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노 칼럼] 윤석열, 레임덕 징후에도 자포자기 국정운영
윤석열 대통령이 자포자기 상태의 국정운영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권력의 지지율 하락이 병가지상사라고 해도 20%까지 추락했음에도 특단의 대응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것은 사실상 정치를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보수층 대구경북의 70대 이상 고령층들이 의료대란으로 건강에 대한 우려가 커지며 지지율 대열에서 빠져나가는 것은 거의 모든 연령대에서 대통령에 대한 지지와 기대를 접었다는 시그널로 읽힌다.
그런데도 더 믿기지 않는 것은 대통령실 핵심 참모까지 나서서 ‘우리 대통령께서는 지지율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상남자 스타일이다. 멋지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면 대통령실 전체가 심각한 나르시시즘에 빠져 ‘정치적 피터팬 증후군’(어른이 된 후에도 사회정치에 적응을 하지 못한 채 어린아이와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특성)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 같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대통령은 자신을 끌어내리는 데만 혈안이 돼 있는 야당을 더 이상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야당은 야당대로 민심과 완전히 따로 놀고 그들을 무시하는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고 탄핵 탄착군을 점점 더 좁혀가고 있다. 정치의 복원은 둘째 치고 양측은 ‘밀리면 죽는다’는 극한 대치 상황에 매몰돼 서로에게 복종과 굴욕만을 강요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민심’에 조응해 자신의 주장을 누그러뜨리고 진지하게 반대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정치’를 해온 적이 없다. 국민들이 더욱 열불 나는 것은 말로는 뻔지르르한 미사여구를 남발하면서도 정작 그 실행력은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마치 취기에 온갖 약속을 남발하며 호기를 부려놓고 다음날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술꾼들의 ‘취중진담’을 보는 것 같다.
윤 대통령은 취임 석 달 만에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지자 “국민의 뜻을 헤아리겠다”며 말로는 고개를 숙였다. 그 후 2023년 10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후에도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어떤 비판에도 변명해선 안 된다”며 옳은 말‘만’ 했다. 2024년 총선 참패 뒤에도 “국민의 뜻을 잘 살피고 받들지 못해 죄송하다”며 사과를 했지만 정작 그 후의 ‘정치적 언행’은 사과하는 사람의 그것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이런 윤 대통령의 ‘정치적 기행’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분석이 쏟아진다. ‘검사 출신으로 정치에 갓 입문해 대화와 타협의 관행에 익숙치 않다’는 것에서부터 ‘주변 역술인이나 극우 유튜버에 경도돼 있다’든지, ‘김건희 여사로부터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지침을 받고 그대로 따라한다’는 등 각양각색의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수십년간 정치권을 취재해온 기자들이나 정치평론가들은 윤 대통령의 ‘정치’에 대해 지금까지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의 ‘독재자’라는 평가도 내놓고 있다. 그 단적인 예가 바로 대통령의 거부권 ‘난사’다. 윤 대통령은 집권 이후 임기의 절반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총 21회의 각종 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 21이라는 숫자만 놓고 봐도 윤 대통령이 국회를 얼마나 우습게 보는지 알 수 있다. 윤석열 정부 이전에는 노태우 정부가 7회로 가장 많았다. 박정희 정부가 5회, 노무현 정부가 4회로 그 뒤를 잇는다. 박근혜 정부가 2회, 이명박 정부는 1회 거부권을 행사했다. 전두환 김영삼 김대중 문재인 정부는 한 번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5명 전직 대통령의 총 재임 22년동안 한 번도 행사되지 않았던 거부권이 윤 대통령 재임 2년 만에 21회나 행사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역대 대통령들이라고 해서 야당의 ‘국정 운영 발목잡기용’이나 ‘대통령 곤경 빠뜨리기’ 법안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그들이 거부권 행사를 엄격히 제한하고 인내했던 것은 ‘하나를 주고 하나를 얻는’ 국정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였다. 사실 윤 대통령이 2년만에 21번이나 국회 법안을 거부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개혁의제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고 백번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하지만 그 ‘개혁’의 절반은 야당과 같이 의제를 수행해야 하는 ‘정치의 영역’으로 채워져야 한다. 취임 이후 계속 여소야대 국면에 접한 윤 대통령으로서는 더욱 절박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야당과의 타협과 협상을 통해 얼마든지 ‘의미 있는 대체법안’을 만들 수 있었음에도 지금까지 줄곧 ‘올 오어 낫싱’의 극단적 전략을 취해왔다. 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그냥 야당의 ‘패악질’이 기분 나빠서 ‘응, 안 해. 가져가’라며 미숙하고 치기어린 대응을 한 것은 역대 정권 그 어떤 곳에서도 발견하지 못한 최악의 패착이자 미스터리다.
윤 대통령이 사상 처음으로 국회 개원식에 참석하지 않은 점도 정치사에 최악의 오점으로 기록되겠지만 거부권 남발은 국민을 대신해 의회에 입성한 야당의 입법 권한을 대통령이 깡그리 무시한다는 점에서 국가 운영에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이 단순히 기분 나빠서 야당 법안을 ‘자동 거부’한다면 국가 경쟁력과 경제에도 ‘민폐’를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정치적 배임’이 될 수도 있다.
