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노 칼럼] 박장범 KBS 사장 ‘내정자’와 친일파의 논리
최근 박장범 ‘뉴스9’ 앵커가 차기 KBS 사장 최종 후보로 내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박장범 앵커는 국회 인사청문회와 대통령의 임명재가를 거쳐 KBS 사장에 최종 임명되는데 거의 확정상태다. 정치권과 KBS에서는 박장범 후보의 최종 ‘합격’을 두고 씁쓸한 뒷말들이 나오고 있다.
KBS 기자출신인 박장범 KBS ‘뉴스9’ 앵커가 유명해진 것은 올해 2월 7일 방영된 ‘KBS 특별 대담 대통령실을 가다’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인터뷰를 진행해 화제의 중심에 섰기 때문이다. 그는 김건희 여사의 디오르 백 수수 의혹과 관련해 그 명칭을 ‘조그만 파우치’로 표현하는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윤 대통령뿐 아니라 논란의 당사자인 김건희 여사를 완전히 사로잡은 모양이다.
박상현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장은 한 인터뷰에서 박 앵커의 뜬금없는 사장 입후보 과정과 김건희 여사의 ‘입김’ 의혹을 제기했다. 박 본부장은 “처음 박장범 앵커가 지원했을 때 뜬금없다는 반응이었다. 왜냐면 보통 사장직에 지원하시는 분은 회사에서 임원도 하고 정년도 얼마 남지 않은 분들이 하시는데 박장범 앵커는 현직 앵커이기도 하고 회사에서 임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략) 그러면서도 2월에 있었던 ‘특별대담’에서 ‘조그마한 파우치’ 발언이 워낙 컸기 때문에 전혀 가능성이 없는 사람은 아닐 것 같고, 강력한 후보자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평가도 있었다. 박장범 앵커가 믿는 구석 없이 지원하지는 않았을 거로 생각했다. 그리고 면접 전날 박장범 앵커가 유력하다는 소문이 굉장히 크게 확산됐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박 본부장은 ‘대통령 술친구가 김건희 라인에 밀렸다’는 평가도 대해서는 “흔히 나오는 얘기가 ‘우리나라 지금 진짜 대통령이 누구냐’이지 않느냐. 지금 (윤석열) 대통령보다 김건희 여사의 심기를 보호해 주고, 김 여사 마음에 들 만한 사람이 더 실세일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거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사실 박장범 앵커는 지난해 ‘뉴스9’ 맡기 전까지 대중에게 크게 알려진 기자는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조그마한 파우치’ 질문 하나로 연차도 짧은 그는 단숨에 KBS 사장 최종후보에까지 오르는 ‘수직 출세가도’를 달렸다. 현 방송계 구조 상 공영방송인 KBS 사장도 대통령이 임명하는 이사들이 후보를 선정하고 대통령이 최종 재가하기 때문에 사실상 ‘용산의 오더’에 의해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박장범 앵커는 윤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를 ‘감싸고 돈다’는 논란이 극에 달하고,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 논란도 초미의 관심사가 됐을 때 인터뷰를 진행했다. 세간에서는 윤 대통령이 ‘이번에는 또 어떤 뻔뻔한 논리로 피해갈까’라며 인터뷰에 많은 관심이 집중됐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윤 대통령이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한 해명 부담을 크게 덜어준 것이 박 앵커의 ‘조그마한 파우치’ 질문이 돼버렸다.
박장범 앵커는 ‘조그마한 파우치’라고 한 것과 관련해 사장 후보자 심사에서 “제품명 자체가 디올 파우치이고, 방송에서 회사 이름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었다”며 “‘크기가 작은 가방’이라고 표현한 것도 ‘파우치’를 풀어서 쓴 것”이라고 둘러댔다. 대중들이 감히 생각지도 못한 ‘작명술’이다.
박 앵커는 아마도 인터뷰에서 시중에서 흔히 불리고 있는 ‘명품백’이나 ‘디오르백’이라는 단어를 쓸 경우 ‘김건희 명품백 수수 의혹’ 프레임에 지배당하게 되고 윤 대통령도 어떤 대답을 하더라도 ‘김 여사가 명품백을 수수한 것은 사실’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들어가는 꼴이 되기 때문에 그런 프레임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고심 끝에 ‘자그마한 파우치’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박 앵커는 상식과 공감이 담보된 보편적인 공공의 언어를 무시하고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 회사의 특정 제품명을 굳이 찾아내고 ‘파우치’라는 영어도 ‘크기가 작은 가방’으로 부르며 민심을 왜곡하려고 했다. 이는 소위 잘 나가는 엘리트들이 배운 지식을 개인의 영달과 출세를 위해 써먹는 전형적인 곡학아세(曲學阿世)의 모습이다.
이런 박 앵커의 ‘말장난’은 한국 정치가 그동안 어렵게 쌓아올린 민주주의의 절차적 정당성과 숙의, 타협의 과정들이 검찰 출신의 ‘칼잡이’들에게 유린되고 그들만의 논리로 정치를 파괴하는 것과 무관치 않다. 현재의 윤석열 정권은 알량한 그들의 기득권과 세력보호를 위해 그들만의 논리를 개발해 여론을 왜곡하고 민심을 깔아뭉개기에 혈안이 돼 있다. 박장범 앵커는 대중들이 쓰지도 않는 그들만의 언어 ‘말장난’으로 윤 대통령과 김 여사의 구미는 당겼을지 몰라도 우리 사회에 또 다시 박탈감과 자괴심을 안겨주고 있다.
