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노 칼럼] ‘뒷것’의 정치인은 어디에 있는가
‘뒷것’ 김민기(1951. 3. 31~2024. 7. 21 향년 73세)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단지 노래만 만들었을 뿐인데 박정희 군사정권은 1971년 발표한 그의 데뷔 음반 ‘김민기’를 출반 직후 압수해버렸다. ‘꽃 피우는 아이’ ‘늙은 군인의 노래’ ‘상록수’ 등 그의 노래들은 줄줄이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외압에 맞선 저항가수이자 투사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봉제 공장과 탄광에서 일하면서도 권력의 부조리와 억압에 맞서기 위해 계속 노래를 발표했다. 1977년 봉제 공장에서 일하며 ‘상록수’를 만들었고, 1984년에는 민중가요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결성해 프로젝트 음반을 발매했다. 김민기의 노래는 지친 투사들뿐 아니라 권력의 횡포에 숨죽인 채 살아가던 민중들의 목마름을 적셔주던 청량한 이슬이었다.
양희은이 노래했던 ‘아침이슬’이 억압과 탄압에 저항하는 상징의 음표가 되면서 김민기는 ‘음지의 투사’가 됐다. 대학가 시위는 구슬픈 ‘아침이슬’ 노래로 끝이 나곤 했다. 1987년 이한열 열사 노제 때 서울시청 광장에서 울려 퍼진 ‘아침이슬’은 핍박과 억압에 분노하는 민중들의 울부짖음이었다.
김민기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저항가수이자 투사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는 그런 명성을 자신의 ‘출세’에 이용하지 않았다. 386 운동권 세대들이 그들의 값진 젊음을 희생한 것을 담보로 달콤한 권력을 향유하려 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행보였다. 386의 ‘권력욕’은 지금도 논란거리이긴 하지만 굳이 그것을 탓하기보다 김민기의 절제와 겸손이 더 값지고 빛났으면 한다.
김민기는 무위와 무욕의 삶을 실천했다. 김민기도 ‘문화권력’에 관심이 있었다면 그의 업적과 상징성 때문에 충분히 그 달착지근한 권력을 오랫동안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출중한 능력과 인품에도 뒤로 물러앉는 대범함과 용기, 절제와 인내를 보여주었다. 존경은 뽐냄이나 과시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무욕과 청빈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김민기는 노래로, 삶의 실천으로 ‘몸소’ 보여주었다.
그는 ‘예인’의 기질이 있었지만 그 천재성과 끼를 철저하게 뒤로 물리고 그 재능을 오로지 남을 돋보이는 데만 오롯이 썼다. 아무나 할 수 없는 ‘본능의 누름’이다. 한국 대중문화가 김민기의 존재로 인해 민중과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전통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음은 축복이다. 그런데 왜 정치판에는 김민기의 ‘뒷것’과 같은 무욕과 무위의 삶을 실천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 것일까.
정치라는 것이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이라고 할 때 사실 정치와 무욕은 그 자체로 ‘우주적 모순’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를 오로지 개인의 출세를 위한 권력의 획득에만 의미를 둘 수는 없다. 한국 정치의 최악의 병폐는 권력의 획득에만 혈안이 돼 있고 실질적으로 더 중요한 가치인 권력의 ‘올바른 유지와 행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거나 무능함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진보와 보수 가릴 것 없이 한국 정치인들은 오직 ‘무엇을’에만 관심이 있을 뿐 ‘어떻게’에 대해선 무지하거나 무관심하다. 정작 ‘무엇’을 따냈을 때 그 무엇을 ‘어떻게’ 쓸모 있게 쓸 것인지, 그 무엇을 어떻게 컨트롤할 것인지에 대한 능력도 안목도 책임의식도 없다. 오로지 권력 획득이라는 ‘앞것’만 보고 달려가는 경주견들과 같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언제나 ‘앞것’의 삶을 살다가 천운으로 대한민국의 맨 앞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뒷것에는 눈이 어두웠고 어리석었다. 감옥살이와 탄핵으로 그들의 아둔함을 눈감아주기에는 우리 정치에 끼친 해악이 너무도 뼈아프고 원망스럽다.
권력은 앞것의 욕망보다 뒷것의 헌신과 절제가 있을 때 더 깨끗해지고 국민들에게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김민기가 그 많은 상징어 중에 유독 ‘뒷것’이라는 말을 선택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앞에 있는 권력보다 뒤에 있는 민중들의 삶에 더 연민을 느꼈을 것이다. 국민이 준 권력으로 자신이나 가족의 비리를 감추는 데 쓰는 방패막이로 이용하려 하고, 언제나 ‘앞’에만 서려하는 한 권력자의 누추하고 뒤틀린 욕망을 목도하다가 막상 뒷것의 사멸을 대하니 안타깝고 슬플 뿐이다.
