습니다. 증인(김상률)이 교육부와 문체부 산하 도서관에 종북도서가 많다는 문건을 이병기 당시 비서실장한테 받아 전수조사 했는데, 그 결과 문체부 산하 도서관에 2종의 도서만 있다고 보고를 받은 적 있고, 또 국정원 보고가 정확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고 했는데 당시 이병기 실장이 국정원 보고서를 언급하며 실수비에서 많은 부분을 언급했습니까?


김상률:네, 그렇습니다. 국정원 보고서라는 말은 안하고 확인이 불가한 문건을 갖고 다양한 부처에 대해 얘기를 했습니다. 당시에 비서실장이 너무 '보고서'에 의존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확인을 해봐도 다 그런 얘기인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희도 실장님이 저런 정보 보고를 인용한 말씀에 대해서 경청은 했지만, 그게 대통령이 지시한 정책이나 정부 공식 정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병기 실장은 국정원 정보보고에 너무 의존했습니다. (국정원 보고서가)오류가 있기도 했는데, 수석들은 그런거에 대한 피로감이 매우 강했습니다. 이병기 실장은 좌편향 등 표현을 썼습니다. (저희는)보수 정보 정보기관이 보고한 것은 '정보'이지 '정책'이라고 생각 안했습니다. 단순히 정보보고는 참고 사항으로 생각하고 이해했습니다.


검사:국정원 보고서가 대통령에게서 올라가는 것 알고 있다는 취지의 증언인가요?


김상률:네.그렇습니다.


검사:증인이 받은 보고서가 비서실장과 대통령이 받은 보고서와 정확히 동일한가요?


김상률:다르다고 다른 수석들에게서 들었습니다.



청와대의 수석이 국정원 보고서에 오류가 있다며 신뢰하지 않고 오히려 '피로감'까지 느꼈다는 증언은 국정원이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얼마나 정보력이 떨어져 있는지 단적으로 말해주는 대목이다. 정권에 부정적인 인사에 대한 표적사찰만 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정보수집에는 등한시 했고 정보신뢰도도 떨어졌던 것이다. 


김상률 전 수석 증언처럼 이명박 박근혜 두 정권은 '국정원 통치'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정원이 보고한 문건을 '통치 가이드라인'으로 삼았다. 그런데 청와대 수석조차 70년대 중정스타일의 '국정원 문건 통치'에 회의를 품었던 사실이 재판에서 뒤늦게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의 무차별적 ‘비판세력 제압 활동’이 양파 껍질 벗겨지듯 드러나고 있다. 정치인은 물론 연예인, 교수 등 각계각층 인사들의 숨통을 끊기 위한 일을 벌였다는 의혹의 실체가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26일엔 군사이버사 심리전단이 연예인 비방물을 만든 사실도 드러났다. 



국정원 등의 행태는 앞서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불거졌던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과 중첩되면서 정권 자체가 ‘총체적 사찰공화국’이었음이 확인되고 있다. 당시 집권세력들은 국가기구와 사정기관 등 권력기구들을 사유화했고, 이 전 대통령의 보위에만 힘쓰는 친위대로 전락시켰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석 달 만인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에 데었다. 대선에서 530만표 차로 압승하고 18대 총선까지 승리한 이 전 대통령은 겉으로는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사과했다.



하지만 속내는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는지 파악하라’는 것이었다. 정권은 ‘배후 세력 캐내기·비판 세력 옥죄기’에 착수했다. 곧바로 7월 신설된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소속은 총리실이었지만 실제로는 청와대 지휘를 받는 관가의 저승사자였다. 



‘특명사항은 VIP(이 전 대통령)께 일심(一心)으로 충성하는 친위조직이 비선에서 총괄지휘’ 등 무협지에 나올 법한 표현이 내부 문건에 등장했다. 친위대의 증거는 조직 구성에 있었다. 지원관부터 주요 구성원, 컨트롤타워 역할의 이영호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등은 모조리 경북 포항·영일 인근 출신의 영포라인이었다.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공식적으로 공직기강을 담당한 이 조직은 2010년 6월 김종익씨 사찰건이 언론에 들통날 때까지 민간인까지 ‘반정부’ 딱지를 붙여 마구잡이로 사찰하며 압박을 가했다. 불법 사찰이 드러난 이후에는 연루 공무원들에게 대포폰과 관봉에 싸인 현금을 쥐여주며 증거인멸에 총력을 다했다. 



국정원도 촛불집회 반년 후인 2009년 1월 수뇌부가 교체됐다. 이 전 대통령의 ‘심복’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취임 직후부터 심리전단 조직·인원을 확대해 사회 각계 인사를 압박하고 목줄을 죄었다.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에 따르면 국정원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정부 비판 인사에 대한 대응 활동을 강화했다. ‘노 자살 관련 좌파 제압논리 개발·활용 계획’ 등의 보고서까지 작성해 주도면밀하게 여론전을 폈다.



이 전 대통령 1인을 위한 특명부대 성격의 공직윤리지원관실과 외곽 여론전에 정보력이 총동원되는 등 ‘투 트랙’ 권력 사유화가 최고조에 달한 시기도 이때쯤이었다. 



당시 사정기관의 활동 목표는 1인 권력 공고화에 있었다. 얼핏 보면 ‘좌파·진보 세력 제압’ 등을 내걸면서 정치적 대결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정권 보위에 거슬리는 인물들은 모두가 사찰과 공격의 대상이었다.



당시 한나라당 홍준표, 안상수, 권영세 의원 등 여권 인사가 표적으로 등장한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공직윤리지원관실은 당시 한나라당 정두언, 남경필, 정태근 의원, 이완구 충남지사 등 이 전 대통령과 대척점에 선 여당 정치인들을 전방위로 사찰해 충격을 줬다. 





이완구 충남지사는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하며 2009년 도지사직을 사퇴해 정권의 미움을 샀다. 그는 훗날 국가인권위 직권조사에서 “공포감이 들고 분노를 느꼈다”고 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여론전·심리전에 동원하던 국정원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여권이 참패한 이후 더 위기감을 느낀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국정원은 천안함·연평도 도발 등 안보 이슈를 적극 제기하고, 4대강 사업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국정원 개혁발전위는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2012년 총선·대선에 국정원이 특정 정치인들을 집중 공격하는 등 본격적인 선거개입을 한 것으로 파악했다. 



결과적으로 국정원의 선거개입 활동은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다. 2012년 총선에서 당시 집권여당인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승리하고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정권 친위대 활동 내역은 4년 동안 묻혀버렸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정권이 교체되면서 총체적 사찰 공화국의 베일은 벗겨지기 시작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동안 국정원을 개인의 한풀이를 위한 심부름센터쯤으로 여겼다. 대선후보 시절부터 참모들이 건네주는 ‘찌라시’를 밤새워 읽을 정도로 호기심 충족을 위한 ‘정보읽기’를 즐기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흥밋거리가 있으면 지시를 내려 확인을 하는 등 개인의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서 정보기관이 기능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런 비리 의혹들이 살아있는 권력 시절 일어났기 때문에 그 실체를 제대로 규명할 수 없었다. 그 결과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막강한 정보력과 파워를 가진 국가 정보기관 운영이 비정상적으로 운영될 경우 그 영향이 어디까지 미치게 되는지 이명박-박근혜 두 정권이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적폐청산 차원에서 이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성기노 피처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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