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성기노 칼럼] ‘노무현 평전’ 출간을 반기며...

성기노피처링대표 2026. 8. 28.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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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시 진영읍의 봉하마을 사저에서 참모들과 회의 중 미소를 보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 2009년 3월 21일 사진으로 서거 두 달 여 전이다. (사진=노무현 사료관)

 

노무현은 한국 정치의 아픈 손가락이다. 2009년 5월 23일 토요일,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사람들의 시각은 엇갈렸다. 한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 결말을 두고 개인의 불가피한, 실존적 선택이라는 의견과 한때 국가 최고 지도자였던 정치인의 무책임한 도피라는 비판이 서로 부딪쳤다.

그전에 이미 그에 대한 비난은 넘쳤다. 지지율이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가던 시절, 필자 또한 그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대통령답지 않은 경박한 언행은 그에 대해 턱없이 높은 이해 수준과 인내를 요구했다. 피아를 선명하게 갈라 세우는 공격적인 전략은 국민통합을 위한 헌신과 희생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실망과 좌절을 불렀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진영을 동원해 상대를 밀어붙이는 방식은 정치에 대한 환멸과 냉소를 낳기도 했다.

지금 와서 그런 비판을 통째로 거두어들일 생각은 없다. 그의 정치 방식은 실제로 분열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정치에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대연정이 그렇다. 분열의 정치라고 그를 몰아세웠던 나는, 정작 그가 진영을 깨고 야당에 권력의 절반을 내주겠다고 제안한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을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그 제안은 실패했고 지지자들에게는 배신으로 읽혔다. 다만 그 뒤로 20년 동안 진영을 넘어 손을 잡자는 말을 꺼낸 대통령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사실 앞에서 지금의 정치는 노무현 때보다 훨씬 더 퇴행했다고 본다.

대통령에서 물러난 지 1년이 조금 지나 세상을 등진 한 전직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 겸허해지는 것은 노무현이 솔직했고 적어도 자신을 속이려 하지 않았으며, 또한 꿈을 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나고 보니 회한이 남는다. 그의 진심을, 정치개혁에 대한 열망과 분투를 그때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오해가 이해로 바뀐 것은 그가 안타깝게 세상을 등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죽음이 정치인의 가치를 올려주지는 않는다. 다만, 20여 년 전 그가 던진 의제들이 어떤 의도였는지 지금 비로소 정치적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뿐이다.

행정수도 이전이 그렇고, 지역구도 깨기가 그렇고, 권력기관을 개혁하고,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내려놓으려 했던 것도 그렇다. 당시 그것들이 다 옳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옳았는지 잘못된 것인지를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역사의 수레가 어느 정도 지나가고 난 뒤 그 선택이 어떠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문제는 시대를 반 발짝 앞서간 노무현의 담론들이 지금 정치판에는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수도를 어디에 둘 것인가, 진영을 넘어 손을 잡을 수 있는가, 지역이 표를 결정하는 나라를 그대로 둘 것인가. 20년 전 노무현이 혼자 멀찍이 앞서 가며 던졌던 질문들을, 지금은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가 틀렸다고 판정이 난 것이 아니라 그런 질문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상대를 어떻게 꺾을 것인가를 둘러싼 피아 식별전뿐이다. 지금 정치는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공간이라기보다 상대 진영을 세워놓고 죄를 묻는 거대한 심문장이 되어가고 있다. 정책보다 처벌이 앞서고, 설득보다 응징이 쉬워졌다. 상대의 좋은 정책을 받아들이는 순간 배신자가 되고 타협하면 굴복했다고 공격받는다.

노무현에게 정치란 적어도 이런 것은 아니었다. 그는 싸움을 피하는 정치인은 아니었지만 싸움 자체를 정치의 목적으로 삼지는 않았다. 싸움 끝에는 지역주의를 깨겠다거나 수도권 집중을 바꾸겠다거나 낡은 정치구조를 뒤집겠다는, 좋든 싫든 그만의 소명의식과 ‘꿈’이 있었다. 지금 정치에는 싸움은 넘쳐나는데 정작 어디로 가겠다는 이야기가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타협하지 않고 꺾이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부러졌다. 기득권 수구세력을 깨부수지 못하고 그 자신이 꺾인 것, 그것이 한국 정치의 비극이자 아픈 손가락으로 남아 있는 이유다.

그런 노무현의 평전이 나왔다. 노무현재단이 기획하고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대변인과 제1부속실장·연설기획비서관을 지내며 노무현의 말과 생각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윤태영이 10년 동안 벼리고 벼린 칼이다. 928쪽에 이른다.

대통령의 구술, 참모들의 메모, 비공개 녹취록과 비망록 160여 건, 봉하마을 영상 365편이 들어갔다. 노 전 대통령 죽음에 대한 자책으로 10년 가까이 언론 앞에 나서지 않았던, 진중하고 합리적인 윤태영이 기록한 것이라 더 믿음이 간다.

9월 1일이면 노무현이 태어난 지 80년이다. 살아 있다면 여든의 그가 지금 이 정치판을 향해 무어라 일갈할까. 나는 노무현의 평전을 끌어안고 오래 읽을 것이다. 내가 그를 오해했던 자리마다 무엇이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리고 다시는 그렇게 부러지는 정치인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 글은 2026년 8월 28일자 투데이신문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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