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노 칼럼] ‘암살자(들)’이 불편한 사람들

2005년 영화 ‘그때 그사람들’은 법원의 가처분 결정으로 다큐멘터리 장면 3분 50초가 검은 화면으로 바뀐 채 극장에 걸렸다. 2013년 ‘천안함 프로젝트’는 개봉 이틀 만에 메가박스에서 내려왔다. 2023년 ‘서울의 봄’ 때는 단체관람을 한 학교 앞에 보수단체가 몰려갔고 또 다른 학교 교장은 고발당했다.
과거의 민감한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가 나올 때마다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상영 중단 요구와 고발장이 뒤따른다. 20년째 같은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이번에는 허진호 감독의 ‘암살자(들)’이다.
1974년 8월15일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추적하는 기자와 형사의 이야기다. 개봉 나흘 만에 100만 관객을 넘기자 국민의힘에서는 ‘정치적 프로파간다’ “패륜’이라는 비판과 함께 상영 중단과 불매운동, 감독의 국정감사 출석 요구까지 나왔다. 역사왜곡처벌법을 만들자는 주장도 제기됐다.
감독과 제작진은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발됐다. 제목이 단수가 아니라 복수형이라는 점까지 문제가 됐다. 주연배우의 집 앞에서 집회와 시위를 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일부 극우세력의 이런 준동은 분명히 선을 넘었지만 보수층은 심정적으로 동의하는 듯한 분위기다.
허진호 감독은 사건의 배후를 밝히려는 영화라기보다 진실을 좇았던 사람들의 ‘추적기’를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데 논란은 영화가 내놓은 결과에만 매달린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배후라는 것이냐 아니냐, 문세광 단독범행을 부정하는 것이냐 아니냐는 식이다.
정작 이 영화에서 봐야 할 것은 현상적으로 드러난 결과보다 과정이다. 한 인간이 왜 국가의 발표에 의문을 품었고 왜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진실을 좇았는가 하는 점이다. 이는 박정희가 자신 부인의 암살을 지시했다는 의혹의 진실 여부와는 관련이 없는 별개의 문제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결국 진실이 흔들리는 지점 앞에서 인간은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는가라는 실존적인 문제에 닿아 있다. 더구나 ‘박정희’의 ‘박’ 자만 꺼내도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갈 수도 있다는 공포의 시대에서는 상식적인 의문과 질문마저도 꽁꽁 숨겨야 했다. 우리는 그런 시대를 견뎌 왔다.
육영수 여사가 피격된 1974년은 긴급조치의 해였다. 진실화해위원회가 훗날 분석한 유신 시기 긴급조치 위반 사건은 589건, 관련자는 1140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유신체제 비판발언 등’으로 분류된 사건만 282건으로 전체의 48%에 이른다.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 한 달 전 군법회의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 8명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이들은 이듬해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처형됐고 32년 뒤 재심에서 전원 무죄가 선고됐다.
말 한마디가 처벌의 대상이 되고 국가가 만들어낸 사건으로 사람이 죽던 시대였다. 정부 발표를 믿지 못한 국민을 탓하기 전에 왜 국민이 정부를 믿지 못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그 정권이라면 그렇게까지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일말의 의구심을 던지는 국민들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 다시 영화관으로 향한 것은 박정희 정권이 남긴 억압과 국가폭력의 기억이 아직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심을 만들어낸 것은 영화가 아니다. 독재정권이 끊임없이 국민에게 주입 시킨 불신과 공포가 반세기를 건너 다시 질문으로 돌아온 것일 뿐이다.
수십년째 같은 장면이 반복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불편한 질문이 나오면 사실과 기록으로 답하기보다 상영을 막고 창작자를 고발해 질문 자체를 없애려 한다. 독재자는 떠났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가 써준 정답지를 손에 쥐고 있다.
‘암살자(들)’ 논란이 불편한 진짜 이유는 영화가 무엇을 상상했느냐가 아니라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우리가 그 질문을 대하는 방식이 독재 시대와 똑같다는 데 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이념의 망령과 권력의 사상 검열 그물에 포획돼 있는 것 같다.
*이 글은 2026년 10월 2일자 투데이신문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