이제 국민들은 윤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은 것 같다. 집권한 지 고작 2년 4개월 됐고 앞으로 2년 8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남아 있지만 윤 대통령의 긍정 지지율은 20%에 간신히 턱걸이를 하는 궤멸적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임기의 절반도 지나지 않은 대통령에게 레임덕 운운 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긴 하다. 그럼에도, 현재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적 상황은 심각하다 못해 자포자기 상태로 가고 있다.
역대 대통령들이 통상 임기 4년차에 맞이하던 레임덕을 윤 대통령은 임기 절반도 채우지 못한 상황에서 이미 그 한복판에 들어서고 있다. 5년 단임제이기 때문에 집권 4년차 정도 되면 권력의 속성 상 대통령의 힘은 자연스럽게 빠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집권 2년 만에 역대 정권의 4년차 ‘말기 현상’에 직면해 있다.
레임덕이 심화되면 국가 의제 추진과 실행이 대통령실 주도에서 집권여당 주도로 그 무게추가 옮겨갈 수밖에 없다. 지금은 윤 대통령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힘으로 누르고 있지만 지지율 하락에 따른 레임덕이 깊어지면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은 현저히 떨어진다. 이런 점에서 이번 의료대란의 해결이 윤 대통령의 레임덕을 평가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대통령실의 고집과 독선대로 흘러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되면 레임덕이 한 발짝 늦춰지는 것이고, 여당의 타협 수용 요구가 받아들여져 ‘누더기 합의’로 처리되면 대통령의 레임덕 둑은 이미 무너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대통령의 여당 탈당도 레임덕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노태우부터 박근혜까지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이명박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 모두 임기 말 여당을 탈당했다. 윤 대통령도 한동훈 대표가 계속 기어오르며 귀찮게 할 경우 국민의힘 탈당이라는 또 다른 기이한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이 또한 심각한 레임덕 시그널로 인식될 것이다.
권력 내부의 내밀하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이 터져 나오는 것도 대통령 레임덕의 전형적인 징후다. 지난 9월 19일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2022년 6·1 국회의원 보궐선거 공천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이 공천을 받는 데 윤 대통령과 김 여사가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김 전 의원의 측근 명태균씨가 주장했다는 것이다.
관련 당사자들은 명씨를 신뢰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선을 긋고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김 여사와 관련된 의혹이 거듭 터져 나오는 데 대한 우려가 나온다. 이번 공천 개입 의혹도 녹취록을 통해 대통령 부부 권력의 ‘밀행’이 공개돼 파장이 커지고 있다. 대통령 지지층 사이에서 “더 이상 힘 빠진 대통령에게 기댈 것이 없다”는 공감대가 확산되면 그동안 권력이 무서워 터뜨리지 못했던 각종 내밀한 이야기들이 폭로 형식으로 터져 나올 것이다.
이번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선거 공천 개입 의혹은 그 신호탄이 될 수 있다. 특히 최근 언론사에는 김건희 여사의 ‘국정 개입’ 의혹에 관한 각종 제보가 쏟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김 여사에 대한 ‘비선 라인’ 시비와 불법적인 권력 개입 의혹이 연이어 터져 나올 경우 윤 대통령 레임덕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공직사회가 더 이상 대통령 지시에 긴장하지 않고 굼뜨거나 실행하는 시늉만 하는 등 ‘태업’을 할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는 것도 레임덕의 전형적인 예후다. 특히 공무원들이 ‘인기가 떨어진’ 대통령의 홍보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아예 지시를 거부하는 사례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지난 4월 총선 전 문화체육관광부가 국회의원 선거 사전투표를 하루 앞두고 정부 부처에 공무원들이 대통령 정책홍보 영상을 볼 수 있게 게시물을 올려달라고 요청했다가 ‘선거 개입이 아니냐’는 공무원들의 반발에 일부 부처는 해당 영상을 삭제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즈음 국방부도 윤석열 대통령의 강연을 장병들에게 특별교육하라고 지시했다가 철회하는 일이 있었다. 공직사회의 복지부동은 윤 대통령이 추진하는 각종 개혁정책에 야당보다 더 세게 발목을 잡는 최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지금 곳곳에서 반개혁 저항이 계속되고 있다”며 자신의 4개 개혁 추진 부진을 또 ‘남 탓’으로 돌리고 있다. 연금개혁은 지난 국회 막바지에 여야 합의안을 정부가 발로 차버려 오히려 후퇴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고, 노동개혁은 ‘주 69시간’ 논란으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교육개혁은 정권 ‘사교육 카르텔 혁파’를 공언했지만 그 대안인 공교육 구조개혁은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하나 남은 의료개혁에 목을 매고 있지만 구체적인 대안 마련 없이 졸속으로 밀어붙이다가 이제는 ‘문과 1등’과 ‘이과 1등’의 자존심 싸움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이렇게 4대 개혁에 대한 모든 성적표가 낙제임에도 윤 대통령은 일관되게 ‘남 탓 타령’만 해댄다.
윤 대통령은 집권 이후 장기 국정운영 비전 없이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대응만 해오다 이제는 인기가 폭락하니 완전히 자포자기, ‘될 대로 되라’ 식의 무책임한 국정운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오로지 그는 김건희 여사 방어에만 국정의 모든 역량을 ‘사적으로’ 총동원하고 있다. 김건희는 김건희대로 후안무치한 ‘통치자 코스프레’에 빠져 있다. 해도 해도 이번 윤석열 정권은 정말 너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