한국 정치는 뒷것이 주는 성찰과 반성의 준엄함도 결여된 채 지금까지 왔다. 정치라는 말 앞에 성찰이라는 단어를 꺼내기가 민망할 정도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지금 정치판에서 성찰이라는 말과 어울리는 정치인을 보기 어렵다. 총선에서 보수정당의 궤멸적 참패를 부른 장본인이 책임은 고사하고 또 다시 국민앞에 나서서 자신의 ‘앞것’ 행태를 부끄러움도 없이 내지르는 것만 봐도 성찰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아깝다.
도대체 한국 정치에서 성찰이라는 단어는 어울리기나 하는 말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성찰형 정치인을 몇 번이나 본 적이 있던가. 자신의 것을 뒤로 물리고 남의 것을 앞으로 당겨주는 정치인이 존재하는가 말이다. 그렇게 해서 정치 한번 멋지게 하고 갔다는 사람이 있는가 말이다.
“어떻게 하면 나의 ‘앞것’을 더 드러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에만 골몰해있는 우리의 정치인들. 그들의 면면을 한번 보라. 국회에서 막말 좀 한다 싶어서 프로필을 보면 검사 아니면 법조계 출신이다. 팩트나 논리가 한참 모자라니 그냥 우기거나 상임위원장만 빤히 쳐다보는 치졸한 행위를 하다가 발언권을 박탈당한 국민의힘 곽규택, “공부는 내가 (정청래 건국대 출신보다) 좀 더 잘했지 않겠어요?”라고 그새를 참지 못하고 ‘서울대 우월의식’을 드러낸 유상범 등을 보는 것은 고역이다. 자신부터 돌아보고 성찰하고 겸손해하는 정치인을 바라는 것 자체가 지금 우리에게는 한심한 자기주문처럼 들린다.
현재의 국민의힘 의원들은 능력도 보여주지 못하고 그렇다고 투사의 전투력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저 초등학교 ‘반장’에게 빈정대거나 방해하는 유치한 어깃장으로 그 비싼 세비를 축내고 있을 뿐이다. 국민에게 존경까지는 아니어도 상식이라도 존중한다는 최소한의 예의를 보이는 게 정치인의 도리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들에게 그토록 얻어터졌으면 최소한 국회 개원 몇 달 만이라도 ‘맞아서 반성하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김민기는 그동안 우리가 뒤돌아보지 않았던 ‘뒤’의 소중함을 깨우치고 떠났다. 새벽이 빛나는 건 짙은 어둠이 있었기 때문이다. 앞것이 화려한 건 뒷것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는 지금도 앞것만을 쟁취하기 위해 악다구니판이다. 헌신이나 배려, 절제나 양보는 없다. 뒷것도 돌아보게 하는 게 정치다.
단판에 승부를 걸고 그 전리품을 싹쓸이해 가버리며 패자에게는 잔인하고 독한 복수를 버젓이 해대는 작금의 정치판은 과연 정상인가. 승부에서 패하면 그것은 모두 실패인가. 승부에서 이기기만 하면 그것은 모두 성공인가. 성공한 자의 역사는 언제나 옳은가. 실패한 자의 역사는 언제나 이렇게 비극적인가. 언제나 정치의 ‘앞것’은 옳은 것인가. 김민기의 ‘뒷것’은 우리에게 이것을 다시 진지하게 묻고 있다.
사실 ‘뒷것’이라는 단어는 국어사전에도 없는 말이다. “나는 뒷것이야. 너희는 앞것이고”라는 김민기의 말에서 유래된 ‘뒷것’에는 그의 삶의 철학과 가치관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사람을 낮추어 이르는 말인 ‘것’으로 자신을 표현해 한없이 겸손해지고자 했던 점이나 누구나 ‘앞’서고 싶거나 ‘앞’에서 선망의 눈길을 받길 바라지만 한사코 자신을 ‘뒤’로 물리고 묵묵히 남들을 도와준 점은 김민기의 삶을 관통하는 두 개의 ‘높은음자리’다. 우리는 언제쯤 뒷것의 정치인을 마주할 수 있을까. 고인의 명복을 빈다.
출렁이는 밤하늘 구름엔 달 가고
귓가에 시냇물 소리 소골소골 얘기하네
졸지 말고 깨어라 쉬지 말고 흘러라
새 아침이 올 때까지 어두운 이 밤을 지켜라
가자 천리길 굽이굽이쳐 가자
흙먼지 모두 마시면서 내 땅에 내가 간다
(김민기의 천리길 중에서)