대중이 쓰지 않는 단어를 앵커가 백번 써본들 그것은 권력 미화 프로파간다의 한낱 단어장에 불과할 뿐이다. 그럼에도 박 앵커는 KBS 사장이라는 야심찬 출세를 위해 ‘자그마한 파우치’라는 권력자의 입맛에 딱 맞는 사탕을 입에 넣어주고 그 대가로 공영방송 사장에 오르기 직전에 있다.
박장범의 ‘파우치 변명’은 1905년 을사늑약 때 친일파 이완용 일당이 기득권과 부의 영속을 위해 내세운 그들만의 논리와 맥이 닿아 있다. 이완용은 나라를 팔아먹으면서 기상천외한 논리를 내세웠다 “조선이 식민지가 된 것은 구한국(대한제국)이 힘이 없었기 때문···역사적으로 당연한 운명과 세계적 대세에 순응키 위한 조선민족의 유일한 활로이기에 단행된 것”이라고 둘러댔다.
다수의 국민들이 공감하고 상식으로 생각했던 조선의 자주와 독립은 이완용과 친일파들의 기득권 유지 논리에 막혀 민의는 왜곡되었고 나라는 주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후 한국의 엘리트들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민중을 제압할 논리를 개발하는 데 특유의 본능적인 생존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2022년 10월 당시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조선은 왜 망했을까. 일본군의 침략으로 망한 걸까.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고, 그래서 망했다. 일본은 조선 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 조선은 자신을 지킬 힘이 없었다”는 글을 올려 식민사관 친일 망언이라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지금 그는 윤석열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는 대통령실 비서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 10월 2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9층에서는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5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이부영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과 신홍범 전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 등 투위 위원들이 참석해 기념식을 진행했다. 동아투위의 언론 민주화 운동 사건은 1974년 10월 당시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언론탄압에 맞서 언론자유를 요구하던 동아일보·동아방송 기자와 피디, 아나운서 등 113명이 강제해직되면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동아투위 관련자들의 복직을 요구하며 농성하던 조선일보기자 70여명도 해직된 데 이어 전국 35개 언론사가 동아투위에 지지를 보내고 대학생과 종교단체가 성명을 내고 시위를 벌이는 등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리고 올해 2024년 동아투위 사건은 5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해직된 기자들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저항과 투쟁의 후유증을 앓아야했다. 하지만 군사독재정권에 맞섰던 기개와 정의감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들의 심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그들의 헌신과 희생은 한국 언론의 자유가 확대되고 제4부의 독립적인 권력이 확립되는 과정에서 크나큰 마중물이 됐다.
일제강점기를 지나고 한국이 독립했을 때 만주 등지로 독립운동을 떠났던 ‘투사’들은 금의환향을 할 수 없었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며 모두다 몸을 사리고 저항에 주저했을 때 기개와 정의감으로 뭉친 독립투사들은 자신들의 삶을 포기하고 조선의 독립을 위해 오롯이 희생했다. 하지만 그들이 고국에 돌아왔을 때 맞닥뜨린 것은 찢어지는 가난과 무관심, 외면밖에 없었다.
언제나 역사는 힘과 권력이 있는 자들의 편이었다. 박장범 앵커는 누구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 ‘자그마한 파우치’ 표현 하나로 권력의 편에 붙었다. 이는 물론 개인의 선택이자 자유의지다. 하지만 국민들의 감정을 우습게 알고 오로지 권력자의 비위에만 맞추려는 뻔뻔하고 이기적인 한 엘리트의 빗나간 출세욕은 그 자신의 성공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사회지도층이나 엘리트들이 비열하고 치사한 방식으로 부와 권력을 쌓아올린 비정상과 탈법의 꼼수들이 버젓이 정상인 것처럼 ‘미화’되고 합리화되고 있다. 그런 방식을 닮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약자들을 밟고 올라서서 부와 권력을 쟁취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약육강식의 논리를 성공의 방정식으로 ‘합리화’하며 출세의 자기체면을 걸고 있다. 정치는 그런 약육강식의 최상위층 포식자로 군림하면서 노력과 과정을 무시하고 편법과 꼼수가 곧 출세의 지름길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정치와 여론의 괴리가 갈수록 커지고 심지어 선거를 통해 확인된 민의마저도 권력자의 뻔뻔함과 포악함으로 외면을 받고 있다. 이렇게 권력이 민심을 무서워하지 않고 오로지 그들만의 이익을 위해 질주할 수 있는 것은 국민의 언어를 말하지 않고 권력자의 언어를 내뱉는 엘리트들이 끊임없이 확대재생산 되고 그 앞에 줄을 서기 때문이다.
약자의 편에 서서, 정의감으로 강자에 맞서는 기개 있는 엘리트의 전설은 알량한 자리라도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 꼬리를 치며 달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그 명맥은 끊겼다. 출세욕과 이기심에 찌들어 명품백을 명품백으로 부르지 못하는 한국의 엘리트들은, 죽었다. 이는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노력이 정당하게 보상받는 희망의 불씨마저 사위어가게 하는, 우리 모두를 파멸에 이르게 하는 절망의 변주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