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노 칼럼] 이재명 ‘10월 위기설’과 윤석열의 ‘빌드업’
현재 더불어민주당은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치르고 있다. 지난 전당대회에 이어 ‘어대명’(어차피 대표는 이재명)이 확고히 자리 잡으면서 당원들의 참여도가 현저히 줄었고 국민들도 ‘또 이재명이 하나 보다’ 정도로 인식하며 시큰둥한 반응이다. 제1야당의 전당대회가 이처럼 주목을 받지 못한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민주당 전당대회의 권리당원 온라인 투표율은 26.47%로, 선거인 69만7351명 가운데 18만4605명이 투표에 참여했다(8월 5일 기준). 민주당 권리당원들이 이번 전당대회를 이재명 후보의 대선 도전 ‘재수’를 위한 통과의례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럼에도 “77%에 가까운 사람들이 투표를 하지 않았거나 김두관 김지수 후보에게 투표했다”는 사실은 이재명의 ‘대표성’을 논하기에 벅차 보인다.
김두관 후보 측 백왕순 대변인은 “10명 중 2.3명이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고 있는데 이는 대표성에 대한 심각한 위기”라고 꼬집었다. 민주당이 당원 중심 정당을 표방하는 마당에 1위 후보가 10명 중 2~3명만의 지지를 받는다는 사실은 ‘대표’의 권력 안정성과 신뢰성을 위협하는 불안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민주당 당심의 척도로 여겨지는 호남 민심은 이재명 후보에게 더 냉소적이고 냉혹한 편이다. 광주와 전남, 전북의 온라인 투표율은 전부 25% 이하 대에 머물렀다. 호남 경선 전 당원 투표율은 30%가 넘었지만 호남 투표가 시작되면서 20%대로 뚝 떨어졌다. 호남이 신바람이 나서 전략적 ‘몰입’ 투표를 하는 상황이 와야 그 힘이 수도권까지 퍼져나간다는 점에서 호남의 저조한 투표율은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는 근거로도 읽힌다.
권리당원의 낮은 투표율과 호남의 ‘머뭇거림’이라는 전당대회의 악성 시그널은 향후 이재명 대표 체제가 출범해 위기 상황이 닥칠 때 그 ‘일극체제’를 위협하는 잠재적 불안요소가 될 수 있다. 현재 이 후보의 누적 득표율이 86%를 상회하고 있기는 하지만 10명 중 2~3명이 투표해서 얻은 결과라는 점에서도 민주당의 응축된 이재명 지지 열기를 확인하기는 다소 무리가 있다.
지금 민주당의 분위기를 보면 누구나 당의 문제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하는 상황으로 읽힌다. 전당대회 투표율이 30%대도 넘지 못하는 데다 민주당 텃밭인 호남이 더 저조한 성적을 내고 있다면 웬만한 정치인들은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하나같이 입을 꾹 닫고 하루빨리 전당대회가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문제가 뻔히 보임에도 애써 모른 척 외면하고 있다. 언젠가는 그들이 외면했던 사소한 문제가 매머드 급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재명 후보나 친명계들은 눈을 가린 경주마처럼 옆을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고 있다.
민주당은 이재명 후보의 ‘사법리스크’ 종착역을 향해 그야말로 질주를 하고 있다. 그 마지막 장면에 어떤 그림이 튀어나올지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일단 종착역까지는 가서 확인을 해보고 부딪치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나오는 어떤 이견이나 대안 요구도 용납지 않고 무조건 직진중이다.
올해 10월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 1심 선고가 내려질 것으로 전망된다. 만약 이때 이 후보가 유죄를 받는다고 해도 친명계는 전당대회의 압도적 승리를 뒷배 삼아 그대로 돌진할 것이다. 설령 이 후보가 법정구속이 되더라도 정청래 등의 백업 지도부가 그 공백을 메우고 오로지 전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친명계는 주저하고 의심하는 당원들과 의원들을 전부 ‘이재명 일극체제’로 꿰어 대선 때까지 끌고 가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 하지만 친명계의 이런 ‘소 코뚜레 전략’은 윤석열 대통령을 위시한 여권의 ‘이재명 흔들기 전략’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소 코뚜레 전략’은 ‘이재명이 무너지면 대선도 물 건너 간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윤석열 정권의 ‘1차 이재명 구속 작전’은 지난해 국회 체포동의안 불발과 법원의 구속적부심 심사 기각으로 실패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은 올해 10월 나올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선고를 기점으로 ‘2차 구속 작전’을 결행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달 전당대회 과정에서 ‘오는 9월, 10월에 이재명에 대한 1심 재판 결과가 나오기 시작하면 정치적 국면이 전환될 것’이라며 공공연하게 떠벌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총선 참패 뒤에도 민주당과의 협치를 전혀 추진하지 않고 오히려 이진숙 김문수 등과 같은 ‘극우적 인사’를 기용하며 야당의 울화통을 끊임없이 유도하는 것도 ‘이재명 10월 위기설’의 빌드업을 위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국정 운영 권력과 거부권을 무기로 집권 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야당을 포용하고 인정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지 않았다.
오히려 민주당의 ‘물어뜯기’ 행태가 더 도드라지도록 끊임없이 야당을 난장판으로 유인하고 있다. 그래서 국민들이 ‘대통령도 질리지만 야당도 똑같은 한통속’이라며 정치판 전체를 구정물로 인식하게 만들고 정치 혐오를 극대화시키려 한다. 윤 대통령은 집권 후 지금까지 여소야대 상황 하에서는 대통령이 약자이고 야당이 강자라는 ‘대통령 희생자 프레임’을 끝까지 고수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어차피 총선 참패로 욕을 먹을 만큼 먹었고 수모도 당할 만큼 당했기 때문에 더 나빠질 것이 없다’는 이해 못할 뱃심으로 지지율 등락과 상관없이 지금까지 해온 ‘빌런의 정치’를 계속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 ‘카운트 파트’인 이재명 후보도 같이 오물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 현재 민주당의 지지율이 국민의힘보다 더 낮게 나오는 것도 국민들이 ‘윤석열=이재명’을 똑같은 ‘악당’으로 인식하는 결과물일 수 있다.
윤 대통령이 민주당과의 협치 장면을 절대 연출하지 않는 것은 ‘이재명 10월 위기설’의 함정을 더 깊고 단단하게 파기 위한 일종의 힘 모으기 작전 일환이다. 그리고 윤 대통령이 이번 8·15 광복절 특별사면 심사에서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마저 ‘풀어놓으면’ 민주당의 10월 위기설은 단순한 허상이 아니라 구체적 실상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 친문계는 참패를 당했지만 아직 김경수 전 지사를 필두로 몇 명의 잠룡들이 버티고 있다. 이재명의 사법리스크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되면 민주당은 플랜B를 찾을 수밖에 없다. 김경수 전 지사가 올해 복권이 되지 않더라도 윤석열 대통령이 언제든 그를 자유롭게 풀어주면 민주당 대선후보 구도도 급변할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이 위기 상황 최고조일 때 김경수를 풀어줘 분열과 갈등을 유도하게 되면 민주당은 윤석열과 한동훈이 파놓은 덫에 점점 걸려드는 꼴이 될 것이다.
지금 시중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문재인 전 대통령과 ‘동지’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런 해석에는 윤 대통령이 검찰을 꽉 틀어쥐고 이재명 후보가 거의 질식할 정도로 ‘사법 린치’를 가하고 있는 반면 문 전 대통령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 정황이 담겨 있다. 최근 김건희 여사가 최재형 목사와 나눈 카카오톡 내용 일부가 공개됐는데 그 가운데 김 여사가 “저희는 진보의 오야붕이었다. 문재인, 윤석열, 둘은 공동운명체였다”라고 언급하는 대목도 있다.
윤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평소 존경했다”며 공개적인 발언을 하는 것이나 김 여사가 “문재인, 윤석열 둘은 공동운명체였다”고 하는 말 속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낭만적인 호감’이 담겨 있다. 김경수는 노무현의 마지막 ‘수행실장’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친문계의 젊고 새로운 아이콘이라는 점에서 윤 대통령이 눈 여겨 본 ‘잠룡’일 수 있다. 윤 대통령이 ‘김경수 카드’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쓰느냐에 따라 이재명의 사법리스크는 그 심각성이 더해질 수 있고 당 충성도의 점도도 떨어질 가능성이 상존한다.
올해 총선에서 국민들은 이재명 후보의 사법리스크를 인식하면서도 제1야당의 대표로서 압도적 지지를 보낸 것이지만 그런 호조건이 2027년 대선까지 이어진다는 보장은 별로 없다. 최근 한 보수논객이 “지금 시중에선 ‘국민의힘 후보가 한동훈이면 이재명이 대통령 될 수 있고, 민주당에서 이재명 아닌 새 인물이 후보로 나오면 국민의힘에서 누가 나와도 안 될 것’이라는 얘기가 돌고 있다”는 글을 쓴 것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 말은 한동훈의 대선 경쟁력이 허약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인용한 것이기도 하지만, 뒤집어 보면 민주당에서 ‘필승’을 위해 이재명이 아닌 다른 후보를 내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보수층에서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저주를 퍼붓는 말이기도 하지만 이재명이 사법리스크 전선을 뚫고 대권까지 꿰찰지 회의적이라는 일각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관건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민주당을 완전히 장악한 친명계가 대선은 내주더라도 당이라도 계속 틀어쥐는 ‘차악의 상황’까지 상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재명이 아웃되더라도 또 다른 친명계 대선후보를 내세워 민주당의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려는 것이다. 갈수록 이재명과 몸을 더 단단히 묶어버린 민주당의 ‘외통수 전략’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